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커다란 하나의 삶

뮤지션 루시드 폴

작고 커다란

하나의 삶

뮤지션 루시드폴

루시드폴을 처음 알았을 때 그는 스위스에서 연구를 하는 음악가였다. 그다음에는 제주에서 귤 농사를 짓는 음악가였다. 한 삶을 살며 얼마나 많이 그 행로를 바꿀 수 있을까. 그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었다. 얼마 전에는 2년간 제주에서 “키우고 가꾼” 글과 사진과 음악을 담은 앨범 [모든 삶은, 작고 크다]를 냈다. 그 안에서 그는 나무와 꽃과 새, 작고 커다란 삶에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오두막 ‘노래하는 집’의 내부가 궁금하다는 나에게 1분짜리 영상을 찍어서 보내는 다정한 사람이다.) 어쩌면 혼자 있는 모든 것은 따로 존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루시드폴을 만나 새로운 앨범에 관해, 이름을 부르는 일, 관계를 맺는 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안녕, 그동안 잘 지냈나요
나는 잘 지내고 있어요
다시 이렇게 노래를 부르러
그대 앞에 왔죠
지난 두 해 사이 참 많은 일들을
우린 겪어온 것 같아요
누구라도 다 그랬을 것 같기는 하지만

– 노래 ‘안녕,’ 중에서

Interview
뮤지션 루시드폴

“언제부턴가 나무와 꽃과 새의 이름을 더 많이 알고 싶었어요. 모르는 식물들, 새들을 만날 때마다 도감을 찾고 교육도 받고, 그러면서 하나라도 더 알아가려고 해요. 그럴수록 더 많은 게 보이거든요. ”

제주에서는 언제 올라왔나요?
오늘 올라왔어요. 밤에 연습이 있어서요.

사진 촬영이 부담스럽다고 했어요.
그냥 제가 아닌 것 같아서요. 메이크업을 하고 포즈를 취하고, 그게 아직도 익숙하지 않아요.

그런데 [모든 삶은, 작고 크다]에 사진이 많아요. 그리고 정말 좋고요. 아내분과 서로의 사진을 많이 찍는 것으로 보였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다른 찍을 사람이 없어서(웃음). 보현이(반려견)까지, 저희가 24시간 중에 한 23.5시간을…. 셋밖에 없기 때문에 서로 이렇게 손도 찍고, 발도 찍고, 얼굴도 찍어요.

함께 있는 시간이 길면 오히려 사진을 잘 안 찍게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저는 여행지나 기념일에만 카메라를 들거든요.
저희가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데, 사진을 다 찍고 필름이 나오면 그 필름을 택배로 서울에 보내요. 음, 슬라이드 필름 한 통에 2만원 정도 하거든요? 택배비는 4~5천원하고, 또 현상비가 만원 정도 하고요. 그러니까 한 롤을 찍으면 3~4만원이 들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름 카메라로 계속 찍는 이유는, 그렇게 필름을 보내고 나중에 사진을 받았을 때, 그사이에 벌써 추억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디지털 카메라는 찍고 나서 바로 보잖아요. 그런데 이건 앨범 한 장을 넘겨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에요. 그게 너무 좋아요. 그리고 지금을 계속 남겨놔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모든 삶은, 작고 크다]는 에세이와 사진이 있는 앨범이에요. 앨범을 처음 구상할 때부터 이 모든 게 있는 앨범을 만들려고 한 건가요?
제주에 내려가면서 느낀 게, 고전적인 형태의 앨범, 케이스를 열면 CD가 있고 얇은 부클릿Booklet이 있는 앨범 자체가 사람들한테 매력이 없겠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저 같은 음반 단위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음반 한 장이 팔렸을 때 가장 정당하게 대가를 받는다는 느낌이 있거든요. 제가 디지털 싱글을 자주 내는 사람이면 그렇지 않았을 거예요. 어떻게 해서든지 이런 물리적인 앨범을 계속 발표하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CD 이외의 무언가 다른 콘텐츠가 있어야 하겠더라고요. 이 앨범 한번 사서 들어보세요, 혹은 읽어보세요, 먹어보세요, 뭐가 되었든요. 쉽게 음악을 들을 수도 있는데, 굳이 이렇게 음반을 사는 분들에게 뭔가를 드려야 되지 않나….

앨범을 책이라고 불러도 될까 싶지만, 일단 책이라고 할게요. 책에서 “나에게 앨범과 노래란, 픽션이 아닌 다큐멘터리”라고 했어요.
음, 더 간단하게 말하면 ‘내가 기록한 것은 다 담겠다’였어요. 그게 무엇이든. 지금도 어떻게 보면 이번 앨범의 활동을 하는 셈이에요. 공연도 남아있고요. 그런데 내년이 되면 그때부터 저는 다음 앨범을 위한 기록을 해야 하는 셈이죠. 모든 걸 다 담겠다고 생각한 순간, 하루하루를 더 충실하게 기록하려고 하더라고요. 일기도 조금 더 쓰게 되고, 사진도 더 찍게 되고, 뮤직비디오에 쓰였던 그 영상들도 찍게 되고요.

그리고 그곳의 빛과 향기와 계절과 울림. 모든 것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무리 근사한 여행지에서 영감을 받고, 아무리 좋은 스튜디오에서 깨끗하게 녹음을 해도 그것보다 좋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내 노래가 태어날 ‘노래의 밭’이 갖고 싶었다.

– 루시드폴, [모든 삶은, 작고 크다] 중에서

여덟 번째 앨범이고, 이전에 책도 여러 권 냈어요. 이번 앨범은 책과 음반, 어느 걸 발표했을 때의 기분에 조금 더 가깝나요?
둘 다 아닌 것 같아요. 책을 냈을 때, 어떻게 생각하면 몸을 많이 사렸어요.

작가가 해야 하는 홍보 활동에 대한 이야기일까요?
이를테면 언론사에 가서 인터뷰를 하고 북 콘서트를 하고 저자와의 만남을 갖고, 당연하게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회사에 소속되어 있다 보니까 1대1로 할 수 있는 게 있고, 1대1로 할 수 없는 일들이 있잖아요. 모두가 조금씩 불편한 상황이 생기더라고요. 조금 색달랐다고 한 이유는, 어쨌든 책 형태의 음반이니까 출판사에서 요구하는 것들도 결국 음반의 프로모션이잖아요. 훨씬 마음 편하게 할 수 있었어요. 음반 쪽도 당연히 그렇고요.

네이버 브이앱(스타들의 실시간 개인방송 앱) 안테나 채널에서 농부, 작가, 싱어송라이터, 세 가지 역할로 등장한 걸 봤어요. 작업할 때에도 자아를 분리해놓는 건 아니죠(웃음)?
(웃음)일단 농사일할 때는 아무 생각도 없어요. 생각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에 자아라는 게 뭔지를 알 수가 없죠. 그런데 양면적이란 얘기를 많이 듣긴 했어요. 꼼꼼한 듯하면서도 또 어떤 건 신경을 안 쓰고.

저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모범생의 얼굴을 한 반항아?
맞아요. 어떨 때는 순응하는 것 같은데, 또 어떨 때는 반골 기질이 있고요. 그러니까 이를테면 고등학교 때는 별로 딴 짓 안 하고 할 줄도 모르고, 학교, 독서실, 집만 오가는 범생이었는데 갑자기 혼자 제2외국어를 중국어로 하겠다고 선생님과 싸우고 자퇴를 하려고 했다든지 하는… 그런 면이 있었어요. 그런 모습들이 섞여 있으니 밭에서 일하는 저와 이렇게 인터뷰를 하고 말하는 저는 전혀 다른 모습일 수 있겠죠.

무언가를 결정할 때 마음속에 선명한 기준이 있는지 궁금해요.
후회를 안 할 건가. 저는 앞을 보는 사람이에요. 뒤를 돌아보는 사람이 있고 지금을 보는 사람이 있고 자꾸 앞을 보려고 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저는 지금을 보는 사람의 행복지수가 높다고 보는 편인데요, 제 아내가 조금 그래요. 근데 저는 앞을 봐요. 뒤는 잘 안 봐요. 지금 맛있는 걸 먹고 있는데, 이걸 내가 내일도 먹을 수 있는지가 중요한 거예요. 결혼하고 나서 많이 현재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저한텐 지속가능성이 중요해요. 그래서 뭔가를 결정할 때 항상 시간이 지나도 후회를 안 할 건가, 그게 가장 큰 기준이에요.

그러면 서울에서 제주로 내려온 것도, 농사를 짓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후회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던 건가요?
그런데 더 웃긴 건, 정작 중요한 결정은 그런 생각 자체가 안 들고 몸이 먼저 움직여요. 멋있게 얘기하면 직관인데(웃음),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은 때가 있어요. 예를 들면, 스위스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다가 한국으로 돌아가서 음악만 해야겠다는 결정은 큰 결심이잖아요. 많은 것들을 그만두고 이전에 예상했던 시나리오들을 다 쳐내야 하는 상황인데, 그러면 생각을 많이 하고 경우의 수를 따져볼 것 같잖아요. 근데 그게 아니라 그래야 할 것 같았어요.

지금 제주는 어때요? 가장 바쁠 때 아닌가요?
그렇죠. 근데 저는 올해 귤이 별로 안 달려서…. 귤이 많이 달렸을 때면 지금 죽죠. 사람 구하느라 엄청 애먹고 친구들의 사돈의 팔촌까지 전화해서 시간 되는 사람 물어보고 있을 땐데, 올해 귤이 너무 안 달렸어요. 해거리가 엄청 심한 밭이더라고요. 제가 이 밭에서는 이제 2년째라 과수원 파악을 못 했어요. 이렇게까지 편차가 심할 줄은 몰랐어요.

완벽한 농부의 삶이네요.
저는 농사를 지으려고 내려갔어요. 시골에 살면서 최대한 자급자족할 수 있게요. 음악을 하는 사람이고 음악으로 먹고살고 있었지만, 내가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가장 원초적인 방식으로 먹고살 수 있다면 그렇게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었던 거죠.

[모든 삶은, 작고 크다]의 영어 제목도 ‘Living small and tiny farm’이더라고요. 영어 제목의 의미가 좀 더 명확한 느낌이에요.
원래 처음 앨범 구상을 할 때는 ‘노래하는 집’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노래하는 집을 만들어서 거기서 곡을 쓰고 녹음하고 앨범이 나오는 것까지를 앨범 작업으로 보면 되겠다 싶었죠. 그랬는데 글을 쓰다 보니까 다른 할 얘기가 더 많았던 모양이에요. 오두막에 대한 얘기가 안 나오더라고요(웃음). ‘노래하는 집을 짓다’라는 꼭지가 맨 끝에 나왔거든요. 그다음 생각했던 게 ‘Living small’이라는 제목이었어요. ‘Small life’하고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음, 그냥 저한테는 조금 시적인 느낌이었거든요.

어떤 죽음도 무게는 똑같다. 그 무게의 이름은 이별이다. 작년에 내가 맞이한 그 죽음들. 땅 위로 내려온 그 많은 날개를 묻어주었던 기억. 나는 그 모든 이별을 하나하나 잊지 않고 있다.

– 루시드폴, [모든 삶은, 작고 크다] 중에서

이 세상에 단 하나의 길만 있을 수 없듯, 모두가 같은 길을 걷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모두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그러니 하나의 노래도 모두에게 다른 노래로 남게 된다는 것을.

– 루시드폴, [모든 삶은, 작고 크다] 중에서

그런데 뒤에 ‘작은 농장’이 붙었어요.
저와 이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친구가 미국에 살고 있어요. 그 친구 와이프는 한국 사람인데 미국에 훨씬 오래 살아서 언어 감각이 원어민에 가까워요. 그래서 영어나 이런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는 편인데, 물어봤더니 ‘Living small’이라는 제목이 참 좋다는 거예요. 좋은데, 어느 날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자기는 ‘Living small and tiny farm’이라는 제목이 자꾸 떠오른대요. 나의 모든 맥락을 알고 있는 친구들이죠. 그때는 “그런가?” 하고 넘어갔어요. 그리고 ‘Living small’은 부제처럼 생각했고, 출판사와 이야기를 하다 ‘모든 삶은, 작고 크다’로 결정됐는데, (안테나에서) 영어 제목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생각해둔 것도 없고 ‘모든 삶은, 작고 크다’를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그대로 쓴 거예요.

영어 제목을 요청한 게 해외 음원 사이트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은데요(웃음), 제가 거기에서 음악을 듣거든요. 보니까 ‘안녕,’의 제목은 불어던데요?
‘안녕,’은 이게 ‘하이Hi’의 의미인지 ‘굿바이Good-Bye’의 의미인지 애매하더라고요. 근데 프랑스에서 ‘봉주르Bonjour’나 ‘봉수아Bonsoir’ 보다 캐주얼하게 쓰는 ‘쌀뤼Salut’가 딱 생각났어요. 그리고 만들 때부터 라틴곡의 느낌으로 만든 곡은 아예 포르투갈어로 제목을 붙였고요. 나머지는 영어죠.

이번 앨범이 ‘노래하는 집’에서 탄생한 첫 결과물이잖아요. 앨범을 받아본 소감이 어떤가요?
그간 모든 앨범이 그랬듯이 기뻤어요. 다만, 어서 잊고 다음 역으로 떠나자고 마음먹고 있고요. 올해 작업 기간 동안 집안일과 밭일을 많이 하지 못해서, 이다음 앨범의 작업 패턴은 뭔가 변화가 있어야겠다는 고민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엔지니어로서 좀 더 잘할 수 있게 칼을 갈고 있고요. 필요한 장비도 계속 체크리스트에 적어가면서 작업을 언제라도 할 수 있도록 미리 사 두어야겠다고 생각해요. 어디 싸게 난 거 없나 매의 눈으로 매일 웹 서핑 중이에요.

‘노래하는 집’에서 보내는 가장 좋아하는 계절과 시간은 언제예요?
실은 올해 3월부터 10월 중순까지가 제가 오두막에서 보낸 시간의 전부예요. 반년 정도죠. 그래서 계절에 대해서 얘기하긴 어렵지만, 봄도 여름도 가을도 다 좋아요. 3월은 봄이긴 하지만 여전히 난로를 피워야 하는 계절인데, 그 훈기 넘치는 열기도 좋고. 여름의 습습한 공기도 좋고. 서늘해진 가을도 좋고. 언제든 좋지요. 시간에 대해 말하자면, 시간 역시 뭐, 낮 시간 주변의 쿵쿵대는 공사장 소리가 좀 그렇긴 합니다만, 다 좋습니다. 좋은 것은, 계절과 시간에 큰 상관이 없나보네요.

저는 누구나 혼자만의 시간, 혹은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아까 23.5시간을 아내와 보현과 함께 보낸다고 했는데, 혹시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는지 궁금해요.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는 건, 저에겐 너무나 당연한 얘기예요. 이를테면, 저는 여러 사람과 공간을 나누며 생활하는 걸 잘 하지 못해요. 셰어하우스나 게스트하우스 같은. 심지어 고달팠던 학창시절에도 기숙사에 들어가는 것만은 기를 쓰고 피해 다녔어요. 이곳에서 집을 구할 때, 가장 신경을 썼던 것은 저와 아내가 각각 지낼 수 있는 공간이었고, 지금도 저와 아내는 각각 자신의 방에서 필요한 일과 작업을 해요. 문을 닫아 놓고 ‘무언가’를 하면 웬만하면 방으로 들어가지 않아요.

바다가 어떤 의미인지 묻고 싶어요. 어린 시절 바닷가(부산)에 살았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었고 결국 바다 곁으로 돌아가기도 했고, 이번 앨범에는 ‘바다처럼 그렇게’라는 곡도 있어요.
어릴 적,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바닷가 마을에 살았어요. 게다가 외갓집이 역시 바닷가 마을이었기에, 만일 어머니의 유년시절 기억이 내 DNA에 전해진 거라면 나는 꽤 ‘짭짤한’ 유전자를 새기고 사는 사람인 셈이죠. 언제 어느 바다를 보아도, 항상 아련해요. 아련하다… 그 말 이외에 적당한 서정의 단어를 찾을 수가 없네요.

원래도 나무와 새들의 이름을 잘 부르는 사람이었나요(웃음)? [모든 삶은, 작고 크다]를 읽다 보면 낯선 나무와 새의 이름이 자주 등장해요. 그걸 보며 관계를 맺는다는 건 이름을 불러주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언제부턴가, 나무와 꽃과 새의 이름을 더 많이 알고 싶었어요. 그냥 꽃, 그냥 풀, 그냥 새가 아니라, 여뀌꽃·으아리꽃·씀바귀꽃·팔색조·동박새·개머루… 그렇게요. 이름을 알지 못하면, 그냥 모르는 거니까요. 바닷가에서 자라기도 했고 어머니에게서 물고기 이름을 하도 많이 들어서 웬만한 물고기 이름은 다 아는 편인데요, 회만 봐도 어떤 생선인지 거의 다 알아요. 만일 제가 물고기 이름을 모른다면, 그냥 ‘물고기’ 혹은 ‘생선’이겠죠. 갈치조림이나 고등어조림이나 다 같은 ‘생선 조림’이면, 세상 사는 게 너무 재미없지 않을까요? 그래서 모르는 식물들, 새들을 만날 때마다 도감을 찾고, 교육도 받고, 작년에는 새 탐조 교육도 받았어요. 그러면서 하나라도 더 알아가려고 해요. 그럴수록 더 많은 게 보이거든요.

요즘 루시드폴을 행복하게 하는 건 무엇인가요?
음악 듣는 거…. 저는 기본적으로 불안이 많은 사람이에요.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생각의 패턴이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이 항상 있으면서도 좌충우돌하며 살아가는 그런 모순적인 사람이에요. 우리가 누군가를 볼 때 ‘저 사람 용감하게 자기 길을 뚜벅뚜벅 가는 것 같아’ 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이든, 혁신가든. 어느 책에서 봤는데 그런 사람들이 실제로 불안이 많다고 해요. 인간이기 때문에. 저도 그런 편이거든요. 무언가 새로운 걸 해보려고 하는 성격도 있지만 불안도 많아요. 마음을 다스리면서 하루하루를 사는 게 중요하면서도 어려워요. 특히나 음반을 내고 공연을 하고, 혹은 농사일을 하고 수확을 해서 사람들에게 파는 건 결과를 계속 끊임없이 확인해야 되는 일이잖아요. 그런 일들이 에너지를 조금 소진하게 만들어요. 그럴 때 제일 큰 위안이 되는 게 음악이더라고요.

“나는 내 노래가 태어날 ‘노래의 밭’이 갖고 싶었다.”는 말이 무척 좋아요. 루시드폴의 ‘노래하는 밭’에서 가장 큰 양분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얼마 전 공항 서점에서 우연히 읽고 선물한 다니카와 슌타로의 책 일부의 글로 대신할까 해요. “저도 뭔가를 쓰려고 할 때에는 가능한 한 제 자신을 텅 비우려고 합니다. 텅 비우면 말이 들어옵니다. 그러지 않고 내 안에 말이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판에 박은 표현으로 끌려가버리지만.”

AROUND 온라인 구독

어라운드의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읽어보세요.

구독 시작하기

에디터 김혜원

일러스트 손은경 사진 안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