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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Days Trekking Around Mountains
2011년 10월에 나는 처음 한국을 벗어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그렇게 큰 배낭을 메 본 것도, 신발 하나면 열흘 동안 신었던 것도 처음이었다. 외적인 변화 외에 정신적으로 느꼈던 낯섦도 기억한다. 낡은 침대에 눕자 내가 평생 있었던 곳의 풍경이 구체적으로 떠올랐고, 그때 내 곁에 있던 사람들이 무작정 그립기도 했다. 같이 밥을 먹고, 함께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저 손으로 어깨를 만져 보고 싶기도 했다. 단지 며칠간 거리가 멀어진 것뿐이었는데, 돌아갈 일정도 정해져 있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처음 한 외국여행이라 그랬겠지, 하고 나는 그런 감정을 대충 넘겨 버렸던 것 같다. 어쨌든 내게는 그런 어색함이 있었다. 그게 두려움이었다면, 그 뒤로 나는 여행을 자주 다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네팔에서 한국으로 돌아간 후 한달 뒤, 나는 프랑스로 혼자 떠났다. ‘당장 돈이 더 있다면 어디론가 다시 떠났을 텐데….’ 열흘 동안의 프랑스 여행을 끝내고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언어도 미숙했고 특별히 타국의 문화를 동경하지도 않던 나였다. 단지 어딘가로 떠나는 일이, 떠나는 길에서 느꼈던 허전함이 어쩐지 내 옆에 있던 사람들에게 다가서는 일, 내가 늘 보던 풍경을 응시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부재가 오히려 존재로 느껴지던 이상한 시기였다. 그때에는 여행이 내게 참 좋은 일이었다. 처음으로 발 디딘 ‘먼 곳’은 네팔이었다. 고산지대에 있던 마을 랑탕LangTang과 그 주변 다른 마을들을 잇는 길을 ‘랑탕 트레일’이라고 불렀는데, 나는 일주일 동안 그 길을 걸었다. 한국인을 마주치기 힘든 곳이었지만, 친구가 셋이나 있었다. 3년 전의 여행이고 열흘 중 일곱 날을 걷기만 해서 그런지 기억에 남는 일이 그다지 많지는 않다. 아니 많긴 하지만 자세히 설명할 수 있을 만한 일이 없다고 해야 맞다. 그런데 이 와중에 어떤 일은 너무 또렷해서 가끔 머리가 아플 정도다. 지명이나 묵었던 숙소의 이름, 음식가격 같은 건 잘 기억나지 않고, 혼자 걸으며 생각했던 것, 멍하니 바라봤던 것, 취해서 한 얘기들, 그리고 많은 시간이 지난 오늘의 허전함만 또렷하게 남아 있다.
카트만두Kathmandu 공항에 내린 우리에게 네팔 사람들은 거칠게 달려 들었다. 짐을 들어주겠다고 뺏어가고 무작정 돈을 달라고 난리였다. 당황한 우리를 차에 태워주겠다며 나선 이도 있었지만, 인상만 봐서는 그가 가장 잔혹해 보였다. 그래서 우리가 숙소까지 가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무리 속에서 가장 착하게 생긴 사람을 고르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그저 지켜보는 것이었다. ‘탈탈탈’ 소리가 나는 승합차를 타고 지나는 길에는 가로등이 여러 개 켜 있었는데, 나는 그곳이 계속 어둡다고 생각했다. 길을 밝히려는 목적은 아예 없는, 분위기를 무겁게 하려고 켜놓은 무대 장치 같았다. 불빛 속에 어둠이 조금 섞여 있다고 해야 하나, 그 아래에서는 옆에 있던 친구들 얼굴도 꽤 낯설게 느껴졌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좀처럼 잊히지 않는 이상한 불빛이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넓은 창과 허름한 침대가 있는 방을 안내 받았다. 평소에 잠자리를 잘 가리지 않던 나는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했다. 두꺼운 커튼을 확인하고 나니 편안한 기분까지 찾아왔다. 왜 이런 것들이 또렷이 기억날까. 아무튼 한국과 네팔 간의 긴 비행, 나중에는 하루에 일곱 시간씩 걸으며 쌓여가던 피로가 여행 내내 침대 앞에서의 투정을 사치로 만들었다. 그때 찍어왔던 첫날 숙소 사진은 지금 다시 꺼내봐도 편안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깊이 생각해 보고 말하라고 하면 좀 다르겠지만, 네팔은 내게 더러운 침대와 붉은 조명의 나라다. 싫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물론 처음 몇 번은 힘든 일이긴 했지만, 그때의 나는 며칠 만에 평소와 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빠르게 적응해서 나중에는 칙칙하고 붉은 조명이 있던 샤워장에 들어가 이병우의 연주곡을 틀어 놓고 집에서보다 오래, 행복하게 샤워를 했다. 물기를 대충 닦고서 더러운 침대로 들어가 잠을 쿨쿨 잤다. 그때의 나를 떠올리는 일이 즐겁다. 그때 생각에 잠겨 있다가 정신을 차리면 지금의 내 모습이 왠지 더 좋아진다.
여행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많은 얘기를 나눠보지 못했지만, 그중 몇 명은 가끔 얼굴이 갑자기 떠오르기도 하고,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싱거운 기대를 갖게 한다. 트레킹 내내 우리와 동행했던 두 명의 포터Porter(짐을 대신 들어주는 사람)는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다. 한 명은 고등학생이었고, 다른 한명은 쉰 살 정도의 어른이었다. 누군가 내 짐을 들어준다는 게 어색해서 어떻게든 우리가 해결해 보자는 의견도 있었는데, 산 중턱에 올랐을 때 깨달았다.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도중에 하산해서 네팔식 물리치료 같은 걸 받아야 했을 것이다. 그들의 역할에 감동하며, 한편으로는 여전히 불편한 마음을 가지며, 우리는 함께 긴 길을 걸었다.
현지인의 생활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너무 많은 돈을 주지 말라는 다른 여행객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지만, 왠지 그런 말을 들으면 가슴이 울렁거렸다. 우리 일행 중 두 명은 그들과 헤어지며 울었고, 그들은 우리를 떠나며 밝게 웃어 보였다.
랑탕 트레일을 걷는 동안 보통 두 시간에 한 번씩 마을이 등장한다. 그곳에서 여행객들은 숙식을 해결하고 휴식을 취하며 안락한 시간을 보낸다. 따듯한 음식이 있었고, 아래보다 점점 친절해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별도 많았다. 나는 마을의 아이들과 자주 어울렸다. 아무 거리낌없이 다가왔기 때문에 내 의지가 특별히 중요하진 않았다. 그들은 아무것도 없는 들판을 뛰어 다니고, 우리에게 갑자기 손을 내밀고, 돈을 주지 않으면 화를 내기도 했다. 닭에 쫓기는 내 모습을 보며 5분 동안 꾸준히 조롱하던 녀석도 있었다. 내가 건넨 카메라로 사진 찍는 시늉을 하는 아이도 있었는데, 돌아와 필름을 현상해 보니 그때 찍힌 듯한 사진이 있었다. “좀 더 올려야 우리가 찍히지!” 엉뚱한 곳에 렌즈를 향하고 있던 그 아이에게 나는 답답하다는 듯 윽박을 질렀는데, 현상된 필름에는 그 동네 꼬마 아이들 모습이 담겨 있었다. 핀이 잘 안 맞긴 했지만, 저 멀리 있는 친구까지 네모난 프레임 안에 넣으려고 노력한 흔적이 있었다. ‘이 사진을 보내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 아이가 찍은 사진과 뿌옇게 찍힌 사진 속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네팔에서 만난 아이들 모두의 얼굴이 떠오른다.
유럽인들도 꽤나 많이 마주쳤다. 처음 외국에 나와본데다가 고산을 오른다고 잔뜩 겁을 먹은 나는 신발부터 배낭까지 너무 커다란 걸 골랐는데, 유럽인들은 하나같이 간소한 차림이었다. 어떤 금발의 청년에게는 등산화를 가방에 매달고 슬리퍼를 신고 걷는 여유까지 있었다. 나는 네팔에서 그렇게 하면 죽는 줄 알았는데, 그 금발 청년은 우리에게 밝게 인사했다. 손을 흔들긴 했지만, 내가 얼마나 답답한 사람처럼 느껴졌는지 모른다.
도시의 불빛에서 멀어지며 나는 햇빛 구경을 실컷 했다. 가끔 무척이나 눈부시게 내린 적도 있는데, 그때마다 나는 시규어 로스Sigur Ros의 음악을 틀고 평소보다 천천히 걸었다. 랑탕 트레일은 만년설이 녹은 물이 흐르는 계곡과 곳곳에서 길이 겹친다. 차를 파는 롯지Lodge(오두막으로 된 숙소)가 등장하는 곳도 바로 그런 곳이다. 사람들이 배낭을 일렬로 세워두고 홍차와 차이를 마시는 곳. ‘Tea’라는 글자 앞에서 얼마나 자주 멈춰 섰는지 모른다. 걸음이 빠른 나는 친구들보다 앞서 걷다가 틈틈이 차를 마셨고, 저 멀리 친구들 모습이 보이면 다시 길을 나서곤 했다. 처음에는 함께 걸으며 얘기도 하고 그랬는데, 혼자 걷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함께 여행하더라도 혼자의 시간을 보내는 건 중요한 일이다. 물론 일정과 상황이 허락할 때 얘기지만.
우리가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는 건 하루치의 트레킹이 끝나고 난 저녁 시간이었다. 비슷한 모습의 마을들이라도 잘 들여다 보면 특색이란 게 있었는데, 우리의 여정의 마지막 마을이었던 캰진Kyanjin은 3천 미터가 넘는 고지였음에도 어쩐지 내게 가장 따뜻하게 느껴지던 곳이었다. 직접 만든 야크치즈를 파는 가게에서 치즈를 사 숙소의 여행객들과 함께 구워 먹었고, 모카포트 커피를 파는 카페에서는 커피와 빵을 사먹었다.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아서 그랬는지, 우리는 캰진에서 꽤나 편안한 표정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트레킹을 마치고 다시 카트만두에 돌아와서 우리는 이틀을 보냈다. 시내 구경도 실컷 하고 도시에 있는 카페에 들리기도 하고, 서점이나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 필요한 걸 사기도 했는데, 그때 서점 안에 있던 카페의 밀크티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한국에 돌아가면 그 맛이 그리울 것 같아 똑같은 걸 사왔는데, 아무리 해도 비슷한 맛이 나질 않았다. 몇 번 더 시도하다가 그만뒀고, 그 이후로는 뜨거운 밀크티를 마셔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더러운 침대에 적응했던것처럼, 나는 금세 또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네팔을 여행하는 동안 필름을 열다섯 롤이나 썼다. 언제나처럼 괜히 찍었다고 생각되는 사진이 반이나 됐지만, 그때는 그런 사진들도 하나하나 느긋하게 들여다 보며 며칠을 보냈다. 지루하지 않고 꽤나 즐거웠다. 너무 자주 봐서 무뎌졌다가도 몇 달이 지나 우연히 발견하면, 또 처음부터 끝까지 보곤 했다. 멍하게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적이 많았다. 사진 중에는 그저 헛헛한 풍경을 찍어놓은 게 유독 많았다. 아마 혼자 걸었던 시간이 많아서 그랬을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그런 사진을 들여다 보며 꽤나 기뻐했다. 햇살이 잘 담겨 있고, 차를 마시며 바라봤던 먼 풍경들도 멋지게 나와 있었다. 그 중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도 있다. 그런데 함께 간 친구들의 사진이 많이 없었다.
3년이 지나서, 나는 문득 그런 일에 아쉬움을 느낀다. 내가 지금 떠올리는 웃는 얼굴들이 정말 있었던가. 다투고 서운해하던 얼굴들만 가슴 속에 또렷이 남아 있다. 우리가 랑탕 여행을 약속했던 자리는 2012년 여름, 술을 마시던 자리였다. 우연히 찾은 사진 한 장을 돌려 보며 고개를 끄덕였었다. 사진 속에는 언덕에 의자를 놓고 모여 앉은 어떤 여행자들이 있었고, 그 뒤로는 설산이 보였다. 화질이 좋지 않았는데, 그 안에 담긴 온도와 그들이 만끽하고 있을 나른함이 느껴졌었다. 가끔 그 사진이 보고 싶어 부산을 떨어 보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여행은 이상하다. 멀리 떠나고 있다고 느꼈을 때 오히려 나는 사람들과 거리를 좁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마냥 좋았다며 지난 날을 추억하면 그땐 왠지 허전함이 찾아 온다. 또렷했던 무언가가 영영 사라져버릴 기세로 앞서 걷고 있다. 랑탕에서 친구들을 앞질러 걷던 나도 그렇게 보였을까?
네팔짱
www.nepal-jjang.com
전화. 070 8225 0737
이메일. nepaljjang@gmail.com
우리가 카트만두 공항에 도착해서 처음 찾아간 숙소는 한국인이 운영하던 곳이었다. 마당에 큰 나무가 있고 거쳐간 여행자들의 증명사진이 잔뜩 붙어 있던 곳. 안나푸르나나 랑탕을 여행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만약 처음이라면, 나는 이곳을 소개해 주고 싶다. 다른 장소와 비교해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조금 망설여지지만, 트레킹을 마치고 다시 카트만두 시내로 돌아왔을 때 우리는 다른 곳을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그곳으로 향했다. 정보를 얻기에도 좋고, 친구를 사귀기에도 좋다. 네팔이 처음인 사람들에게 여러모로 도움이 될것 같다.
글 사진 전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