작은 카메라로 충분할까

박선아
새로운 걸음을 시작하며

I AM NOT A PHOTOGRAPHER

작은 카메라로 충분할까

대학 새내기 시절, DSLR 열풍이 불었다. 너도나도 DSLR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도 동참하고 싶었지만, 그럴 만한 돈이 없었기에 아쉬운 대로 사진 수업을 신청했다. 첫 수업에 선생님은 일회용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오라는 숙제를 내주셨다. DSLR이 아니라 일회용카메라? 어쩐지 이상했지만,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일회용카메라를 하나 샀다.

볼품없는 소리가 나는

가벼운 카메라

일회용카메라를 파는 곳은 많지 않았다. 어린 시절엔 어딜 가든 살 수 있었는데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되며 사라진 듯했다. 상점을 돌다가 안국역 근처 슈퍼마켓에서 겨우 한 대를 찾았다. 카메라를 포장한 비닐 위로 먼지가 쌓여 있었다. 가게 앞 벤치에 앉아 먼지를 닦고 비닐을 벗겼다. 손바닥에 딱 들어오는 사이즈의 작은 카메라. 플라스틱 레버를 돌린 후, 사진을 찍어봤다. 틱 하고 볼품없는 소리가 났다. ‘선생님은 이런 카메라로 뭘 찍어오라는 걸까? 모두에게 카메라를 빌리거나 사오라고 하면 부담을 가질까 봐 그러셨나. DSLR로 렌즈를 돌려가며 멋지게 찍고 싶은데….’ 카메라를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쑤셔넣고 삼청동을 걸었다. DSLR을 들고 사진을 찍는 이들이 많았다. 동호회에서 나온 듯한 사람들이 보였고, 모델을 촬영하는 이들도 있었다. 찰칵, 찰칵, 찰칵. 명쾌한 소리가 났다. 거리를 걷던 사람들은 ‘찰칵’ 소리가 나는 쪽을 보며 기웃거렸다. 내 일회용카메라에서 나는 ‘틱’ 소리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기술보다는

자신의 눈을 믿어보세요

인화한 사진이 담긴 비닐 뭉치를 들고 수업에 갔다. 학생들은 책상 위에 찍은 사진을 펼쳐놓았다. 선생님은 책상 주변을 돌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구도를 아주 잘 잡으시네요.”, “이분 사진엔 위트가 가득해요.”, “작은 것들을 살피는 재능이 있는 것 같아요.” 일회용카메라로 찍은 사진이기에 별다른 기대를 않았는데 선생님은 하나씩 칭찬할 만한 점을 찾아주셨다. 얼굴과 사진을 번갈아 보니 얼핏, 사진과 찍은 이가 닮아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내 차례가 다가왔다. “시선이 좋네요.” 쑥스러워 머리를 긁적였다. 내내 그 말이 머릿속에 맴돌다가 수업이 끝나갈 무렵이 되었다. “수강생 모두 DSLR 같은 카메라를 쓰고 싶은 바람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이 수업에선 DSLR을 사용하는 법이나 사진을 잘 찍는 기술 같은 것은 가르쳐줄 수가 없어요. 그런 걸 기대하고 수강신청한 이는 취소해도 좋습니다.” 다들 망설이는 것 같았다. 사진 수업인데, 그럼 뭘 가르쳐주시려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선생님은 “기술보다는 자신의 눈을 믿어보세요.”라며 웃었다.

저런 카메라로

찍었다니

수업은 매회 비슷한 패턴으로 꾸려졌다. 찍어온 사진을 책상에 올려두고 서로의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다음엔 전 세계 사진작가들의 사진을 스크린을 통해 봤다. 선생님은 많은 말을 하지 않고 학생들로 하여금 본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도와주셨다. 스크린을 가득 채운 사진을 그저 바라보는 시간이 점점 익숙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라는 작가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수강생들이 여기저기서 그를 안다고 말했다. 사진의 세계에선 ‘거장’으로 불리는 작가였다. 어둠 속에서 스크린에 띄워진 사진을 봤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아름다운 사진들이었다. 선생님은 브레송이 어떤 카메라를 사용했을 것 같으냐고 물었다. ‘저런 사진을 찍으려면 적어도 얼굴보단 큰 카메라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스크린에 손바닥만 한 라이카 카메라의 사진이 올라왔다. 요즘 DSLR이 유행하듯 당시 사진작가들에겐 커다란 중형 카메라와 장비들이 인기였다고 한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그런 카메라가 오히려 자신의 촬영을 방해한다고 여겼다.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는 작은 카메라를 선택했고 그것을 들고 세계를 돌아다녔다.

 ‘조작’되거나 연출된 사진은 나와 관계가 없다. 내가 판단을 내리는 것은 오직 심리학이나 사회학의 차원에만 한정된다. 미리 배열된 사진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고, 이미지를 찾아서 그것을 포착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에게 카메라는 스케치북이자, 직관과 자생의 도구이며, 시각의 견지에서 묻고 동시에 결정하는 순간의 스승이다. 세상을 ‘의미’하기 위해서는, 파인더를 통해 잘라내는 것 안에 우리 자신이 포함되어 있다고 느껴야 한다. 이러한 태도는 집중, 정신훈련, 감수성, 기하학적 감각을 요구한다. 표현의 간결함은 수단의 엄청난 절약을 통해 획득된다. 무엇보다도 주제와 자기 자신을 존중하면서 사진을 찍어야 한다. 

–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영혼의 시선》 중에서

오늘의 내가

부끄럽지 않게

수업을 들었던 8년 전부터 지금까지 콤팩트카메라만을 사용한다. 가볍고 단순한 렌즈(단렌즈)를 가진 것으로. 여행하다가 옆 친구가 망원렌즈로 사진을 찍으면 가격을 묻기도 했고, 좋아하는 사진작가가 쓰는 전문가용 카메라를 알아본 적도 있다. ‘한번 사볼까.’ 싶을 때도 있지만, 골똘히 생각하다 보면 어김없이 지금 가진 카메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이 카메라로도 충분해.’라기 보다는 ‘이 카메라여야만 해.’가 맞겠다. 주머니나 가방에 넣고 다니며 찍고 싶은 순간에 꺼낼 수 있고 그럴 때 누군가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아도 된다. 함께 있는 이들도 내 카메라에 부담을 느끼지 않아 친구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그대로 담을 수 있다. 

가장 좋은 점 한 가지는 거짓말을 하고 싶을 때, 정직할 수 있게끔 도와준다. 단렌즈로는 피사체와 나 사이의 거리를 좁힐 수 없다. 멀리서 일어나는 현상을 ‘줌’할 수 없고 그저 그대로 찍어야 한다. 가까이 찍고 싶으면 내 발로 가까이 걸어가야 하고, 그럴 용기가 없다면 거리를 둬야 한다. 가까이 갈 수 있을 만큼 친근한 것은 가깝게 나오고, 멀리서 바라봐야 하는 낯선 것은 멀게 나온다. 어쩌다가 욕심내어 ‘만들어놓은’ 사진은 번번히 자신을 부끄럽게 한다.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것에 그런 척을 하거나 사진을 잘라내 완벽하게 만든 사진은 못생겼다. 대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못나진다. 그건 자신만이 알 일이다. 일은 때로 완벽을 요구하기에 거짓말이 필요한 순간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취미 사진가인 내게는 그런 부담이 없다. 정직하게 기록하고 싶다. 누굴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일이다. 내 눈이 보았던 순간이 훗날에도 그대로 남아 오늘을 이야기해주길, 그런 생각을 하며 작은 카메라를 주머니에 넣어둔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가장 가벼운 짐만 챙겨 들고 온갖 곳을 돌아다녔다. (중략) 가장 가벼운 짐은 배움을 통해 습득되지는 않지만, 일단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고 나면 어디나 지니고 다닐 수 있는 오래된 가르침이 된다. 이것 덕분에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인물로서의 자기 자신을 없앨 수 있었고, 순간을 더 잘 포착하기 위해 자신을 지움으로써 스냅 사진에 의미를 부여했다.”

-제라르 마세, 《가장 가벼운 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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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박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