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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인 — 응급의학과 의사·작가
‘의사’라는 단어에 어떤 이미지가 생각나는가, ‘작가’라는 말에 어떤 얼굴을 떠올렸는가. 가운을 입은 남궁인은 0.1초가 급박한 응급실 안에서도 다정을 잃지 않고 의학을 번역한다. 환자가 조금 더 정확하게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환자를 다치게 한 사회를 세상에 알릴 수 있게. 가운을 벗은 남궁인은 내 이야기를 뿌리 삼아 쉬지 않고 뭔가를 쓴다. 무지개 빛깔이 흐르는 게이밍 키보드 위에서 ‘타닥 타닥’ 리듬을 만드는 손가락은 타건감을 만끽하는 호기심꾸러기 같다. 비일상이 펼쳐지는 응급실과 온전한 일상에 가까운 내 방을 오가는 남궁인에게서 나는 또 다른 얼굴을 본다. 판에 박힌 듯 그려지던 의사와 작가가 아닌 얼굴을. ‘음’보다 ‘움’에 가깝게 발음하며 짓는 무구한 표정을.
응급의학과 의사로 일하는 건 “피로의 종류와 강도가 다르기 때문에 잠을 충분히 자야 한다.”고 쓰신 적이 있죠. 오늘 푹 주무셨나요?
아주 잘 잤습니다. 어제 밤 10시에 퇴근하고 집에 와서 〈폭싹 속았수다〉를 보다 잠들었어요(웃음).
쉬는 날 흔쾌히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부를 수 있는 호칭이 워낙 많은데, 뭐라고 부르는 게 편하세요?
오늘은 ‘작가님’이요.
좋아요. 책 《제법 안온한 날들》에 “평범하게 이어지는 일상은 사람을 가장 행복하게 한다.”라는 문장을 쓰셨어요. 왜 평범한 일상이 가장 행복한 거라고 생각하나요?
저는 현재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벌써 햇수로 17년째 일하고 있는데 응급실에선 일상 바깥의 사람을 보게 돼요. 어제도 환자 60명 정도를 만나고 돌아왔는데요, 오열하는 보호자를 만나는 일이나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분들을 보는 건 일상적이에요. 암 선고나 사망 선고를 하는 일도 잦아요. 그런 일을 아침부터 밤까지 겪다가 이 집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문을 딱 열면 제가 떠난 그대로의 공간이 저를 맞아주거든요. 그때부터 일상이 시작되는 느낌이에요. 주어진 글을 쓰고, 읽을 수 있는 최대한의 책을 읽으면서 쉬는 시간을 보내죠. 집에서 보내는 건 평범한 일상인데 사실 제가 하는 일은 평범하지 않은 일상이잖아요. 그래서 그런 문장이 나오게 된 것 같아요. 드라마나 만화에서는 주인공이 집을 떠나면서부터 모험이 시작되는데, 그 마지막은 꼭 집으로 돌아와서 꼭 가족들과 평범하게 지내잖아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평범한 것이 가장 행복한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됐어요.
작가님은 나인 투 식스와는 조금 다른 패턴으로 일하고 계시죠?
데이 근무 때는 아침 8시 반까지 출근해서 밤 10시에 퇴근하고, 나이트 근무 때는 밤 10시 출근, 아침 8시 반 퇴근이에요. 14시간 동안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오는 환자들을 보는 건 생각보다 힘들어요. 그러다 보니 퇴근하면 기절하듯 자게 되죠. 나이트 근무를 마치고 아침 8시 반에 퇴근하면 출근하는 인파로 차가 굉장히 막히는데 그때가 심리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부치는 때라 산을 넘어가는 느낌이에요. 무사히 집에 돌아오면 ‘와, 해냈다!’ 하는 기분으로 옷을 벗어 던지고 일단 잠부터 자죠. 그러면 보통 오후 두세 시에 눈을 뜨는데,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네다섯 시에 일어날 때도 있어요. 이렇게 연달아 데이나이트 근무를 하게 되면 나흘은 쉬는 패턴인데요. 그땐 글 쓰는 사람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죠. 보통의 직장인처럼 출퇴근하지만 그 사이클이 좀 큰 편이에요.
문자 그대로 밤낮없이 환자와 만나고 있군요. 얼마 전 지인에게 “책도, 영상도 없이 아무것도 안 한 채 멍 때리는 시간은 없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저는 그 질문이 좀 낯설었거든요. 보통 쉴 때 아무것도 안 하나 싶어서요. 작가님은 어떠세요?
저도 가만히 멍 때리는 시간은 없는 편이에요. 그러려고 노력도 해봤는데 안 되더라고요. 오히려 그걸 하려는 상태가 힘들어요. 사람이라는 게, 침대에 오래 누워 있으면 빨리 나가고 싶고, 이 시간이 언제 끝나나 싶어지는 것 같아요. 한 자세로 오래 있는다는 게 물리적으로 힘든 일이니까요. 그래서 환자들도 집에 보내달라고, 누워 있기 답답하다고 소리칠 때가 있는데요. 경험해 보니까 그런 분들은 대체로 많이 나아지신 분들이에요. 아무리 응급실에 실려 왔어도 집에 가고 싶은 본능이 있다면 꽤 건강한 거더라고요. 아, 일부러 아무것도 안 하면서 시간을 보낸 적은 없지만, 진짜로 지치면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만 있게 된다는 걸 깨달은 적은 있어요. 작년에 의료 대란이 있었을 땐 노동이 정말 힘들었거든요. 그때 무리해서 일하다 보니 제 건강도 상당히 안 좋아졌고, 집에 돌아오면 누워만 있다가 다시 출근하는 일과의 반복이었어요. 그때 제가 저를 이렇게 표현했어요. “집에 돌아오면 사각 어묵처럼 누워 있다.”고요(웃음). 일부러 그러려는 게 아니라, 정말로 그런 모습으로 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사각 어묵(웃음). 단번에 상상되는데요. 응급의학과를 선택한 이유가 ‘사회에 관심이 많아서’였다고 접했어요. 사고나 범죄 같은 사회 문제를 직접 받아서 치료하는 거에 관심을 느끼셨다고요.
의대생 때 경험한 응급실 현장이 충격적이었어요. 일명 ‘조두순 사건’이 발생한 때였는데…. 저는 그 당시만 해도 일개 의대생에 불과했는데 그 현장을 보고 ‘묻지 마 범죄’라는 게 진짜 있다는 걸 체감했고, 사람이 이렇게까지 처참하게 깨져버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인턴으로 모든 과를 순환할 때도 응급실 인턴 경험이 가장 강렬했죠. 응급실에 있다 보면 하루에도 폭력 사건은 셀 수 없이 많고요. 눈알이 터지거나 머리가 깨져서 오는 환자는 매일 있어요. 처음 그런 장면을 목격했을 땐 힘들기도 했지만 책임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생명 존중의 영역에서 맞서 싸우는 일이잖아요. 그런 점에 흥미를 느껴서 2010년에 응급의학과로 지원하게 됐는데, 실무에 들어가 보니 모든 게 사회 문제랑 연결돼 있다는 걸 체감했죠. 이를테면 한번은 성탄절에 공사장에서 혼자 일하던 인부가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어요. 즉사였죠. 살리려고 해도 살릴 수가 없었어요. 그럼 생각을 하게 돼요. 왜 성탄절에, 이 사람은 헬멧도 안 쓰고 공사장에서 위험하게 일을 했을까…. 그런 걸 헤아리다 보면 사회 문제까지 연결되는 거예요. 이런 산업재해뿐 아니라, 아동·노인 학대, 자살 같은 사회 문제와도 마주하게 되죠. 코로나19, 메르스 같은 질병도 국제 문제라는 걸 알게 되고요. 그때부터 아는 것에서 그쳐선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응급실 의사로 배우는 건 환자의 몸을 치료하는 일뿐이에요. 그런데 의사가 되고 이런 현실을 알게 되니까 피해자의 편에 서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이런 이야기들을 제 나름대로 기록하고 글로 보여주게 되었어요.
의사는 환자를 돌보는 역할인 만큼 자신의 건강도 중요할 텐데, 작가님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졌다고요. 비문증이 생겼단 소식에 놀랐어요.
비문증은 사람마다 다르게 표현된다고 하는데, 저는 눈 속에 벌레 같은 게 구물구물 기어가는 것처럼 실 모양으로 보여요. 눈에 이상이 생기고부터 신경 써서 눈을 감고 쉬는 시간을 갖거나 너무 피로하게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조금 나아지긴 했는데, 완전히 나아지는 병은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지금도 눈에 벌레 같은 게 돌아다니고 있어요. 근데, 신기한 게 안구와 신경계가 또 여기 적응을 하더라고요. 그런 증상들을 피해서 초점을 맺도록 움직여 주니까 처음만큼 불편하진 않은데요. 완전히 나아지진 않으니 여전히 신경이 많이 쓰이죠. 덩달아 각막도 상당히 안 좋아져서 작년 여름에 한창 혹사할 땐 오른쪽 눈이 거의 안 보였어요. 근무 중엔 휴게 시간이랄 게 없어서 거의 24시간 컴퓨터를 붙잡고 있으니까 눈도 피로하고, 자세도 굳어지다 보니까 목도 아팠어요. 뻐근하고, 팔 저림도 시작되어서 검사를 받아보니 목 디스크였어요. 그래서 요즘은 등 근육을 강화해 주는 스트레칭도 틈틈이 하고 있어요. 그래도 제 몸을 알고 신경을 쓰니까 눈도 목도 조금씩 나아지더라고요.
권역응급의료센터는 지역에서 가장 중한 환자들이 드나드는 곳이죠. 중증 환자들에게 연락이 올 텐데, 전부 다 진료를 볼 순 없는 상황이잖아요. 선택과 결정 앞에서 어떻게 위급도를 따지나요?
권역응급의료센터에는 하루에도 수백 통의 전화가 와요. 119 대원, 상황실, 환자 보호자나 본인…. 이 모든 내용을 전화로 듣고 판단하는 것도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중요한 업무예요. 응급의학이라는 학문에는 환자를 분류하고 치료의 우선순위를 가리는 ‘트리아제’라는 전문 개념이 있거든요. 전문적으로 의사가 직접 보고 확인해야 할 상황인지 판단하는 기준이죠. 가령, 70세 환자가 갑자기 가슴이 아프다는 연락을 해와요. 그런 경우엔 직접 봐야만 알 수 있어요. 그땐 “오라고 해요.”가 돼요. 또한, 경기를 일으킨 환자가 있다고 하면 상황을 긴급하게 점검해야 하는데, 그때도 “오라고 해요.”가 돼요. 그러다 심정지 환자 연락이 오면 “뛰어!”가 되는 거고요. 중증 환자가 한 번에 몰릴 때도 많아요. 중증 환자를 수용하기로 했는데 더 중한 환자가 오면 우선 저와 우리 병원 인력으로 가능한가 판단해요. 환자 수용에 욕심이 많은 편이어서 제 역량으로 모두 보는 걸 우선으로 삼는데요. 여러 환자를 동시에 받다 보면 동료들이 “선생님 미쳤어요?” 하고 원성을 보내기도 해요. 그럴 땐 드라마 대사처럼 “내가 책임진다니까!” 소리가 절로 나오죠. 물리적으로 정 안 될 때면 다른 병원에서 수용할 여력이 있는지 확인 전화를 돌리는데, 서울에 있는 일곱 개 권역응급의료센터 사이에서 조율을 해나가는 거예요.
드라마나 영화 속 장면이 현실에 정말로 있었네요.
그럼요. 환자 치료가 전부가 아니에요. 얼마 전에는 한 학생이 건물에서 추락했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고층에서 뛰어내렸는데 너무 높은 곳이라 즉사했죠. 신원을 알 수 없어서 교복으로 학교 이름을 확인해서 교무실로 전화를 걸었어. 오늘 결석한 학생을 확인해 달라고요. 그런 전화를 돌리는 것도 제 역할이에요.
아…. 기분이 너무 이상해요. 매일 이런 상황을 수십 건씩 최전선에서 대처하고 계신 거군요. 직업적으로 이런 일들을 해나가면 감정이 무뎌지기도 하나요?
네. 확실히 무뎌져요. 저도 병원 밖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으면 에디터님 같은 표정을 지었을 거예요. 그런데 현장에서 저는 프로여야만 하잖아요. 그래서 모든 상황을 냉철하게 보게 돼요. 며칠 전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오신 보호자를 만나게 됐는데요. 아침에 눈을 뜨니 잠든 어머니가 피를 흘리고 있었다고 하시더라고요. 호흡이 가쁘다고도 했고요. 암이었어요. 암이 무려 피부 바깥으로 자라 있었고, 그게 커지다 못해 터진 거였죠. 바로 검사에 들어갔는데 전신에 암이 퍼져 있더라고요. 당장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았어요. 얼마나 남았느냔 보호자 분께 한 달 정도일 것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너무 슬프게 우시는 거예요. 눈물이 갑자기 마구 쏟아지는 걸 보면서 저도 울컥했지만 동요하지 않았어요. 제가 그 상황에서 마음이 약해져 버리면 신뢰 가지 않는 의사가 될 테니까요. 감정 조절을 못 하는 의사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감정을 무디게 유지하려고 노력하기도 해요. 그게 제 역할이니까요.
의대에 진학하기 전부터 작가가 되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죠. 쓰기에 대한 관심은 어린 시절 시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확장되었다고 들었어요. 중학생 때 박두진의 〈해〉를 읽은 뒤 푹 빠지게 되셨다고요. 왜 시였나요?
시의 문장과 소설의 문장은 다르죠. 물론 소설이 시적일 수도 있고 시가 산문시일 수도 있지만, 중학생이 교과서로 접하는 시는 확실히 소설과는 다르잖아요. 중학생 때 저는 짧은 문장으로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고 누군가를 감동시킬 수 있는 게 시라고 생각했어요. 이를테면 윤동주 시인의 문장들 같은 거요. 얼마나 좋아요.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라는 시구, 전 국민이 다 아는 거지만 그 당시 저한테는 처음 보는 문장이었고 읽자마자 소름이 끼쳤거든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싶었는데요. 그때 시가 근본이다, 시가 세상을 구원한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에세이 작가가 되었어요?
신춘문예도 몇 번 도전해 봤는데 늘 낙방이었어요. 시를 안 쓴 지는 벌써 10년이 넘었죠. 그래서 에세이를 택한 건 아니지만 확실히 제가 잘 쓰는 분야는 에세이라고 생각해요. 에세이로는 독자들이 재미있어하는 문장도 쓸 수 있고, 그다음을 궁금하게 만들 수도 있거든요. 그런 글을 10년 동안 써오다 보니 지금은 확실히 저한테 에세이 작가라는 정체성이 생겼어요.
에세이라는 건 정확히 어떤 장르일까요?
에세이 작가로서 이슬아 작가를 참 좋아하는데, 그가 이야기한 것처럼 에세이는 사실만을 이야기하는 장르는 아니에요. 가공된 현실일 수 있고, 사실 그럴 수밖에 없죠. 저한테 일어난 실제 사건이더라도 제 시점에서 본 사건을 쓰게 되니까요. 저는 에세이라는 게 쓰는 사람이 직접 겪은 일이라기보다는 읽는 사람이 작가에게 일어난 일이라고 믿게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쓴 병원 이야기들은 창작에 더 가까워요. 환자의 신원과 이야기를 마음대로 글로 옮길 수는 없으니까요. 다만, 독자들은 제가 응급의학과 의사라는 걸 아니까 제가 쓴 병원 이야기라면 실제 이야기라고 생각하겠죠. 저도 특정 사례를 가공해서 완벽한 고증을 거쳤으니 에세이라 생각하는 거고요.
남궁인을 에세이 작가로 만들어 준 건 다름 아닌 블로그 글들이었죠.
사람들이 특히 좋아하던 이야기들이 있는데, 대체로 제 이야기를 우습게 풀어낸 글이었어요. 어느 날은 배가 엄청나게 아팠는데, 나아지겠지 싶어서 평소처럼 식사도 하고 운동도 했거든요. 오히려 통증에 도움이 될까 싶어 더 열심히 했죠. 근데 출근하고 나니까 더 아파지는 거예요. 참다 참다 더는 안 되겠다 싶을 때, 수도 없이 만지던 CT 촬영 기계에 직접 들어가게 됐어요. 결과를 보니 맹장이 터졌더라고요. 그제야 외과 교수님한테 전화해서 맹장이 터졌는데 저 좀 살려달라고 했어요(웃음). 사실 아는 분 앞에서 수술받고 소변줄 끼고 별의별 모습 보이는 게 부끄러우니까 맹장이 터진 걸 알고도 퇴근한 다음에 다른 병원으로 갈까 생각했어요. 말도 안 되잖아요(웃음). 제 상황이 꽤 재미있게 느껴져서 ‘병원에 출근해서 맹장 수술받고 온 썰’ 같은 느낌으로 블로그에 적었는데 이 글을 재미있게 읽은 독자가 유머 게시판으로 퍼 갔나 봐요. 소위 말하는 ‘대박’이 났죠. 조회 수가 수십만이 나왔어요. 에세이의 힘은 제 이야기지만 제 손에서 떠나면 남의 이야기가 된다는 거예요. 유머나 썰로 변하고, 때때로 뭔가를 알려주는 도구가 되기도 하죠. 의료 대란 때 근무가 너무 힘들어서 블로그에 상세하게 적어 일기를 남긴 적이 있는데, 그 글이 ‘의료 대란이 이렇게 심각하다’는 걸 알리는 지표가 되기도 했어요. 몇 자의 글이 눈덩이처럼 불어서 난리가 났었죠. 에세이는 이런 변형과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해요.
의사가 된 과정이 흥미롭더라고요. 고3 때 공부 잘하는 친구가 멋있어 보여서 같이 공부하다가 수능 성적이 잘 나와서 덜컥 의대에 가게 됐다고…. 너무 엄청난 이야기 아니에요?
정말 그랬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어요. 운이 좋았죠. 저는 한 번도 전교 등수가 두 자리 안이었던 적이 없거든요. 그땐 정말 ‘수능을 잘 보면 멋있어 보이지 않을까?’ 싶어서 공부한 거였어요. 시중에 있는 문제집을 모조리 풀어보겠다는 생각으로 문제를 풀고 오답 노트를 만들었죠. 이걸 반복한 게 다인데 정공법이 지나치게 성공해서 현역으로 서울에 있는 의대에 갈 성적이 나와 버린 거예요.
어떠셨어요? ‘멋진 사람’ 기분을 느끼셨나요?
당분간은 꽤 좋았죠. 너무 대박이 났으니까요. 다들 대박, 대박 해주니까 기분이 좋더라고요. 고등학교 선생님들은 몇 년 동안이나 제 이름을 칠판에 크게 적어놓곤 “얘처럼 될 수 있다!” 하면서 제 이야기를 에피소드로 들려주시곤 했대요.
수능으로 많은 게 바뀌었겠군요.
인생이 너무 많이 달라졌죠. 특히 의대는 인생의 진로를 거의 결정해 버리는 선택이기 때문에 제 미래는 그때 결정된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다른 공부를 하고, 다른 일을 하는 저는 상상이 잘 안 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이라는 걸 놓지 않은 이유가 있나요?
수능을 대박 치고는 정말 좋았는데, 대학에 가보니까 인정 투쟁은 그때부터 또 시작이더라고요. 다 같은 의대생 중 하나로 사는 게 저한테는 좀 아쉬운 일이었어요. 의대에 가려고 죽도록 공부를 열심히 한 타입도 아니다 보니 제 유일한 자아가 의사 하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야겠다 싶었는데, 저한텐 글쓰기가 있었어요. 문학을 좋아한 만큼 글쓰기도 좋아했거든요.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제가 쓴 시로 문제를 만들어서 친구들한테 모의고사라며 돌릴 정도(웃음). 그걸 깨달은 이후로 글쓰기를 평생의 목표로 선택하고 스무 살 때부터 쉬지 않고 썼어요.
그렇다면 의사라는 정체성을 가지게 된 건 언제예요? ‘내가 진짜 의사가 됐네.’라는 생각을 한 순간.
의대 커리큘럼은, 2년 동안 예과라고 해서 교양이 될 만한 학문을 배워요. 3학년 때 본과인 의학과에 가게 되면 그때부터 해부학, 소화기 등 의학 과목을 배우게 되죠. 그리고 5학년이 되면 그때부터 실습이에요. 4년 동안 이론을 익혔다면 이젠 가운을 입고 병원을 돌아다니게 되는데요. 선배 의사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고, 익히고… 글로 의학을 배울 땐 환자 한 명 보지 못하고, 병원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데 실습을 나가서 환자를 만나니까 그제야 제가 진짜 의사가 된다는 실감이 나더라고요. 사실 지금도 기분이 이상할 때가 있어요. 이렇게 평범하게 남궁인으로 이야기하다가 병원에 가서 가운만 입으면 ‘선생님’이 되거든요. 간절하게 어디가 아프다고 호소하는 환자를 보면 가끔 생경하게 느껴져요. 제가 괜찮다고 하면, 그건 그냥 친구가 위로하는 게 아니라 의사라는 사람이 말해주는 거잖아요. 가운만으로도 신뢰가 생기는 직업인 거예요. 그러니까 저한테 의사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게 한 건 가운을 입고 처음 병원에 들어가서 환자를 마주하던 때였어요. 그때부터 공부도 재미있어졌죠. 의학 공부를 진심으로 제대로 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해요.
환자를 직접 만나면서 사명감이 생긴 거네요.
그렇죠. 또 한 번의 계기는 레지던트 1년 차 때인데요. 그때부터는 책임을 져야만 하거든요. 2010년도에 혼자 병원을 지켜야 했던 날이 있었어요. 고려대학교 병원이면 엄청 큰 병원인데, 면허 딴 지 고작 2년 된 제가 혼자서 병원을 지켜야 하는 거예요. 얼마나 두렵고 겁이 나겠어요. 권역응급의료센터니까 한밤중에 칼 맞고 오는 사람도 있고… 거의 〈범죄도시〉 같았어요. 혼자 눈을 이글대면서 분투했죠. 그때 책임감을 느끼면서 진짜 의사가 된 것 같아요. 그 시절에 틈틈이 쓴 글들이 《만약은 없다》와 《지독한 하루》가 되기도 했고요.
작가님은… 의사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한참을 침묵한다.) 일단은 의학의 대변자예요. 의학은 과학이고, 과학은 지금까지 입증된 절대적인 지식이에요. 물론 뒤집힐 순 있지만 현재까지 우리가 사실로 받아들이는 정설이라는 게 있죠. 그래서 의학 또한 일순간으로선 고정된 개념이에요. 의사들이 교육을 받는 건 이 고정된 개념을 전부 다 알고 실행하기 위해서예요. 물론 의학은 너무 큰 범주여서 모조리 머릿속에 암기할 순 없지만 일정 지식 체계, 그리고 중요한 것들은 머릿속에 반드시 들어 있어야만 해요. 의사도 사람이니까 주관적으로 환자를 파악하고 해석하는 면이 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같은 의학 체계 내에서 의학의 대변자로 의료 활동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대변자만으로 끝이 나면 안 돼요. 교과서에 나오는 대로 딱 잘라서 냉철하게 얘기하는 게 전부라면 의사가 굳이 사람일 필요가 없어요. 의사가 사람인 이유는 환자에 따라 강력하게 말할 수 있고, 다정하게 이야기를 전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응급실엔 대체로 긴장하고 불안한 사람들이 와요. 저한테 무엇이든 다 확인받고 싶어 하죠. 심지어 인바디 용지를 내미는 환자분도 있어요. 그런데 이 모든 것에 제가 다정하게 굴면요, 응급실 체계가 돌아가질 않아요. 의사는 의학을 짊어진 전달자지만 사람인 이유가 분명히 있어요. 어떻게 보면 변조된 전달자라고도 생각하고요. …아, 잠깐만요. (전화를 받으며) 엄마, 저 인터뷰 중이어서요. 조금 이따 전화 드릴게요.
아, 완전한 의사에서 순식간에 아들 남궁인으로 돌아갔네요(웃음). 문득 의사도, 작가도 아닌 남궁인이 궁금해지는데요.
어… 저요? 저는… 지나치게 소심하고 내성적인 사람이에요. 일주일에 6일 정도는 혼자 있어야 해요. 혼자 놀고, 혼자 생각하고, 혼자 쉬는 생활을 반복하며 지내고 있죠. 이제는 사람이 많은 자리에 나가도 말을 많이 하지 않으려 노력하게 되고, 남들에게 피해 주지 않으려고 최대한 조용조용 지내고 있어요.
오, 그런가요? 대학생 때 ‘핵인싸’가 되기 위해 태국에서 별안간 레게머리 하고 돌아온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활달한 성격일 거라 생각했어요. 세계 일주도 하고, 굉장히 많은 경험을 해오셨잖아요.
기본적으로는 소심하고 내성적이긴 한데, 제 생활 안에서는 안 해본 게 없어요. 가장 대범했던 경험은 역시 ‘비행기 안 타고 이집트 가기’였죠. 2005년이었고, 와이파이나 스마트폰도 없을 때거든요. ‘가보자!’ 하는 마음으로 현찰만 들고 집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속초로 가서 배를 타고 러시아에 갔어요. 블라디보스토크에 내려서 모스크바행 기차표를 샀고, 거기서부터 국경 열일곱 개를 넘어서 이집트에 갔어요. 숙박도, 교통편도 그때그때 구해야 했죠.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채 오로지 비행기를 타지 않고 이집트에 가려고 배낭을 싸서 집에서 나왔을 땐 사실 막막하기 이를 데가 없었거든요. 근데 갔다 오고 나니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었다는 걸 알았어요. 이젠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고…. 워낙 본 것도, 만난 사람도 많으니까 그 경험 하나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것저것 저 나름대로 경험해 오면서 특정 시기에만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땐 돈도, 환경도 열악했는데 지금은 경제적으로 충분하지만 절대 못 하거든요.
말도 안 돼요, 열일곱 개 국경을 넘다니. 비행기도 없이.
그렇죠(웃음)? 이 이야기도 언젠가 글로 남겨 봐야겠어요. 아, 고대 문학회 들어간 것도 제 인생을 바꾼 경험 중 하나예요. 역사상 의대생은 한 명도 없기로 유명한 동아리인데요. 문과대에 들어가서는 문학회 문 앞에 딱 섰는데 미치겠더라고요. 심장이 쿵쾅쿵쾅하고…. 용기 내서 들어가 봤는데 거기 사람들이 모여 있었어요. 지금도 친하게 지내는 시인, 소설가들이죠. 그들과 그때 학생이란 신분으로 묶여서 합평도 하고, 술도 마시면서 많은 걸 배우게 됐어요. 작가의 씨앗은 아마 거기서 틔운 것 같아요. 처음 방송에 나갈 때도 그랬죠. 저처럼 소심한 사람이, 대단할 것 없는 사람이 무슨 방송에 나가나 싶었는데 꾹 참고 했더니 되더라고요. 서울시에서 강연이 들어왔을 때도, 지금이야 강연은 자주 나가지만 그때만 해도 환장하겠더라고요. 300명 앞에서 한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라니, 근데 막상 하고 나니까 이런 경험이 모여서 제가 되어 있었어요. 결정적으로 제 몸이 거부하는 것들을 해내고 나면 분명히 달라져 있어요. 사람은 대체로 익숙한 것만 하려고 하는데, 적극적으로 달라지려는 경험들이 나를 다른 모습으로 이끌어가게 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런 경험들을 블로그에 기록하고 있죠. 기록한다는 것과 누군가 볼 수 있는 곳에 발행한다는 건 조금 다른 일이라고 생각해요.
블로그 글이 3천여 개가 다 되어가는데 막상 공개한 건 절반이 안 돼요. 1천 개 정도려나요. 완성이 안 되었거나 특정인에게 쓰는 편지 같은 건 비공개로 해놨어요. 저는 완성되지 않으면 가치가 없는 글이라고 생각해서 스스로 완성되었다고 생각한 글들만 발행하고 있거든요. 처음부터 끝까지 비문 없이 한 흐름으로 읽히면서 마지막 문장을 읽었을 때 ‘끝났네. 다 읽었다.’ 정도의 느낌이 오는 글을 완성된 글이라고 생각하는데, 최대한 많은 글을 완성 상태로 올려놓으려고 노력하죠. 남들에게 보여주어야 더 좋은 글이 나온다고 생각하니까요. 피드백을 받아서 글이 늘기도 하고, 독자를 상상하면서 써야 더 좋은 글이 나오기도 하고요.
기록은 과거를 돌아볼 수 있게 한다는 데서 가치를 찾는다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죠. 혹자는 과거를 돌아보는 건 나아갈 힘을 잃는 거라고도 하는데, 작가님은 과거에서 어떤 가치를 발견하고 있나요?
제가 쓴 과거의 글들은 대체로 형편없어 보여요. 제가 작가라는 타이틀로 쓴 글조차 형편없어 보이죠. 객관적으로 잘 썼다, 못 썼다를 떠나서 제 눈에 부족한 점이 보인다는 건 지금의 제가 그때보다 나아진 거란 의미잖아요. 또한 글에는 제 감정을 충분히 담고 있기 때문에 제 감정을 돌아보는 창구가 되기도 해요. 제가 어떤 문제로 힘들었고, 지금은 얼마나 나아졌는지 파악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는 데서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참, 2025년 서울시 명예시장이 되셨죠! 소소한 호기심인데, 어떻게 연락을 받게 되나요?
전화가 와요. “귀하는 서울시 명예시장으로 선정되셨습니다.” 하는데, 처음엔 ‘뭐 이런 전화가 다 있지?’ 싶었거든요. 근데 믿을 수밖에 없는 증거들이 있더라고요. 올해 서울시 명예시장으로 오은영 박사, 한문철 변호사, 유현준 건축가 등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과 함께하는데, 특별히 페이가 있는 건 아니지만 서울시의 다양한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게 의미 있어요. 이런저런 자리에 공식적으로 초청 받기 때문에 서울시가 추구하는 방향성이나 시민과 함께하는 일들을 살필 수 있고 정책 제안도 가능하거든요. 서너 달 활동하면서 서울시가 보이지 않는 행정 분야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명예시장이 되고 안내방송을 하나 녹음한 적이 있는데(웃음), 친구들에게 어찌나 연락이 많이 오는지 몰라요. 독감 예방 차원에서 서울시 지하철과 버스에서 나오는 안내 방송을 녹음했거든요.
아, 요조 작가님이 SNS에 올린 거 봤어요(웃음). ‘인이 목소리 들었다’고.
아, 맞아요. 친구들이 “나 크게 화낼 뻔했어.” 하고 연락을 많이 주는데, 명예시장은 친구들을 웃게 만드는 데도 좋은 자리 같아요(웃음).
명예시장을 지내면서 특별히 해보고 싶은 게 있나요?
의료계는 지금 부침이 너무 심하고 의료 붕괴도 아직 현재 진행형이어서 어떤 제안을 하기는 조금 어렵지만, 올해 임기 안에 서울시에 보탬이 되는 정책 한두 개 정도는 제안해 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 관심을 가지고 살펴 나가야겠죠.
오늘 대화를 돌아보면 의사와 작가를 이야기할 때 온도가 달랐다는 인상이 있어요. 작가에 관한 내용은 바로바로 다양한 이야기를 꺼내주시는 반면, 의사로서는 한참을 생각하면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들려주셨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두 일을 대하는 마음에 어떤 차이가 있나요?
두 직업은 달라요. 그러니까, 작가로서의 저는 끝없이 자기를 개척할 필요가 있어요. 오늘은 무슨 글을 쓸지, 어제 완성되지 않은 글은 언제까지 마감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생각해야 해요. 계속 쓸 수만은 없어서 ‘이쯤 되면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쓰자.’라는 생각도 해야 하고요. 그래서 작가란 무엇인지를 계속 고민하게 돼요. 그런 덕분에 ‘무엇을 쓰고 있습니까?’라든지 ‘작가로서 가장 기쁜 순간은 언제입니까?’ 같은 질문에도 비교적 쉽게 답할 수 있어요. 반면, 의사로서의 저는 출근한 시각부터 퇴근할 때까지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사실상 의사는 더 많은 걸 익히고 공부하는 역할은 아니에요. 의사가 되기까지 저한테 필요한 지식은 모두 익힌 상태거든요. 틈틈이 새로운 내용은 공부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익혀온 것들로도 하루를 보내는 데는 충분해요. 그러니까 더 중요한 건 더 많은 지식을 습득하기보다도 환자들의 아프다는 말을 제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번역해서 치료법을 안내해 드리고, 이를 번역하여 환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인 거죠. 그걸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반복하면서 해야 하는 건데요. 그러다 보면 한 가지 생각에 집중하게 돼요. ‘내가 아는 걸 정확하게, 또 다정하게, 놓치지 말고 안전하게 진료해야겠다.’ 그 일이 때로는 꽤 끔찍하고 긴박하지만 모든 일이 그 범주 안에서 벌어지는 거죠. 결국 작가와 의사는 발전하는 방향이나 고민 지점이 조금 달라요. 작가가 진보하고 발전해 나가는 영역이라면, 의사는 수호하고 지키는 영역이죠.
작가로, 의사로 이루고 싶은 것이 있나요?
의사로서는 동료들에게 다정하고 지식을 제대로 공유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 혼자만 생각할 게 아니라 팀워크를 생각하며 잘해 나가고 싶죠. 가끔 상처받게 행동하고 거침없이 발화하는 교수들이 있는데, 저는 마음 상하지 않게 다정히 말하는 의사가 되고 싶어요. 반면 작가로서는 ‘이 사람, 자기가 쓸 수 있는 건 진짜 끝까지 다 썼다.’라는 평을 받고 싶어요. 그러려면 더 치열하게 쓰고 발표해야겠죠. 아직은 작가로서 한참 뭔가를 써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제 역량은 정해져 있을 테니까 일단은 힘이 닿는 대로 열심히, 최대한 써보려고요. 아, 4년간 써서 모은 글이 6월 〈서울국제도서전〉에 맞춰 출간될 예정이에요. 교양서인데, 4년 동안 쓰다 보니까 이제는 저한테 감각이랄 게 사라졌어요. 미발표 글들이라 어떻게 가닿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해요. 앞서 많은 사람에게 보여줘야 더 좋은 글이 된다고 이야기했는데 누구한테도 보여주지 않은 글이다 보니 제가 판 함정에 빠진 듯한 기분으로 출간을 기다리고 있어요.
책이 나오고 나면 또 이야기를 청해봐야겠는걸요. 어느덧 마지막 질문이에요. 지금부터 돈을 벌지 않아도 될 만큼의 재력을 드릴게요. 어떻게 살아가고 싶어요?
저는 물욕도 없고, 혼자 살고 있어서 돈 쓸 일이 그리 많지도 않아요. 뭔가를 산다고 하면 책밖에 없거든요. 실은 그래서 병원에 취직한 후로 월급을 쓸 일이 별로 없었어요. 작가 수익도 있으니까요. 지금부터 돈을 안 번다고 해도 먹고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일시금으로 이보다 풍족하게 평생 먹고살 돈을 준다면… 그래도 저는 병원으로 출근하고, 퇴근하면 글을 쓸 것 같아요. 저는 동료와 같이 일하고 사람들을 도우면서 삶의 위안을 얻고 있어요. 제가 쓸모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요. 가끔은 제가 이것 때문에 살아간다는 생각도 하는데요. 아주 오랫동안 생각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요. 저는 돈이 훨씬 더 많아져도 계속 의사와 에세이 작가로서 하던 일을 해나갈 거예요.
에디터 이주연(산책방)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