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언어로 발화되는 모든 것

그림책 작가 이수지

파란 하늘 아래 구름이 낮게 드리운 날, 초록 나무가 우거지고 강이 흐르는 양평의 한 마을에서 그림책 작가 이수지를 만났다. 현실과 상상, 경계를 넘나들며 그림을 그리는 공간은 방마다 큰 창문이 있고 그 틈으로 따스한 햇살이 들어왔다. 대화를 나누는 내내 배경음악처럼 매미 소리가 귀에 감겼고, 눈길이 닿는 곳곳엔 아이들의 자취가 있었다. 산이가 만들어놓은 배지, 바다가 그린 손 편지, 앞마당 강이의 흔적들. 머무는 모든 곳에 이야기가 있었다.

‘그림책’다운 그림책

부엌 옆 큰 책상에 앉아 대화를 시작했다. 책상에는 그녀가 최근 작업한 《이렇게 멋진 날》과 《선》, 에드워드 고리의 《줄어드는 아이》가 놓여있었다. 작가의 새 작품을 기다려왔기에 반갑고 설레는 마음으로 하얀 표지의 《선》을 들었다. 두 종류의 질감으로 나뉘는 표지를 부비고, 앞뒤 표지를 쭉 펴보고, 면지의 패턴을 들여다보며, 인물의 동작이 변화하는 지점까지 유심히 살폈다. 이는 책이라는 물성으로 다양한 실험과 도전을 하는 그녀가 내게 만들어준 습관이다. 그녀의 작업은 책이라는 관성을 거스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물질을 뜯어보고 흔들어보고 살펴보면서 책의 물리적, 조형적 요소에 대한 감각까지 이야기의 요소로 생각한다. 거울처럼 긴 모양, 파도가 펼쳐진 넓은 형태, 그림자를 보듯 위아래로 펼쳐지는 책처럼 판형과 페이지를 넘기는 방식이 독특한 책이 있는가 하면, 아무 그림이 없는 빈 페이지도 종종 등장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이 글자를 읽는다는 건 아니다.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이해하고 스스로 해석하면서 자기만의 이야기와 언어로 발화되는 모든 것이기도 하다. 그녀는 한 페이지에 많은 정보를 줘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연극 무대처럼 긴장과 이완의 리듬감으로 독자에게 생각의 여지를 남긴다.

INTERVIEW
이수지
그림책 작가

“어린이들도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알아요. 이건 판타지고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걸요. 하지만 그 경계를 막 오갈 수 있죠. 결국 어떤 경계를 넘나드는 유연한 마음은 삶의 많은 국면에서 도움이 될 거 같아요. 책장에서 쉽게 꺼내고 다시 넣으면 되는 세계가 있다는 게 위로가 되겠죠.”

순수회화를 전공하신 걸로 알아요. 졸업 후 표현 공간을 캔버스에서 그림책으로 바꾼 계기가 궁금해요.

20대 때는 온 사회의 고민을 짊어진 진지한 작업을 하다가 졸업하고 애니메이션 일을 한 적이 있어요. 박제동 선생님의 제주도 4.3 항쟁에 관한 애니메이션 작업도 함께하면서 보고 배운 게 많고 재미있었어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먹고살 일을 찾아야 하는데 할 수 있는 일은 일러스트레이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구상한 이야기에 그림을 그려서 먹고살 거란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거든요. 

대학교 4학년 때 교수님 방에 우연히 갔다가 아티스트 북이라는 걸 처음 봤어요. 순수미술 하는 친구들이 자신의 작업을 캔버스나 설치미술처럼 매체 선택하듯이 책으로 작업한 거였어요. 그걸 보고 감명받았어요. ‘매체가 캔버스처럼 큰 게 아닐 수 있고, 그럼에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구나.’라는 걸 알았어요. 일러스트를 일로만 받아서 기계적으로 하다 보니까 제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두 가지를 분리해서 생각하다가 문득 분리할 필요가 없다고 느껴지더라고요. 찾아보니까 영국에 ‘북아트’를 전문으로 배우는 대학원이 있어서 진학하게 되었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북아트를 공부할 때, 졸업 작품으로 만든 책이죠? 

맞아요. 사실 북아트를 정확히 잘 모르고 갔어요. 막연히 제가 생각하는 걸 하면 될 거 같았죠. 와보니 책이라는 매체만 공통점이 있고 공부하러 온 학생들 모두 전공이 달랐어요. 그림 그리는 사람은 저밖에 없었어요. 2년 남짓의 시간 동안 제 인생에서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집중했던 시간이었어요. 학생들에게 혜택이 많아서 공연 전시를 싸게 정말 많이 볼 수 있었죠. 

그림책 형식이 예술 전달의 매체가 될 수 있는가 혼자서 고민하며 작업했던 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어요. 볼로냐 국제 도서전에 명함처럼 작품을 가지고 갔는데 우연히 이탈리아 출판사를 소개받아 책을 내게 되었어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만들려고 자료를 찾고 공연과 전시, 책들을 본 게 결국 지금까지 온 거예요. 그때 집중해서 제가 하고 싶은 거를 끌어낼 수 있었어요. 결국은 같은 이야기를 변주해서 하는 거 같아요. 그때 썼던 스케치북을 보면 지금 제가 하는 작업의 단추들이 되는 게 많죠.

목탄 선 몇 개로 인물의 심리와 공간의 특성을 표현하는 거 같아요. 목탄 소재를 즐겨 사용하는 이유가 있나요?

목탄이나 연필처럼 선으로 뭔가를 표현하는 걸 좋아해요. 연필은 얇아서 꼼꼼하게 표현되는데 목탄은 한 번 긋는 획으로 많은 느낌을 낼 수 있어요. 힘을 줬다 뺏다 하고 마치 동양화처럼 선의 두께 조절도 가능하고 부비부비할 수 있죠. 아이들의 작은 몸에서 나오는 힘과 조금만 움직여도 동작에서 오는 귀여움, 마음보다 몸이 앞서는 의도가 너무 드러나는 동작 있잖아요. 그런 걸 잡아내는 게 목탄이 좋을 거 같아요.

색도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듯해요.

책의 모든 요소가 하나씩 부각되었으면 좋겠어요. 너무 다 배치하면 곤란하겠지만 할 수 있다면 이유 없이 그곳에 있지 않도록 의미를 부여하고자 해요. 그러다 보니 색도 이야기의 일부인 거죠. 단순히 장식과 화려하게 보이기 위함이라기보다 그 색에 집중시키고 싶었어요. 주인공 아이가 옷에 색이 없다가 나중에 색이 생기면 어린이들은 처음엔 모를 수 있지만 나중에는 그 변화를 깨우칠 수 있죠. 그러다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하면서 앞장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그렇게 색도 이야기를 가지는 거죠.

유년 시절 아버지는 일주일마다 책을 한 박스씩 사셨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책이 많은 환경에서 특히 영향을 미친 그림책이 있을까요?

아버지는 여전히 책을 무척 좋아하세요. 일주일에 한 박스의 책을 다 읽고 모든 신간 서평을 체크하시죠. 늘 주변에 책이 있는 환경이어서 많이 읽은 느낌이었어요. 어머니도 공연이나 예술에 관심이 많으시고요. 저는 운이 좋게도 다양한 예술을 꾸준히 접할 수 있었던 환경에서 자랐어요.

 제가 어릴 때 그림책을 접하기 쉽진 않았는데, 1978년 9월 1일 초판 발행한 에드워드 고리의 《줄어드는 아이》라는 책이 집에 있었어요. 아이가 계속 키가 줄어드는데 부모는 무관심하고 자기 얘기만 해요. 점점 작아져서 우체통에 편지를 넣지도 못하죠. 하지만 어른들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아이는 자신이 없어질까 두려워하다가 ‘커지고 싶은 아이를 위한’ 게임을 하면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요. 역시 어른들은 눈치채지 못하고요. 처음 봤을 때 굉장히 이상한 책이라고 생각했어요. 저한테는 신비하고 이해할 수 없지만 재미있는 이야기성에 대한 표본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아이들에게도 읽어줬어요. 부조리한 이야기를 아이들은 너무 재미있어서 좋아하는 거예요. 아이들도 블랙 유머를 알더라고요. 어린이한테 주는 재미와 어른에게 선사하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는, 여러 층위가 섞인 책인 거 같아요. 제 책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볼 때마다 다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작가이면서 두 아이의 엄마인데요, 그림책으로 느끼는 행복한 기억은 어린이 스스로 만드는 거라기보다 부모와 함께 읽는 시간과 경험으로 쌓이기에 비범한 매력이 있는 거 같아요.  

맞아요. 그림책은 그냥 도구예요. 이걸로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죠. 그 이야기가 가다가 맥락이 안 맞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책을 펼 때마다 다른 이야기가 나올 수 있으니까요. 그럴 때는 읽어주는 사람이 중요하겠죠.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건 책과 관련된 느낌과 경험에 관한 기억이지 책 자체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 순간만큼은 엄마가 집중해서 자신을 보기 때문이라는 슬픈 이야기도 있잖아요. 몇 권의 책이라도 그때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좋았던 기억이 저장되면 나중에도 책을 좋아하는 어른으로 자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아이들과 그림책을 보며 어떤 이야기를 하고 추억을 쌓았는지 궁금해요.

그때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아요. 엄마도 아이의 나이와 똑같이 크기 때문에 저는 열한 살 이상의 아이들에 대해선 잘 몰라요. 그때그때 날것으로 오는 느낌을 자꾸 곱씹으면서 행복한 순간을 기억하는 거죠. 첫째 산이와 《리디아의 정원》을 서너 살 때 본 적이 있어요. 시골에서 올라와 무뚝뚝하고 호의적이지 않은 삼촌에게 맡겨진 아이가 삼촌의 정원을 가꾸는 내용이에요. 마지막에 다시 시골로 돌아가면서 삼촌이 무릎을 낮춰서 포옹하는 장면이 있어요. 처음 보는 삼촌의 감정이 드러나는 장면이었어요. 그걸 보더니 산이가 울컥해서 우는 거예요. 그 순간이 너무 신기했어요. 저도 막 같이 울었죠. 내용을 잘 몰라도 분위기로 감정을 따라가더라고요. 결국 느끼는 건 다 똑같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레이먼드 브릭스의 《석기 시대 천재 소년 우가》라는 책도 기억에 남아요. 색연필로 그린 원시인 얘기예요. 우가가 돌도끼 들고 가다가 공룡이 오면 도망가는 장면이 있어요. 그걸 보고는 미친 듯이 웃는 거예요. 내가 재미있는 부분을 보고 아이가 웃고, 아이가 재미있는 부분을 보고 제가 웃으면서 함께 맞춰지는 순간들이 너무 좋았어요.

함께 나누는 이야기가 쌓여가는 것. 그림책이 가진 힘인 거 같아요. 

그렇죠. 저에게도 무척 좋은 일이죠. 그래서 새로운 책을 보더라고 혼자 다 본 뒤 아이들과 읽지 않고 웬만하면 안 읽은 상태에서 함께 보려고 해요.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요. 얼마 전 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의 《난 커서 바다표범이 될 거야》를 애들과 봤어요. “이야, 바닷속 좀 봐!”, “정말 멋진 세계다.”, “어떻게 된 거야?” “다시 앞으로 가보자.” 하면서 같이 읽었어요. 저도 처음 보니까 신기하고, 그러면 아이들도 더 들여다보는 거 같아요. “엄마는 눈치 못 챘지?” 하면서 재기도 하고, 아이들이 발견해서 알게 되는 것도 많아요. 함께 책을 보면 정말 재미있어요. 

글 없는 그림책을 만들고자 했다기보다 자신이 가진 생각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글 없는 그림책의 형식’이었다고 자서전에 기록했어요. 

제 그림은 글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그림이에요. 글이 있는데 뺀 것도 아니고 붙일 수 있는데 안 붙인 것도 아니에요. 그림의 논리로 가는 거죠. 11월에 나올 신간 《선》의 경우 책을 보고 나면 왜 표지가 이런 형태인지 이해할 수 있어요. 작가가 의도한 걸 알아가면서 생각하게 되는데 이거를 말로 표현하는 건 의미가 없죠. 이런 질감과 빛과 반사되는 느낌, 그림이기 때문에 그냥 한꺼번에 오는 어떤 감각이 있고 그거 또한 이야기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여기에 “이것은 종이란다. 무슨 일이 일어날 거 같니?”라는 글이 있으면 맥이 딱 빠지는 거죠. ‘이게 뭐지?’라는 마음에서 생각이 조금씩 더해지다 ‘아… 그래서?’ 하면서 자기가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방식인 거죠. 

하지만 그림으로만 인과관계를 이해시키는 일은 더 힘든 작업처럼 느껴져요.

사실 글 없는 그림책이 해줄 수 있는 영역이 따로 있다고 생각해요. 저한테는 이게 더 쉬워요. 한 페이지에 그림을 그리면 다음 그림이 보여요. 애초에 그림이 밀고 가는 힘으로 이야기를 하니까 힘들지 않아요. 전래동화 이야기는 급하게 흘러가잖아요. 배경 설명도 없고 삼 형제가 있고 세 번의 위기가 있고 그래서 어떻게 됐고… 입으로 나오는 소리를 들으면서 숨 가쁘게 가는 그 맛이 있는 거죠. 제가 만든 그림책은 일이 일어나는 장소와 시간이 굉장히 제한적이어서 그 시간을 잡아서 여러 컷으로 늘려놓은 형식이죠. 연극 무대처럼요. 그 안에서 여러 가지 제한을 두고 이 밖으로는 나가지 말라고 정해요. 밖으로 나가면 정말 설명을 해야 해요. 

데이비드 위즈너의 《이상한 화요일》은 글이 두 줄이에요. 화요일 몇 시, 그 다음 주 화요일. 이처럼 시간 개념이 들어갈 때는 당연히 글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건 그림으로만 설명할 필요는 없죠. 굳이 글 없이 가겠다고 달력에 동그라미를 친다거나 그러면 힘들어지는 거죠. 역할이 다른 거 같아요. 제가 원하는 건 다음주 화요일까지 갈 사건의 진행이라기보다 그 안에 일어난 행동이니까 집중하는 부분이 다르죠.

마침 오늘 신간 《이렇게 멋진 날》이 나온다고 들었어요. 출판사를 통해 미리 접한 그림은 비오는 날 행복하게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 같았어요.

글을 쓰신 작가분이 연세가 많으신데 어느 서점에서 다른 작가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춤을 추게 했대요. 아이들이 춤추는 모습을 보고 이 원고를 썼다고 하셨더라고요. 동작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요. 뛰고 놀고 달리고 먹고 자고 즐기고 ‘아, 좋았다’ 하는 얘기예요. 아무 이야기도 아닌데 거기서 오는 행복감을 표현하고 싶으셨던 거 같아요. 비는 핑계이자 수단이죠. 그렇게 놀다가 갑자기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요. 흐름으로 봤을 때 전혀 이상하지 않기를 바라요. 요맘때 아이들은 하루하루가 마법 같고 새롭고 신기한 날들이잖아요. 그림책이 가장 잘하는 일이 바로 이런 거 같아요.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을 아무렇지 않게 있게 만들어버리는 매체라서 재미있어요. 쓰인 글에 그림을 그리는 것도 제가 그 안에서 노는 느낌이라 즐겁게 작업했어요.

글과 그림을 직접 쓰는 것과 원고를 받아서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무슨 차이가 있나요?

혼자 작업을 하면 실험적이고 평소에 안 하던 걸 밀어붙이는 편이에요. 원고를 받아서 고를 때는 좋아하지만 혼자서 생각할 법하지 않을 세계에 다가 가보는 거죠. 그 안에서 자유를 얻기는 했지만,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틀이 있잖아요. 이미 결정된 세계니까 마치 문제를 푸는 것처럼 즐거운 제한 같아서 재미있어요. 

작가님 책을 보면 단순하고 쉽게 그린 것 같지만 무언가의 본질을 꿰뚫어 보게 해요. 나를 비춰주지만 깨질 수 있는 거울의 속성, 밀려오고 밀려가는 파도의 성질, 동물원이라는 공간을 바라보는 아이와 부모, 동물들의 시선 등이요. 다음 책 《선》은 어떤 본질에 관한 이야기인가요?

시작할 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명확해야 시작하는 편이에요. 이야기에 집중해서 너무 확대하거나 미뤄놓지 않고 제가 보기에 본질적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이야기를 정확하게 보여주려고 노력해요. 이야기는 가다가 만들어졌다기보다는 제가 연관을 시킨 거죠. 《선》은 스케이트를 즐기면서 어떤 것에 흔적과 궤적을 남기는 것이 그림 그리는 과정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면서 만든 책이에요. 꼭 그림이 아니더라도 뭔가 창조적으로 만드는 사람들이 그 일에 집중할 때 오는 즐거움과 잘 안 될 때 어떤 식으로 헤쳐 나가려 하는 게 유사하잖아요. 

너무 애쓰면 오히려 안 될 때도 있고 자기만의 세계에서 즐기다가 원하는 대로 안 되어서 한계에 부딪히는 거죠. 애들도 그림 그리다가 잘 안 되면 에잇, 하고 던져버리는 것처럼요. 결국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그 길만 본다고 해결이 되진 않아요. 해결책은 우연히 오기도 하고 뭔가 놀이하는 기분을 가졌을 때 거짓말처럼 없어지기도 하죠. 더 이상 문제가 아니기도 하고요. 박스 밖으로 나와야 문제가 보이는 것처럼 그런 과정에 관한 이야기예요.

사물의 본질을 어린이의 환상 세계와 연결 지어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듯해요.

이야기라는 게 그런 거 같아요.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해서 “이건 이런 거야.”라고 하는 것만큼 재미없는 게 어딨겠어요? 사실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걸 그리는 게 가장 어려운 거 같아요. 제가 보기엔 “우리는 정말 신나게 놀았습니다.”라는 글에 그려진 그림 중에 정말 신나게 노는 듯한 그림은 없었던 거 같아요. 그만큼 어려운 일이죠. 어린이들도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알아요. 이건 판타지고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걸요. 하지만 그 경계를 막 오갈 수 있죠. 결국 어떤 경계를 넘나드는 유연한 마음은 삶의 많은 국면에서 도움이 될 거 같아요. 책장에서 쉽게 꺼내고 다시 넣으면 되는 세계가 있다는 게 위로가 되겠죠. 

작가님 또한 그림책을 만들면서 문제에 부딪히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무수한 과정을 겪으셨겠네요. 창작 단계에서 가장 좋아하는 단계는 언제인가요?

떠다니는 아이디어를 붙잡을 때 가장 좋아요. 선에 대해서 생각했을 때 갑자기 “맞아. 나 이런 거 해보고 싶었지!” 하면서 막 그렸어요. 다듬어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거침없이 나올 때 가장 좋아요. 싫은 건 그걸 구체화해 그려야 할 때예요. 항상 아이디어와 하고 싶은 것은 너무 많거든요. 어느 정도 진행했을 때 처음 생각한 거에서 더 이상 못 나갈 때는 과감하게 폐기해야 하는 거고 그런데도 자꾸 들여다보니 해결책이 보이면 완성되는 거죠.

책의 주제가 되는 요소는 어린이에게 설렘과 두려움을 주는 대상이지만 어른에게도 큰 호응을 얻었어요. 그림책을 즐기는 데 어린이와 어른의 경계가 없다는 생각도 드네요.

예술가들과 어린이들은 본질적으로 같은 사람이에요. 어린이들의 시각을 좋아하고 그 방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두 예술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거죠. 굳이 딱지를 붙여 어린이 책, 어른 책으로 나눌 필요는 없는 거 같아요. 어떤 책에서 본 표현인데 “그림책은 모든 연령의 어린이를 위한 책이다.”라는 글이었어요. 그림책은 즐겁잖아요. 어린이적인 마음을 가진 그 누구라도 즐길 수 있는 거예요. 그거를 좋아하는 사람은 어른들도 정말 중요한 독자예요.

‘모든 연령의 어린이’가 어떻게 그림책을 누렸으면 좋겠나요?

첫째 산이는 표현을 많이 하는 아이예요. 좋으면 격렬하게 좋고 싫으면 격렬하게 싫다고도 하죠. 저는 산이가 표현을 할 때마다 참 고마워요. ‘이 분위기를 굉장히 즐기고 있구나.’라는 감각이 전해져 오죠. 방 안에서 책을 보면 둘째 바다는 책만 보는데, 산이는 책을 보다가 잠시 빠져나와 이렇게 둘러보고 “아 좋다.”라고 말하고 다시 책으로 들어가요. 그게 제가 딱 원하는 부분이에요. 

가끔 제 책이 여백이 많아서, 그림에 맞는 글을 써서 보내주시는 분도 많아요. 책을 가지고 뭔가를 하고 싶어 한다는 게 참 좋아요. 어떤 어린이들은 정말 거침없이 글을 쓰더라고요. 표지에 적힌 ‘글·그림 이수지’를 ‘그림 이수지, 글 000’로 바꾸면서 저를 일러스트레이터로 만들어버리고요. 책에 대해 주도적인 마음을 가지는 게 멋있는 거 같아요.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궁금해하면서 자기 방식대로 그림책을 봤으면 좋겠어요. 딱 들고 책이 열리는 순간부터 닫히는 순간까지 즐기는 거죠. 얼마 전 이탈리아 토리노 북페어에서 강연과 세미나를 하면서 키티 클라우드의 못 봤던 책을 봤어요. 그 작가가 색연필을 주로 쓰는데, 유난히 색을 많이 써서 에너지가 쫙 뿜어져 나오는 감정을 받았어요. 그때 제 가슴이 벅차오르면서 ‘작가도 이 마음으로 그렸을 거야.’ 하는 느낌이 전달되더라고요. 

독자인 저에게 그림책의 가장 큰 선물은 위로였어요. 작가에게 그림책이 주는 선물은 무엇인가요?

잘 보면 제 그림책은 결국 다 노는 이야기예요. 잘 노는 일. 책 속의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게 뭔지 아는 아이죠. 아주 작은 거라도 작은 순간이라도 충분히 느낄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려 해요. 글 없는 그림책에 과감하게 글을 써 내려가는 어린이의 마음처럼 자신이 누리는 것에 대해 거리낌 없는 삶의 태도를 제가 지향하나 봐요. 책을 펼쳐서 덮을 때까지 30초, 3분, 30분이 될 수도 있지만 그림책에 들어갔다가 기분 좋게 보고 나오면 족하다고 생각해요. 저한테 그림책은 놀이터예요. 이 안에서 형식적인 실험도 하고 그리고 싶은 거를 그리는 거죠. 사실 만드는 즐거움이 더 커요.

그림책으로 소통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건 작가에게 무척 설레는 일일 텐데요. 이 놀라운 세계를 더 알리기 위한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독자들에게 무조건 좋아해달라고 할 순 없고 좋은 그림책을 만들어야겠죠. 하지만 짧은 시간에 이렇게 다양한 그림책이 쏟아지고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에요. 작가군도 두터워졌고 우리나라 그림책의 스펙트럼도 넓어지고 독자층도 두꺼워지고 있어요. ‘그림책 선물하기 운동’을 하고 싶어요. ‘그림책 선물가게’ 같은 곳도 있으면 좋겠고요. 그림책은 입맛에 맞는 다양한 독자를 기다리고 있어요. 선물 아이템으로 정말 좋을 거 같아요. 상대방의 상황에 딱 맞는, 좋아할 만한 책을 내가 읽고 보석 같은 마음을 담아서 주는 거죠. 소설은 정말 가깝고 취향을 잘 알아야 한다면, 그림책은 상대적으로 직관적이어서 선물하기 편할 거 같아요.

이렇게 멋진 날
글 리처드 잭슨, 그림 이수지 │ 비룡소  

흘러나온 음악에 온몸으로 행복을 표현하는 아이들이 있다. 쏟아지는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즐거움을 찾는 아이들의 밝은 모습을 가득 담은 책이다. 비가 오는 집 안이 어두운 모노톤으로 그려졌다면, 아이들이 바깥으로 나가려고 결심한 순간부터 그림책 곳곳에 행복한 색감이 흘러넘친다. 아이들의 살아 숨 쉬는 기쁨과 즐거움이 장면마다 그대로 전해진다


글·그림 이수지 │ 비룡소 

《거울속으로》, 《파도야 놀자》, 《그림자놀이》 등의 경계 3부작과 마찬가지로 같은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두 개의 다른 이야기가 함께 진행된다. 독자들은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세계와 빙판 위를 자유롭게 누비는 소녀의 세계를 모두 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한 소녀가 빙판 위를 가로지르며 스케이트를 탐과 동시에, 그 모습을 그리고 있는 현실 속의 화가 이야기가 넘나든다. 오직 그림으로만 전하는 이 이야기에는 어떤 ‘말’도 필요치 않다. 

2017년 11월, 발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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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현지

포토그래퍼 안가람 자료 협조 비룡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