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적당한 거리를 두며 사랑하기

평범함과 특별함은 반대가 아니었어

가끔 우리는 모두 회사와 연애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각 회사가 가진 기준에 따라 선택받기 위해 열렬한 구애의 과정을 거쳐 입사하고, 서로를 알아가는 설렘을 즐기는 풋풋한 신입 시절, 같이 싸우다가도 그래, 이 사람뿐이라고 다독이는 애증의 시절, 그리고 참을 수없이 무료한 권태기를 거쳐, 이별과 또 다른 만남을 준비하는 기간까지. 완벽하게 나의 소유가 될 수 없는 회사 업무에 대해서 많은 사람의 하루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는 것을 보면, 인간에게 ‘일’은 사랑만큼 중요한 가치임이 틀림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첫 직장에서는 늘 얼굴도 모르지만 매우 매력적이고 기준이 높은 남자를 짝사랑하는 기분이었다. 하고 있는 일은 너무 재미있었지만, ‘너의 모든 것을 쥐어짜내서 특별한 아이디어를 내는 것만이 가치 있다’며 일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는 문화는 내 마음을 종종 널뛰게 했다. 내가 아주 멋진 일을 한다는 착각에 빠졌을 땐 뿌듯했고, 내가 하는 일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면 하염없이 괴로웠으니까. 어떤 것이든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는 태도는 늘 자기파괴적인 짝사랑과 비슷하다. 나를 책임져주지 않을 상대에게 혼자 몸과 마음을 다 바치고, 왜 내 사랑을 되돌려주지 않냐며 하소연하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까.

나는 여전히 밍밍한 현실 속에서 일에 대한 적당한 이상화는 필요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첫 직장에서 했던 업무들이 세상의 모든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은 무게와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랑하는 연인이 나에게는 매우 특별한 사람이지만 동시에 매우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회사에 과도하게 의미 부여를 하는 시기가 오면 의지적으로 회사와 마음의 거리를 두는 시간을 가지기 시작했다.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듯이, 마음의 거리를 만들기 위해서 내가 가장 먼저 하는 것은 회사와 물리적인 거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비일상적인 공간에 가면 신체적인 거리감이 주는 자유로움이 생기니까. 외부 미팅이 잡힌 날에는 되도록 하루의 끝에 미팅을 잡고 외근 뒤 좋아하는 풍경을 보러 간다거나, 반복되는 일상의 리듬을 깰 만큼 다른 풍속의 동네로 떠난다. 시간은 30분이면 충분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비일상적인 공간은 서촌의 골목길이다. 오래된 동네의 정취가 남아있어 고요하고, 노란빛이 쏟아지며, 경복궁의 돌담길과 가로수의 잎들이 다양한 텍스처와 리듬을 만들어 낸다.

대학생 때는 서울에 잠시 들어오면 ‘가가린’이라는 조용한 서점의 동그란 창을 구경하러 갔고, 그곳이 사라진 뒤에는 오래된 여관을 개조해 만든 ‘보안 여관’의 2층에서 이 공간이 계속 유지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책을 한 권씩 꼭 사고 창문으로 돌담길을 구경했다. 그러다 골목길의 오래된 음식점에 달린 모빌이 딸랑딸랑 소리를 들으며 뒤편에 있는 건물에 드리운 빛과 그림자를 바라보면 새로운 시공간에 떠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일과 나 사이에 거리감을 만들어낼 때 나는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었고, 이 관계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결심이 생기곤 했다. 어떤 관계든 새로운 이야기와 리듬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이 갈팡질팡하기 마련인데, 이 골목길에 오면 흔들리던 마음이 멈추고 명료하게 정리가 된다. 지금도 마음이 갈팡질팡하는 오후가 오면, 이 골목길로 잠시 떠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평범하지만 특별한 사람인 것처럼, 이제는 나의 일도 평범하지만, 또 매우 특별하다는 것을 안다. 어쩌면 평범한 것과 특별한 것은 사실 반대의 개념이 아니라, 늘 함께 존재하는 개념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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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의 영수증

Youtube의 마케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상한 고백이지만 노는 것만큼이나 일을 좋아합니다. 그만큼 생활의 밸런스를 중요하게 생각해, 오후 네 시가 되면 남은 하루를 위해 재충전하는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저의 영수증이 하루의 리듬을 바꾸고 싶은 직장인에게 작은 가이드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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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보경 크리에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