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사진작가 김옥선

이방인

사진작가 김옥선

지금 어디에서 답변을 쓰고 계신가요? 그곳의 날씨와 풍경을 들려주세요.
저는 서귀포에서 살고 있고, 집에서 멀리 범섬이 보입니다. 날씨는 태풍 솔릭이 지나간 이후로 뜨거웠는데, 오늘은 흐리고 선선한 바람이 부네요.

작가님 하면 인물 사진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요. 소재를 사람에서 자연물로 확장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국제결혼 한 부부나 제주에 살고 있는 이방인을 주로 촬영했습니다. 이 작업을 한 지 벌써 14년 정도 되었네요. 그런데 ‘No Direction Home(노 다이렉션 홈)’ 작업을 마무리할 때쯤 바라본 야자수가 이방인으로 대체되는, 이방인과 같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자연스레 제주에 있는 야자수를 촬영하게 되었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작업을 시작했을 때 내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뭘까 생각한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물음을 갖고 제주의 나무를 담기 시작하셨나요?
‘Hamel’s Boat(함일의 배)’ 작업이나 ‘No Direction Home’ 작업에 나오는 인물들, 즉 이방인처럼 언어와 문화가 다른 이들을 좀 더 이해해보려는 의도와 그들과 이주민인 저 자신을 동일시하는 감정이 있었습니다. 같은 감정과 의도를 제주에 있는 야자수를 보고 느꼈습니다. 야자수는 외래종이지만 현재 제주를 이국적인 섬으로 만드는 대표적인 상징물입니다. 이런 식물이 제주를 더 제주답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고, 제주 스타일의 집들을 배경으로 자라는 야자수, 종려나무들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여전히 ‘이방인’이라는 소재에서 매력을 느끼신 걸까요?
인물을 촬영하다 나무의 포트레이트Portrait로 이동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나무이거나 사람이거나, 이것이 차이를 만들지 않습니다.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같아요. 물론 제가 촬영한 인물들은 이방인이었고, 나무는 야자수라는 이주식물에서 출발하였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방인과 외래식물이라는 특별한 대상을 통해 인간 전체, 세상 전체를 보여주려 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방인과 귀화식물 등을 통해 저 자신을 보았고, 제가 아닌 이들을 통해 나머지 세상을 이해해보려고 했습니다.

많은 이가 작가님의 나무가 작가님의 사람처럼 보인다고 하더군요.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람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시선, 같은 거리감으로 나무를 바라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데요. 이러한 거리두기를 통해 작가님이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나요?
대상에 거리를 둔다는 것은 작가로서 저의 위치를 관찰자로 상정하는 것이고, 대상을 바꾸거나 변화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대상에 거리를 두고 중립적 태도로 촬영하고, 제 의도를 사진을 보는 사람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촬영한 나무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된 건가요?
제집 주변에 있던 나무들이었습니다. 딸의 학교 통학 시 마주치던 나무들이고, 장 보러 가거나 은행에 갈 때 마주치던 나무들입니다. 나무를 특별히 선정했다기보다 항시 주변에 있던 거라 자연스레 사진으로 촬영했네요. 그 나무들을 보면서 서귀포가 내가 나고 자란 곳과 다르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0여 년이 지나 ‘개발’이란 명목으로 나무가 사라지는 걸 보며 이 나무들이 ‘서귀포’, ‘제주’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작가님의 나무를 보면, 이전 작업과 마찬가지로 환경의 드라마틱한 분위기가 없습니다. 꽤 오래전부터 나무를 촬영해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환경을 통제하기 위해 특별히 신경 쓰신 부분이 있을까요? 특정 계절에만 작업한다는 규칙 같은 게 있을지요.
제 사진에는 드라마틱하지는 않지만 나름의 분위기는 있다고 생각하는데요(웃음).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 11월부터 제주는 날이 흐려지고 뼛속까지 파고드는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주로 이때부터 촬영을 시작하게 되는데요. 이때는 제주의 나무들이 초록 잎을 벗고 가지를 드러내는 시기이기도 하고, 제 생활의 경험상 가장 움츠러들고 가장 납작 엎드려 있으며 희망을 기다리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특히 이 시기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거리에서 촬영하다 보면 주민들의 이상한 시선을 받기도 할 것 같습니다.
맞아요. 나무들을 촬영하다 보면 주로 집주인이나 땅 주인들이 저를 공무원이나 수상한 사람 취급하기도 합니다. 왜 자신의 나무와 집, 땅을 촬영하는지 꼬치꼬치 캐묻습니다. 제가 땅을 사려고 하는 사람처럼 보였는지 저를 따라다니면서 땅을 사라고 조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때 땅을 샀으면 좋았을 텐데요(웃음).

사진집 《Jeju Island》 속 나무들은 ‘The Shining Things(빛나는 것들)’라는 타이틀로 전시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전시명을 ‘빛나는 것들’로 붙인 이유가 궁금합니다. 또한 이들을 ‘제주도’로 다시 정리하고 묶은 이유가 있을지요.
2014년 한미사진미술관에서 했던 전시가 ‘The Shining Things’였죠. 이 제목은 《모든 것은 빛난다》라는 책에서 가져왔습니다. 세상을 향해 자신을 열어두고 관심을 가진다면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빛나는 의미들을 다시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내용에서 제목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일우사진상 출판 부문을 수상하게 되었는데요. 독일의 핫제칸츠 출판사에서 이전 ‘The Shining Things’ 작업과 그 이후 작업들을 묶어 출판하면서, 유럽에서는 제 작업의 지역성을 드러내야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 아래 ‘Jeju Island’란 제목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최근 일우스페이스에서 진행된 ‘The South’ 전시에서는 ‘The Shining Things’, ‘No Direction Home’, ‘Museum of Innocence(순수박물관)’에서 선별된 인물, 나무, 정물 등의 작업을 모아 소개했습니다.

작가님이 품은 일상적인 의문이 작품에 대한 구상으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하나의 시리즈를 끝내고 나면 처음 가졌던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게 되나요?
한 주제로 하나의 연작을 완성하는 데 보통 2~3년 정도 걸려요. 그 정도 시간이면 하나의 주제에 대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되고 동시에 생활도 하게 되므로, 삶과 연관되어 답이라기보다는 주제에 대한 마음 정리가 어느 정도 됩니다.

오래도록 시선을 유지하기 위해 하는 작가님만의 의식, 혹은 습관이 있으신지요.
일상과 작업을 병행하려고 노력합니다. 제주에 친지나 만날 사람이 많지 않아 주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요. 그리고 물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최근 2년 사이에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작가님의 대표적인 시리즈 중 하나가 ‘Woman in a Room(방 안의 여자)’인데요. 혹시 지금, 이 순간의 한국 여성에 대한 어떤 생각, 혹은 계획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제주의 이방인들 작업은 충분히 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야자수로 시선이 옮겨졌는데요. 네, 지금은 한국 여성들에 대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활동하는 작가로 계셔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님의 인생의 지침이 되는 좌우명이나 격언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저도 잘 실천하지 못하는 건데요. Be Wild!

Jeju Island
김옥선 | HATJE CANTZ

가로수가 된 야자수를 보며 이곳이 제주임을 깨닫는다. 제주를 이국적인 장소로 인식하게 하는 나무. 한국에 사는 이방인을 담던 김옥선이 이방인과 같은 시선으로 제주의 나무들을 바라봤다. 숲, 들판, 그리고 흔한 일상에 야자수는 그냥 그렇게 있었다. 그것이 익숙하고도 낯선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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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혜원

사진 김옥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