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만난 두 사람

Two People I Met in India

비가 오는 인도에서는 늘 다른 곳으로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 든다. 그곳이 바라나시Varanasi라면 더욱 그렇다. 바라나시에는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이많은 편이다. 그래서 한국인을 봐도 반가워하지 않고, 마주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서로를 스쳐 지나간다. 그런 느낌이 싫어서였는지 아니면 혼자인 외로움 때문이었는지, 나는 습하고 더러운 바라나시를 빠져나와 인도의 작은 마을 오르차Orchha로 도망치듯 떠났다.

오르차는 인도의 중부 도시 잔시Jhansi에서 오토릭샤를 타고 20~30분을 달려 들어가야 하는 작고 한적한 마을이다. 숨어있는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있는 오르차는 그 이름에 걸맞게 단번에 찾아가기 어려웠지만, 도착하자 평화로운 풍광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다른 도시에서 겪은 번잡한 마음을 지우고 여유를 되찾을 수 있는 도시였다. 사라져 간 옛 왕국의 흔적처럼 점차 관광객들의 발길이 뜸해지고 있는 그곳에서 ‘가네쉬’를 만났다. 당시 마을에 한국 사람이 두 명 있었는데, 같이 있던 한국인 K가 시장 근처에서 한국어를 잘하는 인도인을 만났다며, 마침 그 사람이 자기와 마을에 가보지 않겠느냐고 권유해 같이 가기로 했단다.

무료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나는 흔쾌히 동행하기로 했다. 혼자 여행하느라 인도인에 대한 의심이 나날이 커지고 있던 나는 첫 만남에서 가네쉬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봤다. ‘저 남자 뭐지? 사기꾼인가?’ 하지만 의심도 잠시, 사기당할 돈도 없던 나는 어느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고 그의 뒤를 따랐다. 오르차에서 10여 분을 걸어가자 가네쉬가 살고 있는 마을인 간즈 마을이 나왔다. 아직 남아있는 인도의 카스트 제도 때문에 오르차 사람들에게도 무시당하는 불가촉천민들이 모여 사는 곳. 동화 《어린 왕자》에 나온 바오밥나무를 배경으로 살아가지만 동화적 환상과는 거리가 먼 풍경 앞에서 나는 아이러니를 느꼈다. 가네쉬는 작은 마을의 구석구석을 우리에게 소개해주었다. 바오밥나무 앞에 서서 나무에 대한 전설을 이야기해주었다. 나무가 신성하게 여겨졌을 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기도를 하고 소원을 빌면 나무는 돈이며 음식을 사람들에게 주었다고 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마음도 많이 바뀌자, 나무는 더 이상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아직 때 묻지 않고 순박하다고 생각하던 인도였지만 그들 역시 자신들의 삶이 각박하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듯 보였다.

가네쉬가 한국 사람과 어떻게 처음 인연을 맺었는지는 모르겠다. 그가 꺼낸 방명록은 2012년쯤에서 멈춰있었다. 낡은 공책과 오래된 사진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진 그 사이 가네쉬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한 가정을 꾸리는 아버지가 되어있었다. 예전처럼 인도를 찾는 한국인들도 줄었고, 특히 오르차처럼 작은 마을까지 거쳐 갈 사람들은 더더욱 찾기 힘들었다. 아주 오랜만에 오르차에 한국인이 왔다는 소문을 듣고 일부러 시장 어귀에까지 찾아와 우리를 만났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불가촉천민이기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없는 간즈 마을 아이들. 그 아이들을 위해 가네쉬는 때론 의심의 눈초리를 받으면서도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줄 여행자들을 찾아다녔다고 했다. 낮에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이면 오르차 고성의 레스토랑에서 여장을 하고 춤을 춘다고 했다.

매일 춤을 춰서 받는 돈이라곤 고작 천 루피. 한국 돈으로 채 4만 원이 안 되는 돈이었지만 그는 계속 춤을 췄다. 가네쉬는 나와 K에게 자신이 춤을 추는모습을 보러 오라고 레스토랑으로 우리를 초대해주었다. 배낭여행객이 가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가격의 레스토랑이었지만, 한국에서라면 한 끼 정도의 밥값이었기에 우리는 흔쾌히 오르차 성으로 향했다. 아름답게 치장한 가네쉬가 레스토랑 안쪽 작은 공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사리 사이로 보이는 그 눈빛과 마주할 때마다 마음이 괜히 뜨끔뜨끔해졌다. 오르차 제일의 레스토랑이었다지만 그날은 우리를 포함해 단 두 테이블에만 손님이 있었고 사람들이 채워지지 않은 넓은 공간에서 춤을 출 때마다 짤랑짤랑 울리는 방울 소리와 공기 사이로 흐르는 그 적막감을 견디기가 민망스러웠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누구도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을 그런 몸짓과 열정으로 가득한 눈빛을 사리 사이로 마주한 순간 나는 방금까지 민망하다고 생각한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또 마음 한쪽엔 가네쉬를 향한 미안함이 자리 잡았다. 레스토랑에서 우리가 먹은 식사의 가격이 가네쉬의 한 달 월급과 맞먹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날 본 가네쉬는 그곳에서 매일 일을 할 수 있고 월급을 받아 가족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가네쉬의 꿈은 간즈 마을에 호스텔과 레스토랑을 만들고, 레스토랑의 자신만의 작은 무대에서 매일 춤을 추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가 보여준 터엔 아직은 초라한 집의 흔적들이 있었는데, 몇 년간 그곳에 돌을 쌓고 시멘트를 발라 집의 틀을 만들며 그렇게 한 발 한 발 자신의 꿈에 다가가고 있다고 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가네쉬는 꼭 그 일을 해내고 싶다고, 그리고 그 꿈을 위해 매일 노을이 지는 시간이면 언덕에 올라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기도한다고 했다.

나는 아직도 노을을 등지고 저 먼 곳의 들녘을 바라보던 가네쉬의 작고 쓸쓸한 뒷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오르차를 떠나 푸쉬카르Pushkar로 향했다. 육식주의자인 나에게는 더없이 괴로운 순수 채식 도시 푸쉬카르. 그곳에서 나는 고기를 대체할 맛있는 음식과 매일 마시던 라씨를 찾는 데 혈안이 되어있었다. 며칠을 돌아다닌 끝에 그곳에서 만난 한국 친구 E가 브라만 사원 앞쪽 아주 맛있는 라씨 가게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길을 따라 10여 분을 걸어가니 작은 리어카에 라씨를 팔고 있는 ‘깔루람’을 만날 수 있었다. 다른 레스토랑이나 노점에서도 라씨를 팔았지만 이곳만큼 맛있는 라씨를 맛볼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깔루람은 그날 만들어 온 라씨를 다 팔면 미련 없이 집으로 돌아갔는데, 혹여나 라씨를 먹지 못할까 조마조마한 마음에 그가 나올 시간에 맞춰 매일 출석 도장을 찍듯 그곳으로 향했다. 푸쉬카르는 아주 작은 동네여서 1시간 정도만 돌아다녀도 아는 얼굴을 만날 수 있었고, 그 라씨 가게 앞에만 가면 약속이나 한듯 푸쉬카르에서 만난 한국 친구들을 모두 볼 수 있었다.

푸쉬카르에 몇 주간 머무르고 있던 E가 라씨 가게를 제집 드나들 듯 한 덕분에 우리는 빠르게 깔루람과 친해질 수 있었다. 한국에선 이 맛 좋은 라씨를 먹을 수 없다는 아쉬움을 토로하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거 한국에 가서 팔아보고 싶어. 어떻게 만드는지 알려줄 수 있어?” 하고 얘기할 때마다 깔루람은 자기의 라씨가 왜 맛있는지, 어떻게 만드는지, 보관하는 통은 어떤 걸 써야 하는지 그의 영업 비밀을 모두 이야기해주었고, 결국에는 그의 집에 초대받아 라씨 만드는 법을 전수하기에 이르렀다. 깔루람의 오토바이를 타고 5분여를 달려 작고 소박한 그의 집에 다다랐다.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그와 그의 아내는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하는 중이었다. 라씨 만드는 일을 배우러 간 건 우리였는데 저녁까지 준비한 그들에게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작은 부엌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양파를 다듬고 오이를 썰며 함께 저녁을 준비했다. 깔루람은 라씨의 대가답게 음식 솜씨도 남달라서, 우리는 레스토랑에서 먹은 음식보다 훨씬 더 풍부한 맛을 지닌 커리를 맛볼 수 있었다. 4평 남짓한 아주 작은 방의 바닥에 모여 앉아 좋은 사람들과 함께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던 인도의 전통 가정식을 먹는 호사를 누리다니 그날 밤 일이 꿈만 같았다.

깔루람은 장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매일 밤 라씨를 만든다고 했다. 항상 유쾌하고 호탕한 깔루람이었지만 라씨를 만드는 그 시간만큼은 아주 진지한 눈빛이었다. 어둑한 집 앞 공터에서의 그 시간들이 켜켜이 쌓이고 쌓여 그의 자부심이 된 듯했다. 깔루람이 라씨 만드는 법을 전수할 때 나는 그저 마당의 평상에 누워 그날의 기분을 만끽하는 데 한눈을 팔고 있었다. 그렇게 해야만 오늘의 기억을 더욱 아름답게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내향적인 나는 다른 사람에게 쉽사리 다가가거나 말을 거는 것이 어색했다. 게다가 현지인과 친해지고 그의 집에서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여행기 속 이야기였다.

푸쉬카르를 떠나는 날 마지막으로 그의 가게에 들렀을 때, 손님들에게 라씨를 따라 주면서도 끝까지 나를 쳐다보던 그의 눈빛이 아직도 생생하다. 평소엔 볼 수 없던 아쉬움이 가득 담긴 표정이었다. 마치 마지막 만남임을 예견하듯 말이다. 하지만 언젠가 나는 내 친구를 만나러 다시 그곳에 찾아갈 것이다. 그는 언제나 늘 그 자리에 있을 테니까.

 

내게 찾아온 우연한 행운이 두 사람을 만나게 했다. 나는 내가 모르던 행복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행복이 무엇인지, 그리고 행복을 느끼는 방법이 무엇인지, 이제는 안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하루하루를 감사히 여기며 살아가는 것. 삶의 변화들을 충만하게 즐길 줄 아는 그 마음이면 오늘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아직도 잘 모르는 것투성이지만, 그렇기에 매일 행복에 대해 고민하며 살아가고 있다.

채식의 도시 푸쉬카르

Pushka

푸쉬카르는 인도 북서부 라자스탄 주에 위치한 조그만 도시로 호수와 사막을 함께 볼 수 있다. 델리나 바라나시의 지저분하고 번잡한 분위기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첫손에 꼽을 만한 도시다. 특히 푸쉬카르는 달걀을 포함한 육식을 팔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다이어트를 생각하고 이곳을 여행하지만 글쎄, 고기보다 맛있는 채식 요리 앞에서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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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주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