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에 새로 생긴 가족

New Family in Istanbul

라마단 기간이 시작되었다. 그 무렵이었다. 내가 터키 곳곳을 자유롭게 날다가 이스탄불에 도착한 건. 바로 전 나는 작은 시골 마을에 머물렀다. 손님이 나뿐이던 낡은 숙소에서 깊은 새벽, 난데없이 울려대는 커다란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난 적이 있었다. 누군가 큰북을 쳐대며 고요한 마을에 요란을 피워대고 있었지만 아무도 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듯 뭐라는 이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숙소 주인에게 나 혼자만 이 이상한 소리를 들은 것인지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이 놀라웠다. 지금은 해가 뜨면 식사를 할 수 없는 라마단 기간이어서, 자느라 식사를 놓치게 될까 봐 누군가 그렇게 북을 쳐대고 다니면서 사람들을 깨우는 거라고 말했다. 아마도 알람 시계가 없던 오래전부터 내려온 풍습이 아니었을까.

이스탄불 아야 소피아Hagia Sophia 광장에 시민들이 가득 몰려든 걸 보니 오늘 저녁엔 무슨 행사라도 있는 모양이었다. 레스토랑 앞에 길게 선 줄, 빼곡히 돗자리를 깔고 앉은 가족들, 광장은 상기된 분위기였다. 조금 이상하다 생각이 든 것은 그들이 앉은 테이블 앞에 요리는커녕 물 한 잔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돗자리엔 싸온 음식을 펼쳐 두고서도 누구 하나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제야 떠올렸다. 모두 해가 지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온종일 굶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들에게는 짜증 섞이거나 힘들어 하는 기색이 없었다. 이 고행인 듯 축제인 듯한 광경 앞에서 그 많던 관광객들은 어디로 가고 나 혼자 어리둥절하며 서 있었다. 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식사할지 몹시 궁금해져 나는 이리저리 돗자리를 흘끔거리며 같이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모스크에서 경을 읊는 듯한 에잔(기도 시간을 알리는 노래) 소리가 흘러나왔다. 동시에 이 모든 인파의 식사가 시작되었다. 굶주림 끝에 시작된 식사라는 것이 민망할 정도로 기쁨의 환호도 없이 사람들은 그저 침착하게 밥을 먹을 뿐이었다. 이토록 생경한 이스탄불 시민들의 단체 외식 장면이라니. 그 한가운데서 멀뚱히 구경하고 있는 낯선 외국인을 향해 여기에 와서 함께 앉으라며 손짓하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그게 우리 인연의 시작이었다.어린 딸 둘과 함께 나온 단란한 가족이었다. 우리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몸짓과 표정, 모든 것을 동원해 소통해야 했다. TV 광고에서 본 그럴듯한 휴대폰 번역 기능을 써보기도 했지만 결과는 광고처럼 극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우리가 해바라기 씨 껍질을 앞니로 한 번에 재빨리 발라 먹는 법 등을 배워가며 서로 깔깔대는 것까지 방해하지는 못했다. 그들은 정성껏 싸온 음식을 기꺼이 나와 함께 나누었고, 내가 맛있다는 신호로 엄지를 척, 들어 보이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식사 후 가족들은 나를 집으로 초대했고 나는 잠깐 들르기나 할 심산으로 따라나섰다. 그러나 그들의 집이 버스로 1시간여를 달려야 하는 거리에 있다는 사실까지 소통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였던 것 같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지? 잘못하다간 영영 돌아올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 아닌가?’ 불안한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지만 어린 딸들의 기대 가득한 눈빛을 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은 이내 사라졌다. 1시간을 달려 내린 알 수 없는 동네 버스 정류장 옆 슈퍼에서 아저씨는 기분 좋게 큰 수박 한 덩이를 샀다. 곰돌이 푸우 같은 체구에 양 볼 가득 덥수룩한 수염을 가진 그가 사람 좋게 웃어 보이던 그 미소는 지금도 나를 푸근하게 한다. 우리는 깜깜한 골목길을 걸어 집에 도착했다. 집에 들어서니 아주머니는 머리에 두르고 있던 히잡(이슬람교 여성들이 머리에 두르는 천)을 벗어 걸어 두었는데, 나와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머리 모양인 것이 눈에 들어왔다. 머리카락 한 올 보일 새라 그녀들이 비밀스럽게 두르고 있는 저 보자기 속엔 뭔가 특별한 것이라도 숨겨놓았을 것만 같았는데 우리는 그렇게 다른 사람이 아니었다.

네 식구가 사는 소박한 집이었다. 그들은 정성껏 만든 전통차 차이와 음식을 내오고, 구두 만드는 일을 하신다는 아저씨가 직접 만든 신발도 선물로 주셨다. 이역만리에서 날아온 낯선 외국인인 나는 우리나라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서로 궁금한 게 많았다. 그것들을 시원하게 말로 전하기는 어려웠지만 돌이켜보건대 누군가와의 대화에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상대의 눈을 마주 보고 귀와 마음을 열었던 순간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말이 너무나 잘 통하기 때문에 대충 들어버리고 눈을 바라보지 않게 된 건 아닐까. 시간이 늦어 나는 하룻밤 자고 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다 새벽 3시에 식탁에 둘러앉았다. 내가 경험한 가장 늦은 시간의 야식이었다. 아마도 전날 시골 마을에서 큰 북소리가 들리던 시간이 이 즈음이 아니었을까. 가족들은 하루를 보낼 영양분을 배 속에 가득 채워넣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 모든 상황이 새롭다 못해 낯설었다. 하지만 그 낯섦 속에 있기에 전해져 오는 미세한 자극들, 새로운 순간들에 대처하는 몰랐던 나의 모습을 만나는 일, 그 느낌이 좋았다. 그건 오롯이 떠남으로써만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가족들의 따뜻한 배려 덕분에 나는 아주 편하게 잠들 수 있었다. 아침에 눈을 떠 정신을 차려보니 그곳은 이스탄불의 어느 이름 모를 동네, 메흐멧 씨 댁이었다. 우리는 어젯밤 광장에서 친구가 되었고 이곳까지 왔다. 떠날 채가족들의 따뜻한 배려 덕분에 나는 아주 편하게 잠들 수 있었다. 아침에 눈을 떠 정신을 차려보니 그곳은 이스탄불의 어느 이름 모를 동네, 메흐멧 씨 댁이었다. 우리는 어젯밤 광장에서 친구가 되었고 이곳까지 왔다. 떠날 채비를 하는 내게 저녁 식사도 함께 하고 가라는 말에 나는 그만 고민에 빠졌다. 터키 여행의 마지막 날이었다. 이튿날 아침 일찍 떠나는 비행기를 타야 했던 터라, 아직 채 가보지 못한 이스탄불의 관광지들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계획표에 없는 일로 인해 선물 같은 추억이 만들어졌지만, 나란 여잔 남은 여행의 계획표 또한 쉽사리 포기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미안한 마음에 그럼 저녁에 다시 오겠다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남기고 집을 떠나왔다. 

그런데 이상했다. 다시 원래의 계획대로 나선 관광 일정이 웬일인지 재미있지가 않았다. 없는 게 없을 만큼 크고 유명하다는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ar에서 나는 다시 오늘 여행의 특별함을 기대했지만 내내 무언가를 놓친 채 시장 골목을 헤매고 있는 기분만 안고 있었다. 커피숍에 가만히 앉아 생각했다. 아무래도 그 집에 다시 가야겠다고. 

무작정 어제와 같은 번호의 버스를 탔다. 어떻게 다시 그 집을 잘 찾아갔는지는 아직도 미지수다. 내가 아는 유일한 단서. 어젯밤 아저씨가 수박을 사신 그 슈퍼마켓이 나오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다시 초인종을 눌렀을 때 막내딸이 기뻐 날뛰며 날 반겨주었다. 아마도 내가 다시 나타나지 않을 거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나도 내가 이렇게 다시 오게 될 줄은 몰랐다. 막내딸과 함께 퇴근길 양손 가득 장을 봐오시는 아주머니를 마중 나갔다. 함께 비닐봉지를 나눠 들고 동네를 걸어가던 그 길이 참 좋았다. 낯선 동네가 우리 집 앞 골목처럼 편안하게 다가왔고 서로 별다른 말도 없었지만 어떤 관광지에서보다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부엌에서 함께 준비하고 터키의 가정식 요리들을 맛보았다. 나를 보기 위해 놀러 온 이웃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정신없이 웃고 떠드는 와중에 나는 이렇게 약속을 지키게 된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만난 우리의 순간은 더없이 반갑고 진했다. 

헤어질 시간, 버스 정류장에서 아주머니는 전화번호를 주며 도착하면 전화를 하라고 하셨다. 밤늦은 시간에 가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것 같았다. 우리는 서로의 마지막에 애써 힘줘 웃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한 물방울이 두 눈에 철렁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줄기 호의와 호기심이 이런 인연을 만들 줄은 우리 모두 알지 못했다.

나는 호텔에 돌아와 직원에게 전화를 부탁했다. 난 터키어를 모르고, 이들은 영어를 못하니 대신 내가 잘 도착했다 전해달라는 부탁에 직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What happened to you?”

글쎄, 정말 나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저 난 웃을 수밖에 없었다. 1년 뒤, 나는 아저씨께서 선물해주신 신발을 신고 다시 이스탄불로 향했다. 이번엔 그사이 나의 배우자가 된 남자와 함께였다. 그는 처음 보는 터키 가족들 사이에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더욱 정성껏 마련해준 식탁 앞에서 맛있게 음식을 먹었고, 가져간 젓가락으로 젓가락질 강습을 해가며 서로 신나게 웃었다. 그건 아마도 1년 전의 내 모습과 닮아있었을까. 그렇게 서로의 순간이 서로에게 번져가던 밤이 있었다.

 

라마단

라마단은 이슬람에서 대천사 가브리엘이 무함마드에게 코란을 가르친 신성한 달로 여겨 일출에서 일몰까지 의무적으로 금식하며 하루 다섯 번 기도를 드리는 기간을 말한다. 이슬람 달력에서 9월에 해당하는 달로 이 기간 중에는 금식은 물론 물도 마시지 않으며 기도에 전념한다. 인구의 99%가 이슬람교인 터키에서는 거의 모든 국민이 수행의 시간으로 들어서는 기간이라고 봐야 한다. 관광객들이 많이 다니는 곳은 영향이 없지만 이 기간에는 문을 열지 않는 식당들도 많다. 라마단이 끝난 후 3일 간은 연휴로 지역 간 귀성 행렬이 많아 버스나 비행기 표를 미리 구해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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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정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