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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둔촌주공아파트》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안녕,둔촌주공아파트》
오랫동안 이별을 준비하는 여자가 있다. 헤어짐
을 준비하는 동안 그녀는 세 권의 책을 냈다. 계절마다 산책하며 사진을 찍고, 사람들을 모아 이야기를 나누고, 불꽃놀이도 열었다. 그녀가 길고 긴 작별인사를 보내는 대상은 ‘둔촌주공아파트’다.
텅 빈 아파트의
동공
내가 서울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곳은 개포주공아파트다. 아파트라고 굳이 말하는 건 동네 자체가 거대한 아파트 단지로 구획되기 때문이다. 도곡동, 대치동 사이에 촌스럽게 끼어있는 동네가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던 건 아니다. 개포동엔 세련된 카페 하나 없었다. 젊은이들이 좋아하거나 사진 찍어 올릴 만한 건 거의 없었다고 보면 된다. 오래된 주공아파트는 낡았고, 집을 며칠 비우고 오면 녹물이 나왔다. 추운 겨울엔 수도관이 터져 집안이 물바다가 되는 일을 연례행사처럼 겪어야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오 년 정도 지냈을 무렵, 나는 싫은 점보다 좋은 점을 훨씬 많이 말할 수 있게 됐다. 5층에서도 푸른 잎을 볼 수 있는 커다란 나무가 가득했고, 문을 잠그지 않고도 잠들고 동네 고양이들을 예뻐하는 사람들이 살았다.
피자빵이 맛있는 옛날 빵집이 아파트 상가 안에 있었고, 학교 앞의 화방과 헌책방, 떡볶이 가게가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는 곳이었다. 그런 사실을 알아갈 때쯤 나는 다른 동네로 떠났다. 이사 올 때부터 걸려있던 재건축 현수막이 현실로 다가올 무렵이었다. 개포동을 떠난 후 내내 그리워하던 동네를 오랜만에 찾아갔을 때 아파트 단지는 거대한 외벽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너머로 텅 빈 아파트의 동공을 마주했다. 그때 내가 느낀 무력감은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둔촌주공아파트라는 이름의
작고 거대한 세계
둔촌주공아파트는 1979년 겨울 첫 입주를 시작해 19만 평 대지(서대문구 북아현동의 3배 면적) 안에 약 6,000세대가 사는 거대한 곳이다. 다른 아파트 단지와 다른 점은 1, 2, 3, 4단지가 모두 하나의 울타리 안에 있다는 점이다. 단지 안에 초등학교가 두 곳이나 있고 녹지가 많아 따로 공원을 조성하지 않았다는 사실만 봐도 어느 정도 규모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2016년 9월, 재건축 관리 처분을 앞둔 이곳은 《안녕,둔촌주공아파트》의 저자 이인규 씨의 고향이다.
그녀가 허물어지기 전 아파트의 기록을 남기는 책을 낸 건 아주 사소한 그리움에서 시작됐다. 인규 씨에게 둔촌주공아파트는 인생에서 가장 따뜻한 시절을 보낸 곳, 계절이 바뀔 때마다 풍경을 그려보는 곳, 오랜 시간 떠나와 살았지만 언제나 돌아가고 싶은 곳이었다. 그녀는 주말마다 찾아와 아파트를 둘러싼 풍경을 담기 시작했다. 공감해줄 사람이 있을까, 하는 걱정과는 달리 아파트에 대한 추억을 가진 참여가 이어졌고 신문과 시사 프로그램과도 많은 인터뷰를 했다. 사람들의 오래되고 부정적인 인식에도 계속 답변을 해야만 했다.
“아파트를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있었어요. 미디어에서는 아파트를 회색빛 도시를 만드는 주범이라고 하지만 사실 여긴 정말 푸른 곳이거든요. 길 건너 성내동은 빌라촌인데 오히려 그쪽에서 나무 찾기가 힘들어졌어요. 무조건 아파트가 더 좋다는 건 아니지만 실제 현실과 인식이 다른 건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녀의 말에서 자신이 사는 곳을 분별없이 부정하는 일에 대한 우려가 느껴졌다. 실제로 둔촌주공아파트 뒤편에는 주민들의 힘으로 지켜낸 둔촌 습지(밤섬에 이어 두 번째로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다)와 두 팔을 벌려도 다 안을 수 없는 나무들이 가득했다. 집의 가치는 부동산이라는 개념으로 한정된 지 오래다. 특히 서울 주거 형태의 약 60퍼센트를 차지하는 아파트는 투기와 재건축, 보상금이라는 단어들과 꼭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그녀는 지금이 아파트에서 애정을 갖고 자라난 세대가 목소리를 내는 시점인 것 같다고 했다. 그녀는 가수 검정치마의 ‘내 고향 서울엔’에 쓰인 앨범 커버 사진를 보여주며 밝은 얼굴로 예쁘지 않냐고 되물었다. 사진엔 63빌딩과 여의도 시범아파트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사실 우리 세대에겐 그 모습이 바로 고향의 풍경이거든요. 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아파트의 모습을 색다르게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서 좋았어요. 전에는 아파트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게 조금 어려웠거든요.”
좋은 이별이라는 게
정말 있다면
둔촌주공아파트에 재건축 조합이 생긴 건 17년 전이다. 아파트가 지어진 지 약 20년 정도 됐을 때다. “재건축 이야기가 너무 빨리 나왔어요. 조합이 생기고 관리가 멈췄거든요. 슬픈 건, 사람들이 아파트가 더 낡아 보이게 하려고 노력했다는 거예요. 너무 튼튼하고 멀쩡해 보이면 재건축 얘기가 들어가잖아요. 페인트칠을 새로 하면 금을 막고 잘 안 보이게 해야 하는데, 여기 금 갔다고 티 내는 페인트칠을 해요. 재건축을 앞둔 많은 아파트에서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고요. 낡은 건 사실이지만 재건축에 대한 막연한 기대로 수리하지 않고 버틴 사람들도 많죠.” 그녀가 둔촌주공아파트로 돌아와 다시 구한 집은 건축 후 20년 정도 되었을 때 같은 동에 사는 사람들이 함께 파이프를 교체한 곳이다. 그녀는 녹물 문제를 겪고 있지 않았다.
설계 과정에서 낡을 수밖에 없는 것들의 교체를 쉽게 만들 거나, 소유주가 주거하는 비중이 크던 시기에 수리했다면 어땠을까. 60~70년대 지어진 아파트 단지들이 재건축을 앞둔 상황에서 좋은 본보기를 만들 수는 없을까. 서울시에서 공공건축가 제도를 도입하고 가락시영아파트 재건축에 처음으로 공공건축가가 투입되었다. 그 사례가 긍정적으로 평가되면서 둔촌주공아파트에도 정진국 공공건축가가 참여했다. 인규 씨에게 재건축 과정에서 조합과는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가는지 물었다. 아쉽지만 그녀는 아파트 단지에 관한 전반적인 논의보다는 개별 주거 공간 단위의 논의, 예를 들어 ‘남향, 면적, 4bay 구조’에만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삶의 연속성을
잇는 법
《안녕,둔촌주공아파트》 3호에서는 둔촌주공아파트 단지 내에 있던 12개의 놀이터를 다뤘다. 놀이터가 새롭게 개정된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법’에 따라 철거되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둔촌주공아파트의 명물이었던 기린 미끄럼틀도 기준에 미달하는 부적합시설이 되었다. 다양한 자유곡선을 가진, 큰 기린과 작은 기린 두 마리가 마주 보고 서 있는 미끄럼틀 앞에서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마지막 불꽃놀이를 열었다. 차마 철거 과정을 낱낱이 볼 수 없었다는 그녀의 작업실에는 기린 미끄럼틀의 조각들이 남아있다. “사회가 모든 사람에게 내상을 입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는 내상에 익숙해진 사람들이라 그런지 부서지고 허물어지는 것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죠. 하지만 그런 것에 예민하지 않은 사람들도 어딘가에는 상처가 남아있지 않을까요? 또 원래 다 그런 거라고 생각해버릴 수밖에 없는 관성을 얻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하고요.”
둔촌주공아파트의 명물이었던 기린 미끄럼틀을 철거하기 전, 건축사 권이철은 몇몇 사람들과 함께 미끄럼틀의 도면을 만들었다. 그는 3호에 ‘우리 삶의 터전에 연속성이 있고, 지속가능성을 가지고 있을 때 도시와 우리의 삶은 더욱 건강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는 글을 썼다. 나는 그녀에게 개인 차원에서 삶의 연속성을 지켜나갈 방법을 물었다. “저는 옛날부터 집 안의 사진을 많이 찍어놨어요. 사진을 보면 기억이 많이 나거든요. 기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다음에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도 중요해요. 자신이 발견한 좋은 것들을 이어가는 게 삶의 안정과 연속성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재건축에 관한
몇 가지 질문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전국 2,052개 구역에서 재개발과 재건축 정비사업이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둔촌주공아파트도 관리 처분 일정에 따라 주민들의 이주 시기가 결정된다. 사람이 떠나고 난 자리에는,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을까?
그 많던 나무는 어디로 갈까?
주공아파트에는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나무가 많다. 재건축 아파트는 보통 환경보전평가를 진행한다. 철거가 진행 중인 개포주공아파트 2, 3단지로 다시 돌아오는 나무는 10퍼센트 안팎이라고 한다. 옮겼다가 다시 심는 것보다 새로 사서 심는 게 저렴하기 때문이다. 단지를 떠난 나무는 조합원, 학교에 기증하거나 서울시에서 마련한 ‘나무나눔공간’을 통해 무료로 나눔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알지 못하는 탓에 실제로 이어지는 경우는 저조하다. 인규 씨와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이곳의 나무들이 다시 이곳에, 혹은 어떤 집의 마당에, 혹은 다른 아파트 단지에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 나무가 어디서 온 것인지 작은 표지판을 세우거나 이름표를 달아주면 좋지 않을까요?”
나무 밑에서 쉬던 고양이는 어디로 갈까?
단지를 걷다 보면 적지 않은 수의 고양이들을 볼 수 있다. 이주과정에서 주인에게 버려지는 고양이들의 수 또한 적지 않다고 한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에서는 2016년 1월 12일 재개발 조합 사무실에서 카라와 자원봉사단 단장, 재개발 조합 측이 대화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그들은 각각 단지 내 길고양이 구조 작업 지원(TNR: 중성화 수술), 지하실에서 고양이들이 빠져나올 수 있도록 배려해 철거를 시행하는 등의 일을 나누어 하고 있다. 하지만 고양이를 돌보는 자원봉사단장은 여전히 자원봉사자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고양이 커뮤니티 ‘고양이가 다행이다’에 글을 올려 부족한 사료 후원을 요청하는 상황이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을까?
어쩌면 나무와 고양이들 외에도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소외하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대한 단지 안에서 질문을 던져야 할 대상이 과연 사람과 나무와 고양이들뿐일까? “둔촌주공아파트의 경비원과 주민 사이는 요즘 뉴스에 나오는 삭막함과는 거리가 있어요. 예전엔 유대가 더 끈끈했죠. 재건축 후 오래 일하신 분들이 쌓은 대규모 단지 관리의 노하우도 사라질까 봐 걱정돼요. 그리고 상가에서 만들어진 커뮤니티도 적지 않거든요. 재건축 후에도 사람 사이의 관계망이 지속됐으면 해요.”
《안녕,둔촌주공아파트》는 2013년 5월 첫 호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3권의 시리즈를 발행했다. 영상 작가 라야와 함께 둔촌주공아파트에 살고 있는 집들을 인터뷰하고 사진과 영상으로 남기는 <안녕,둔촌X가정방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4호를 준비 중이다. 재건축을 앞둔, 떠나야 할 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이 집과 동네에 정을 붙이고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한 번쯤 함께 생각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담았다. 현재 소설펀딩사이트 텀블벅을 통해 후원을 받는 중이다.
H. tumblbug.com/dcaptxgajeong
나는 좀더 제대로 된 말을, 뭔가 좀더 확실하게 마음이 담긴 말을 건넸어야 했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내 머릿속에는 도무지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 세상 이별의 대부분은 그대로 영원한 이별이 되기 때문이다. 그때 입 밖에 내지 못한 말은 영원히 갈 곳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중에서
인터뷰를 마친 후 인규 씨와 둔촌주공아파트를 오래 걸었다. 가볍게 한 바퀴 돌까요, 했지만 커다란 단지를 둘러보는 데는 두어 시간이 넘게 걸렸다. 걷는 동안 인사를 건네는 이웃도 적지 않았다. 그녀는 해설가처럼 끊임없이 아파트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단지 안에 있는 두 초등학교 학생들 사이의 미묘한 신경전, 계수나무 아래를 지날 때 맡을 수 있는 달큼한 향, 둔촌 키드로 자라난 어느 밴드, 그들이 앨범 재킷을 찍었던 장소 같은 것. 몇 층 창문에서 나무가 아름답게 보이는지, 어느 동에 앞에 넉살 좋은 고양이들이 낮잠을 자는지, 몇 단지 옥상에서 본 풍경이 아름다운지에 대한 사소한 이야기들. 볕이 길게 들 때 즈음엔 그녀가 잘 아는 상가 분식집에서 떡볶이와 김밥을 먹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무언가를 좋아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했다. 그녀가 둔촌주공아파트를 좋아하는 방식은 어떤 구호나 운동이 아니다. 기록이라는 방식으로 우리가 쉽게 믿어왔던 것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일이다. 그녀는 아파트 단지 안에 어떻게 봄이 오는지 기록한다. 다시 말하자면 그녀의 일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 산수유와 개나리, 목련, 벚꽃, 제비꽃, 민들레, 라일락과 아카시아가 피고 지는 순서를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가 좋아했던 것들에 관한 기록은 무력하지 않다. 하루키의 말대로 이 세상의 이별은 대부분 그대로 영원한 이별이 되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곳을 쓰고, 찍고, 입 밖으로 낸다. 그녀의 고향은, 서울시 강동구 둔촌동 주공아파트다.
에디터·포토그래퍼 이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