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정해진 환갑 선물

적금을 넣는 마음으로 차곡차곡

이미 정해진 환갑 선물

친구들의 환갑 선물을 미리 정해두었다. 30년 후에 갑자기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적금을 넣는 마음으로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다.

나는

포토그래퍼가 아니야

취미로 찍어둔 사진 몇 장을 보고 일이 들어왔다. “아, 저는 포토그래퍼가 아닌데.”라고 거절하려 했지만 클라이언트는 괜찮다고 했다. 그렇게 한 차례 일을 한 후, 그걸 보고 또 몇 번의 일이 들어왔다. 포트폴리오가 쌓이면서 이 정도면 ‘포토그래퍼’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아 이름 앞에 은근슬쩍 갖다 붙였다.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포토그래퍼들도 전공자가 아닌 사람이 꽤 있었고, 의사나 건축가나 사서처럼 어떤 자격증이 있어야만 자격이 인정되는 일은 아니었다. 긴 시간 좋아해온 일이라 기술이나 이론적인 면에서도 자연스레 쌓인 지식들이 있었다. 조금만 더 공부하고 조명이나 장비를 사서 본격적으로 하면 얼추 포토그래퍼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포토그래퍼가 되길 포기했다. 돈 버는 일의 범위를 늘린 것은 반가웠지만, 돈을 받고 사진을 찍은 후로 뭔가를 잃어버렸다. 일이라고 생각하자 ‘의지’가 생겼고, 의지를 갖는 순간부터 만나는 풍경과 바라보는 것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사진은 긴 시간 즐겨온 취미였다. 이런저런 취미를 가졌지만, 뭐 하나 끈덕지게 할 줄 몰랐는데 사진 찍는 일에는 질리지 않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 재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가난은 내게 중요한 숙제여서 사진 찍는 일이 들어온다면 거절할 생각은 없다. 다만 자신을 포토그래퍼라 칭하며 욕심을 부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가난이란 숙제를 풀지 못하고 영영 나머지 공부를 하는 삶을 살게 된다고 해도, 긴긴 생의 지루함을 달래줄 무언가로 사진만큼은 남겨둬야지 싶다.

그 남자들의

여자들

여행을 다니다가 카페에서 사진집 하나를 보게 되었다. 넓적한 모양의 책에는 《브라운 자매The Brown Sisters》라는 제목이 붙어있었다. 첫 페이지에는 나보다 조금 어려 보이는 여자 넷의 사진이 있었다. 비슷하게 생긴 것을 보니 자매인 듯했다. 다음 장으로 넘길수록 젊었던 여자들은 늙어갔다. 주름이 깊어가고 옷차림이나 화장의 방식도 미묘하게 달라졌다. 한 장씩 넘길수록 여자들은 조금씩 나이 들고 있었다. 누가 누구인지 알아보기 위해 앞쪽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그들이 나와 비슷한 나이가 되었을 때는 왠지 모를 두려움에 다음 장을 넘기는 속도가 더디기도 했다. 천천히 책장을 넘겨 네 여자가 모두 할머니가 된 모습을 확인하고 사진가의 후기를 읽었다. 미국의 사진가인 니콜라스 닉슨Nicholas Nixon은 자신의 부인과 세 자매를 40여 년간 찍었다. 사진의 구도나 요소에는 특별함이 없었다. 여자 넷의 상반신을 배경이랄 것도 없이 같은 모양으로 찍은 사진들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 좋아하는 사진집이 한 권 생각났다. 책꽂이에서 《윤미네 집》이라는 책을 꺼냈다. 윤미의 아버지인 전몽각 아저씨는 윤미가 태어날 때부터 시집갈 때까지 사진을 찍었다. 윤미가 갓 태어나 엄마 품에 안겼을 때, 학교에 입학할 때, 교복을 입어볼 때, 결혼식을 올릴 때까지의 26년이 그의 사진집에 들어있다. 이 사진집과 여행지에서 본 사진집을 번갈아 떠올리다가 알아차렸다. 아, 이거구나. 그동안 사진을 찍어온 게 즐거웠던 이유.

“왜 장가 못 가느냐고 주변에서 핀잔 받던 내가 어느 사이엔가 1녀 2남의 어엿한 가장이 된 것이다. 아이들을 낳은 후로는 안고 업고 뒹굴고 비비대고 그것도 부족하면 간질이고 꼬집고 깨물어가며 그야말로 인간 본래의 감성대로 키웠다. 공부방에 있다 보면 아이들의 깔깔대는 웃는 소리가 온 집안 가득했다. 그 소리에 이끌려 나도 몰래 아이들에게 달려가 함께 뒹굴기도 일쑤였다. 그야말로 사람 사는 집 같았다. 나는 이런 사람 사는 분위기를 먼 훗날 우리의 작은 전기傳記로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집에만 돌아오면 카메라는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 전몽각, 《윤미네 집》 중에서

네 환갑 선물은

정해졌어

두 권의 사진집에 한동안 사로잡혀 있다가 친구에게 전화했다. “너 환갑 선물은 정해졌어.” 친구는 무슨 소리냐며 웃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외장하드에 친구들의 이름으로 폴더를 만들었다. 그간 찍은 사진들을 뒤적거려 친구의 얼굴이 나온 사진을 골라 담았다. 고르다 보니 너무 많아져서 ‘이러다 환갑 때, 백과사전만 한 책을 만들겠지.’ 싶어서 매해 A컷을 한 장씩만 골랐다. 열여덟에 처음 필름 감는 법을 배웠고, 올해 내 나이가 서른이라 그 당시에 만난 친구의 폴더에는 열세 컷의 사진이 담겨있다.

내 본업은 책을 만드는 일이다. 언젠가 이 일에 싫증을 느낀 적이 있었는데 이 계획에 몰두하다 보니 책 만드는 일에도 흥미를 되찾기 시작했다. 그간 해온 일은 에디터로서의 업무였지만, 환갑이 가까워져 사진집을 만들 때는 누구의 도움 없이 한 권의 책을 만들고 싶어졌다. 기회가 생길 때마다 인디자인도 배우고, 포토샵도 배우고, 인쇄나 제작에도 관심을 둔다. 책의 표지도 미리 구상해뒀다. 양장본에 표지의 폰트는 아는 서체 중 가장 우아한 것으로 고를 거다. 다른 요소는 넣지 않고 깔끔하게 만들되 표지색은 그 친구의 얼굴을 떠올렸을 때 단번에 떠오르는 색으로 해야지. 딱 두 권만 만들어서 한 권씩 나눠 가질 거다. 예순 다섯 살 즈음 되면 책꽂이에 몇 가지 색의 책이 꽂혀있을 거라 생각하니 배가 부르다.

해마다 친구의 사진을 한 장씩 고르다 보면 그들의 얼굴을 오래 들여다보게 된다. 이미 잘 아는 얼굴이고 여러 번 본 적 있는 모양이지만, 그렇게 보다 보면 친구의 얼굴이 낯설게 보인다.

너의 아름다움을

깊이 사랑해왔다고

오랜 친구가 성형수술을 한 후, 이전에 SNS에 올린 사진을 지워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당연한 마음이라 여기며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지만, 슬펐다. 내겐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수술한 친구의 얼굴은 아름답다. 하지만 이전의 얼굴도 내겐 귀하고 귀한 아름다움이었다.

한눈에 반했지만 두 번째부터는 알 수 없는 얼굴이 있고, 횟수를 더하다가 ‘정말 아름다운 얼굴’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꼴이 있다. 마음이 예뻐서 아름다워 보인다고 말하기엔 너무 구체적으로 아름답다. 앞서 말한 친구는 두툼한 눈두덩이가 귀여웠다. 쌍꺼풀 없이 옆으로 긴 눈은 옆에서 계속 바라보면 입체적이라 신기할 때가 있었다. 활짝 웃으면 덧니가 보였는데, 덧니와 말랑한 볼, 동그란 코의 조합이 예뻤다. 무엇보다 그녀는 피부가 하얗고 맑았다. 겨울에는 온 얼굴이 살짝 붉어지는데, 학교 옆 논두렁을 걷다가 분홍색이 된 코를 보고 실없이 웃기를 좋아했다. 왜 웃냐고 물으면 대답은 안 하고 계속 웃기만 했다.

친구에겐 아무 말도 못 하고 사진을 지웠다. 하지만 정리하는 폴더에는 여전히 그때의 사진이 남아있다. 지금은 건네지 않을 거지만, 그녀의 60번째 생일에 사진집을 건넬 때는 꼭 말하고 싶다. “40년 전에 말하고 싶었는데 꾹꾹 참았다가 지금 말하는 건데, 너도 알다시피 나는 변덕이 심하잖아.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어. 시시각각 변하는 아름다움을 좋아하고 그걸 좇으며 살아왔지. 그렇지만 변치 않는 아름다움을 깊이 숨겨두고 아끼는 일을 잊지 않으려고 애썼어. 내가 발견한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이 너와 나,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언제까지고 남아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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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박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