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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나 파라보스키
일과 여성,
시간이 빚은 성숙한 나이 듦
엘레나 파라보스키
은퇴의 나이에도 주위에 영감을 주며 커리어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다섯 개국에 위치한 여섯 곳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엘레나 파라보스키는 모두가 닮고 싶어 하는 세련된 스타일링 감각과 겸손한 애티튜드를 가진 존경받는 프랑스 여성 기업가다.
오래된 건물의
주인
‘작가’라는 타이틀은 꼭 글 쓰는 이에게만 주어져야 할까? 어쩌면 우리는 시대적 배경 위에 각자의 삶이라는 거대한 무대를 꾸려나가야 하는 ‘희극 작가’라는 직업을 부여받고 태어나는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로 인생의 후반기에 다다른 인물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늘 영화나 연극 무대를 훔쳐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훌륭한 영화를 보고 나면 여운이 오래 남는 것처럼 인생을 잘 꾸려온 인물과 나눈 몇 마디 대화 속에는 울림이 있다. 엘레나 파라보스키와의 첫 만남이 그랬다. 뜨겁던 6월의 마라케시Marrakech, 프랑스의 유명한 건축가 스튜디오 케이오Studio KO가 시공한 레스토랑 그랑 카페 드 라 포스트Le Grand Café de la Poste에서 식사하는데 누군가 다가와 옆자리에 앉았다.
삭발에 가까운 헤어스타일에 흰색 면 티셔츠, 단정한 블랙 시가렛 팬츠, 적당한 굽의 검정 샌들을 매치한, 60대로 보이는 프랑스 여성. 엘레나는 마라케시 번화가에서 혼자만 다른 시대를 거쳐온 것 같은 눈에 띄는 오래된 건물의 주인이다. 1930년대 프랑스 우정국 건물이던 이곳은 주변의 재개발에도 흔들리지 않고 예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레스토랑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고, 피에르 베르제Pierre Berger를 비롯한 많은 명사들이 마라케시에서 가장 즐겨 찾는 장소가 되었다. 이런 특별한 레스토랑에 얽힌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문득 그녀의 인생이 궁금해졌다.
Interview
기업가 엘레나 파라보스키
“지금은 전처럼 풀타임으로 일하지 않고 여유롭게 시간을 쓰는 편이죠. 지금 내 나이쯤이면 조금 여유를 가져도 괜찮지 않나요? 좋아하는 일을 최선을 다해 오래 해왔으니 그에 대한 보상이죠.”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계세요. 그것도 다섯 개 도시(파리, 마라케시, 이비사, 두바이, 내년에 문을 여는 런던)에 퍼져 있는 여섯 곳의 레스토랑을요.
지금은 체계가 잡혀서 비교적 여유롭게 일하는 편이죠. 40~50대에는 정말 바쁘게 일했어요. 아이 둘을 키웠는데 집에서 제대로 챙기지 못할 정도였죠. 그래서 특히 둘째 아이에게는 지금까지 미안한 마음이 늘 있어요. 남편은 동업자예요. 우리는 함께 일하는데 성격은 정반대예요. 그는 대범하고 성격이 급한데, 저는 차분하고 잘 흥분하지 않는 편이죠. 우리 둘은 그렇게 오래 함께하고 있어요. 바쁜 맞벌이 부모로 살았지만 아이들에게는 늘 바른 먹거리 습관을 가지도록 가르치려 했지요. 건강한 식생활이 자리 잡도록 이끌어주는 것, 그 부분을 우선으로 생각했어요.
저 역시 아이를 잘 챙기지 못하는 일하는 엄마인데 죄책감을 들게 하시네요.
집에서 늘 내 손으로 밥을 차려주지 못한다고 아이가 나쁜 식습관을 가질 거라는 오해는 하지 말아요. 우리 식당의 음식은 훌륭하고 건강한 식재료로 만들어요. 그걸 인정하는 미각을 가진 이라면 메뉴판의 가격이 높다고 생각하지 않겠죠. 냉동식품이 해동되어 테이블에 오르는 식당의 음식과 신선한 재료가 기본이 된 우리 음식의 차이점을 모르는 사람은 유년 시절 식경험이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아이들은 다행히 그 부분에 있어선 잘 자랐고 건강한 미각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4살인 손녀에게 같은 교육을 시키고 있죠. 방학마다 마라케시 집으로 와 텃밭에서 야채와 과일을 함께 따서 요리해 먹는 식으로요.
파리에서 태어나 자라셨어요. 파리지엔느라서 비지니스를 하는 데 긍정적인 점이 있을까요?
그렇죠. 저는 진정한 파리지엔느라고 생각해요. 프랑스적인 것과 파리지엔느적인 것은 아주 다르죠. 어떤 스타일이라고 정의 내릴 수 없지만 내 DNA에 자연스럽게 담겨 있어요. 예를 하나 들면, 사람들이 내 레스토랑에선 집에 온 듯한 편안함을 느끼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거예요. 비지니스를 하러 오는 불편한 장소가 아닌 우리 집 거실이나 주방에서 친구들을 불러 한잔하는 그런 분위기 있잖아요.
맞아요. 지금까지 엘레나 씨의 식당 네 곳을 방문했는데 인테리어와 메뉴는 모두 달랐지만 손님을 가족처럼 대하는 분위기를 느꼈어요. 너무 과하거나 덜하지 않은 기분 좋은 멘트와 서비스가 기억에 남아요.
그걸 느꼈다고 해주니 기뻐요.
레스토랑마다 틀어주는 음악도 좋았어요. 전문가가 정해주는 음악인가요?
아니요. 음악은 남편이 담당해요. 마라케시의 레스토랑은 재즈와 브라질리안 뮤직 위주인데 남편인 피에르가 모두 선곡했어요.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음악에 관해서는 피에르가 책임지고 있죠. 음악은 우리 사업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음악과 디자인이 하나의 패키지처럼 어우러져서 레스토랑 분위기가 정해지거든요.
레스토랑 인테리어도 훌륭해요. 디자인 디렉션은 누가 하시나요?
남편과 제가 함께 해요. 늘 함께 결정해요. 건물의 생김새와 위치를 고려해 콘셉트와 스타일을 정하죠. 그다음 제 아이디어를 제대로 실현해줄 수 있는 건축가와 디자이너에게 의뢰해요. 스튜디오 케이오Studio KO와는 여러 프로젝트를 함께 했어요. 마라케시 레스토랑과 파리의 유젠유젠Eugène Eugène, 그 외에도 파리에 제가 투자한 다른 식당들의 인테리어도 그들이 담당했죠. 지금은 마라케시 입생로랑 뮤지엄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졌지만, 오래전부터 저는 그들의 재능을 알았고, 많은 프로젝트를 함께 했어요.
톰 딕슨 소품들이 눈에 많이 띄었어요.
톰 딕슨 제품을 좋아해요. 아니 좋아했어요. 최근에는 카피들이 너무 많이 나왔거든요(웃음). 하지만 그는 아주 훌륭한 디자이너예요. 특히 조명 디자인에 아주 능하죠. 루벤Ruben 조명도 좋아해요. 여기 유젠유젠엔 루벤 조명이 쓰였죠.
레스토랑 건물도 인상적이에요. 그랑 카페 드 라 포스트는 1930년대 건물이고, (인터뷰가 진행된) 여기 유젠유젠도 과거 온실이던 곳을 식당으로 개조한 건가요?
원래 프랑스에 레스토랑을 오픈하려는 계획은 없었어요. 그런데 지인의 소개로 이 장소를 방문했는데,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죠. 보자마자 사랑에 빠져버린 거예요. 파리 외곽에 버려진 오래된 온실. 어떤 스타일의 레스토랑이 이 장소에 어울릴지 아이디어가 바로 떠올랐고, 칼과 올리비에(Studio KO를 운영하는 두 디자이너)를 불러 보여줬어요. 그들도 보자마자 온실을 레스토랑으로 바꾸는 아이디어에 반했죠.
레스토랑 건물도 인상적이에요. 그랑 카페 드 라 포스트는 1930년대 건물이고, (인터뷰가 진행된) 여기 유젠유젠도 과거 온실이던 곳을 식당으로 개조한 건가요?
원래 프랑스에 레스토랑을 오픈하려는 계획은 없었어요. 그런데 지인의 소개로 이 장소를 방문했는데,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죠. 보자마자 사랑에 빠져버린 거예요. 파리 외곽에 버려진 오래된 온실. 어떤 스타일의 레스토랑이 이 장소에 어울릴지 아이디어가 바로 떠올랐고, 칼과 올리비에(Studio KO를 운영하는 두 디자이너)를 불러 보여줬어요. 그들도 보자마자 온실을 레스토랑으로 바꾸는 아이디어에 반했죠.
그랑 카페 드 라 포스트는 모로코가 프랑스 식민지이던 1930년대에 지어진 프랑스 우정국이었어요. 지난 6월 제가 방문했을 때 주변이 고층빌딩 숲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죠. 고층빌딩 숲 사이 이 건물만 그 땅의 역사와 스토리를 간직하고 있는 듯 보였어요.
처음 이 건물을 발견한 건 우리 부부가 마라케시에 살 집을 알아보러 다니던 2001년이에요. 자주 지나는 길에 위치한 이 건물을 보고 갑자기 남편이 마라케시에서 비지니스를 시작하기에 좋은 건물로 보이지 않냐는 질문을 했죠. 그래서 건물의 실소유주를 찾아 매입하려고 했는데 여러 문제가 있었죠. 두 가족이 공동 명의로 되어 있었는데, 정직하지 않은 한 소유주 때문에 법정까지 가는 문제가 발생했고, 해결하는 데 레스토랑 오픈하고도 2년이라는 시간이 더 걸렸어요. 결국 돈이 매우 많이 든 셈이죠. 건물 리뉴얼 공사도 2년이나 걸렸고요. 완전 새로운 리뉴얼이 아닌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는 리뉴얼은 쉬운 일이 아니에요. 마라케시에 있는 다른 레스토랑 보진Bo Zin은 그랑 카페 드 라 포스트 이후에 시작한 프로젝트인데 훨씬 일찍 오픈했으니, 여기에 들인 공과 시간이 얼마나 유별났는지 알 수 있겠죠?
직접 스타일링한 여섯 곳 레스토랑 중 가장 애착이 가는 한 곳을 고르라면 어디일까요?
그랑 카페 드 라 포스트.
그 이유는요?
그 장소에 제 영혼을 다 바친 것 같아요. 정말 힘들게 일했죠. 단순히 건물을 리뉴얼하는 것 외에 오픈 직전까지 마지막 인테리어 세팅도 하나하나 제 손으로 다 했어요. 그리고 이 건물에 새로운 인생을 부여했다는 점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한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 여길 부수지 않고 보존해 재탄생시켜주어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거든요. 건물이 이렇게 아름다운 걸 전에는 본 적이 없었다는 말과 함께요. 제가 모로코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를 할 수 있던 것 같아요.
레스토랑이 자리한 도시마다 정기적으로 이동하는 노마드적 삶을 살고 계신 것 같아요.
‘모던 노마드’면서 ‘럭셔리한 노마드’겠죠(웃음). 이런 삶이 좋아요. 누가 어느 도시를 가장 선호하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파리’라고 대답하죠. 하지만 마라케시는 나의 두 번째 고향 같은 곳이고, 열 네살에 런던에 처음 갔는데, 그때부터 런던도 편안함을 안겨주는 도시예요. 딸이 영국인과 결혼해 런던에서 사는데 지금 공사 중인 우리의 마지막 레스토랑 라 칸틴La Cantine이 2019년에 문을 열면 2~3년은 런던에 가서 살 계획이 있어요.
마라케시에서 두 번 함께 식사했고, 지금 세 번째 하는 식사인데 한 번도 핸드폰을 확인한다거나 조급한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 그런 여유는 어떻게 가지시는 걸까요?
글쎄요. 그냥 이게 제 모습 아닐까요? 어떤 식이든 따지거나 계산하면서 지내는 건 좋아하지 않아요. 그리고 반대 성향을 가진 남편 때문에 차분함을 유지해야 하기도 해요(웃음). 그는 거침없는 ‘황소’ 같은 사람이에요. 저도 물론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조절manage할 수 있죠.
부부가 함께 일하는 걸 장점으로 여기시나요?
늘 그렇게 일과 삶 전부를 함께 맞춰 지내왔어요. 그래서 지금 둘이 아닌 혼자서 하게 된다면 어떨지는 상상이 되지 않네요. 무엇이든 두 사람이 함께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각자 스타일과 원하는 방식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상대방의 조언이 필요한 상황에 놓이면 둘은 하나보다 훨씬 장점이죠.
두 분이 싸우기도 하시나요?
당연하죠. 그게 정상이에요. 남자와 여자니까요. 여자들은 좀더 멀리 보는 안목을 가졌고, 남자들은 바로 앞에 벌어진 상황만 보잖아요. 주로 그런 이유가 싸움의 원인이겠죠. 특히 식당 운영에 있어서 전 고객의 눈으로 서비스를 비롯한 사소한 부분까지 보완하려고 하는데, 피에르는 눈앞에 있는 상황만 보고 늘 긍정적으로만 생각해요. 그게 제 눈에는 단점이죠. 레스토랑이 발전하려면 부정적인 시각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야 발전하고 좋은 ‘이미지’를 만들 수 있어요. 그리고 그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혹시 은퇴를 생각해보신 적 있는지 궁금해요.
아뇨. 아직 일하는 게 좋아요. 지금은 전처럼 풀타임으로 일하지 않고 여유롭게 시간을 쓰는 편이죠. 지금 내 나이쯤이면 조금 여유를 가져도 괜찮지 않나요? 좋아하는 일을 최선을 다해 오래 해왔으니 그에 대한 보상이죠. 단 한 번도 아침에 인상을 쓰면서 일어난 적이 없어요. 절대로요. 늦잠을 자지도 않아요. 지금도 매일 일곱 시에 일어나 글을 읽고, 아침 식사를 하고, 여유롭게 시간을 써요. 아침에 꼭 레스토랑으로 출근할 필요가 없거든요.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에 들러 모든 게 잘 돌아가고 있는지 확인하는데 30분 정도면 충분히 파악이 되요. 지적을 하고 오더를 내리는 데는 1초면 가능할 거예요. 그리고 퇴근해요(웃음). 물론 과거에는 이렇게 일할 수 없었어요. 날마다 아침 열 시에 출근하고 밤늦게 퇴근했죠. 지금은 대신 일해주는 매니저들이 있으니 가능해진 거죠.
마지막 질문이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해주세요.
당연히 가족이죠My family. Yes, of course.
에디터 양윤정
포토그래퍼 Pascal Mont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