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음과 연결의 식탁

이지은 — 에디션덴마크 대표·브랜드 디렉터

원하는 만큼 티 필터에 찻잎을 담고, 뜨거운 물을 붓고, 찻잎에서 특유의 색깔이 뭉근하게 퍼지는 걸 바라보다가 일정 시간이 지난 뒤 버튼을 눌러 찻물을 내린다. 그걸로 족하다. 한동안 ‘차’란 경건하고 가지런한 태도로 다기를 갖추고 우려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생각을 말끔하게 지워준 건 ‘에디션덴마크’였다. 분주한 아침에도, 잠이 쏟아지는 점심에도, 마음을 정돈하고 싶은 한밤에도 간편하게 차를 우릴 수 있다. 내 마음껏 찻잎을 넣고, 내 마음대로 온도를 조절해서, 내가 좋아하는 아무 잔에 따라 이토록 평범하고 일상적이게. 이 간단한 생활을 함께하고픈 사람들 얼굴을 떠올리다 보면 가끔 초대장을 쓰고 싶어지기도 한다. “우리 집에 차 마시러 올래?”

중요한 건 차를 얼마나 정확하게 우리느냐가 아니라
소중한 사람과 차를 나눠 마시는 시간이에요.

순간을 살 수 있는 마음

(내어주신 차를 마시며) 이 차 정말 맛있네요. ‘씨브리즈SEA BREEZE’, “여름 바다에 불어오는 산들바람”이란 소개가 귀여워요.

오늘 날씨가 좋아서 아이스가 어울리는 차로 준비해 봤어요. ‘A.C. 퍼치스 티핸들A.C. Perch’s Thehandel’의 씨브리즈 티인데요. 그린루이보스를 베이스로 비타민 나무 열매로 불리는 씨벅톤과 과일, 꽃잎을 블렌딩한 산뜻한 차예요. 오래 우려도 쓰지 않고 카페인도 없어서 부담 없이 마시기에 좋아요.

 

청량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에요(웃음). 에디션덴마크가 어느덧 8년 차가 되었어요. 사람이라면 초등학교에 입학할 시기네요.

시간 참 빠르죠. 지난 8년간 정말 많은 일이 있었어요. 에디션덴마크는 단순함, 최상의 품질, 지속 가능성 세 가지 가치를 지닌 덴마크 제품을 한국에 소개하고 있어요. 대표적으로 덴마크 왕실 차 브랜드인 A.C. 퍼치스 티핸들의 프리미엄 티와 덴마크 양봉 장인이 만든 ‘대니시비키퍼스Danish Beekeepers’의 스페셜티 허니, 덴마크 로스터리 ‘커피콜렉티브Coffee Collective’의 스페셜티 커피 등이 있죠. 또한 에디션덴마크 테이블웨어, 커피 브랜드도 전개하고 있고요. 좋은 제품을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에 앞서 식탁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식사하며 여유를 즐기는 덴마크의 일상적 가치를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외부에서는 저희를 천천히 나아가는 브랜드라고 인식하는 것 같지만, 내부적으로는 좌충우돌도 많았죠. 초반에는 제로부터 브랜드를 만들어 가느라 정신없이 보냈고, 파트너가 세상을 떠나고 홀로 운영하게 된 4년 차에는 방황 아닌 방황을 하기도 했어요. 6년 차에는 브랜드를 다음 단계로 이끌어 가기 위해 전략적 투자를 유치하면서 구조적인 변화도 있었고요. 과도기도 있었지만, 그런 시기를 지나 이제야 좀 방향을 잡고 평온해진 시기예요. 안정기에 들어섰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젠 제대로 뭔가 해볼 수 있겠다.’ 싶어요.

 

어떤 점에서 특히 안정감을 느끼셨어요?

사실 브랜드에 완성된 안정기가 있을 순 없기에 ‘비교적 안정기’라고 생각하는데요. 오랫동안 함께해 온 팀원들이 자리를 잡았고, 새로 합류한 팀원들도 오래 함께한 것처럼 무탈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언제까지 이 평화가 유지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제야 좀 뭔가 제대로 나아가는 듯한 느낌이에요. 올해는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마인드로 자그마한 것부터 정비하려고 해요. 마음을 다잡고자 미뤄둔 사무실 리모델링 공사에도 돌입했죠. 깨끗한 사무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싶어 부랴부랴 마무리 작업을 하고 오늘도 아침부터 청소하느라 바빴어요(웃음). 이것저것 고민하다 보면 영원히 리모델링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 데스크나 벤치 같은 맞춤 가구를 빨리 제작해 달라고 채근하기도 했죠. 원래 사무실은 한쪽을 물류 창고처럼 쓰고 미팅실도 따로 없는 공간이었는데요. 정리하고 나니까 한결 깔끔해져서 기분이 좋아요. 비록 지금은 어디에 뭐가 있는지 저도 잘 모르는 상태지만요(웃음).

 

공간 구조가 독특한데, 곡선에 맞춰 제작된 벤치가 참 예뻐요. 보라 색상도 눈에 띄고요. 에디션덴마크에 이어 지은 씨 소개도 들려주실래요?

제 소개를 하려니까 어렵네요(웃음). 조금만 생각해 볼게요. 음, 저는 보기보다 고집이 있는 편이어서 제가 추구하는 바나 가고 싶은 방향이 확고한 사람이에요. 누가 뭐라고 해도 하고 싶은 쪽으로 나아가는 성격인데, 또 제가 하고자 하는 영역 안에선 유동적인 사람이기도 하죠. 또, 어느 한 가지에 꽂히면 그것만 파고드는 성격이 강해요. 그러다가도 금세 다른 쪽으로 빠지기도 하고요. 사실 에디션덴마크가 나아가는 여정과 제 개인의 여정이 무척 닮았어요.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근데 어디로 가든 집요하게 파고들고(웃음). 브랜드에 관한 것이든, 그 밖의 것이든 호기심이 많아서 궁금한 게 있으면 일단 들여다보고 뭐든 저질러보는 편이에요.

 

최근엔 어떤 것에 호기심을 가졌어요?

요즘 제 주제가 ‘잘 살고 싶다.’예요. 이전까지는 일에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를 쏟았거든요. 그러다 보니 뿌듯한 반면 힘든 시기도 있었죠. 에너지를 일에 다 쏟아붓고 나면 집에 돌아와선 완전히 소진돼 있거든요. 겨우 회복해서 다시 일하러 가고…. 그런 저를 되돌아보면서 이런 생활이 지속 가능하진 않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최근엔 건강에 집중해서 웰니스 관련된 것들을 많이 찾아다녀요. 식단도 해보고, 당류 안 먹기에 도전하고. 어떻게 하면 밸런스를 잘 찾을 수 있을까 고민 중이죠. 저를 너무 소진하고 나면 다음 날이 기다려지질 않더라고요. 

 

“덴마크의 여유를 당신의 식탁에”라는 슬로건이 필요한 때네요. 지은 씨는 덴마크에서 지내면서 ‘덴마크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행복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셨다고요. 

그 당시에는 충격을 받거나 감탄하기 바빠 그들의 모습을 제 언어로 정리할 생각도 못 했는데요, 지금 돌아보면 ‘순간을 살 수 있는 마음’을 가졌다는 게 제게 충격을 주었던 것 같아요. 행복의 반대 상황은 무언가가 걱정되고,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 불안한 상태일 거예요. 그런데 덴마크 사람들은 그런 걱정에서 한 발 물러나 ‘지금 이 순간’에 머물 여유를 가지고 있더라고요. 미래를 향한 막연한 두려움이 덜하기 때문에 가능한 태도라고 생각해요.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기에 지금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지낼 수 있는 것 같더라고요. 아무래도 사회 복지가 탄탄한 덕이 크겠지만, 어쨌든 순간에 머무는 마음가짐이 덴마크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싶었어요.  

그들의 행복을 목도하고 나서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저도 순간을 보려고 노력하게 됐어요. 덴마크에 살 때는 주변이 모두 그러하니 저도 절로 그렇게 되곤 했는데 아무래도 사회적인 인간인지라 한국에선 주변 상황에 따라 흔들리고 불안해지곤 해요. 저도 모르는 새 세상에 물들어 있기도 하고요. ‘이거 안 하면 뒤처지는 거 아닐까?’ ‘나도 투자를 해봐야 하나?’ 그런 불안감에 사로잡힐 때도 있지만 막무가내로 흔들리기보단 중심을 잡는 데 집중하려고 해요. 제가 원하는 삶이 어떤 모습인지 그려보면서 나만의 기준을 만드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죠. 아직 그 기준은 세워가는 중이지만요.

 

덴마크인 선생님, 학생과 함께하는 디자인 서머스쿨을 이수하면서 선생님께 “너를 좀 더 사랑하게 되면 좋겠어.”라는 이야기를 듣고 덴마크행을 결심하셨다고요. 그 말이 마음에 와닿은 이유가 있었나요?

디자인 서머스쿨 이전까진 덴마크라는 나라의 존재만 알 뿐, 어떤 곳인지에 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어요. 그런데 디자인 서머스쿨에서 받은 교육이 제가 그간 받아온 주입식 교육이랑은 너무 다른 거예요. 제 가치관과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해 있어서 충격적인 동시에 흥미로웠어요. 덴마크로 향한 건 호기심 때문이었어요. ‘어떻게 이런 사고를 할 수 있지? 이런 사람들이 사는 나라는 어떨까?’라는 생각이 따라붙었거든요. 생각해 보면 호기심은 학창 시절부터 저를 움직이는 동력이었네요.

 

특히 어떤 점이 흥미로웠어요?

우리는 곧잘 남들과 비교하거나 비교당하곤 해요.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옛날엔 전교생 등수가 공개되기도 하고 누가 몇 점을 받았는지가 굉장히 중요했잖아요. 보호자에게 칭찬받으려면 더 잘해야 하고, 더 멋진 학생이 되어야 하고, 모범적이지 않으면 안 되고…. 저도 그런 사고로 지내왔기 때문에 한 번도 ‘나 정도면 충분하지.’라든가 ‘난 너무 잘해!’ 같은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항상 공부도 더 잘해야 하고, 더 예뻐져야 하고, 더 우등생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갇혀 있었고요. 새해 목표는 매번 ‘난 이런 걸 못하니까 올해는 이걸 좀 잘해보자.’ 같은 것들이었죠. 근데 디자인 서머스쿨에선 ‘더 잘한다’는 가치가 전혀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선생님이 칠판에 글씨를 쓰다가 스펠링이 틀려도 개의치 않아요. 스펠링 한 자 한 자보다는 소통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마인드인 거죠. 성적으로 비교하기보단 함께 의견을 내고 모두의 아이디어로 뭔가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런 마인드가 늘 신기했는데, 한번은 ‘Kill Your Darling’이라는 걸 해보자고 하시더라고요. 수업에서 공들여 만든 자기 작품을 떨어뜨려서 부수는 과정이었는데 엄청나게 충격적이었어요. 애써서 만든 결과물을 눈앞에서 없애라니! 제가 그동안 받아온 수업과는 완전히 달랐어요.

 

오, 신선한 충격인데요. 덴마크 사람들은 대체로 ‘이런’ 분위기와 마인드인가요?

일반화할 순 없지만 제가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그랬어요. 자기 자신에 대한 중심, 확신이 있어서 자존감이 높았죠.

 

지은 씨도 영향을 받았나요?

엄청 받았죠. 제가 덴마크에 간 게 만 20세니까 자아가 갓 형성되는 시기였어요. 그러다 보니 영향을 더욱 크게 받게 됐는데, 에디션덴마크를 함께 시작한 요핸 풀스비야와 스무 살 때부터 긴 시간을 함께 생활했거든요. 일상을 같이하다 보니 더 크게 영향을 받았어요. 그 친구와 함께하며 경험한 게 참 많아요. 덴마크인 친구, 가족, 삶…, 파트너가 아니었다면 제가 덴마크인들과 깊이 연결되긴 어려웠을지도 몰라요. 덴마크에서는 인턴으로 반년 정도 생활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는데요. 덴마크 문화와 어느 정도 연결되었기 때문인지, 다시 덴마크에 가고 싶어서 대학교 과정을 빨리 마치고 또 한 번 가게 됐어요. 그 이후 3년을 채우고 한국으로 돌아왔죠.

 

덴마크에서 브랜드를 론칭하고 싶단 생각은 없었나요? 

덴마크를 좋아하는 만큼 한국도 좋아하기 때문에 고민이 많았어요. 한국에 있는 게 덴마크엔 없고, 덴마크에 있는 게 한국에는 없어서 어디에 머물든 늘 만족과 아쉬움이 함께였거든요. 둘 중 하나를 정해야 한다면, 제가 나고 자란 한국에 덴마크의 가치를 들여오면 어떨까 생각하면서 에디션덴마크를 만들게 됐어요.

 

“덴마크의 여유를 당신의 식탁에”라는 슬로건을 두고 있어요. 여유는 한가하다는 의미 같기도 하지만, 사실 몸과 마음이 바쁠 때도 여유를 느끼는 순간이 있잖아요. 지은 씨가 생각하는 여유는 어떤 모습이에요?

말씀하신 것처럼 주관적인 요소라고 생각해요. ‘덴마크의 여유’라고 표현했지만 덴마크 사람들도 바쁘게 살거든요. 아이 키우는 집을 예로 들면, 한국이랑 마찬가지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요. 눈 뜨자마자 아이들 깨우고, 밥 먹이고, 바쁘게 출근 준비하고, 아이를 맡기고 회사에 가는 식이죠. 덴마크는 근무 시간이 길지 않아서 오후 4시면 거의 모든 회사가 끝나는데요. 그러다 보니 주어진 시간 내에 몰입해야 해서 더욱 바쁘게 움직이게 돼요. 점심시간도 30분밖에 안 돼서 간단하고 빠르게 식사를 해결해야 하고요. 그럼에도 ‘덴마크의 여유’를 떠올린 건, 점심시간이 30분이라고 해서 책상 앞에 앉아 모니터를 보며 허겁지겁 식사하는 문화는 아니기 때문이에요. 30분일지라도 식사 시간을 잘 챙기고 굉장히 즐기거든요. 하루가 바쁘게 흘러가더라도 의식적으로 잘 채워서 보내는 걸 보면서 여유를 느끼곤 했어요. 퇴근 후에도 아이를 픽업해서 장을 보고, 식탁을 차리기 위해 요리하는 시간을 소중하게 여겨요. 아이가 잠들면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놓치지 않고요. 이런 문화가 형성된 건, 마음의 여유에서 온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차는 누군가와의 연결을,
연결이 가능한 시간을 선물해 주는 존재예요.

우리 차 한잔하자

이번 호 주제어가 ‘차’예요. 차 하면 자연스럽게 여유가 떠오르는데, 왜 이런 이미지가 따라붙는 걸까요?

차를 마시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확보되어야 해요. 마실 차를 고르고, 물을 끓이고, 우리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거든요. 그런 한편, 시간적 가치를 넘어 나를 위해 5분일지라도 할애하는 심리에서 여유가 생기는 게 아닐까 싶어요. 타인에게 대접하는 것도 그렇지만 특히 나를 위해 차 시간을 마련한다는 건 일정 수준의 여유가 없으면 안 되는 일이니까요. 마시는 행위도 그래요. 특히 따듯한 차일 때는 호흡을 고르면서 온도를 느끼며 마셔야만 하잖아요. 그러면서 내 시선이 차를 향해 가다 보니 여유를 누릴 수밖에 없는 거죠.

 

에디션덴마크는 덴마크에 뿌리를 두고 브랜드를 전개해 나가면서 A.C. 퍼치스 티핸들 차 제품을 큐레이션하고 있죠. ‘차’라는 카테고리가 하나의 줄기를 담당하는 셈인데요. 지은 씨에게 차는 어떤 의미인가요?

사실 덴마크에 가기 전까지는 큰 관심이 없었어요. 어디서든 접할 수 있는 평범한 음료라고 여긴 것 같은데, 덴마크에서 지내면서 차의 일상적인 쓰임을 알게 됐어요. 예컨대 미팅할 때 항상 차를 내어드린다거나 누군가를 집으로 초대해 차를 대접하는 등의 모습을 보면서요. 그런 문화 속에 살게 되면서 저도 차를 사보고 경험하게 되니까 좋아하는 사람을 초대해 차를 내어주는 일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더라고요.

 

처음 ‘맛있다!’고 느낀 차 기억하세요?

눈이 ‘번쩍’ 뜨일 정도의 차를 마신 건 덴마크 국내 여행을 할 때였는데요. 경치가 무척 아름다운 한 섬의 카페에 들어가게 됐는데, 거기서 마신 A.C. 퍼치스 티핸들의 ‘쿨허벌COOL HERBAL’이 정말 맛있었어요. 한 모금 마시자마자 “이거 무슨 차야?” 하고 되물을 정도로 저를 놀라게 한 맛이었죠. 달콤하고 상쾌한 맛에 반해서 그 이후로 쿨허벌을 굉장히 많이 마셨어요. 

 

저도 얼마 전에 선물 받은 차인데, 따듯하게 마셨는데도 시원하고 달콤한 맛이 매력적이더라고요. 노란 케이스도 정말 예뻤고요. 지은 씨는 차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쿨허벌이 잘 맞으셨다니 덩달아 기분 좋은데요(웃음). 차는 맛으로만 따져도 엄청나게 다양해요. 에디션덴마크는 찻잎 그대로의 제품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재료를 블렌드한 차도 많이 선보이고 있어요. 블렌딩 방법에 따라 맛이 무궁무진해진다는 점에서 차의 세계가 정말 다양하다는 걸 느껴요. 그 덕에 상황에 따라 마시는 차도 디테일하게 나눠볼 수 있죠. 날씨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아침에 눈 떴을 땐 얼그레이EARL GREY가 잘 어울리고요. 점심 먹고 나른해질 즈음엔 씨브리즈나 그린팰리스GREEN PALACE, 화이트템플WHITE TEMPLE을 주로 마셔요. 식사하고 나서는 섬세한 향이 나는 차가 특히 좋더라고요. 잠들기 전엔 루이보스바닐라ROOIBOS VANILLA 마시는 걸 제일 좋아하고요.

 

저한테 차는 식수용과 디저트용으로 나뉘어요. 실제로 많은 사람이 보리차나 둥굴레차류는 식수로도 활용하는 반면, 유럽 차는 디저트로 삼곤 하죠. 왜 이런 구분이 생기는 걸까요?

문화적인 차이가 아닐까 싶어요. 우리는 보리차를 끓여두고 물 대신 마시는 문화가 있었잖아요. 여전히 식당에서도 차를 물 대신 내어주는 곳이 많고요. 그래서 음식과 자연스럽게 같이 마시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식수 대용이 된다고 여겨지는 것 같아요. 반면, 유럽 차에는 향이 있다 보니까 유럽인들은 식전이나 식후에 마시곤 해요. 음식과 차의 향이 부딪치는 경우가 많으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유럽 차는 확실히 ‘향’에 포인트가 있는 듯해요. A.C. 퍼치스 티핸들 제품도 향을 맡을 때 기분이 참 좋은데요. 브랜드에 관해 조금 더 소개해 주실래요?

A.C. 퍼치스 티핸들은 덴마크 차 문화의 역사를 담고 이어져 오는 티 브랜드예요. 1835년에 덴마크 코펜하겐에 문을 연 곳으로, 덴마크 왕실 공식 차 조달 업체이기도 하죠. 저는 A.C. 퍼치스 티핸들이라는 브랜드를 굉장히 존중해요. 7대가 이어온 브랜드라는 것도 그렇고, 오랫동안 운영해 오면서 투자를 받지 않았다는 것도 그렇고, 190년가량 된 티 숍을 유지·보수만 하고 거의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는 것도 그렇죠. 워낙 긴 세월을 지나왔으니 어떻게 보면 아예 새롭게 고치는 게 더 쉬운 선택일 수 있고 대를 이어왔더라도 어떤 세대에서는 이전 분위기를 잇고 싶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A.C. 퍼치스 티핸들은 자본 개입 없이 브랜드 철학을 온전히 한 집안이 이어온 거예요. 저는 그 점이 굉장히 대단하다고 봐요.

 

그런 브랜드를 한국에 들여오면서 상상한 미래가 있었을 것 같아요.

제가 덴마크에서 차를 알게 되고 제 삶에 들인 것처럼 한국 사람들도 일상에서 쉽게 차를 즐기고 마시는 문화를 만들어 가길 바랐어요. 제가 처음 마시고 ‘아!’ 했던 A.C. 퍼치스 티핸들이 그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일상에서 쉽게 차를 즐기길 바란다고 하셨는데, 그래서인지 에디션덴마크 티포트는 확실히 간편해요. 손동작 몇 번만으로 차를 우려낼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죠.

에디션덴마크는 격식 차리지 않고도 간편하게 차를 우리길 바라면서 오리지널 제품들을 만들어 가고 있어요. 그래야 차를 나눠 마시는 것도 일상적 가치가 될 수 있을 테니까요. 차는 약 5천 년 전에 중국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해지는데, 유럽에 차가 들어온 건 17세기 초예요. 차 문화는 영국에서 왕족·상류층을 시작으로 확산되고, 덴마크도 18세기 초에 중국과 직접 무역을 시작하면서 도시 시민 문화 속에서 나눠마시는 일상적인 음료로 자리 잡았어요. 저는 그 ‘나눠 마신다’는 가치가 유난히 와닿더라고요. 차는 취향껏 마실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특별한 레시피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엄청 큰 티포트에 티 필터를 올리고, 원하는 만큼 찻잎을 담아 우리는 걸로 충분해요. 차를 다룬다고 해서 꼭 차에 관해 더 잘 알아야 하고, 정확하게 내려야 한다는 압박이 없어서 더 즐겁게 브랜드를 운영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에디션덴마크에서는 원하는 대로 우려도 괜찮은 차를 소개하고 있고요.

 

지은 씨가 생각하는 차의 궁극적인 역할은 무엇인가요?

음…, 제가 원하는 차의 역할은 중심이 아닌 매개체예요. 중요한 건 차를 얼마나 정확하게 우리느냐가 아니라 편안한 분위기에서 함께 나눠 마시는 행위거든요. 차 마시는 시간을 선택함으로써 여유를 만들어 내는 게 좋아요. 나 홀로 시간을 즐기거나, 사람들과 모일 때도 “차 한잔하자.”는 말이 여유의 매개가 될 수 있으니까요. 차는 그런 시간을 보내는 동안 조연으로 식탁을 빛내주는 존재가 될 테고요. 일상적이면서도 귀한 시간에 함께하는 매개로서의 차. 그런 역할로서의 차를 다루고, 또 소개하고 싶어요.

 

그런 경험이 가능한 곳이 에디션덴마크 쇼룸이죠. 쇼룸이라 이름 붙인 것도 카페만을 목적으로 한 게 아니라 우려서 마시는 법을 알려주고 차를 매개로 손님과 소통하기 위해서였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직원들도 ‘에디터’라 칭하고요.

맞아요. 에디터는 에디션에서 따온 명칭인데요. 저희는 브랜드의 허들을 낮춰서 소개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에디터들은 차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를 숙지하고 제품마다 어떤 재료가 블렌딩 되어 있고, 어떤 특징이 있는지를 손님에게 소개해 줘요. 손님이 원하는 맛이나 분위기가 있다면 거기에 맞는 차를 안내해 주기도 하고요. 세세한 가이드를 두고 소통하기보다는 제품에 대한 이해도를 바탕으로 에디터가 관찰한 부분을 소개하는 식이죠. 맛이라는 게 주관적이다 보니 생각하는 바가 다를 수도 있는데, 우리 에디터들은 그 싱크가 서로 잘 맞춰져 있어요. 어떨 땐 저도 에디터들 소개에 현혹되곤 해요(웃음). 소개를 워낙 잘하니까 저도 보고 들으면서 배우는 게 있죠. ‘아, 나도 다음엔 저렇게 소개해 봐야겠다!’ 하면서요.

 

오프라인 공간에서 첨예하게 알게 되는 고객 반응도 있을 것 같아요.

에디션덴마크는 물류팀과 오피스팀, 오프라인 경험팀으로 나뉘어요. 물류팀은 물류를, 오피스팀은 온라인, 유통, B2B, B2C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오프라인 경험팀은 오프라인 매장 관리와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일대일 고객 응대를 하죠. 오피스에서 이러저러한 지표를 두고 분석하는 것은 브랜드 운영에 무척 중요한 일인데 때때로 오프라인에서 정답을 얻을 때가 있어요. 전문적인 지표는 아니지만 손님들 반응을 직접 느끼면서 손님들이 이런 부분에서 불편해하시는구나, 이런 걸 헷갈리고 또 이런 요소를 좋아하시는구나, 하고 직접 보면서 깨닫는 게 있거든요.

올 초에 프리츠한센과 녹사평에 세 번째 매장도 오픈하셨죠.

매장 오픈으로 정말 분주한 시간을 보냈어요. 서촌 쇼룸과 덴마크식 음식을 선보이는 성수 ‘밋보어’에 이어 덴마크 브랜드인 ‘프리츠한센FRITZ HANSEN’과 함께하게 된 매장이에요. 성격이 각기 달라서 운영이 쉽지는 않지만, 매장을 좀 더 늘려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을 하던 차에 프리츠한센에서 오프라인 매장을 제안해 주셨어요. 프리츠한센과 A.C. 퍼치스 티핸들은 시작 시기가 비슷해요. 둘 다 지금까지 굳건히 이어져 온 브랜드이고,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브랜드이기도 하죠. 에디션덴마크의 시작을 프리츠한센과 함께하기도 해서 여러모로 연이 있는데 함께 세 번째 매장을 오픈하게 되었다는 게 무척 뜻깊어요. 완성된 공간도 만족스럽고요. 프리츠한센 가구가 공간을 채우고, 손님들은 자연스럽게 가구를 체험하면서 에디션덴마크가 소개하는 음료와 빵도 경험할 수 있죠. 세 매장이 모두 성격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스며들듯 덴마크의 문화와 여유를 누려볼 수 있다는 점이에요. 세 번째 공간은 그 시간을 프리츠한센의 가구로 채워진 공간에서 즐긴다는 게 특징적이죠. 브랜드를 소개하는 데 집중한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편하게, 동네 카페 가듯 들러서 머물다 가시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차 문화가 이전보다는 많이 부상했지만 여전히 우리는 커피를 조금 더 일상적으로 찾는 듯해요. 지은 씨는 차를 대중화시키고 싶다는 생각도 있나요?

그럼요. 에디션덴마크가 소개하는 브랜드들이 엄청 대중적인 브랜드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여기서 한 발 더 나가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재작년 11월엔 A.C. 퍼치스 티핸들을 단독 브랜드로 론칭했어요. 에디션덴마크에서 여전히 큐레이션하는 브랜드지만 독립시켜서 ‘스스로 잘 커보아라.’ 하는 마음을 더한 거죠. 독립시킨 이유 중 하나는 브랜드 정체성을 헷갈리는 분이 많아서이기도 해요. 에디션덴마크가 만든 티 브랜드로 잘못 아는 분도 있고, 에디션덴마크와 A.C. 퍼치스 티핸들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하는 분도 있더라고요. 정확히 짚고 가자면, 에디션덴마크는 덴마크의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하는 큐레이션 브랜드이자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A.C. 퍼치스 티핸들은 저희가 큐레이션하는 브랜드 중 하나예요. 유통 채널에 A.C. 퍼치스 티핸들을 입점한 시도는 대중화 목적이 가장 컸어요. 저희가 독점으로 수입·유통하는 건 동일하지만, 저희 플랫폼에서만 다루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쿠팡, 올리브영의 웰니스 플랫폼인 올리브베러 등 대형 플랫폼에도 입점해서 접근성을 높였어요.

 

브랜드 이야기를 듣다 보니 궁금해지는데, 덴마크의 여유를 소개하고 싶다는 마음이 왜 ‘식탁’을 중심으로 확장되었나요?

저에겐 덴마크인의 식탁이 그들의 삶을 지탱해 주는 중심처럼 느껴졌어요. 물론 외식비가 비싸서이기도 하지만 집에 초대받는 일이 정말 많았거든요. 집에서 함께 요리를 해 먹거나, 준비한 음식을 나눠 먹거나, 꼭 음식이 아니더라도 차나 커피를 마시면서 대화하는 문화로 여유와 삶이 지탱되더라고요. 뭔가를 함께 먹고, 마시고, 나누는 행위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매개가 된다는 걸 깨닫고 나니 식탁을 중심으로 브랜드를 확장해 보고 싶어졌어요.

 

저도 언젠가부터 차에 관심이 생겼는데 설명만 보고는 선뜻 차를 고르기가 어렵더라고요. ‘이런 사람에게 이런 차를!’ 추천해 줄 만한 느슨한 가이드가 있을까요?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취향을 알기가 어려워요. 쿨허벌이 저희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데 쿨허벌의 특징인 감초 맛을 선호하지 않는 분도 계세요. 열 명 중 여덟 명은 맛있다고 하지만 ‘못 마시겠다.’면서 불호를 드러내는 한두 분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특정 차를 추천하기에 앞서 경험해 보시라는 이야기를 남기고 싶어요. 대중적인 차를 마셔보면서 ‘나는 루이보스가 마음에 든다.’ 하면 루이보스가 블렌딩 된 차를 마시며 취향을 좁혀가는 거예요. 혹은 감초가 입에 안 맞으면 감초가 들어가지 않은 차를 찾는 식으로요. 차의 세계가 워낙 다양하다 보니 경험해 봐야 알 수 있는 점이 참 많아요. 잘 안 맞는다고 생각한 재료가 차로 접했을 땐 잘 맞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마련한 것 중 하나가 ‘A.C. 퍼치스 티백 디스커버리 세트’예요. 아직 취향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한 종류의 티를 2-3만 원 주고 사려면 부담스럽잖아요. 선뜻 구매할 금액은 아닌 것 같아서 한 번에 경험할 패키지를 마련하면 어떨까 싶더라고요. 그래서 A.C. 퍼치스 티핸들의 코어 라인을 모두 경험해 볼 수 있도록 8종을 하나씩 담아 올인원 패키지를 마련했어요. 쿨허벌, 루이보스바닐라, 화이트템플, 저스트프룻, 씨브리즈, 얼그레이, 카모마일, 그린팰리스 티백이 한 개씩 담겨 있어서 취향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아마추어의 궁금증인데요, 티백은 간편하지만 잎차보단 오리지널리티가 떨어진단 생각이 들기도 하거든요. 두 방식엔 어떤 차이가 있어요?

티백은 가공을 해야 하다 보니 용량이 제한돼 있어요. 엄청 큰 잎차는 티백으로 만들기가 어려워서 티백으로 만날 수 있는 차 종류는 한정된 편이죠. 또, 티백은 한 차례 가공이 들어가다 보니 생산 비용이 좀 더 높아서 단가를 맞추기 위해 비교적 대중성 있는 차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가공 방식만 다를 뿐 둘 다 같은 재료로 우리는 차이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어요. 저는 잎차와 티백 모두 잘 마시는데 티백은 이동할 때 가지고 다닐 수 있고, 어디서든 마실 수 있을 만큼 간편해서 좋아요. 반면, 잎차는 티백보다는 공정이 필요하지만 용량을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죠. 연하게 마시고 싶으면 잎을 조금만 넣고, 진하게 우리고 싶을 땐 많이 넣는 식으로요. 취향을 디테일하게 맞출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핸드드립 커피는 레시피를 정확히 따르면 더 맛있게 내려진다고 하는데, 차는 레시피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편인가요?

저는 취향에 맞춰 물과 찻잎을 조절하는 게 가장 맛있는 차라고 생각하지만 에디션덴마크 쇼룸에서는 차와 커피를 판매하는 만큼 우리만의 레시피가 필요해요. 그래서 매 제품 신중하게 테스트를 해보고 가장 맛있는 비율을 까다롭게 정리해서 내어드리고 있죠. 테스트를 수도 없이 거쳐서 레시피를 만드는데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찻잎을 우릴 땐 온도를 지키는 게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취향에 맞춰서 우리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차를 진하게 우리는 걸 좋아해서 제 레시피엔 항상 찻잎이 많이 들어가는데요. 한 번은 아주 연하게 내린 화이트템플을 지인에게 대접받은 적이 있는데 예상치 못한 매력이 있더라고요. 결국 차는 여러 종류를, 여러 방식을 경험하면서 내게 가장 잘 맞는 것을 찾아나가는 게 재미라고 봐요. 내 레시피를 만들었더라도 더 좋은 레시피를 발견하게 될 때도 있으니까요.

 

차와 디저트를 페어링하는 것도 하나의 레시피가 될 텐데요. 추천하고 싶은 페어링 있어요?

웰니스에 집중하면서 당류 안 먹기가 한창이라 최근엔 디저트를 잘 안 먹었는데… 지금 떠오르는 조합은 퉁카번과 얼그레이 조합이에요. 조금은 달다 싶은 빵류에 단맛을 깔끔하게 잡아주는 차를 마시니까 잘 어우러져 좋더라고요. 같은 관점에서 케이크에 루이보스바닐라를 함께 마시는 것도 좋아해요. 개인적으로 달고 꾸덕꾸덕한 디저트를 좋아해서 디저트와 함께 마실 땐 깔끔한 차를 찾게 되더라고요.

 

차 이야기를 할 때 지은 씨는 참 편안해 보여요.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 실망하게 된다는 속설도 있는데, 지은 씨는 아닌 것 같아서 궁금해지는데요. 어때요?

이런 삶을 살고 있다는 데 늘 감사해요. 저는 일상과 일에 어느 정도 교집합이 있는 걸 이상적이라 생각하는데 그렇게 살고 있다고 자주 느껴요. 저를 위해 떠난 여행에서 에디션덴마크를 생각하며 F&B 공간을 찾고, 개인적인 취향으로 방문한 공간에서 일과 관련된 커넥션을 만들기도 하죠. 제가 좋아하는 나라에서, 좋았던 공간에서 기쁨을 누리고 끝나는 게 아니라 에디션덴마크로 협업하고 연결된다는 건 설레고 감사한 일이에요. 저는 학창 시절부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자.’고 생각했어요. 학창 시절에도 호기심이 많아서 관심사를 디깅하는 일이 잦았는데요. 한번은 음악 영상 만드는 분을 만나게 됐는데, 그분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라는 이야기를 해주셨거든요. 그 말이 머릿속에 오래 남더라고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분이 해주신 말이라 더욱 와닿았고, 그 이후 제 안의 신념이 확고해졌죠. 그 이전엔 무조건 명문대에 가야 하고, 대기업에 들어가서 잘 닦인 성공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대화하고 보니까 그게 제가 진짜 가야 할 길임을 알겠더라고요.

 

좋아하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해 국내외 여러 공간을 탐구하셨을 것 같은데, 기억에 남는 특별한 공간이 있나요?

저는 한 가지를 전문적으로 하는 곳보다 여러 영역을 복합적으로 하는 브랜드에 흥미를 느껴요. 자기만의 개성과 캐릭터를 만드는 곳들이죠. 최근 뉴욕에 일주일 정도 다녀왔는데, ‘콜보Colbo’의 오프라인 공간이 무척 인상 깊었어요. 의류 브랜드인데 공간이 크지 않거든요. 근데 이벤트가 정말 많이 열려요. 디제잉도 하고, 작지만 카페 공간도 있고, 콜보 옷뿐 아니라 결이 맞는 브랜드를 큐레이션하여 판매하기도 하죠. 빈티지 의류도 있고요. 작은 공간 안에 콜보만의 세계를 펼쳐놓은 것 같아서 흥미롭더라고요. 이전에도 뉴욕 가면 들르던 곳인데요. 하루는 날씨가 좋을 때 바깥에서 스트리트 음식을 판매하고 나눠 먹는 이벤트를 본 적이 있어요. 와인으로 행사를 여는 것도 봤고요. 그런 자유로운 교류와 분위기가 참 좋았어요. 사람을 끌어당기는 브랜드의 힘, 커뮤니티를 만드는 힘에 관해 느낄 수 있었죠. 에디션덴마크도 명확한 가치관을 두고 거기에 끌리는 이들을 모으는 커뮤니티를 만들어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에디션덴마크에서도 간간이 행사를 하고 있죠. 단골인 김종관 감독님이 하이볼 행사를 열기도 했고요.

서촌 쇼룸은 원래 하나의 공간만을 사용했는데, 바로 옆에 공간 하나를 더 만들면서 ‘에디터스 룸’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거기서 에디터들이 좋아하는 뭔가를 해보기도 하고, 서촌 이웃분들과 행사를 만들기도 했죠. 다양한 커뮤니티로 확장하고 싶어서 이러저러한 시도를 해봤는데 생각만큼 많이 하진 못했어요. 앞으로 해보고 싶은 게 참 많아요. 예컨대 덴마크에서 브랜드 오너와 대화를 하게 되면 저는 항상 엄청난 에너지를 받고 와요. 왜 이 브랜드를 시작했고, 어떤 여정을 거쳐 왔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지, 브랜드를 시작한 사람의 입으로 듣는 건 가슴 설레는 일이거든요. 이런 에너지 있는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요. 단기 이벤트나 팝업은 물론이고 토크 같은 방식도 염두에 두고 있죠. 마침 올해 4월엔 덴마크의 브루어리와 협업이 예정돼 있어요. 사회적 기업처럼 운영하는 곳이라 그 스토리가 흥미롭더라고요. 토크 자리를 마련해서 오너 이야기를 조금 더 깊이 있게 전해보려고요. 앞으로도 아직 알려지지 않은 덴마크 브랜드와 협업해 보고 싶어요. 브랜드 철학을 더 잘 보여줄 방법을 고민해서 다양한 자리를 만들어 볼게요.

작년에는 덴마크로 진출하여 행사에 참여하기도 하셨는데, 덴마크에 뿌리를 두고 있는 만큼 감회가 새로웠을 것 같아요.

엄청나게 뜻깊은 경험이었어요. 저희 브랜드는 덴마크를 다루기 때문에 한국에서 관심받는다고 생각하는데요. 반대로 덴마크의 가치를 덴마크로 들고 간 거였는데도 많은 사람이 흥미로워하시더라고요. 덴마크인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이 관심과 흥미를 보이는 게 참 신기했어요. 덴마크로 진출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좋은 제안으로 생각보다 이른 시기에 다녀오게 되었어요. 그 경험을 계기로 덴마크에서의 활동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게 됐죠. 올해 초에는 에디션덴마크의 5개년 목표를 세워보았는데, 5년 뒤엔 코펜하겐에 오프라인 매장을 내는 꿈도 꾸게 됐어요. 천천히 생각하면서 계획해 보려고요.

 

에디션덴마크는 점차 그 무대를 세계로 넓혀갈 것 같아요. 에디션덴마크 재팬으로 글로벌 진출을 시작하기도 했죠.

일본 진출은 생각보다 글로벌 시장에 접근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경험한 계기이면서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을 만들어 준 경험이기도 했어요. 팝업도 두 차례 진행했고 ‘띵크오브띵즈’라는 브랜드와 협업해 제품을 만들면서 다양한 경험도 하게 됐죠. 그 이후에도 해외에서 큼직한 프로젝트를 많이 하게 됐는데, 그러면서 새로운 고민이 생기더라고요. 더 큰 무대만을 그리면서 마음부터 앞서 나가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보폭을 넓히기 전에 내실을 잘 다져야 한다는 걸 깨달은 거죠. 다양한 국가에서 관심을 가져주시는 만큼 더 단단한 브랜드를 보여드리고 싶으니까요. 이를 위해서는 한국에서 저희 입지와 뿌리를 잘 다져 나가면서 큰 프로젝트에 몰두하느라 놓친 부분을 정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봐요. 올해는 신경 쓰지 못한 작은 부분부터 차근차근 해보려고 하는데요. 그동안 큰 프로젝트를 진행하느라 팀원들과 세세하게 발을 맞추는 시간이 부족했는데 올해는 조금 더 신경 써서 맞추어 보려고요. 경력직 초심으로, 작은 것부터 꼼꼼하게 정비해 볼게요.

 

어느 인터뷰에서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고 있느냐 물으면 만족스러운 삶이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지금은 어때요?

8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힘들더라도 계속 배우고 해 나가고 있어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최근 몇 년간은 여러 굴곡을 지나오기도 했는데요. 제 삶의 목표 중 하나가 ‘개운한 마음으로 일어나고 편안한 마음으로 잠들자.’거든요. 그 삶에 부쩍 가까워진 것 같아 매일 감사하며 살고 있어요.

 

이번 호 주제어가 차인 만큼, 마지막 질문으로 우리의 삶, 혹은 하루에서 차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꼭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연결을 가져다주는 매개체라고 생각해요. 재작년에 덴마크 루이지애나 박물관에 갔을 때 근처 산책을 하다가 덴마크 사람들이 앉아서 뭔가 나눠 마시는 장면을 보았어요. 보온병에 담긴 따듯한 음료였는데, 그 음료가 없다면 분위기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상상하게 되더라고요. 뭔가를 함께 마신다는 데서 특별함을 느꼈죠. 별거 아닌 작은 행위인데, 뭔가를 나누어 마신다는 게 우리를 연결해 주는 매개가 되는 것 같아요. 저는 누군가를 집으로 초대할 때면 어떤 차를 좋아할지 생각하며 마실 것들을 고르곤 하는데요. 그런 시간을 거쳐 함께 차를 나누면 비로소 우리가 연결되었다는 느낌을 받아요. 음식을 준비하는 건 거창하고 무거운 일이지만 차를 대접하는 건 심적으로도 부담이 없어서 초대하는 마음도 가볍죠. 차는 누군가와의 연결을, 연결이 가능한 시간을 선물해 주는 존재예요.

식구食口란 “한 집에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이란 의미다. “덴마크인의 식탁이 그들의 삶을 지탱해 주는 중심처럼 느껴졌”다는 지은 씨 말을 곱씹으며, 김이 폴폴 나는 식탁에 식구와 마주 앉아 ‘소중하다’고 몇 번쯤 생각한다. 소담스러운 접시를 찬찬 비우고, 똑같은 찻잔에 저스트프룻과 루이보스바닐라를 각각 우리며 식탁의 시간을 연장하는 여유. 에디션덴마크 티포트의 버튼을 살포시 누르고 은은한 색과 향이 퍼져나가는 것을 바라보는 저녁이 못내 기껍다. 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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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주연(산책방)

포토그래퍼 최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