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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웅·박수연 — 노네임프레스
어떤 문장은 한 사람을 가두기도, 때로는 넓히기도 한다. 디자인 스튜디오 ‘노네임프레스(NO-NAME)PRESS’의 박수연과 장영웅은 스스로를 하나의 명사로 규정하기보다, 특정 단어에 머물지 않고 경계를 유연하게 오가는 방식을 택했다. 대전이라는 단단한 중심축 위에서 지면과 공간을 디자인하고, 도시의 숨은 시각 문화를 기록하며 영역을 확장해 온 두 사람. 그들은 장르와 지역이라는 조건에 타협하지 않고 자신만의 작업을 이어간다. 스스로를 가두던 문장을 지워낸 자리에 비로소 가장 자신다운 필체를 채워 넣기 시작한, 노네임프레스의 여정을 들여다보았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사무실이 대전역과 무척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있네요.
영웅 맞아요. 저희가 대전역 근처에 자리를 잡은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해요. 저희는 업무 특성상 서울이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일이 잦은 편이거든요. 저는 거의 주말마다 서울에 가서 지내다가 일요일에 다시 대전으로 내려오는 삶을 이어오고 있고요. 일로 대전을 오시는 분들도 유성구나 KAIST 쪽은 대중교통으로 단번에 가기가 조금 까다로운 편인데, 여기는 역에서 내리면 금방이니까 다들 편해하세요.
수연 저는 제가 그동안 다니던 일터 중 어느 곳보다 주변에 먹을 게 많아서 너무 좋아요(웃음). 원래 대전 원도심 중에서는 대흥동 쪽이 카페도 많고 훨씬 활성화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이 주변에도 예쁜 카페가 점점 많아지더라고요. 원도심의 활기가 여기까지 내려오는 느낌이에요. 무엇보다 주변에 재미있게 갈 수 있는 공간이 많다는 게 큰 장점이죠. 멋있는 편집샵이나 찾아가기 좋은 독립서점 같은 이웃이 가까이에 있거든요. 저희 일 특성상 인쇄 거리가 가까운 것도 편하고, 조용하지만 고립된 곳은 아니라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에요.
팀의 작업들을 미리 살펴보았는데, 다루는 매체나 영역의 경계가 무척 넓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노네임프레스는 스스로를 어떤 팀이라 정의하시나요?
영웅 사실 저희를 어떤 팀이라고 한마디로 소개하는 게 가장 어려워요. 그동안 작업한 결과물을 온라인에 많이 아카이빙해 두는 편도 아니고요. 게으른 탓도 있지만(웃음), 저희를 좀 더 적확하게 보여주고 싶다는 열망이 크기 때문이기도 해요. 처음에는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로 시작했어요. 하지만 요즘은 다른 팀들도 디자인뿐 아니라 기획, 영상, 글쓰기 등 다양한 정체성을 만들어가잖아요. 저희 역시 자연스럽게 외연이 넓어졌는데, 여기에는 지역이라는 지리적 특성도 한몫했어요. 로컬에 있다 보면 저희가 지향하는 미세한 감각을 온전히 공유할 수 있는 협력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 작은 차이들을 메우고 커버하려다 보니 결국 저희가 직접 움직이게 되더라고요. 그래픽 디자인으로 시작해 전시, 상품, 콘텐츠 기획으로 영역이 확장됐죠. 때로는 지역의 시각 문화를 연구하고 기록하는 자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하고, 영상을 직접 기획하고 제작하기도 해요. 디자인 스튜디오라기보다 종합 기획사처럼 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2014년 무렵, 대전에서 대학교 다니던 시절에 그래픽 디자인 모임에서 처음 만나셨다고요. 서로의 첫인상은 어땠어요?
수연 ‘타불라라사Tabula Rasa’라는 모임에서 서체를 만드는 워크숍을 하게 되면서 처음 알게 됐어요. 당시 저는 3학년이었고, 영웅 님은 이제 갓 입학한 1학년이었죠. 저희 학교가 그래픽 디자인에 관해 친절하게 이것저것 알려주는 분위기는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갈증이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공부하던 중이었는데, 신입생이 벌써부터 정보를 주도적으로 찾아다니며 워크숍에 참여하는 모습이 무척 적극적으로 보였어요. 학교 다닐 땐 제가 졸업하고 영웅 님이 군대에 가느라 접점이 아주 많지는 않았지만, 늘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고 ‘어떻게 저런 정보를 벌써 알았지?’ 싶을 만큼 신기하고 인상 깊은 후배였어요.
영웅 워크숍에서 처음 본 수연 님은 공간의 터줏대감 같은 선배였어요. 컴퓨터를 새로 사면 와서 다 세팅해 주고, 작업실에 가면 항상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사람 있잖아요. 모르는 걸 물어보면 쓱 다 알려주는, 꼭 토토로 같은 선배로 기억해요. 그렇게 인연이 시작되어 수연 님은 먼저 서울로 취업하셨고, 저는 남아서 학교생활을 이어갔죠.
처음에는 두 분이 작업실만 함께 쓰려고 하다가, 이후 본격적으로 함께 일을 하게 되셨다고 들었어요.
수연 코로나 시기에 회사를 옮겨 다니다가 취업을 하려면 기간이 길어질 것 같다는 생각에 다시 대전으로 내려왔어요. 그때 혼자 쓰기엔 조금 큰 작업실을 구하게 됐는데, 마침 영웅 실장님도 학교 작업실을 정리하던 시기여서 함께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정말 단순히 공간만 같이 쓰는 정도였어요. 당시 영웅 실장님은 학부 시절 결성했던 ‘노네임 워크숍NO-NAME WORKSHOP’ 활동의 연장선에서 지역에서 디자인 작업을 이어가고 있었고, 저도 프리랜서 일을 하고 있었고요. 그런데 함께 작업하다 보니 좋아하는 책이나 시각물, 디자인을 바라보는 감각이 꽤 비슷하다는 걸 자연스럽게 느끼게 됐어요. 서로 작업을 도와주기도 하고, “이런 건 어때?” 하고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도 잘 맞았고요.
영웅 오래가는 듀오들을 보면 대부분 대화를 정말 많이 나누는 사람들이더라고요. 부부나 커플이 함께 일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비슷한 가치를 지향하며 끊임없이 대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저와 수연님은 커플이나 부부는 아니지만요(웃음). 당시 저는 서울에서 사람들과 좋아하는 것을 공유할 때와 대전에서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의 온도 차를 크게 느끼고 있었어요.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범주가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죠. 대전에서는 서로 좋아서 막 신나게 얘기를 나누는 게 아니라, 제가 무언가를 꺼내놓으면 “아, 그게 좋은가 보다.” 하고 큰 감흥 없이 받아들이는 분위기였으니까요. 제가 일종의 ‘레퍼런스 인간’처럼 되는 느낌이었는데, 수연 님과는 달랐어요. 당시에 어떤 디자이너님 이름만 툭 나와도 그가 어떤 작업을 했는지 바로 통했죠. 작업 스타일이나 성격이 맞고 안 맞고를 떠나서, 이름 하나에 같은 이미지를 떠올린다는 사실만으로도 함께할 이유는 충분했어요.
수연 결정적인 계기는 함께 진행한 ‘플립 꿈돌 프로젝트’였어요. 1993년 대전 엑스포의 캐릭터인 ‘꿈돌이’를 활용한 지역 상품을 만드는 프로젝트였는데요. 저는 처음에 여행용 플립 노트 하나 정도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영웅 실장님과 의견을 나누니 “걷는 꿈돌이로 렌티큘러 카드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낮과 밤 버전으로 나눠보자.”, “AR 필터까지 연결해 보면 재밌겠다.” 하면서 아이디어가 계속 확장되는 거예요. 그렇게 하나로 시작한 기획이 점점 커졌고, 그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때 ‘이 사람과 앞으로도 같이 일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대기업과의 협업부터 미술관 도록, 신용카드 디자인, 자체 프로젝트까지 작업의 영역과 경계가 정말 다양해요. 클라이언트 성격도, 작업 조건도 매번 다를 텐데 노네임프레스의 작업을 관통하는 정체성이나 타협하지 않는 기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영웅 저희는 직관이 대부분의 기준이 되다 보니 그동안 어떻게 해왔는지 생각해 보느라 조금 어려운 질문이기도 한데요. 크게 거쳐 왔던 몇 가지 기준은 있어요. 처음 저희가 지역에서 디자인 스튜디오를 시작했을 때 ‘지역의 스튜디오들은 어떻게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지?’ 주변을 둘러보는데 마땅히 사례를 삼을 만한 레퍼런스가 잘 안 보이는 거예요. 누굴 따라가야 할지 모르겠다면, “그럼 우리가 레퍼런스가 될 수 있게 잘해봐야겠다.”라는 생각이 첫째 기준이었어요. 둘째 기준은 “지역이니까 이 정도면 됐어.”라는 타협은 절대 없다는 거였어요. 일하다 보면 피곤하고 체력적으로 부칠 때가 있잖아요. 당시에는 저희가 진행하는 그래픽 디자인 작업에 대해 높은 완성도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요구하는 클라이언트가 많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신생 스튜디오이기도 했고, 그렇게 중요한 사업이 아니기 때문이었겠죠. 그런데 저희와 협력하는 클라이언트의 규모나 성격이 어떻든, 디자인 작업을 대하는 태도는 똑같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담당자가 원하는 적정선의 수준을 알더라도, 제가 본 가장 괜찮은 프로젝트보다도 더 잘해내야 한다는 에너지가 있었어요.
초기에는 스튜디오의 기반을 다지고 존재감을 증명하기 위한 단단한 기준들이 필요했군요. 그렇다면 시간이 흐르고 연차가 쌓이면서 새롭게 더해진 기준도 있을까요?
영웅 초반에는 우리가 얼마나 전달을 잘하고 작업을 잘하는지 보여주는 게 목표였다면, 후반부에 와서는 조건과 환경을 많이 보기 시작했어요. 하나의 프로젝트에는 실무자, 디자이너, 대중 그리고 책임자까지 저마다 다른 서너 개의 ‘욕망의 층위’가 존재하거든요. 이 층위들을 관통해서 소통시키는 게 디자이너의 역할이에요. 그래서 저는 “조건과 환경이 이래서 작업이 안 나온 거야.”라고 탓하는 건 디자이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이라 생각해요. 저희 생각을 대단히 투영하기보다, 주머니 속에 수많은 생각을 넣어두었다가 그 조직의 환경과 필요를 파악해 유연하게 꺼내어 맞춰가는 거죠.
수연 사실 저희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타협을 되게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처음 일을 많이 안 해봤을 때는 고집을 부린 적도 있어요. “이 컬러는 꼭 이대로 가야 합니다.”라거나, 디자인 레이아웃이 깨질까 봐 피드백을 받으면서도 그걸 지키려고 버텼죠. 하지만 요즘은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방향이 있다면 존중하면서, 우리가 최소한으로 지켜야 할 선만 남겨두고 유연하게 움직여요. 예산이 적다면 오히려 예산 범위를 먼저 여쭤본 뒤에, 그 안에서 취할 건 취하고 뺄 건 과감히 빼면서 대안을 찾는 식으로 조율하죠. 환경과 정해진 조건 안에서 타협하는 법을 배운 셈이에요.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제 안에서 가장 중요하게 지키려고 하는 기준은 작업을 대하는 ‘재미와 욕망’이에요. 아무리 클라이언트 일이어도 그때그때 프로젝트에 맞는 맥락이나 욕망에서 뻗어 나오는 줄기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그 핵심 줄기만큼은 지키면서 계속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다행히 디자이너인 저희가 그런 단단한 중심을 쥐고 있으면, 클라이언트분들도 “그런 이유라면 납득이 되네요.” 하고 기꺼이 넘어가 주시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두 분 모두 대전에서 자라신 걸로 알고 있어요. 유년 시절의 기억이나 풍경이 지금 이 지역에서 시각 문화를 다루는 데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도 궁금해요.
수연 대전이 과학 도시잖아요. 중학생 때 친구들과 KAIST에 가서 두뇌 관련 임상실험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어요. 실험 참여비로 3만 원을 준다고 해서 덜컥 신청했죠. 단어 두 개를 보고 생각을 할 때 뇌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촬영하는 실험이었는데, 대전이라서 가능했던 조금 독특한 유년의 기억이에요.
그 3만 원으로 무얼 했어요(웃음)?
수연 다 같이 KAIST까지 택시를 타고 가는 바람에 정작 차비로 돈을 다 날렸어요(웃음). 그리고 예전엔 ‘꿈돌이랜드’라는 놀이공원이 있었어요. 주말에 할 게 없으면 무작정 가서 롤러코스터나 바이킹을 타곤 했죠. 사실 어릴 땐 꿈돌이를 특별히 의식하며 자라진 않았는데, 돌이켜보면 저는 꿈돌이와 함께 성장해 왔더라고요. 또 대전 거리를 걷다 보면 건물에 ‘추교은’ 장인께서 손수 작업하신 독특한 필체의 시트지 글자들이 유독 많이 보이거든요. 대전 일대에서 간판과 유리에 글자를 새기는 시트지 작업을 해오신 분이에요. 시트지 롤을 어깨에 지고 지나가시던 장인분을 길에서 종종 마주치기도 했어요. 어릴 땐 그저 흔한 풍경인 줄 알았는데, 서울의 을지로나 문래동에 가보니 이런 글자가 없더라고요. 다른 지역과 비교해 보면서 비로소 ‘아, 이게 대전만의 독특한 시각적 유산이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죠.
영웅 저희가 1993년 대전 엑스포를 온전히 겪은 세대는 아니지만,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엑스포의 잔여물과 문화를 누리며 자란 세대예요. 주말마다 대전사이언스페스티벌에 가면 ‘아이스크림 튀기기’ 같은 과학 실험을 보여줬고, 머리 위로는 열기구 체험이 있었고, 자기부상열차 철도가 존재했어요. 저한테 대전의 가장 낭만적인 기억은 공공자전거 ‘타슈’와 함께해요. 단돈 몇백 원이면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탈 수 있어서, 친구들과 타슈를 빌려 타고 벚꽃이 만개한 갑천 천변을 온종일 돌아다니곤 했어요.
대전이라는 로컬을 배경으로 삼은 디자이너로서, 외부의 시선은 결코 포착할 수 없는 디테일이나 강점이 있을 것 같아요.
영웅 저는 꼭 지역 디자이너만 그 지역의 프로젝트를 맡아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서울의 역량 있는 디자이너들이 내려와서 치밀하게 리서치하고 멋진 결과물을 낼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로컬 디자이너의 강점은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과 미래의 영역’에 있다고 봐요. 그 디자인을 통해 생산된 무언가를 매일 눈으로 보고 실질적으로 겪으며 살아갈 사람이 바로 이곳의 디자이너거든요. 그렇기에 이 프로젝트의 내년과 그 이후를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되죠.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신이 진심으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셈이에요. 꿈돌이를 다룰 때도 마찬가지예요. 그저 유행하는 귀여운 로컬 소재로만 소비하기보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꿈돌이가 더 가치 있게 알려지고 색다른 제안이 되기를 바라요. 모두가 비슷비슷한 방식으로 로컬을 소비할 때, 저희는 그 관성적인 풍경 속에 툭 불거진 돌부리 같은 프로젝트를 하고 싶어요. 지역에 사는 디자이너이기에 품을 수 있는 이 진심 어린 태도가, 저희가 만들어내는 결정적인 차이라고 생각해요.
그 디테일한 시선과 진심이 고스란히 이어진 실체가 바로 《감필라고로 가는 100가지 방법》 아닐까 싶어요. 대전의 숨은 면면을 보여주는 방대한 이 미션 북은 어떻게 처음 기획하게 되셨나요?
수연 《감필라고로 가는 100가지 방법》도 처음부터 책으로 시작한 프로젝트는 아니었어요. 대전디자인진흥원의 ‘디자인 주도 로컬 패션 상품 개발 지원 사업’으로 티셔츠와 가방 정도의 상품을 만드는 프로젝트였거든요. 그런데 단순히 상품 몇 개를 만드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꿈돌이와 꿈씨 패밀리의 세계관을 더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서 진행한 자체 프로젝트죠. 꿈돌이 세계관을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설정이 굉장히 촘촘해요. 꿈돌이와 꿈순이뿐 아니라 자녀들인 꿈빛이, 꿈결이, 꿈누리, 꿈별이, 꿈달이 같은 캐릭터들도 있고요. 그런데 사람들은 대부분 꿈돌이 정도만 알고, 그 뒤의 이야기는 잘 모르더라고요. 저희도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처음 알게 된 설정이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 오히려 이 캐릭터들을 더 살아 있게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죠.
영웅 ‘감필라고’라는 단어가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아서 제목 지을 때 고민이 많았어요. 직관적으로 ‘꿈씨 패밀리와 함께하는 대전 여행 100선’이라고 지으면 당장 팔기는 쉽잖아요(웃음). 하지만 1993년 대전 엑스포 당시, 한국천문연구원장님까지 참여해 온 인력이 애정을 쏟아 만든 오리지널 세계관을 그대로 묻어두긴 너무 아까웠어요. 감필라고는 꿈돌이의 고향이자, 백조자리 알비레오 별을 공전한다는 설정의 행성이거든요. 저희 멤버들과 콘셉트를 회의하다가 흥미로운 시선이 나왔어요. 대전에서 나고 자란 꿈돌이의 자녀들은 어쩌면 부모의 고향을 가보지 못한 ‘이주민 2세’ 같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왠지 모르게 대전을 ‘노잼’이라 느끼고 가본 적 없는 우주 고향을 동경하는 아이들에게, 부모인 꿈돌이가 “그럼 고향에 데려다줄 테니, 대신 대전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100가지 미션을 먼저 해결해라.” 하고 제안하는 서사를 짰어요.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이민자 관점의 이야기를, 저희가 지향하는 가장 귀엽고 위트 있는 방식으로 풀어낸 거죠. 단순히 유명 관광지를 짚어주는 여행서와는 내용이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칼국수로 줄넘기 100번 성공하기’처럼 해낼 수 없는 미션도 있고요(웃음).
수연 맞아요. 일반적인 여행 책을 기대하고 사신 분들은 “이게 뭐야?” 하실 수도 있어요(웃음). ‘중앙로 지하상가 끝자락에서 오늘의 운세 보기’처럼 뻔한 관광지가 아닌 대전만의 숨은 풍경이 재밌게 녹여져 있기도 하고요.
영웅 사실 이 책은 만들고 나서 완전 적자를 본 책이에요(웃음). 하지만 그럼에도 저희에겐 집착적으로 매달려 완성해 낸 소중한 작업이에요. 이 책 한 권이 굳건히 존재해 주어야 비로소 노네임프레스가 대전이라는 로컬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기록하는지, 저희가 하는 많은 활동이 비로소 정리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지역의 오래된 캐릭터인 꿈돌이를 다시 디자인 상품으로 꺼내오면서, 세대와 지역을 넘어 매력적으로 기능하게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영웅 플립 꿈돌 프로젝트를 할 때 제가 정말 많이 들었던 말이 있어요. “로컬 상품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겠다.” 지역 굿즈를 보면 늘 익숙한 이미지만 반복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냉정하게 말해서 그 지역 사람도 관심 없는 상품에 외지인이 매력을 느낄 리 만무하잖아요. 진짜 매력적인 상품이 되려면 시각적인 아름다움으로 사람들 시선을 먼저 ‘포착’하고, 촘촘한 기획과 스토리로 이 제품을 왜 사야 하는지 ‘납득’시켜야 해요. 시각적으로 예쁜 상품은 이미 너무 많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왜 이걸 좋아하게 되는지, 왜 사고 싶은지를 설명해 주는 건 결국 스토리와 기획이라고 생각했어요. 플립 꿈돌 프로젝트도 출발은 단순했어요. 예전에 일민미술관에서 플립북 전시를 본 적이 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언젠가 우리도 해보자.” 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처음에는 그냥 꿈돌이로 플립북을 만들면 귀엽겠다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그렇게 하면 단순히 한 번 보고 끝나는 상품밖에 안 되니까, 여기에 ‘여행’이라는 키워드를 붙였어요. 저는 지역이라는 건 결국 여행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낮 버전과 밤 버전 노트를 따로 제작한 것도 그런 이유였어요. 검정 노트에 은색 인쇄를 넣어서 야경을 걷는 느낌을 담고 싶었어요. 대전의 야간 풍경까지 여행의 감각으로 연결해 보고 싶었던 거죠. 지금 시대에는 단순히 ‘예쁜 상품’만으로 승부하기가 정말 어려워요. 어디에도 없는 압도적인 물성이나 형태를 만들려면 엄청난 자본이 필요하거든요. 그렇기에 오히려 “왜 이런 형태여야 하는가?”를 설명할 수 있는 기획과 스토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대전에서의 작업이 무척 즐거워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지역에서 회사를 운영하며 겪는 채용의 어려움도 있을 것 같아요.
수연 맞아요. 이전까지는 주로 본가가 대전이거나 이 지역에서 학교를 나온 분들이 주로 지원을 해줬어요. 그런데 유독 어떤 해에는 면접 약속을 잡거나 최종 합격이 되어도, 출근 직전에 “다른 곳에 합격해서 못 가게 됐다.”며 이탈하는 경우가 연달아 세 분이나 계셨죠. 그땐 정말 ‘지역이라서 채용이 이렇게나 어려운 걸까.’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영웅 해가 갈수록 그래픽 디자이너를 지망하는 지원자들의 수가 많아져서 공고를 올리면 한 명을 뽑는 공고에 정말 많은 숫자의 지원자가 몰리기도 해요. 다만 저희가 지향하는 가치와 디자인 톤 앤 매너를 섬세하게 구현해낼 수 있는 동료를 찾는 과정에서, ‘서울이 아닌’ 지역이라는 점은 선택하는 지원자에게는 장벽이 되는 것 같아요. 어쨌든 디자이너의 아이디어나 미적인 훈련은 많은 것을 경험하는 데서부터 시작하는데, 아무래도 수도권이 아니라면, 비교적 근처에서 경험할 수 있는 문화적 인프라가 부족하다고 느껴지니까요.
교통편이 좋아져서 빨리 오갈 수는 있게 됐지만, 청년 디자이너들에게는 여전히 심리적인 장벽이 존재하나 봐요.
영웅 실질적인 조건을 따져보면 지역이 훨씬 이득일 수도 있어요. 서울에 비해 주거 고정비가 절반 이상 줄어드니까요. 하지만 청년들이 선뜻 대전을 선택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삶과 문화의 부재’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 것 같아요. 연고가 없는 낯선 도시에 내려오면 당장 퇴근 후에 만날 친구나 가족이 없을 수 있잖아요. 게다가 서울에서 열리는 큰 전시나 페스티벌, 트렌디한 디자인 이벤트를 퇴근길에 가볍게 누릴 수 없다는 소외감이 신입 디자이너들에게는 꽤 커다란 허들로 작용하는 거죠. 끊임없이 트렌디한 감각의 중심에 서 있어야 한다고 종용하는 사회에서, 서울과 멀어진다는 건 마음에 제법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니까요. 결국 ‘내가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 같아요. 지금 저희 회사에는 안산 토박이로 자라 같은 지역에서 학교를 다니다 오신 분도 있고, 대전에서 학교를 다니고 본가인 여수로 내려가 있다가 저희 공고를 보고 다시 올라오신 분도 있거든요.
수연 그래서 저희는 금요일만 되면 다들 바빠져요(웃음). 주말이면 다들 서울이나 본가로 가기 때문에 저희 회사는 금요일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무조건 칼퇴근하려고 해요. 다들 7시 19분, 7시 59분 같은 기차 출발 시간을 분 단위로 정확하게 꿰고 있기도 하고요.
종종 미디어에서는 지역에서의 삶을 여유롭고 낭만 가득한 풍경으로 그리기도 하지요. 실제로 대전에서 일하며 마주한 로컬의 진짜 얼굴은 어떤 모양이었나요?
영웅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로컬의 낭만을 이곳에서 찾으려면 견뎌야 하는 현실적인 시간이 너무 길어요. 지역에서 마주해야 하는 현실은 ‘익명성이 요구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인구 140만의 대전이라 해도 이 신에서는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좁은 네트워크거든요. 서울은 수많은 다이어그램이 겹쳐 있어서 내가 어디 한곳에 속하지 않아도 존재할 수 있는 빈틈이 있지만, 지역은 모수가 적다 보니 몇 안 되는 네트워크에 속하지 못하면 영원히 겉돌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존재해요. 어디를 가든 혼자가 아니라는 안정감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모두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부담이 되기도 하죠. 또 대부분의 산업이 인건비를 줄이는 과정에서 기획자나 디자이너 중 한쪽이 소외되곤 하는데, 지역은 그게 특히 더 심해요. 디자이너가 기획까지 도맡아 하거나, 반대로 디자이너를 그저 값싸게 부릴 수 있는 손으로 취급하는 경우도 있죠. 그래서 저희는 디자인 스튜디오로서 그런 방식과는 다른 사례를 계속 보여주고 싶어요. 스튜디오도 이런 언어를 쓸 수 있고, 이런 방식으로 일을 확장할 수 있고, 이런 식으로 제안할 수 있다는 걸요.
그 좁고 단단한 세계 속에서 노네임프레스가 건강하게 뿌리내릴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영웅 지역이라는 곳은 경험이 조금만 쌓이면 예산 구조나 매년 반복되는 사업들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해져요. 그 뻔함이 주는 안정감 덕분에 오히려 그를 기반으로 더 나은 것, 혹은 더 재밌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 ‘틈’이 생기는 거예요. 감사하게도 그 틈에서 저희는 이 안에서 저희와 결이 맞는 좋은 동료들을 알아보고 만났어요. 시청이나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분들부터, 지역 대학의 교수님과 학생들, 이웃으로 활동하고 있는 소상공인, 작가들까지 마음이 통하는 이들과 나름의 ‘굿 플레이스Good Place’를 구축한 셈이죠. 이 굿 플레이스에서 단순한 시각적인 디자인 작업을 넘어, 유의미한 무언가를 ‘함께 만들고 있다’는 감각이 이 곳에서 계속 일하게 하는 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대전과학예술비엔날레 스핀오프 전시에서 지역 스튜디오 세 곳이 협력한 사례가 인상적이었어요. 수도권에 비해 인프라가 좁다는 한계를 오히려 로컬의 연대로 풀어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런 공동 작업 방식이 결과물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영웅 서로 뭘 잘하는지 명확하게 알고 인정하는 데서 오는 분업이 가능해졌어요. 사실 디자인 스튜디오는 대개 디자인을 더 잘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강해서 다른 스튜디오와 섞이기 쉽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저희와 함께하는 스튜디오들은 각자의 전문성을 존중하면서 아주 유연하게 움직였어요. 한 팀이 감당하기 버거운 방대한 범주의 마케팅이나 전시 공간, 출판 등의 영역을 세 팀이 유기적으로 호흡을 맞춰 채워나가며 만듦새의 완성도를 극대화하는 식이죠. 각자 도생해도 될 일인데 이렇게까지 한다는 건, 다들 이 지역에 제대로 된 생태계를 만들고 싶다는 진심이 있기 때문이에요. 지역이기 때문에 가능한 면도 있는 것 같아요. 지역도 마찬가지긴 하겠지만, 서울의 매커니즘은 기본적으로 경쟁 체제잖아요. 게다가 시장이 너무 거대해서 두세 팀이 판을 주도하거나 생태계를 새로 만들어가는 게 불가능해요. 반면 지역은 비교적 시장의 크기가 작기 때문에, 뜻이 맞는 몇 팀만 모여도 생태계에 유의미한 발자국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디자이너라는 직업적 정체성을 잠시 내려놓고, 대전이라는 도시가 개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어요.
수연 저한테 대전은 비로소 ‘나답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선물해 준 곳’이에요. 처음 서울을 떠나 대전으로 내려가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전화를 정말 많이 받았어요. 주변에서 “대전에서 무슨 할 일이 있다고 내려가느냐, 쉽지 않을 거다.”라며 말리셨고, “아직은 더 경력을 쌓고 독립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셨죠. “왜 벌써 포기하냐.”는 식의 이야기도 들었고요.
사람들 무의식에는 지역으로 간다는 게 무언가를 이루지 못해 밀려난다는 일종의 차선책이라는 시선이 은연중에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수연 맞아요. 주변의 그런 시선들을 마주하다 보니, 내가 사회가 정해놓은 정상성의 궤도에서 이탈해 포기하는 건가 싶은 불안감이 들기도 했어요. 말씀드린 것처럼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상황을 겪으면서 프리랜서 생활이 길어졌고, 월세 보증금까지 깎아가며 버티다 보니 몸과 마음이 지쳐 본가인 대전에서 잠시 쉬어가려던 것뿐이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결국 서울이나 지역이나 일하는 환경은 비슷한 것 같고, 각자의 힘듦이 있는 것 같아요. 만약 서울에 계속 남았다면 원룸 생활을 전전하며 나를 끊임없이 소진했을 텐데, ‘아, 내가 서울에서 여러 회사를 다녔던 게 결국 대전에서 이렇게 나답게 일하려고 그랬던 거구나.’ 싶기도 해요. 저는 원래 눈치를 많이 보고 사람들한테 맞춰주는 편이에요. 그래서 제 의견을 많이 포기할 때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이야기를 훨씬 많이 하면서 일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어요. 제가 직접 참여하지 않는 프로젝트라도 “이건 어떤 것 같아?”, “저건 저런 느낌 아닐까?” 하면서 계속 묻고, 같이 만들어간다는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인지 모든 작업에 자연스럽게 애정이 생기더라고요.
수연 씨에게 대전이 나다움을 찾아준 일터라면, 영웅 씨에게 이 도시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영웅 저한테 대전은 배경이자 환경, 조건이에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줄곧 이곳에서 자랐으니 제 삶에서 가장 많은 기억이 쌓인 곳이고, 내가 가장 잘 아는 지역이기도 하죠. 저는 무언가를 ‘온전히 알고 있다’는 감각이 주는 안정감이 정말 어마어마하다고 생각해요.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가더라도 저는 새로운 풍경이 주는 자극에는 별로 감흥이 없어요. 오히려 그 동네에 사흘쯤 머물면서, 어느 순간 지도를 보지 않고도 목적지까지 능숙하게 찾아갈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행복을 느끼죠. 그렇게 안정된 곳에서 필요할 땐 익숙함을 충실하게 활용하기도 하고, 가끔은 한계를 뛰어넘기도 해요.
잘 알고 있는 배경이기에, 오히려 그 위에서 변주할 수 있는 자유가 생기는 거군요.
영웅 일종의 기준점이 되어주는 거죠. 만약 제가 서울에 있었다면 그 기준점이 조금 흐려졌을지도 몰라요.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에서 활동했다면, 내 업을 증명해 내기 위해 끊임없이 더 많은 디자인을 그려내고, 더 많이 보여주고, 나를 어떻게든 더 드러내는 것에만 온 정신을 집중했을 것 같거든요. 기준점이 오직 ‘디자이너’라는 직업 자아밖에 남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여기서는 대전이라는 커다란 기준점과 배경 위에 디자이너인 내가 서 있어요. 덕분에 디자이너라는 자아가 나를 집어삼킬 만큼 비대해지지 않죠. 내 직업에 과하게 집착하지 않으면서, 주어진 조건에 맞춰 나라는 존재를 끊임없이 새롭게 베리에이션해 나갈 수 있는 곳, 저한테 대전은 그런 곳이에요.
에디터 황진아
포토그래퍼 최모레 사진 제공 노네임프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