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따라 도착한 그때, 그 장소

시간을 거스르거나 판타지가 뒤섞인 이야기가 담긴 장소는 어디에 있을까? 어딘가에 실재하지만, 동시에 허구의 이야기가 깃들어 실상 존재하지 않는 곳들. 있으나 없는 곳들. 소개될 장소에는 실존하는 역사와 닮아 있는 이야기가 한데 얽혀 있다. 익숙하지만 멀리 있는 장소에 다다르기 위해, 곁에 있는 작은 화면을 켜서 그곳으로 향하는 문을 연다.

<피키 블라인더스>

갱단이 활보하는 거리

Black Country Living Museum

“We Are Fxxking Peaky Blinders.” 거친 대사가 울려 퍼지는 거리는 1차 세계대전이 휩쓸고 간 영국 버밍엄이다. 토마스 셸비를 주축으로 하는 셸비 가문은 피키 블라인더스라는 이름으로 버밍엄을 장악했다. 산업 혁명 당시 많은 공장이 내뿜는 매연이 버밍엄의 하늘을 까맣게 덮으면서, 그 지역은 블랙컨트리라고 불렸다. <피키 블라인더스>의 촬영지이자 버밍엄을 대표하는 민속 박물관인 블랙컨트리 리빙 뮤지엄에 들어서면, 곧바로 혼란스러웠던 1920년대 버밍엄으로 돌아갈 수 있다. 어두컴컴한 거리를 배경으로, 전쟁을 겪어 온정을 잃은 토마스 셸비가 가족과 사랑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이 선명히 떠오른다. 박물관 내부에 있는 모든 상점은 실제로 운영 중이다. 그 시대에 맞는 베레모와 슈트를 입은 행인이 돌아다니고, 흑백 영화가 상영되며, 옛 굴뚝이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다. 열린 집을 찾아가면 방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고, 학교에서는 타임테이블에 따라 수업을 들을 수 있다. 9월과 11월 중에는 드라마에 나오는 갱단처럼 의상을 직접 입고 밤거리를 활보하는 파티인 ‘피키 블라인더스 나이트Peaky Blinders Nights’도 열린다. 드라마 OST 중 하나인 Arctic Monkeys의 ‘Do I Wanna Know?’를 들으며 피키 블라인더스처럼 활보하는 것도 재미있겠다.

A. Tipton Rd, Dudley DY1 4SQ, 영국
O. 하절기 10:00-17:00, 동절기 10:00-16:00
H. bclm.com

<셜록>

21세기 셜록홈즈가 머문 자리

Speedy’s Sandwich Bar & Cafe

드라마 <셜록>은 아서 코난 도일이 쓴 책 《셜록 홈즈》를 원작으로 한다. 소설이 쓰인 19세기 초는 혁명의 시기로 경찰 조직이 막 만들어지던 때였다. 흉흉한 범죄가 무성하던 때, 눅눅한 안개에 휩싸인 흐릿한 거리가 바로 ‘베이커 거리Baker Street’. 셜록과 그의 절친한 동료 왓슨 박사가 함께 사는 집이 바로 그 거리에 있다. 소설과 달리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 <셜록>의 집은 스피디 샌드위치 가게 옆 221B 철문이다. 실제 촬영지 주소는 ‘187, North Gower Street’. 시대도 주소도 달라지게 되었지만, 스피디 샌드위치 가게에서 셜록처럼 아침 식사를 즐길 수 있다. ‘Sherlock Breakfast’를 먹으면서 곧 범죄 현장에 급습해 사건을 해결할 것이라는 상상에 빠져본다. 비가 오는 흐린 날이라면 더욱 셜록다울 것이다. 가게 내부에는 셜록과 왓슨을 담은 몇몇 사진이 걸려 있다.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하지만, 영국식 아침 식사 ‘English Breakfast’ 맛집으로도 알려진 가게는 관광객뿐 아니라 현지인도 붐비는 곳이다. 드라마 속 셜록이 머문 자리를 탐하는 이들 또한 많으니 이른 아침 들르는 것이 좋겠다.

A. 187 N Gower St, Euston Rd, London NW1 2NJ, 영국
O. 월-금요일 06:00-15:30, 토요일 07:00-13:30, 일요일 휴무

<왕좌의 게임>

용이 잠든 궁전

Diocletian’s Palace

12,500년이 넘는 긴 역사를 가진 가상의 7왕국을 배경으로 하는 <왕좌의 게임>은 촬영지 또한 무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그중 크로아티아 스플리트에 있는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은 용의 어머니인 대너리스가 용을 키우고 노예들을 해방한 도시 미린Meereen의 배경이 된다. 드넓은 크기를 자랑하는 궁전은 4세기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지은 옛 궁전으로 동서남북으로 네 개의 문이 있다. 비와 바람으로 마모된 궁전은 지나온 시간을 고스란히 흔적으로 보여준다. 대너리스는 용의 힘이 점차 강해지자 이를 제어하기 위해 궁전 안쪽에 그들을 봉인해 버렸다. 천여 년의 시간 동안 굳게 닫혀 있던 궁전의 은문처럼, 용은 오랫동안 그곳에 고이 잠자고 있을 것만 같다. 궁전을 한 바퀴 돌고 근처 위치한 ‘왕좌의 게임 박물관’에 방문한다면, 입구에서부터 봉인된 드로곤의 머리를 직접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실제 크기의 등장인물 피겨, 투구나 검, 의복, 갑옷 등의 컬렉션을 구비해 다섯 가지 테마로 왕좌의 게임 도시를 보여주고 있다. 궁전에서부터 박물관까지 이어지는 경험은 시공간을 넘어 판타지까지 더해진 가상 세계를 눈앞에 펼쳐줄 것이다.

A. Dioklecijanova 1, 21000, Split, 크로아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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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