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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배 — 현대미술가
파리 페로탕 갤러리 측에서 미술가 이배Lee Bae의 전시 소식을 전하며 성품이 훌륭한 작가와 인터뷰해 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지금까지 경험상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가 더해진 인물과의 인터뷰는 늘 즐겁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거기에 파리에서 한국인 작가와의 만남이라 그런지 약속 날이 유난히 기다려졌다. 솔직히 그 작가가 ‘이배’이니 누가 이 주선을 마다할까! 전시가 열리기 하루 전, 비가 쏟아지는 아침 프랑스 기자들 앞에서 불어로 작품 설명을 하는 작가님을 만났다. 적극적으로 말씀하시는 모습도 기억에 남지만, 완벽하지 않은 외국인의 불어에 최대한 집중하는 프랑스인들의 관심과 함께 형성된 좋은 에너지로 전시장이 무르익었다. 순간 신기하게 비가 그치더니 쨍한 겨울 햇살이 마법처럼 창을 통과했다. ‘검은 별자리’에 빛이 더해져 작품에 사용된 숯이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반짝였다.
프랑스에서 30년을 지내셨으니 이제 파리가 제2의 고향처럼 느껴질 것 같아요.
처음 10년 정도는 한국에 다녀올 때마다 공항에 내리면 한숨이 나오면서 ‘어떻게 파리에 와서 또 살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느 순간 그런 게 없어졌어요. 지금은 드골 공항에 내리면 마음이 좀 편안해지고 ‘내가 할 일이 기다리고 있구나.’라는 기대감이 드는 걸 보니 이제는 파리가 많이 친근해졌나 봐요.
2018년에는 프랑스 정부가 주는 문화예술 훈장 기사장도 받으셨어요.
기메 국립동양박물관Musée National Des Arts Asiatiques Guimet에서 개인전을 한 적이 있는데, 대개 국립미술관에서 전시를 하면 그런 추천을 통해 격려 차원에서 주는 걸 받게 되었어요.
프랑스 미술계에 기여한 바를 인정받으신 것을 너무 겸손하게 말씀하시네요.
한 사람의 한국인으로 해외에 나와 산다는 것은 곧 한국의 배경을 가지고 사는 것이잖아요. 아무래도 30년 동안 나와 관계된 프랑스 평론가나 작가들이 한국에 대해 알게 되면서 한국을 방문하게 되고, 반대로 한국인 작가들이 프랑스에 진출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거예요. 한국 사람이 외국에 가서 산다는 것은 하나의 환풍기 같은 구실을 한다고 생각해요. 안과 밖의 공기를 순환시키는 역할이요. 그걸 자연스럽게 해온 게 아닌가, 그래서 기여라기보다 그런 역할에 대한 격려가 아닌가 싶어요.
이번 파리 갤러리 페로탕에서의 전시는 2018년 이후 4년 만이에요. 파리에서 처음 선보이는 ‘브러시스트로크Brushstorke’와 ‘불로부터Issue De Feu White line’에 관심이 몰릴 것으로 예상돼요.
그런가요? 코로나로 사람들이 활동을 자유롭게 못 하는 시기에 전시를 하게 돼서 이걸 어떡하나 걱정이 많아요. 화랑 주인인 엠마뉴엘Emmanuel Perrotin은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데 작가로서 고민이 있죠. 현대사회에서 모든 일이 그렇지만 사회적 현상과 반응이 작가에게 영향을 많이 미치기 때문에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긴 해요.
‘검은 별자리Le Noir en Constellation’라는 전시명이 일단 호기심을 불러일으켜요.
제가 지은 건 아니고, 저를 가장 잘 아는 미술평론가 앙리-프랑수아 드바이유Henri-François Debailleux 씨가 지었어요. 2018년 파리 전시의 타이틀도 그분이 ‘검은 지도Cartographie du Noir’라고 지었는데, 이번엔 ‘검은 별자리’라는 문장이 흥미롭더라고요.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제목이죠.
저도 전시 작품들을 보면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림이라고 생각했어요. 간단해 보이는 블랙 앤 화이트 작품이지만 그 속의 레이어들과 순간의 붓의 스침이 표현하는 오묘하면서 완벽한 선들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또는 어떤 과정에서 나왔을까 하는 상상을 하면서 보게 되었거든요.
제가 한국 작가 중에는 겸재 정선, 일본 작가는 호쿠사이Hokusai를 아주 좋아해요. 그리고 중국 작가는 팔대산인Bada Shanren의 그림을 좋아하는데, 그가 그린 연잎을 보고 있으면 라인을 그냥 그린 것 같지만 사실은 아무도 따라 그릴 수 없는 선이에요. 겸재의 인왕산 그림에서도 바위를 표현한 선이 머금고 있는 웅대함, 품위가 느껴지는데 이런 게 예술가들이 가진 감성이고 영혼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그런 작품을 흉내 내고 싶고 그렇게 만들고 싶어서 열망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네요. 그러기 위해서는 속되지 말아야 할 것, 그리고 흔들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과 자세가 필요하고 그것이 작가를 오랜 시간 연단시킨다고 봐요. 새롭고 창조적이고 방법론에 대한 탐구를 추구하는 서양 예술과 비교하면 동양 예술은 어쩌면 예술을 통해서 인생의 품위나 고귀함이 나타나기를 열망하는 것이 아닐까요.
흉내 내고 싶은 열망이 오랜 연습을 거쳐 이제는 궤도에 오른 것 같아요. 전 세계에서 선생님의 그림을 원하니까요.
한때는 유럽이 중심이었다가 1970년 이후에는 미국, 1990년도부터 2000년도에는 일본으로 문화적 호감도가 움직였는데 최근에는 그게 한국이 되었어요. 음악, 음식, 영화, 미술 등 문화적 호감도가 가장 높은 국가가 되니 한국인인 저도 도움을 받게 되었네요. 그리고 아시아가 세계의 중심이 되면서 서구 중심이던 미술시장이 이쪽으로 많이 옮겨 오며 자연스럽게 아시아 작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게 저한테 큰 도움이 되었죠.
한국인이라는 배경 없이도 작품 자체가 풍기는 아우라와 멋이 해외 미술계를 사로잡기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예술가들은 자기 세계를 위해서 삶을 다 집어넣어 일하는 사람들이라 어떤 예술가든지 무대에 올려놓으면 누구나 빛이 나게 되어 있어요. 누구나 좋은 점을 가지고 있고 어떤 시기에 어떻게 조명 받느냐에 따라서 그게 피어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데 작가가 훌륭해도 국가 배경이 약하면 상업화에 어려움을 겪어요. 지금 한국은 경제적 성장과 함께 작가도 많아졌지만 새로운 컬렉터들이 급격하게 많아졌어요. 그들은 경제력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 비해 지적 수준이 굉장히 높아요. 전 세계 화상들은 문화적으로 부상한 한국의 이미지와 이런 수준 높은 한국 컬렉터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 최근 한국 작가들을 새롭게 발굴하는 데 노력하고 있어요. 누구 한 사람이 특별히 잘나서 성공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보편적으로는 시대가 만들어 내는 거죠. 아무래도 나이 들어서까지 한국이랑 파리를 반반씩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양쪽을 다 보게 되는데 그동안 한국이 너무 갇혀 있었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정학적으로 걸어서 국경을 벗어나기 어려우니까요. 그런데 다행히 오늘날 한국에 큰 햇볕이 비추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참 좋은 시대에 살고 있구나 싶네요. 파리에서 30년 동안 살면서 요즘처럼 좋은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네요.
초반에 어려웠던 시절 물감 살 돈이 없어 숯을 사용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너무 유명한데, 그 에피소드 말고 숯을 사용하게 되신 철학적 배경도 있을 거라 생각해요.
대학교 시절 고영훈 선배라고 있었어요. (고영훈 작가는 한국 화랑계의 극사실주의 회화의 대가로 불린다.) 그 형이 제주도에서 서울로 대학을 와서 제주도의 현무암 작은 돌을 확대해서 사진처럼 그리는 걸 봤어요. 그걸 보고 있으면 굳이 얘기를 안 해도 이 사람은 제주도 사람이라는 걸 알게 돼요. 다른 사람이 그걸 그렸으면 그냥 돌을 그린 건데, 그 형이 현무암을 그리니까 제주도를 그리는 것 같았어요. 형의 삶이 그림 안에 있다는 느낌이 강해서 단순한 돌이 아닌 예술적 메시지로 보이는 거죠. 한국을 떠나 파리에 와 있으면서 퐁피두나 영국의 테이트모던 등 유럽의 미술관들을 돌며 도대체 무엇을 해야 작가로서 유럽에서 활동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이미 수 세기를 거쳐 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다양한 방식으로 작업해 놓은 걸 보면서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던 시기에 절망도 많이 하고 그랬죠. 그러다 우연히 주유소에서 바비큐 숯 한 봉지를 마주했는데 그걸 통해 한국을 만난 거예요. 내가 떠나온 원래의 고향을 숯에서 보게 된 거죠. 어릴 적 정월 대보름이 되면 동네 사람들이 모여 우리 집 앞에서 달집태우기를 하고 그다음 날 아침, 산더미처럼 쌓인 숯을 동네 아주머니들이 광주리를 들고 나와 조금씩 담아 집으로 가져갔어요. 보름에 태운 숯이라 정결하다고 해서 간장 담글 때도 쓰고 아기가 태어나면 문에 거는 용도로 사용하던 게 떠올랐어요. 예전에 고향에서는 그냥 숯으로만 보이던 물건을 성인이 되어 프랑스 주유소에서 발견하자 숯이 아닌 한국이라는 메시지로 나에게 다가온 거죠. 그래서 이걸로 작품을 해봐야겠다, 해서 계기가 됐죠.
그럼 처음 숯을 다루시는 순간 ‘숯의 작가’로 불릴 것이란 운명 같은 걸 느꼈나요?
그런 생각은 못 했는데 숯을 쓰자 주변에서 이런 재료를 쓰는 사람이 없다며 새롭다는 반응을 보이고, 또 숯을 사용하는 이유를 한국인 작가라는 문화적 배경과 함께 인정해 주어서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작업하게 된 힘이 되었죠.
20–30년 가까이 숯을 다루시면서 다른 재료에 대한 호기심도 물론 있었을 텐데요.
왜 없었겠어요. 늘 있죠. 20–30년 동안 작품을 했지만 사실 미술계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묵묵히 하던 중 최근에서야 페로탕을 통해 국제 아트페어에도 출품하고 국제적 컬렉터들에게 그림이 소개되면서 ‘숯의 작가’로 알려지게 되었어요. 이제는 더 나이 들기 전에 새로운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든 예술가들의 일대기를 보면 꼭 긍정의 시대가 한 번씩은 있거든요. 여정을 돌아보면 난 긍정의 시대가 오기까지 시간을 너무 많이 끌었구나 싶어요. 조만간 색채에 대한 열망과 조각을 하고 싶은 열망을 꺼내 보려고요.
선생님의 색채 예술과 조각이 벌써 기대되네요. 작업실은 고향인 경상북도 청도, 경기도 고양, 그리고 프랑스 파리 이렇게 세 곳에 있는데 각 작업실마다 특징이 있나요.
청도는 작업실이기도 하지만 산에 전통 숯을 굽는 가마가 있어서 조각이나 숯 작업은 주로 청도에서 해요. 경기도 화실에서는 브러시스트로크 같은 회화 작품을 많이 하고, 파리는 회화도 하지만 실험실 같은 곳이에요. 새로운 것을 실험하고 시도하는 장소로 사용해요.
매일같이 아침 9시면 작업실로 가셔서 저녁 7시까지 꾸준히 일하신다고 들었는데, 작업실에서만 이루어지는 습관 같은 게 있을까요?
내가 지금 살아가는 시대가 모던아트 시대가 아니고 컨템포러리의 시대, 그러니까 1950-70년대 미국에서 만들어진 사조인데 용어는 이렇게 만들어졌지만 실제로는 산업사회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산업사회 전이 장인들에 의해 수작업으로 생산하는 시대였다면 지금은 동일한 제품을 일률적인 품질로 대량생산 하는 시대고, 그 안에서 태동하게 된 게 현대미술이죠. 현대미술과 근대미술과의 차이점은, 근대미술은 에스프리Esprit가 굉장히 중요해요. 작업을 위한 모티브와 영감이 있어야 해서 그걸 찾아 고민하고 방황하고 때로는 술도 마시고 몸부림치는 게 근대미술이라면, 현대미술은 에스프리보다는 애티튜드, 즉 자세와 태도가 에스프리를 대신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어요. 그게 무엇을 의미하느냐면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방법으로 계속 반복해서 일정하게 작업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마치 회사에 취직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기분이 좋거나 나쁘거나 매일 출근해야 하는 것처럼요. 이렇게 같은 일을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프로세스가 생겨요. 프로세스가 곧 철학이고 방법론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현대미술은 애티튜드하고 프로세스가 우선이 되고, 에스프리는 뒤로 밀려났어요. 훌륭한 현대미술 작가의 작품들을 보면 퀄리티가 항상 비슷해요. 기분 좋을 때는 좋았다가 기분 나쁘면 질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늘 균일한 퀄리티를 유지하는 작품, 그것은 그 사람의 애티튜드와 프로세스에서 나오거든요. 그런 태도가 곧 예술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침 9시에 화실에 가서 간단히 커피를 마시고 오전 내내 드로잉을 한 후 오후에는 캔버스 작업을 하고 저녁 7시에 집에 돌아와 밥 먹는 일과를 항상 일정하게 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게 있어요. 그걸 일주일에 하루라도 안 하면 마치 운동선수들이 며칠 쉬면 감각을 잊어버리는 것처럼 예전 리듬을 찾기가 굉장히 어려워져요. 그래서 동일한 리듬으로 계속 이어나가야 자기 감성을 유지할 수 있고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해요. 거창한 게 아니라 회사원들이 하루도 빠짐없이 회사를 나가는 것과 비슷한 거예요.
회사는 월급이라는 원동력이 있잖아요(웃음). 강제성 없이 무언가를 오랜 시간 지속한다는 것은 엄청난 노력과 원동력이 필요한데 선생님한테는 그게 무엇이었나요?
결국은 일이 원동력이죠. 일을 하게 되면 그 일에 빠지게 돼요. 그리고 그 일이 재밌어지기 시작해요. 마치 개미들이 작은 구멍을 파 땅속에 어마어마한 세계를 구축해 놓는 것처럼 일 안에서 커다란 나만의 세계를 구축해 놓게 되고, 나를 발견하게 되고, 그렇게 자신과의 다이얼로그를 형성하게 돼요. 예술가는 나만의 세계를 외부와의 관계가 아닌 내부에서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해요.
태도에 대해서 늘 강조하시는데 선생님에게 내재되어 있는 타고난 감각도 작품의 질을 완성하는 요소 중 하나로 여겨도 되지 않을까요?
아뇨. 우리 부모님은 학교를 다니지 않으신 분들이세요. 내가 국민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시골에서 자랐고, 문화적 소양을 받은 적이 없어요. 그냥 시골의 들에서 피는 냉이처럼 자란 셈이에요.
그 냉이와 자연이 문화적 소양의 밑천이 되었을 것 같은데요.
들어보세요(웃음). 어느 날 다 커서 파리에 있다가 한국에 들어가 모친께서 끓여주신 냉이된장국을 먹었는데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맛있는 된장국은 처음 먹어보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끓였길래 이렇게 향도 좋고 맛있느냐고 물었더니 “왜 니가 어릴 때 맨날 이것만 먹고 자랐는데.” 하시는 거죠. 그러니까 머리로는 잊었는데 몸이 기억하고 있던 거예요. 태도는 두뇌의 훈련이 아니고 신체의 훈련이라고 생각해요. 마치 피아니스트가 머리가 아닌 손으로 악보를 기억하는 것처럼 신체가 하는 기억을 저는 신뢰해요. 그래서 저 자신이 세련됐다는 생각은 한 적 없고 오히려 내 속에 내장되어 있는 깊고 깊은 심연의 기억이 무엇인지 찾아 그것을 끄집어 올리려고 하죠. 스스로 한 번도 예술가적 감성이 뛰어나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어쩌다가 파리에도 오게 되고 미술의 중심에 머물게 된 건데….
파리 주류 미술계에서 교류하려면 여기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기 위한 현지화된 세련된 감각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백남준 선생님께서 살아 계실 때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받으셔서 베니스에 가 계셨고, 저는 그 당시 이우환 선생님 전시회를 돕는 조수로 따라가서 매일 저녁 백남준 선생님과 이우환 선생님이 저녁을 함께 드실 때마다 옆에 있었어요. 그때 백 선생님이 독일 뒤셀도르프 미술학교 교수였는데 학교를 자주 안 가시니 학생들이 선생님 계신 곳으로 찾아오는 거예요. 전 선생님이 독일어를 잘하실 줄 알았어요. 그런데 찾아오는 학생들한테 독일어가 아닌 한국말로 “나 시간 없어. 바빠. 내일 와.” 이렇게 얘기하시더라고요. 외국에 살면 언어 때문에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니 그 사회에 섞이기 어렵겠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때 독일어를 못해도 선생님을 찾아와 소통하려는 외부인들을 보고 저게 가능한 이유가 뭘까 고민하게 된 거죠. 결국 알아낸 방법은 외부와 자꾸 부딪치라는 거예요. 외부라는 게 무섭고 나를 경계하고 밀어내려는 곳이니까 다가가기에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한데 밝고 긍정적으로 뭐든지 수용할 수 있는 태도를 취하면 그 어려운 외부와 소통이 가능해진다는 걸 배웠어요. 그런데 긍정적인 태도가 어느 정도여야 하느냐면 예를 들어 누가 오물을 뒤집어씌워도 화내지 않고 웃을 수 있을 만큼 긍정적이어야 외부가 어느 날 나에게 오게 돼요. 그때는 외부가 나를 더 귀하게 대우해 주죠. 이런 삶의 방법은 파리에 있는 우리 같은 사람들, 즉 해외에 나와 있는 한국인들에게 필요해요. 오늘도 기자들 질문에 대답을 하는데 전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도 다들 알아들었잖아요. 왜냐면 그쪽에서 알아들으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외부가 문을 열게 되는 시간이 오기까지 어떤 점이 가장 힘드셨어요?
30년 살면서 제일 어려웠던 건 말도 말이지만 언어가 의미하고 있는 문화적인 습관, 발상법, 이런 게 다 한국이랑 다르니까 어려웠죠. 지금은 그런 부담은 많이 줄었어요. 말을 잘하게 돼서 줄어든 게 아니고 포기해서요(웃음).
현재 선생님의 가장 큰 관심사가 궁금해요.
더 늙어서 힘 빠지기 전에 새로운 작업을 시도해 봐야겠다는 것과 좀더 힘이 있을 때 밖으로 더 멀리 나가고 다양한 곳에서 전시회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이제 마지막 질문이에요. 작품 설명 중에 아트와 리얼리티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선생님에게 예술과 현실은 어떻게 구분이 될까요?
모든 인간은 종교성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를 누군가가 했던 것 같은데 리얼리티는 비주얼, 즉 눈으로 보는 세계이고 우리가 눈을 감으면 내면의 세계가 따로 있다고 봐요. 눈을 감으면 보이는 내면의 세계가 눈을 떠야 보이는 바깥 세계보다 큰 우주를 안에 가지고 있어요. 그 하나의 관문이 신체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내면과 외부를 연결하는 하나의 고리가 종교성 아니면 예술로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예술은 순수성과 속된 것을 엮는 일이 될 수도 있고, 현실과 초현실을 엮는 일이 될 수도 있는 거죠. 그게 내면에서 먼저 올 수도 있고 바깥에서 올 수도 있지만 그 만남은 인간의 신체를 관통해서 하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작업하고 있어요.
에디터 양윤정
포토그래퍼 Jean L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