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잖아 A씨, 이런 휴일 어때

홀리데이를 보내는 공간 네 군데

있잖아 A씨,
이런 휴일 어때

홀리데이를 보내는 공간 네 군데

A씨, 요즘 축축 처져 있는 것 같은데 기분은 괜찮은 거야? 혹시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고? 마음에 응어리가 담기기 시작하면 저도 모르게 조금씩 굳어지는 법이야. 사람이 단단한 돌덩어리 같아진다고. 이럴 땐 다 필요 없어.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이 잔뜩 모인 곳에 가서 휘적휘적 돌아다니면 기분이 금세 나아지거든. 다른 게 휴식이 아니야, 그냥 내 마음 편해지면 그게 최고의 휴식이지. 이런 데 가보는 건 어때? 내 말 듣고 있는 거지? 이것 좀 봐 봐.

흑심
Black Heart Pencil Shop

A.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 266, 3층
H. ttangbyeol.com
T. 070 4799 0923

‘흑심’은 ‘누벨바그125’ 한 켠에 자리한 연필 가게로, 디자인 스튜디오 ‘땅별메들리’에서 운영하고 있다. ‘누벨바그125’는 땅별메들리가 ‘아우레올라’, ‘쾌슈퍼’ 팀과 함께 꾸린 디자인 쇼룸이다. 프랑스 영화의 한 운동인 ‘새로운 물결New wave’을 뜻하는 누벨바그Nouvelle vague는 참신하고 새로운 디자인 물결에 동참하려는 의미를 담아 지었다.

왜 하필 연필일까. 연필을 쓰는 건 불편한 일이다. 돌려 깎고, 심지가 부러지지 않게 돌보고, 종종 잘 적히지 않는 종이 표면에 적당히 힘을 주기도 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든 간편하게 쓸 수 있는 형형색색의 볼펜에 비하면 연필은 여러 사정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불편이야말로 오로지 연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연필깎이나 문구용 칼로 연필을 다듬는 데 들이는 시간을 떠올려 봐도 알 수 있다. 흑심이 너무 길고 삐죽하게 나오면 안 되고, 너무 뭉툭하면 끝을 착착 깎아줘야 한다. 게다가 뻑뻑한 심지에서 들려오는 사각사각 나무 소리는 이런 불편함을 모두 감수할 만큼 익숙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소리다. 연필이야 말로 인간의 손을 가장 닮은 물체이다. 인간의 주름을 그대로 껴안은 나무에서 탄생하는 것부터, 시간이 흐르면 뭉개지고 닳아 없어지고 마는 것까지. 인간과 오랜 시간을 함께한 몇 안 되는 물건 중 하나인 이유이지 않을까. 흑심에서 판매하고 있는 제품은 모두 빈티지 연필로,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중반까지의 접하기 힘든 연필과 현재까지 맥을 이어온 연필도 만날 수 있다. 시대별로 연필 모양이나 쓰임, 숨겨진 이야기가 달라서 그런 걸 마냥 듣는 것도 재미있다. 아주 사소한 것에 기호가 분명한 사람들을 보면 왠지 유쾌한 삶을 살고 있을 것 같다. 가장 좋아하는 연필이 있는 사람, 내게 맞는 지우개가 있는 사람들처럼.

A에게 한마디
평소에는 볼펜만 썼으면서 여기에 들어가면 마치 원래 연필을 좋아한 사람처럼 굴게 된다니까? 그만큼 연필의 매력에 빠져버려. 전영록 씨가 그랬잖아. 사랑은 연필로 쓰라고, 홍홍!

블루 아워
Blue Hour

A. 서울시 용산구 보광로109 301호
H. blog.naver.com/lou1102

손으로 보내는 시간을 생각할 때가 있다. 무언가를 만들고 쌓고 담는 시간들. 그것은 결국 마음속의 소리와 멀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한때 혼자만의 시간을 견뎌야만 했던 한 개그우먼이 말했다. “그때 너무 힘들어서 하루 종일 프라모델만 조립했어요. 아무것도 떠올리고 싶지 않았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어요. 엄마는 그런 저를 보고 걱정했지만, 저는 그 시간이 무척 행복했어요.” 돌이켜 보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시간이 우리에게 얼마나 주어질까.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가 정말 내가 바라는 목소리일까. 우리는 거리가 필요하다. 복잡다단한 것들과 거리를 둬야만 한다.

‘블루 아워’는 프랑스 감독 에릭 로메르의 작품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 가지 모험> 중 한 에피소드의 이름이기도 하다. 영화 속 어린 여자애 두 명이 프랑스 작은 시골 마을에서 해뜨기만을 기다리는데, 바로 블루 아워를 보기 위해서다. 블루 아워는 새벽에서 아침으로 넘어가는, 하늘 색깔이 영롱한 분홍빛을 띠는 묘한 순간이다. 3~4분의 짧은 찰나로 아주 한정적이 시간이어서 더욱 의미가 있다. 이태원의 가구 거리를 따라 거닐다 보면 하얀 건물에서 이곳만의 블루 아워가 사람들을 기다린다. 작고 소담한 공간 안으로 큰 창이 여러 개 붙어 있어 저 먼 거리까지 쉽게 볼 수 있다. 어쩐지 이곳에서도 블루 아워를 목격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블루 아워는 핸드 위빙Hand Weaving을 비롯해 베틀을 이용한 위빙 클래스를 진행한다. 사람들은 한자리에 모여들어 실의 색깔을 고르고, 좋아하는 모양을 상상한다. 평온한 기운이 그대로 깃든다. 단순 반복하는 일은 굳건한 고민에서 잠시 벗어나는 자유를 준다. 블루 아워를 지켜 나가는 상희 씨가 그랬다. 위빙은 마치 실로 그림을 그리는 일과 같다고. 손으로 할 수 있는 무수한 일 중에서 위빙이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것은, 그러니까 멀어지는 것을 자처하는 용기다.

A에게 한마디
블루 아워에서는 위빙 클래스만 하는 게 아니라 도자기도 굽고 있어서 도자기 제품도 살 수 있어. 구경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져. 실과 도자기. 너무 잘 어울리지 않아? 벌써 마음의 휴가다, 휴가야.

얼그레이&장롱
All gray&Jangrong

A. 서울시 중구 을지로 114-6 홍원빌딩 504호
H. allgray.co.kr | Jangrong.co.kr
O. 목, 금 13:00~19:00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을 떠올려 본다. 나무, 유리, 천, 종이. 그 자체만으로 인간에게 유용하고 유의미한 것들. 자연과 가까운 물성의 재료이자 결과물인 것을 보면 잘 살고 싶은 마음이 느껴진다. ‘얼그레이All Gray’는 중성적인 느낌과 안정감을 담아, 일상의 미학을 발견하는 것으로 사람들을 반긴다. 같은 직장에서 만난 세 명의 동료가 서로의 취향을 담아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었다. 가방과 노트, 다이어리와 달력, 모빌과 은은한 왁스 타블렛까지. 일상의 자리를 내어주는 것들이 그곳에 있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방식이 결국 얼그레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그레이와 한 공간을 나누는 ‘장롱Jangrong’은 모든 이들의 기억 너머에 있는 엄마의 장롱에서부터 비롯되었다. 나프탈렌 냄새와 엄마 냄새, 작지만 아담한 공간에 숨어 있던 기억들. 그 장롱 속에는 많은 물건이 있었다. 엄마의 소중한 장신구와 쉬이 꺼내보지 않는 편지나 지류들. 가장 소중한 물건을 차곡차곡 쌓는 공간이 바로 장롱인 것이다. 장롱에서는 어여쁜 마음을 담아 옷과 액세서리, 가방을 만든다. 

쇼룸인 얼그레이아파트먼트를 찾으면 꼭 누군가의 방에 찾아간 느낌에 빠져든다. 친구의 방을 구경하는 어색하고 묘한 기분이 감돌아서, 이것저것을 마음에 담아 감상하게 된다. 편안하지만 낯선 분위기는 결국 차분한 공간의 기색을 만든다. 얼그레이와 장롱은 조금 같고 조금 다르다. 각자의 방향이 있지만, 이 공간과 브랜드를 통해 사람들이 휴식의 조각을 나누어 가지길 바라는 마음은 같다. 휴식은 결국 일상의 작은 균열을 고치고 수리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향을 맡고, 취향이 잔뜩 묻어나는 옷을 입고, 노트에 소설책의 문장을 적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런 일들의 교집합에는 얼그레이와 장롱이 있다.

A에게 한마디
잠시 머무는 동안 차 한 잔이 나오면 사람들과 도란도란 이야기 나눠보면 좋을 거야. 아 참, 6월에는 장소를 이전할 예정이니까, 그 이후에는 꼭 SNS에서 공지를 보고 가야 해!

금옥당

A.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로11라길 2
T. 02 322 3378
O. 수~일11:00~20:00

충전과 휴식에 맛이 빠질 수 없다. 노곤해진 마음을 달래고 걱정을 늦추는 것은 단연코 달콤한 맛이다. ‘금옥당’은 연희동에 위치한 한식 디저트 카페로 팥죽과 양갱을 전문적으로 판매하고 있다. 양갱의 오리지널 버전인 통팥양갱부터 호두양갱, 제주녹차양갱, 라즈베리양갱, 밀크티양갱, 흑임자양갱 등 다양한 양갱을 즐길 수 있다. 금옥당의 양갱은 기존의 다른 제품과 달리 담백하고 고소해서 팥의 온전한 맛과 향을 누릴 수 있다. 녹차를 함께 곁들이거나 흰 우유와 짝꿍을 지어도 맛이 좋다. 금옥당의 구운 찰떡도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데, 백미찹쌀, 현미찹쌀, 흑미찹쌀, 소보로찹쌀로 취향에 맞춰 주문할 수 있다. 양갱의 퍼석거림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땐 쫄깃한 구운 찰떡을 추천한다.

넓게 진열된 양갱의 틈을 비집고 안으로 향하면 금옥당의 정겨운 공간이 드러난다. 빈티지하고 깔끔한 인테리어가 돋보여서 마음을 한결 놓게 된다. 어떤 수필가의 글이 떠오르기도 한다. 바쁜 일상에서 두통이 찾아왔고, 고통에게 할애할 시간은 없던 그녀는 약국에 찾아가 두통완화제를 달라고 말했다. 그녀를 관찰하던 약사는 잠시 창가 자리에 앉아 있으라며 시원한 보리차 한 잔을 내어왔다. 두통은 잠시 지나가는 고통이니, 그만큼의 기다림을 주는 게 어떻겠냐는 말과 함께. 수필가는 그제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이 보였고, 보리차의 시원하고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종종 자기만의 시간을 쪼개 무언가에 빌려주곤 한다. 분 단위로 살아가는 삶에서 가장 귀한 것을 나누는 셈이다. 바쁘다. 좀처럼 일이 끝나지 않고, 가족은 자꾸만 나를 찾고, 하고 싶은 일은 또 어찌나 많은지 하루가 부족하다. 시간이 지어낸 틀을 깨고 벗어날 차례다. 금옥당은 여전히 조용하고 말이 없다. 그저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가늠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A에게 한마디
여기 쌍화차가 또 보통 쌍화차가 아니야. 뜨숩고 달달하고 친숙한 맛에 마음이 푹 놓이거든. 왠지 혈액순환도 잘 되는 것 같다니까? 양갱은 선물로도 좋아 보이던데, 내게 해보는 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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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포토그래퍼 이자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