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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이야기는 너무 뻔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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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이야기는 너무 뻔한 이야기이다
마을은 거대한 어촌이었다. 그 마을에서는 공동으로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었다. 아침이 되면 마을의 남자들은 모두 배를 타러 나가고, 여자들은 하루 종일 그물을 손질했다. 매일 아침 아이들은 커다란 강당에 모여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곳은 놀이방이기도 했고, 학교이기도 했다. 네 살부터 열일곱 살까지 모든 아이들이 뒤섞여 놀았다. 때론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관계가 형성되기도 했다. 보육교사가 몇 명 보이긴 했지만, 전문적인 교사는 아니었고, 아이의 부모님들이 순번 체로 돌아가며 교사 역할을 하는 듯이 보였다. 곳곳에서 웃음소리도 들리고 울음소리도 들려왔다.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보면 이곳이 천국인가 싶다가도, 아이들의 비명과 울음소리가 먼 곳에 튕겨 강당을 가득 채울 때는 이곳이 지옥인가 싶기도 했다.
슴가 씨가 이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 그는 여행자 신분이었다. 이곳저곳을 떠돌며 사진을 찍고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 이것이 그가 하는 일이었다. 그는 이곳저곳을 떠돌 때마다 되도록 험하고 좁은 길을 걸었다. 최대한 사람들의 발길이 적게 닿은 곳을 찾아 자신의 필름에 독점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이 마을은 벌써 두 번째 방문이었다. 그가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이곳에 다시 오게 될 것이라 생각지는 못했다. 심지어 그리 만족스럽지 않은 이유로 이곳을 다시 찾을 줄은 몰랐다. 경치가 좋아서, 혹은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이곳을 다시 찾은 것은 아니었다.
처음 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 그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준 것은 아이들의 함성이었다. 아침 해가 뜨기 무섭게 온 마을에서는 “우와아” 하는 함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사방에서 메뚜기 떼처럼 아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는 진심으로 전쟁 혹은 폭동이 일어난 것으로 착각하고 숙소 주변에 숨을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기까지 했다. 그것은 이전에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장관이었다. 수백 명, 아님 수천 명일지도 모를 아이들이 무엇이라도 때려잡을 듯이 소리를 지르며 모두 강당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잠시 주춤거리며 신발을 벗어놓고는 다시 강당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이들이 지나간 자리엔 어마어마한 양의 신발들이 쌓여 있었다. 아이들의 머릿수에 곱하기 2만큼 되는 신발들은 마치 서로의 등을 기어오르려 하는 수천 마리의 거북 떼처럼 뒤집히고, 엉키고, 쌓여 있었다. 슴가 씨는 어느 한구석에 신발을 얌전히 벗어놓고 강당으로 따라 들어갔다.
처음엔 아이들이 모여있는 사진이나 한 장 찍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었는데, 일이 조금 길어졌다. 슴가 씨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곳에 체류하는 기간도 하루 이틀 늘어가기 시작했다. 슴가 씨도 아침이 되면 아이들과 함께 함성을 내지르며 강당으로 뛰어 들어갔다. 잠시 주춤하며 신발을 벗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는 매일 아이들과 놀고, 아이들에게 실뜨기와 야구 등 잡다한 것들을 가르쳐주었다. 그러던 중 그는 아주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이곳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겐 이름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름이 없다는 것은 조금 지나친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정말로 그러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이름 대신 자신의 신발에 적힌 글씨로 불리고 있었다. 어느 누가 적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수많은 아이들의 신발 뒤꿈치엔 모두 다른 글짜가 적혀 있었다. 어느 아이의 왼발에 ‘나’라는 글씨가, 오른발에 ‘비’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면, 그날 그 아이는 ‘나비’로 불리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매일 아침 뒤죽박죽 쌓여버린 신발 속에서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뒤섞여버렸다. 어제는 ‘나비’였던 아이가 오늘은 ‘나방’이 되어버리는 식의 잔혹한 이야기가 매일 아침 반복되었다.
마을엔 탁구를 잘 치기로 유명한 두 소년이 있었다. 슴가 씨가 기억하기로 이 아이들의 이름은 ‘찐찐’ 과 ‘빠빠’ 였다. 그런데 다음 날 두 아이의 이름은 ‘빠빠’와 ‘찐찐’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엔 ‘찐빠’, ‘찐빠’가 되어 있었다. 어제는 누가 이겼고 그제는 누가 이겼는지 아이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할 때 슴가 씨는 차라리 자리를 피했다. “찐찐이가 빠빠를 이겼는데 그 전날엔 찐찐이가 빠빠를 이겼으니까 결국 찐빠랑 찐빠가 찐빠찐빠 아이가?” 한 아이가 이틀 이상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사물도 이렇게 부르지는 않는다. 어른들이 잡아놓은 참치의 푸른 등짝에는 몸무게라도 적혀 있지 않은가? 이곳의 아이들은 무엇으로도 불리지 않는 셈이었다. 이곳 아이들에게 이름은 그 잔인하다는 출석 번호보다도 더 비인간적인 것이었다.
어느 날 슴가 씨는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육아를 담당하는 아주머니에게 물어보았다. 왜 아이들에게 이름이 없는 것인지. 아주머니는 바닥에 물고기와 그물을 그리고는 손짓 발짓을 섞어 설명해주었다. 물고기 그림 옆에는 물음표를 그렸다. 수많은 물고기에게도, 그물에도 이름이 없는데 왜 아이들에게만 이름이 필요한 것인지, 오히려 반문하는 것이었다. 아주 수줍은 얼굴을 한 채로… 슴가 씨는 자신이 그들의 뜻깊은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님 그들이 아이들을 양식장의 치어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것인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그나저나 슴가 씨도 역시 이름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처음에 벗어놓은 그의 신발은 수많은 신발들 사이에 뒤섞여버리고, 사람들은 슴가 씨에게도 매일 다른 이름을 불러주었다. 자신의 본래 이름이 리처드 파커라고 아무리 설명해봐야 통하지 않았다. 슴가 씨는 매일 발을 절뚝거리며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걸었고, 사람들은 그를 다음과 같은 이름으로 불렀다. ‘보통, 부르노, 셈셈, 당귀….’
모든 것을 단념하고, 이름에 대한 궁금증은 모두 잊은 채로 지내길 몇 개월. 어느 날인가 슴가 씨가 그에게 딱 맞는 신발을 골랐을 때, 사람들은 그를 ‘슴가씨’라고 불러주었다. 왼발엔 ‘슴’ 오른발엔 ‘가’라고 적혀 있었다. 그 후로 몇 번 신발이 뒤섞여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그는 대체로 ‘슴가 씨’로 불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는 아주 명확하게 그것이 그의 이름임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가 태어날 때부터 불리던 이름 리차드 파커보다는 ‘슴가 씨’라는 이름이 그에게 딱 맞는 것으로 느껴졌다.
아가들은 뒤뚱뒤뚱하며 아무렇게나 신발을 신는다. 왼발과 오른발을 바꿔가며 신기도 하고, 네것과 내것을 마구 뒤섞어가며 신기도 한다. 처음엔 어떤 신발을 신든 비슷한 느낌이다. 하지만 점차 성장하며 어떤 신발은 불편하게 느끼게 되고, 어떤 신발은 편하게 느끼게 된다. 이것은 10여 년에 걸쳐 아이들이 자신에게 딱 맞는 신발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신발엔 모두 다른 이름이 적혀 있다. 그들이 신고 있는 신발에 적힌 글자가 자신의 이름이 되는 것이며, 이것은 그들에게 딱 맞는 이름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에는 이름이 있다고, 혹은 있어야 한다고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을 한다. 하지만 오랜 시간 물고기를 기다리며 살아온 이들에게 이름은 조금 다른 것이었다. 물고기가 그물에 걸리기까지는 누구의 것도 아니다. 어떤 의미는 그것에 꼭 맞는 이름을 찾기까지 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사람의 이름도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그들은 어떠한 의미가 그것에 딱 맞는 이름을 입을 때까지 아무것도 아닌 채로 놔둘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슴가 씨는 새로 얻게 된 ‘슴가’라는 이름이 자신과 딱 맞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런 이름으로 살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그의 진지한 사진을 감상하다가도 사진 옆에 조그맣게 적힌 그의 이름을 보고 피식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결국 이름을 바꿀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마을로 돌아오게 된 것이었다. 그는 이른 새벽의 함성과 함께 신발을 벗어 던지고 강당으로 뛰어 들어갔다.
어떻게 되었을까? 이것은 너무나 뻔한 이야기이다.
글·그림 한승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