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 가득한 오늘

오송민·이지훈 — 원파운드
축하의 자리에 놓여

의류 브랜드 원파운드를 운영하는 오송민·이지훈 부부는 지난 20여년 동안 친구에서 연인으로, 연인에서 부부로 나아갔고, 이제 곧 부모가 된다. 늘 서로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에 어제보다는 오늘을 사랑하는 두 사람. 세월의 마디마디에 책갈피처럼 꽂혀 있는 편지들은 서툴고 풋풋한 마음이 애틋하고 단단해지기까지 서로를 어떻게 사랑해왔는지 말해준다.

늦었지만 아기가 생긴 걸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송민: 감사해요. 이제 안정기로 접어들어서 걱정 없이 보내고 있어요. 둘이 일 끝나고 집에 와서 같이 밥 해 먹고 산책도 많이 해요. 임신 준비할 때 남산에 자주 올랐는데 이제 그렇게까지는 못 하고 슬슬 걷는 정도예요. 

지훈: 아내도 저도 임신 준비 때문에 운동을 시작한 거라서 이제 그만둬도 되지만, 어느새 중요한 일상이 돼서 계속하고 있어요. 아기 이름이 자유인데요. 자유가 생긴 이후로는 ‘자유가 세상에 언제 나오나….’ 그 생각밖에 안 들어요. 일하는 것 빼고는 거의 모든 게 자유한테 집중되어 있어요. 

 

두 분이 임신 소식을 알린 글과 사진들 보고 생판 남인 제가 다 울컥했어요. 소식 듣고 어떠셨어요? 

지훈: 엄청 감동이었죠. 건강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생물학적인 나이는 노산으로 분류되니까요. 저희는 시험관 시술을 두 번 시도해 아이를 가졌어요. 친구네가 시험관 임신을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당연히, 별 노력 없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완전 망한 거예요. 아예 아무것도 안 됐어요. 마음을 다잡고 송민이도 저도 열심히 운동하고 노력해서 성공한 거라 지금이 더 귀해요. 하면 된다는 신기함도 있고요. 

송민: 처음에는 둘 다 뭣도 몰랐어요. 여자 몸에 직접 물리적으로 가해지는 것들이 있는데, 지훈이가 이해해 줄 수 없는 부분이 많아서 좀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한 번 실패하고 다시 2차 시도하면서 지훈이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살펴봐줬어요. 그 시기에 사이가 더 돈독해지고 애틋함이 많이 생긴 것 같아요. 

 

생활 패턴에도 변화가 있겠네요. 

지훈: 원래 출퇴근을 같이 했는데 요즘엔 따로 해요. 저는 9시 맞춰서 출근하고 송민이는 좀 나중에 나오거나 재택근무를 하기도 해요. 

송민: 제가 혼자 아침 시간 보내는 걸 좋아해요. 사무실이 집 바로 앞이라 7시에만 일어나도 충분히 여유로운 아침을 즐길 수 있어요. 아침밥을 꼭 챙겨 먹는 편이어서 뭐라도 간단하게 만들어서 먹고, 유튜브 보면서 요가도 하고, 음악 들으면서 일기도 써요. 예전에는 밤에 쓰는 걸 좋아했는데 요즘에는 행복해서 그런지 자꾸 긍정적인 생각이 많이 들어서 아침에 쓰는 게 좋더라고요.

결혼한 지 얼마나 됐어요? 

지훈: 2017년 5월에 했으니까 이제 조금 있으면 5년이 되네요.

 

부부는 가장 가까운 관계잖아요. 게다가 두 분은 고등학교 때 처음 만났고요. 긴 세월 동안 무뎌지기도 할 것 같은데 어쩜 여전히 서로를 웃겨 하고, 귀여워하고, 사랑이 넘쳐나나요?

송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유머 코드가 잘 맞았어요. 어렸을 때라서 진지한 연애를 한 건 아니지만, 만나면 그냥 재미있으니까 사귀었다 헤어졌다 많이 반복했고 서로 애인이 생겨도 계속 친구로 지냈어요. 이상한 게, 너무 재미있어서 막상 사귀어보면 ‘우리는 연인은 아닌가 보다.’ 하고 헤어졌죠. 그러다 진지하게 다시 만난 건 20대 후반이 되어서였어요. 

지훈: …잠깐만요. 끝까지 들어볼게요. 저랑 생각이 다른데…. 

송민: 잠깐만(웃음) 왜 말이 그렇게 끝났지? 

지훈: 생각이 달라…. 처음 들었는데 나는? 만나서 그냥 재미있기만 했다는 얘기 아니야? 나는 너무 재미있으니까 어떻게든 꼭 만나야지, 이랬는데 너는 아 너무 재미있다, 하지만 역시 애인은 아니야, 그랬다는 거 아니야. 

송민: 그런 뜻이 아니었어. 

지훈: 뭐, 이미 결혼했는데 뭐 어떡해. 괜찮아! 

송민: 갑자기 고백하게 된 게 너무 웃긴데 저는 여기까지 할게요. 

 

그게 좋겠어요(웃음). 유머 코드 저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요. 

지훈: 맞아요. 결혼까지 하게 된 것도, 지금까지 서로 잘 지내는 것도 코드가 통한 게 컸죠. 그런데 유머 코드 하나로만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송민이랑은 좋아하는 영화나 음악 취향도 비슷해서 대화가 자연스럽게 잘 통했어요. 성향도 비슷하고요. 둘 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바로 실행하는 스타일이라는 게 제일 잘 맞는 부분이에요. 또 하나의 비결은 제가 더 많이 좋아한다는 거죠. 송민이가 첫사랑이다 보니까 만날 때마다 설렜어요. 옛날 얘기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여자보다 남자가 더 좋아해야 오래 행복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제 소신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다른 부분도 많죠? 

송민: 많이 달라요. 저는 좀 소심하고 많이 섬세해서 다른 사람의 기분을 잘 느끼는 편이에요. 반대로 지훈이는 전혀 못 느껴요. 다른 사람 기분에 관심이 없어요. 이렇게 같이 인터뷰를 하고 나서 이따 저녁에 “오늘 에디터님이 그랬잖아.” 얘기하면 전혀 공감을 못 해요. 남 신경 안 쓰고 본인에게만 초점이 맞춰진, 자기 자신에게는 아주 좋은 성격이죠. 소신도 강하고 진취적이고… 한마디로 저는 좀 감성적인 사람이고 지훈이는 이성적인 사람이에요. 전형적인 F와 T라서 똑같은 문제를 너무 다르게 받아들여서 싸울 때가 많았어요. 서운한 걸 얘기하면 사과를 하긴 하는데 제 감정을 잘 못 읽는다고 느껴졌어요. 제가 점점 솔직하게 세세히 얘길 하니까 ‘아 그렇구나.’ 하면서 달라지더라고요. 

훈: 지금 생각해 보면 송민이는 어릴 때부터 이미 감정적인 부분이 완성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예나 지금이나 취향의 기준이 늘 뚜렷했고 변하지 않아요. 오래된 물건을 좋아하고 콜드플레이의 노래를 좋아하죠. 그런 모습 보면서 안정감을 얻고 배우게 돼요. 

송민: 저는 20대에 유난히 방황을 많이 했어요. 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서요.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것에 감동하고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이었죠. 저의 뚜렷한 라이프스타일을 만들고 싶어서 음악, 영화, 책, 옷 입는 스타일, 모든 부분에서 취향을 찾기 위해 꽤 많이 노력했어요. 지훈이도 어릴 때부터 저의 이런 모습들을 봐와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송민 씨가 완성형이었다면 지훈 씨는 어땠어요? 

지훈: 저는 완성이 안 되어있었죠. 지금도 매일 실수하고 깨닫고 마음도 이랬다저랬다 자주 바뀌지만, 예전에는 누구 말도 안 듣고 도덕적인 면도 많이 부족했어요. 한 마디로 못된 개인주의였는데, 지금은 ‘내 말이 맞지만 네 말도 맞아.’로 태도가 바뀌었어요. 지킬 것들은 잘 지키고요. 지금의 제 모습은 모두 학습의 결과예요. 완성은 안 됐는데 다행히 습득이 빨라서 송민이가 이끌어주는 좋은 방향으로 변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변한 제 모습이 마음에 들고요. ‘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네?’ 놀라기도 하고, 매일 오늘이 리즈라고 생각해요. 

송민: 외형적인 모습이 아니라 자기 내면이 정말 리즈라고 생각한대요. 평소 하는 생각들, 행동들이 너무 마음에 든대요.

 

좀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을 가르쳤고 학습했어요? 

송민: 음… 되게 사소한 에티켓이요. 

지훈: 수저를 수저받침 위에 놓는 거? 처음에는 ‘아, 뭐 이거 가지고 그래.’ 했는데 생각해 보니 수저가 식탁에 바로 닿는 것보다는 수저받침 위에 있는 게 더 깨끗하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프리랜서로 오래 일해서 사람들과 공간을 공유할 때 조심해야 한다는 개념이 없었어요. 직원들이랑 같이 있을 때 엄청 큰 목소리로 통화를 했는데, 송민이가 그걸 보더니 회사에서 전화 받을 때는 되도록 큰 소리 내지 말고 길어질 것 같으면 밖으로 나가서 하라고 하더라고요. 아니 나는 당장 이 컴퓨터를 보면서 일처리를 해야 되고 이 사람이 내 목소리를 잘 못 듣는 것 같으니까 크게 하는 건데(웃음), 그러다가 또 생각해 보면 혼자 쓰는 공간이 아니니까 그럴 수 있겠구나… 수긍하고 그랬어요. 그런 사소한 것부터 송민이가 해준 조언이 다 맞는 말이라서 바꾼 거예요. 저도 제 주장이 있기 때문에 아닌 건 아니라고 합니다(웃음). 어느날 <라디오스타>에서 누군가 김구라 씨에게 ‘이 사람은 아닌 건 죽었다 깨나도 아니라고 한다. 그렇지만 타인의 얘기를 잘 듣고 납득이 되면 또 단번에 인정을 한다.’고 했는데, 저도 그런 것 같아요. 한 번 학습한 내용에 대해서 두 번 실수는 없습니다. 

 

지훈 씨는 태어날 때부터 바르고 다정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런 과거가 있었는지 몰랐어요. 

송민: 그렇죠? 지금은 완전히 사랑꾼 이미지여서 제가 맨날 너무 미화됐다고, 사람들이 너의 옛날 모습을 너무 모른다고 해요. 어렸을 때 지훈이는 선물이나 편지 주고받는 것도 되게 서툴렀거든요. 편지를 막 워드로 쳐서 인쇄해서 주고…. 

 

편지를 워드로요? A4 용지에? 

송민: 네. 저는 정성스럽게 손 편지를 써서 줬는데 돌아온 게 워드 편지였어요. 답장을 아예 못 받을 때도 많았고요. 고등학교 때는 그림도 그리고 글씨에 그림자도 넣고 정성을 다하더니 성인이 되면서 성격이 많이 변한 거죠. 군대 다녀오면서 많이 터프해졌어요. 편지 내용도 보면 ‘나다. 다 걱정 마라. 사랑한다!’ 이런 식이었어요(웃음). 

 

처음에 적잖이 당황스러우셨을 것 같은데요(웃음). 

송민: 그냥… ‘왜 저러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지훈: 아니, 왜냐하면 나는 편지 쓰면 손이 아프니까 그랬지…. 효율만 생각하고 낭만이 없었어요. 

송민: 너무 성의가 없다고 한 소리 했더니 잘 받아들이지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지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말했죠. 다음 내 생일에는 편지랑 꽃을 받고 싶다, 작은 엽서에 한 줄이라도 좋으니 꼭 손으로 쓴 걸 받고 싶다고요. ‘생일 축하해’ 그 한 줄이 점점 길어져서 지금 같은 장문의 편지가 된 거예요. 

지훈: 그때는 뭐라고 써야 할지도 모르겠고 글씨도 못 썼거든요.

지금 글씨 잘 쓰시지 않아요? 

지훈: 이왕 쓸 거 잘 쓰고 싶어서 유튜브 보고 배웠어요. 

 

와… 백 퍼센트 노력형 인간이네요. 

지훈: 노력형이라기보다는 흥미형이라고 봐야 할 것 같아요. 재밌으니까 한 거거든요. 흥미가 끊임없이 생기고 금방 식는 편이에요. 열 개 시작하면 남는 건 두 개 정도인데, 그 두 개를 1년이 지나도록 지속하면 완전히 즐기는 취미가 돼요. 운동이나 독서가 그렇게 생긴 취미예요. 

 

점점 바뀌어 가는 모습 보면서 송민 씨는 어땠어요? 

송민: 연애 때보다도 결혼하고 나서 제 말에 더 귀 기울여줘서 고맙죠. 결혼할 때 고민 많이 했거든요. 할까 말까가 아니라 너무 많이 싸울 것 같아서요. 동갑에다가 오랜 친구고 또 자기 고집이 세니까 걱정 되더라고요. 그런데 지훈이도 말했듯이 제가 하는 말이 맞다고 판단되면 받아들이고 같은 실수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게 느껴졌어요. 덕분에 결혼 생활에 믿음이 쌓였고, 사람에 대한 신뢰도 커졌어요. 저도 많이 변했고요. 저는 우울함을 좀 즐기는 편이었어요. 글 쓰는 걸 좋아해서 그런지 혼자 자주 감상에 빠지곤 했죠. 지훈이를 만나고 제가 하는 많은 생각들이 긍정적으로 변했어요. 좀 씩씩해졌다고 해야 하나? 저희 관계는 확실히 지금이 가장 발전적인 상태예요. 

 

다시 편지 얘기로 돌아가 볼게요. 두 분의 편지 역사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송민: 처음 받은 건 고등학교 때였어요. 그 그림 그리고 글자에 그림자 넣었다는 편지요(웃음). 그 편지는 주기적으로 꺼내 봐요. 소년의 풋풋한 감성이 묻어나잖아요. 워낙 추억이 많다 보니까 맞아 우리 옛날에 그랬지, 하면서 옛날 얘기도 많이 하게 되죠. 

지훈: 아, 그거 저는 안 꺼내 봅니다(웃음). 

 

왜요. 그 시절에 러브장 같은 거 하나씩 다 쓰잖아요. 

송민: 맞아요. 저도 많이 썼어요.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거든요. 편지, 교환일기, 러브장…. 

지훈: 나는 받아본 적이 없는데? 

송민: …미안해. 

지훈: 네. 아무튼 그렇게 시작했어요. 저는 원래 그 누구에게도 편지를 써본 적이 없어요. 군대에서는 통신수단이 편지밖에 없으니까 반강제적으로 썼지만요. 그런데 송민이는 워낙 그걸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어떤 대단한 선물보다 마음을 담아 손으로 쓴 편지를요. 편지 쓰는 게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요. 송민이가 좋아해서 시작했고, 이제는 모든 기념일에 편지는 필수적으로 주고받아요. 

 

편지들 다 모아 놓으세요? 아까 보니까 이만한 박스에 편지가 가득하던데요. 

지훈: 저도 보고 놀랐어요. 좀 버리라고 해도 안 버리더라고요. 

송민: 지훈이 편지만 모으는 건 아니에요. 고등학교 때 친구들하고 쓴 것도 다 있어요. 제가 추억에 좀 집착하는 성향이 있는 것 같아요. 따뜻했던 추억은 물론이고 기억하기 싫은 추억도 그 나름대로 저를 흔들리지 않게 해주거든요. 살아낸 기억이 어떤 식으로든 현재의 저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그러고 보면 편지를 쓰고, 주고, 다시 받고, 시간이 흘러 다시 읽어보는 일은 참 애틋해요. 그중 가장 좋아하는 과정은 뭐예요? 

송민: 받는 거요. 편지는 그 당시 쓰는 사람의 마음을 최대치로 느끼게 해줘요. 내가 이 사람한테 얼마나 사랑받는지 알 수 있죠. 그래서 지훈이한테도 편지 써달란 말을 자주 했나 봐요. 

지훈: 저는 쓰는 게 재미있어요. 받는 건… 일단 상대방이 제 옆에 있으니까요. 너무 로맨틱하게 들릴 수 있는데 그런 의미는 아니고요(웃음). 저처럼 첫사랑이랑 결혼한 분들은 아실 거예요. 아주 가끔씩 같이 있는 게 진짜 신기할 때가 있어요. ‘내가 해냈네.’ 그런 기분이요. 결혼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감동이기 때문에 받는 것도 좋지만 쓸 때가 더 좋아요. 쓰면서 마음도 정리되고 내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알게 되고요.

늘 함께하는데도 할 말이 그렇게 많은 게 신기해요. 

지훈: 쓰다 보면 계속 생겨요. 일상에서는 진짜 매일 일어나는 일이나 고민을 나누잖아요. 그런데 편지는 말 그대로 일대일로 마음과 마음끼리 연결하는 거니까 속에 있는 얘기들이 막 나오는 거죠. 저희는 일도 같이 하고 함께한 세월도 많으니까 공유하는 소재가 다른 분들보다 많기는 한 것 같아요. 맞벌이나 살림, 육아로 저녁에만 만나는 부부들은 일부러 말하지 않는 이상 혼자 있을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를 텐데, 가끔 사무실에서 송민이를 보면 뭐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대충 짐작이 가거든요.  

 

지금까지 주고받은 편지 중 기억에 남는 게 있어요? 

송민: 기억에 남는 편지 있어요! 여기 냉장고에 붙여놓은 것 중 하나인데, 제가 보고 많이 울었거든요. 시험관 이식한 날인가 그랬어요. 지훈이는 보통 현재와 일상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를 써주는데, 이 편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내용이어서 오래된 친구에서 비로소 부부가 된 것 같은, 새출발하는 느낌이 나서 뭉클하더라고요. 

지훈: 저는 좀 옛날 건데, 연애할 때 송민이가 생일 선물 주면서 쓴 편지예요. 제 친한 친구가 미국 사는데 그때는 돈이 없으니까 간다 간다 하고 한 10년 정도 못 갔거든요. 그런데 송민이가 편지랑 비행기표를 선물로 줬어요. 일 때문에 한창 바쁠 때였는데 마음을 많이 써준 게 너무 고마웠죠. 편지 내용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웃음) 비행기표를 준비하는 마음이 담겨 있어서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덕분에 신나게 놀고 왔죠. 

송민: 선물 이상한 거 사 와서 대판 싸웠어요. 제가 그렇게 비싼 거 선물해 줬으니까 그래도 뭐라도 좋은 거 사 오지 않을까 했는데 괜히 기대했죠, 뭐. 

지훈: 나름대로 저는 생각 많이 하고 사 온 거거든요. 그거 있잖아요, 빅토리아 시크릿. 

송민: 그걸 예쁘게 포장해서 가져온 게 아니고, 쇼핑백 열어봤더니 막 쓸어 담은 팬티가 이만큼 들어 있었어요. 거기서 포장을 안 해줬으면 집에서라도 하지 참…. 선물을 받았는데 기쁘지가 않더라고요(웃음). 

지훈: 기쁘지가 않지, 내가 봐도(웃음). 생각해 보니 지금 제 변화가 돋보이는 이유가 과거에 더 내려갈 데가 없어서였네요.

요즘은 어때요? 아들 자유가 생기고 나서부터 지훈 씨가 계속 편지를 쓰고 있잖아요. 저는 그게 아들한테 보내는 메시지 같기도 하지만 스스로 다짐하는 글로도 보이더라고요. 

지훈: 그 말이 정확한 것 같아요. 아들한테 쓰는 게 맞긴 한데요. 자유가 태어나서 글을 읽고 이해하려면 아직 한참 남았잖아요. 그냥 제 마음을 좀 다지고 싶어서 쓰는 거예요. 송민이 배가 이렇게 불러 있는 시절, 그리고 배 나온 송민이랑 사는 시절은 딱 지금밖에 없잖아요. 평생에 다시는 없을 순간들이죠. 어떻게든 기록해 놓고 싶었어요. 진짜 오늘을 느끼고 남기자는 생각으로요.

 

현재에 매우 충실한 것 같아요. 지금을 기록하는 방법이 또 있어요? 

송민: 둘 다 즉흥적인 면이 많고 상황마다 순발력을 잘 발휘해요. 만약 지금 슬프면 슬픔을 바로 기쁨으로 바꾸려고 하죠. 저는 그런 순간들을 영상으로 많이 찍어두는 편이에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기는 하지만 꼭 일 때문만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를 남기는 일이 즐거워요. 나중에 하나씩 꺼내볼 수 있게 편지를 쌓아놓듯 차곡차곡 영상을 모으고 있어요. 그게 제 기록 방법이에요. 

 

유튜브 채널 ‘원파운드 TV’에 올라오는 영상들 말씀하시는 거죠? 

지훈: 맞아요. 지금 올리는 영상들도 각 잡고 만드는 콘텐츠는 거의 없어요. 그냥 말도 안 되게 막 찍는 건데, 순간의 모습들이 담기게 되잖아요. 서버는 없어지지 않으니까 나중에 웃으며 보고 싶어요.

 

이러나저러나 이야기의 초점은 계속 현재에 있네요. 

지훈: 저희는 진짜 아무 계획 없이 살거든요. 언젠가 어디에서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계속 마음에 새겨둔 말이 있어요. 누구나 12월쯤 되면 한 해를 되돌아보고 내년에 잘 살아보자는 다짐을 하는데, 한 해를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 앞으로 잘 살고 싶으면 오늘이나 잘 살라고요. 오늘 잘 살려고 하다 보니 편지든 유튜브든 우리를 기록하는 일은 오늘을 잘 살기 위해 필요하단 생각이 들어요. 

송민: 어제도 오늘도 우리답게 지내고 있어요. 어느것 하나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우리답게요. 그래서 대부분의 날들이 편안해요.

두 사람은 언제나 함께 오래된 과거를 추억하고 현재의 행복을 만끽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송민과 지훈은 확실히 오래오래 행복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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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다은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