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도 이동극장

작은 섬에
갑자기 생긴 극장

우리나라를 그린 큰 지도를 우연히 보게 됐을 때 나는 깨알만한 섬들에도 이름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어떤 지도에는 아예 그려지지도 않았을, 파도가 치면 지도에서 잠시 사라질 것 같은 어느 작은 섬에 백 명이 넘는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도 곧 알게 됐다. 나는 그때부터 자연스레 그 섬의 생활을 상상했다. 육지와도 떨어져 있고 규모도 작으니 그곳에서 오래 지낸 사람들에게는 많은 일들이 따분하게 여겨질지도 모를 일이다. 밤이 되면 어느 곳보다 어두울 테고 아무도 시끄럽게 굴지 않겠지. 등대도 졸고만 있을 것이다. 비록 상상이었지만, 조용하고 외로운 섬의 얼굴을 어렴풋이 봤을 때, 내 마음 속엔 문득 떠오르는 계획이 있었다.

이동극장
앞서 말한 계획이란 건 바로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었다. 그날 지도에서 작은 섬을 발견한 나는 섬사람들에게 ‘영화를 보여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둡고 조용한 섬에 찾아가 하얀 벽을 찾아내고 그 앞에 작은 빔프로젝터를 설치한 뒤 주변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리는 일, 그리고 영화의 오프닝 소리를 듣고 하나 둘 모여드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일, 모두 나를 기분 좋게 하는 상상들이었다. ‘배우들이 숨을 죽여 연기하는 동안 사람들 귀에는 파도 소리가 들리겠지.’ 중간에 잠이 들어 버린 할아버지의 얼굴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몇 년 전부터 종종 친구들과 함께 바깥에서 영화를 보곤 했었다. 실내극장도 좋지만 어쨌든 조금 더 자유로운 분위기, 흐트러진 분위기를 원했기 때문에 마음이 맞는 몇몇이서 돈을 모은 것이다. 빔프로젝터와 이동식스크린, 두세 시간을 버틸 외장배터리만 있으면 어디서든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깨닫게 된 일이지만, 주변에는 의외로 한가한 벽이 많아서 이동식스크린조차 그다지 필요가 없었다. 어디서나 영화를 보려고 스크린을 샀는데, 그 무거운 스크린 때문에 오히려 장소를 정할 때마다 상상의 발이 묶이게 된 적이 많았다. 이동식스크린 대신 주변 사물을 이용했을 때부터 우리가 가진 극장의 크기는 더 넓어졌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극장을 메고 다니는 꼴이었기 때문에 더 가벼운 극장을 얻었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섬에서 영화를 보겠다는 생각을 한 건 그래서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고, 당일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나열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준비를 하다 보니 배를 타고 이동하는 것 외에 크게 다른 점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됐는데, 그땐 어쩐지 좀 더 큰 극장을 가지게 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나는 여느 때처럼 유에스비에 몇 개의 영화를 넣고 날씨를 확인하며 맥주를 컵에 가득 부어서 마셨다. 영화는 <일포스티노>, <맨발의 청춘>, <나 홀로 집에>, <라푼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웰컴투 동막골>, <맨발의 기봉이>, 모두가 함께 봐도 좋을 만한 영화와 아이들을 위한 애니매이션, 골고루 넣었다. 같이 갈 사람들이 있을까, 몇 군데에 전화를 거는 것으로 준비는 대충 끝이 났다.
그날 저녁, 배에 이불을 덮고 누운 나는 작고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잠이 들었다. 배우들이 껴안는 장면에서 눈을 가리는 아이들과 프로젝터가 신기하다며 이리저리 뜯어 볼 할머니들의 모습을 생각했던 것이다. 영화가 상영되는 섬, 문득 가브리엘 살바토레 감독의 영화 <지중해>가 떠올랐다. 전쟁 중에 평화로운 섬에 정착한 군인들의 이야기. 물론 그곳에서 영화를 본다는 내용은 아니지만, 어쨌든 섬에 머물렀던 군인들은 결국 섬에서의 일을 평생 잊지 못한다.
고대도
서해에는 섬이 아주 많다. 사람이 살지 않는 섬도 많고, 육지에 비해 크게 불편한 점 없게끔 발전된 섬도 있다. 서로 거리가 가까운 어떤 섬들은 썰물 때 걸어서 이동할 수도 있다. 생각해 보면 동쪽과 서쪽의 바다가 확연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짐을 차에 싣고 출발하기 전에 하는 작은 결정에 따라 사람들은 전혀 다른 모습의 바다에 도착하게 된다. 바다를 보고 싶어하는 마음은 같은데, 한 명은 갯벌과 섬을 떠올리고 다른 한 명은 백사장을 떠올린다. 그런데 우리 경우에는 둘 다 아니었다. 튜브를 챙겼냐고 묻는 대신 영화의 러닝타임을 묻고, 비치웨어를 입어보는 대신 기기들의 충전 상태를 확인했다.
우리는 고대도라는 작은 섬에 내렸다. 대천항에서 배로 40분 정도면 닿을 수 있는 이 섬은 삽시도에서 북쪽으로 4키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고, 주로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섬이었다
면적이 0.9제곱키로미터밖에 되지 않지만, 주민들이 말하길 일찍부터 사람들이 정착해 다른 섬에 비해 온전한 집터가 많은 곳이라고 한다. 섬을 자랑하는 그들의 언어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밴 듯한 짠 냄새가 풍겼다. 그런 목소리로 자랑을 아무리 해도 전혀 밉지가 않다.
섬에 도착해서는 일단 숙소를 정해 짐을 내린 뒤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영화상영이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30분이면 동네의 모든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왜 왔슈, 왜 밖에서 본대유, 어디서 왔대유, 무신 영화를 튼대유, 각양각색의 질문이 날아와 당황했지만, 나중에는 그 질문에 관한 대답을 쭉 이어서 말하면 된다는 걸 깨닫게 됐다. 우리 대답이 아나운서처럼 노련해질 때쯤 동네 어른들은 딱 한마디만 했다.
“이이, 알았당께!”


섬이 들려준 이야기
저녁 일곱 시쯤이었을까, 우리는 배표를 끊어주는 터미널 옆에 자리를 잡고 벽 크기에 맞춰 화면을 설정했다. 벽에 영상이 비춰지기 시작했을 때도 좋았지만, 잠시 후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들 등 뒤로 파도소리, 갈매기 울음소리가 들렸을 때를 잊을 수가 없다. 어젯밤 이불에 누워 상상하던 일이 지금 내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낮에 만나 인사를 나눴던 마을 사람들이 멀리서부터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우리에게 예기치 못한 일이 두 가지 일어났다. 첫째는 섬마을에 이미 케이블 채널까지 들어와 있어, 다들 이미 영화를 꽤나 가려서 보는 편이라는 점, 그리고 우리에게 완벽해 보였던 야외극장이 주민들에게는 그저 ‘이해할 수 없는’ 극장이었다는 것이다. 웅성웅성, 자리를 잡은 것도 잠시, 할 일이 남았다거나 춥다는 말을 남기고 하나 둘 자리를 떠나 버렸다. 결국 영화가 절반쯤 상영할 때가 돼서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꼬마들만 남아 있었다. 배우들이 아무리 키스를 해도 절대 눈을 가리지 않는 꼬마들, 어쩌면 그건 예기치 못했던 세 번째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시무룩한 마음으로 장비들을 정리한 우리는 정적이 가득한 섬의 한 숙소에서 술을 마셨다. 일행 중 한 명은 ‘내가 원하던 바’라며 사람이 없는 이동극장의 매력을 얘기했고 나도 물론 동의했지만, 어쨌든 내가 깊이 착각했다는 사실에서 느껴지는 허무함과 창피함이 주변을 계속 떠다녔다. 술에 취한 우리는 부두에 나가 바다를 잠시 구경하고 돌아와서는 금방 잠에 들었다.
“안즉도 안 갔어?” 의기소침해져서 그랬는지, 다음 날엔 동네 사람들이 가볍게 던진 말에도 뜨끔해서 말을 더듬었다. 더 이상 아나운서처럼 말할 수가 없었다. 그 대신 나는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한 게 아닌가’ 그런 말을 스스로에게 속삭이며 조금은 덜 괴로운 마음으로 섬을 떠났다.

며칠이 지났을까, 섬에서 찍은 두세 롤의 필름을 사진관에서 찾았을 때, 나는 여러 장의 사진을 말없이 바라 봤다. 출발하던 아침과, 섬을 돌아다니며 주민들과 이야기 하던 우리들 모습이 담겨 있었고, 사진에 나오진 않았지만 내 기억 속에 아직은 또렷한 여러 장면들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어디서부턴가 그 사진 속 여행이 한 편의 영화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섬에 가기 위해 우연히 모인 네 명의 사람과 섬 안에서의 설렘, 실망, 그리고 밤새 들었던 고요함까지 모두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그때 나는 왜 그렇게 무언가를 주려고 했을까. 아니, 왜 그토록 무언가를 베푸는 내 모습을 보고 싶어 했을까. 앞으로만 달려가던 내가 사진에 그대로 찍혀 있었다.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무언가를 보여주려 했지만 결국엔 섬이 내게 많은 걸 보여주고 들려주었다. 지금이라도 ‘섬이 나에게 주려고 하는 것’을 온전히 받고 싶어 그때의 사진을 더욱 오래 들여다 봤다. 그 안에는 여러 개의 빈 벽과 나를 의심하지 않는 순수한 사람들 그리고 아름다운 섬의 골목들이 찍혀 있었다.
에디터 전진우
포토그래퍼 전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