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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놀이하라
일상을 놀이하라
얼마 전 오래된 친구들과 함께 모여 윷놀이를 했다. 윷놀이라고 해봤자 거창할 것은 없었다. 이면지 뒷면에 우리만의 윷놀이 지도를 그리고, 그 자리에 말이 놓아지면 무조건 엉덩이로 이름을 쓰는 무서운 ‘꽝’의 구역도 만들었다. 그러고 나서는 집에서 뒹구는 냉장고 자석을 말로 삼아 세 팀으로 나누어 윷을 던지는 것이 전부였다. 처음 윷놀이를 하자고 할 때는, 무슨 애들도 아니고 윷놀이냐며 망설였지만 놀이가 시작된 후 열 명 남짓한 우리는 이기고 지고의 여부를 떠나 깔깔거리며 윷놀이에 온전하게 심취해 있었다. 함께 있는 자리에서 핸드폰을 보지 않고, 티브이 속 뉴스나 드라마를 보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의 기억창고 문을 열어보면 늘 우리는 놀이와 함께였다.초등학교 때는 고무줄만 있어도 점심시간 내내 땀을 뻘뻘 흘렸고, 추운 겨울이면 쉬는 시간마다 반 대항으로 공기를 하며 친구들과 대동단결의 우정을 다졌다. 고무줄놀이, 공기놀이, 구슬치기, 땅따먹기, 말뚝 박기. 이런 놀이들은 순식간에 우리에게 ‘행복’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주었다. 때로는 졌다는 아쉬움으로 괜히 억울해하기도 하고, 누군가의 약아빠진 기술에게 얄미운 비판을 가하기도 하며 우리는 놀이 안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자발적인 열정으로 충만해졌었다.
지금 내 삶을 세속적인 잣대로 평가하자면 성공한 삶이라고 여길 수는 없지만, 내게는 늘 상상하면 바로 떠올릴 어린 시절의 놀이에 대한 기억들이 가득하다. 그런 기억들 덕분에 어른이 되어 삶이 지칠 때 마다 나는 한 번 씨익 웃으며 버티고 일어선다.초등학교 1학년인 조카가 이모인 나에게 심심하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놀이터로 나가면 친구들이 많을 것이라고 나가 놀라고 대답을 하니 놀이터가 썰렁하다고, 아무도 없다고 대답했다. 우리가 어릴 적엔 핸드폰 따위 없어도 자동적으로 모이는 약속이 지켜졌다. 학교를 마치면 운동장이나 동네 놀이터에 삼삼오오 많은 친구들이 모였다. 그럴 때면 다시 날이 어두워져 엄마가 밥 먹으라고 소리치며 부를 때까지 또 놀이에 놀이를 이어가는 시간들 뿐이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회사원들보다 바쁘다. 요일 별로 가는 학원이 다르고, 해야 할 공부도 많다. 가끔 그들에게 소망이 있냐고 물어보면 ‘노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그럴 때마다 깜짝 놀란다. 가장 쉬운 것이 노는 것일 텐데 자유시간과 노는 시간이 생기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요즘에는 참 많아졌다. 그나마 자유시간이 생기면 바로 핸드폰을 꺼내 들어 게임을 한다.
예전처럼 서로가 손가락을 걸고 누군가는 꽉 잡은 손가락을 떼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거나 뱁새가 황새 쫓아가듯 다리를 벌려야 하는 ‘한발 뛰기’를 하며 서로에게 닿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우리는 언제부터 놀이와 멀어진 것일까. 어른이 되어 어린 시절에 지겹도록 했던 그 흔한 놀이가 그리워 질 때마다 나는 마리 텐 케이트Johan Mari Henri Ten Kate(1831~1910)의 그림을 본다. 그의 그림 속에는 수많은 놀이들을 하는 아이들로 붐빈다.
아이들은 놀이가 재미있어서 하는 것이지 누군가가 시켜서 하지 않는다. 그들의 놀이에는 자유가 바탕이 되어있다. 가장 자유로운 것은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 오로지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할 수 있는 상황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놀이는 우리를 가장 쉽게 자유에 이르게 한다. 일단 놀아버리고 나면 놀이를 했던 과정은 물질적인 결과가 아닌 개인의 기억에 의해 보존된다. 그 기억들은 늘 건강한 영양소처럼 쌓여 추억이 된다. 심리학자 칼 융은 창조는 지성에서 발현되지 않고 놀이충동에서 일어난다고 했다. 지리멸렬한 일상을 잠시 정지시키고 놀이를 우리의 삶 안으로 불러온다면 매일 조금씩 창조적이고 자유롭다고 느낄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일상을 놀이화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무엇일까?놀이하는 시간을 따로 만드는 것은 삶의 면면을 분류해야 하는 일이니 아예 일상을 놀아버리자. 카페에 가서 소소하게 커피를 먹는 것은 ‘카페 놀이’, 분식집에 가서 떡볶이 국물에 만두를 찍어먹는 것은 ‘분식 놀이’, 멍하니 동네 주변을 산책하는 것은 ‘어슬렁 놀이’, 가위바위보에 진 사람이 설거지를 하는 것은 ‘청소 놀이….’ 이렇게 이름을 붙여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평범한 행위도 놀이처럼 느껴본다면 지겹거나 평범한 일과 재미있는 놀이의 구분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있는 풍경 Children in a landscape
평범한 일과 재미있는 놀이의 구분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지금부터 놀고 말 거야!’라는 마음은 오히려 놀이와 멀어지게 할 것이다. 그 보다는 일상의 틈새를 활용해 위에 그저 지나치기만 했던 여러 가지 활동에 ‘놀이’라는 이름을 붙여 새로운 놀이를 시도해보는 것은 어떨까? 문구점에서 파는 비눗방울, 공기, 부메랑 그 무엇이 되던 좋다. 1평의 땅만 있어도 땅따먹기를 할 수 있는데 놀이가 어렵다고 핑계대지 말고, 일상을 놀이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면 케이트의 그림 속 아이들처럼 지금의 우리보다 조금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으리라.지난 겨울 어느 날, 서울에 한 밤중에 큰 눈이 내렸을 때도 나는 친구들에게 눈싸움이 너무 하고 싶다고 난리를 피웠다. 결국 다음날 아침이 돼서 서둘러 출근하느라 까먹었지만 말이다. 이미 지나가버린 것만 같은 겨울이지만 혹시라도 마지막 눈이 또 내리면 케이트의 그림 속 아이들처럼 ‘눈 놀이’를 하러 나가야겠다. 햇빛에 녹아내릴지언정 소중한 사람을 위해 녹는 것은 괜찮다고 선글라스를 끼고 웃으며 태양 아래에서 큰 소리쳤던 <겨울 왕국>의 ‘올라프’처럼 어차피 사라질 순간들일지라도 빛나는 기억을 눈처럼 뭉쳐 더 따뜻한 날씨가 찾아오기 전에 내 마음 속에 남겨야겠다.
눈에서 노는 아이들 Children playing in the snow
이 그림을 그린 마리 텐 케이트는 네덜란드의 수채화가로 헤이그에서 태어나 고향에 있는 헤이그 미술 아카데미에서 공부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의 아버지도 화가였고 형도 미술 선생님이자 화가였다는 점이다. 케이트는 아홉 살 많은 친형에게서 미술의 기초를 배웠다 열아홉에는 암스테르담으로 이동해 암스테르담 로열 아카데미의 회원이 되어 활동하는데, 이미 그때부터 재능 있는 화가로 인정받기 시작한다. 그는 전 생애에 걸쳐 낭만주의적인 화풍으로 어린 아이들의 야외에서 노니는 모습과 동물들과 함께 있는 풍경을 그렸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몽글몽글 떠올리게 한다. 특히 케이트는 겨울날 아이들이 눈덩이를 굴리거나 썰매를 끌거나 강아지와 눈밭에서 함께인 장면들을 많이 포착했다. 훗날 케이트는 그의 아들 ‘마리누스’ 역시 화가로 키워낸다.
겨울의 재미 Winter fun
이 그림 속에도 겨울 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주먹밥 같은 눈을 가득 굴려 바구니에 넣고 있는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친구의 신발에 몰래 넣고 있는 녀석이 내 눈에는 가장 먼저 보인다. 오른편에는 눈이 녹기 전에 놀고 싶어 안달이난 한 녀석이 손을 들며 뛰어오고 있고, 가운데 두 녀석들은 눈싸움을 하다 시비라도 붙었는지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눈이 오면 차가 막힐 걱정을 하고 출퇴근길 걱정을 하는 어른들의 모습과 사뭇 다른 풍경이다. 이럴 때면 어른이 되는 것은 하루하루 눈덩이처럼 스스로가 생산해내는 고민을 쌓아가는 일이 아닐까싶다.
에디터 김현지
글 이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