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이면 오래된 것

이승영·이동관 ㅡ 마스컴퍼니

모자는 부스스한 머리를 가릴 때 자주 손이 간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승영, 이동관에게 모자 없는 하루는 신발 없는 외출이란다. 수북한 더미에 손을 뻗어 하나 툭 걸치고, 집을 나서는 두 남자. 그들은 땀과 햇빛이 흔적을 남기고, 살짝 구부러진 챙이 지난 세월을 말해주는 순간을 귀하게 여긴다. 조금 흐트러진 매무새를 가다듬고 문을 열면 펼쳐지는 유쾌한 공간. 이곳은 빈티지 모자를 선보이는 편집숍, ‘마스컴퍼니Mascompany’다.

오늘 두 분 모두 모자를 썼네요. 모자와 함께 자기소개를 해볼까요?

승영 안녕하세요. 이승영이라고 합니다. 제가 쓴 모자는 패션 브랜드 ‘모스키노’의 제품이고, 챙은 구겨진 데다 얼룩도 있어요. 이렇게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상품을 좋아하는데, 여기에는 귀여운 자수까지 박혀 있어서 예전부터 써왔네요.

동관 저는 이동관입니다. 형님과 같이 마스컴퍼니를 운영한 지는 3년 반 정도 됐어요. 오늘은 저희가 여름을 맞아 제작한 상품을 썼어요. 여기 “I love my beer belly(나는 내 술배를 사랑해.)”라고 적혀 있는데요. 날씨가 더워지면 옷이 가벼워져서 살을 걱정하게 되지만, 자신을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담았어요. 이따 한번 써보실래요?

 

좋아요! 먼저 마스컴퍼니라는 이름의 뜻부터 들어보고 싶어요.

동관 마스컴퍼니의 마스Mas는 ‘Mom and Son(엄마와 아들)’의 앞 글자를 딴 거예요. 엄마와 아들, 즉 ‘모자 관계’처럼 모자는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라는 의미죠.

 

재밌는 이름이에요. 마스컴퍼니는 일반적인 빈티지숍과 달리 모자만을 취급하죠. 수많은 상품 중에서 어떤 것을 빈티지라고 부르는지 궁금했어요.

동관 명확하게 정의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판매용 제품을 선별하는 기준으로 설명해 볼게요. 저희는 오래된 흔적이 있거나, 희소한 물품을 소개하려고 해요. 엄마, 아빠가 옷장에서 몇십 년 전에 쓰던 걸 꺼내 먼지만 툭 털어낸 듯한 느낌이 나거나, 나만 가지고 있을 것 같은 물건이요.

승영 저는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빈티지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봤어요. “낡고 오래된 것”, “오래되었지만 멋지고 가치 있는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사실 멋지고 가치 있다는 건 주관적이지만, 빈티지는 주관성을 담은 말이라고 생각해요. 무조건 오래되었다고 해서 빈티지라고 부를 수 없고, 사용자가 매력을 느껴야만 하죠.

 

세월이 담겼지만 쉽게 구할 수 없고, 내 취향이 담긴 것.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겠네요?

승영 그렇죠. 한 단어로 이야기한다면 ‘희소가치’일 거예요. 제가 지금 쓰고 있는 것도 똑같은 걸 본 적이 없어요. 몇백만 원이 있어도 구할 수 없죠.

 

두 분은 1년에 360일 모자를 착용할 정도로 마니아라고요.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어요?

동관 20대 초반,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갔을 때 현지 스케이터들과 친해졌어요. 그 친구들은 빈티지숍을 자주 드나들면서 얼룩이 있는 모자도 쿨하게 쓰더라고요. 그 모습에 매력을 느꼈죠. 그 후로 여러 상품을 시도해 보고, 빈티지 의류 회사에서 일하면서 저한테 맞는 스타일을 찾게 됐어요.

 

승영 씨는요?

승영 저는 패션을 좋아해 왔지만 처음부터 다양한 모자를 시도한 건 아니었어요. 마스컴퍼니를 시작하고 모자의 매력에 좀더 빠졌다고 할 수 있죠.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하면서 저한테 맞는 물건을 찾아가는 재미가 일의 원동력이 돼요.

집에는 모자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을 것만 같아요. 소장 중인 모자의 수를 세어본 적이 있나요?


동관
사실 정리보다는 그냥 투박하게 쌓아두는 편이에요. 모자는 40-50개 정도 갖고 있지만, 자주 쓰는 건 그리 많지 않아요. 서너 개 정도? 그것도 한 가지만 오래 쓰다가 마음이 바뀌면 다른 걸 써보는 식이에요.

승영 절대적인 양은 이제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많은 상품을 접하다 보니 모자를 고르는 기준이 까다로워져서 손이 자주 가는 제품만 곁에 남게 되거든요.

 

수북한 모자 중 그날 착용할 단 하나를 고심해 고르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실제는 달랐네요.

승영 마음에 드는 물건이 가게에 들어올 때마다 우리가 소장할 수는 없으니까요. 빈티지 모자는 단 하나씩만 입고되니 저희가 가져가면 손님들의 선택지가 줄어들거든요.

동관 솔직히 욕심 많이 나요(웃음). 확실한 건 많을수록 좋다는 거예요. 다채롭게 스타일링을 할 수 있거든요. 이제는 신발처럼 모자를 써야만 밖에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도 들어요.

승영 모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집을 나서기가 조금 힘들 때도 있어요. 그래서 차에 여분을 두기도 하죠. 혹시나 다른 걸 쓰고 싶을 때를 위해서요.

동관 저도요. 저는 외출해서 모자를 세 번이나 바꾼 날도 있어요.

 

모자에 진심인 삶은 이런 모습이군요(웃음). 가장 좋아하는 제품도 궁금해지는데요.

동관 담배 브랜드 ‘말보로’의 검정 모자예요. 1990년대에 나왔고, 담배를 일정량 이상 구매할 경우에 주는 증정품으로 나온 제품이죠. 어떤 옷과도 잘 어울려서 한 달에 20일 이상 착용해요.

승영 펩시콜라와 폴로의 배색 모자(둘 이상의 색을 조합한 것)요. 이것도 90년대에 나왔어요. 나이키 스우시 로고 아래 ‘Soccer’라고 적힌 상품도 좋아해요. 제가 또 축구를 좋아하거든요.

동관 아까 언급한 말보로의 제품이나, 영화 홍보 차 만든 굿즈처럼 원래 의류를 제작하지 않는 브랜드에서 출시한 것들이 멋지게 느껴져요.

승영 그런 브랜드들은 역사가 깊잖아요. 또 브랜드 대표 색이 디자인에 어떻게 활용됐는지, 착용감은 어떤지 살펴보는 것도 재밌고요.

취향이 또렷한 두 분이라 싫어하는 모자 유형이 있는지도 물어보고 싶어요.

동관 딱히 없지만, 사람들이 머리를 감지 않거나 화장하지 않았을 때만 모자를 쓰는 게 아쉬워요. 충분히 패션으로 소화할 수 있는데 말이죠.

 

제가 그런 사람이라 모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데요…. 평소 모자를 소화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팁도 있을까요?

동관 모자가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거울 속 자신이 어색해서예요. 그동안 나와는 거리가 멀던 색깔, 소재를 착용하면 어색할 수밖에 없어요. 새로운 모습에 익숙해지는 게 제일 중요해요.

승영 누군가가 내 모습을 특이하게 여긴다 해도 스스로 “나 좀 괜찮네. 멋있네?”, “난 이런 것도 쓸 수 있어.”라고 주문을 외우면 돼요. 패션이라는 게 사실 정해진 답은 없거든요. 억지스럽지 않게 선택의 폭을 늘려간다면 모자를 소화하기는 어렵지 않을 거예요.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같은 취향을 공유하는 이들과 교류하곤 하죠. 모자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확장하고 있어요?

승영 스타일리스트로 일했던 경험 때문인지 전에는 국내 아티스트들을 참고하곤 했어요. 요즘은 그들에게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하지만요. 그 사람들과 키, 몸무게, 얼굴이 다르니까 제가 직접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편이에요.

동관 저는 서브컬처 문화에서 영감을 많이 받아요. 서퍼, 바이커, 스케이터가 어떻게 자신을 꾸미는지 유심히 보고 제 방식대로 바꿔서 모자를 착용해 보죠.

 

조금 추상적인 질문이지만 두 분에게 의류는 어떤 존재인가요?

승영 옷은 놀이예요. 자신을 탐구하는 재밌는 도구가 되니까요. 그래서 지금은 이것저것 사서 입어보지만 언젠가는 옷 한 벌과 모자 하나로만 살아보고 싶기도 해요.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고 하죠.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잖아요.

동관 옷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수단이에요. 지금 제 상의에 그려진 미키마우스처럼 유머러스한 캐릭터를 좋아하는데, 또 그런 요소가 유쾌한 제 성향을 닮았어요. 이렇게 귀여운 그림이 그려진 옷을 입으면 낯선 사람과의 벽이 허물어질 수도 있다는 장점도 있죠.

승영 이렇게 옷은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이기도 해요. 예능이나 유튜브를 보면 유재석 씨가 꼭 게스트의 패션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긴장을 풀더라고요. 그 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모두가 똑같은 옷을 입고 있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인데 말이죠. 각자의 개성이 담긴 의류 때문에 우리 삶이 더 풍성해지는 것 같아요.

 

마스컴퍼니 이야기로 돌아와 볼게요. 얼마 전 백화점에서 팝업 행사를 열었죠? 의미 있는 시간이었겠어요.

동관 저희에겐 도전이었죠. 그곳에 방문하는 손님들과 우리가 결이 맞을지, 명품관 사이에서 어떻게 우리 제품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지 걱정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못할 건 없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는 우리 상품을 좋아해 줄 것 같다는 확신이 있었으니까요. 실제로 40-50대 손님들도 제법 신기하게 봐주시고 매출도 놀랄 정도로 높았어요. 우리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됐죠.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 시간이었네요.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요?

승영 단순한 빈티지숍이 아닌 브랜드로서 해외에 진출해 한국을 알리고 싶어요. 마스컴퍼니만의 모자를 꾸준히 제작하면서 다양한 빈티지 모자를 보여드릴 거예요. 계속 도전하고 성장하는 것. 그게 저희 계획입니다.

AROUND 온라인 구독

어라운드의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읽어보세요.

구독 시작하기

에디터 차의진

포토그래퍼 박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