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사람의 일

가락시장 사람들

이것은
사람의 일
가락시장 사람들

어릴 적 가락시장 주변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그때는 아무것도 몰라서 시장이라면 그저 다 같은 물건을 파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보다 조금 더 큰 다음 그곳이 도매시장이라는 것을 알고는 물건을 저렴하게 판다는 것까지도 이해하게 됐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 나는 이제야 그곳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모두가 가락시장을
이용하고 있다

1985년 6월,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전에 없던 규모의 시장 하나가 생겨났다. 16만 평에 달하는 넓은 부지에 용산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상인들이 모두 모여 새 터를 꾸렸다.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 우리나라 최초의 공영도매시장의 탄생이었다. 예전에는 위탁판매라고 해서 생산자들이 유통 상인들에게 판매를 위탁했는데, 그때는 농부들의 힘이 약해 제대로 된 값을 보장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서울시가 서울시농수산물식품공사를 만들고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를 보호하는 공정한 시장을 연 것이었다. 가락시장 이전의 유통 상인들이 모두가 나빴던 것은 아닐 테지만 당시의 신문 기사를 보면 유독 ‘공정한 거래’와 ‘대금도 제때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눈에 띈다. 그만큼 당시로써는 여러 가지 면에서 가락시장이 꼭 필요한 공간이었던 듯싶다.

단순히 생각하기에 가락시장은 그저 물건을 대량으로 싸게 구매할 수 있는 곳으로만 인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깊게 안을 들여다보면 이곳이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밀접하게 우리 생활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서울에 사는 사람이 동네 마트에서 채소와 고기를 산다고 가정해보자. 그 사람은 단 한 번도 가락시장을 이용한 적이 없다고 생각할 테지만, 그는 절반의 확률로 가락시장을 이용한 사람이다. 다시 말해 수도권에 공급되는 농수산물 전체 유통량의 50퍼센트가 가락시장을 통과하여 우리의 식탁에 오른다는 이야기이다. 가락시장에서 매일같이 진행되는 경매를 통해 소비자가 지불하는 물건의 가격이 결정된다는 것도 생각해볼 일이다. 그러니 우리는 간접적으로나마 가락시장의 소비자인 셈이다.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

가락시장의 많은 일들은 도시가 잠든 새벽 시간에 주로 이루어진다. 밭에서 물건을 싣고 서울로 올라온 차가 시장에 도착하는 오후 다섯 시부터 채소류를 시작으로 동이 터오는 아침까지 경매를 통해 주인이 정해진다. 그것들은 다시 학교 급식실이나 식당, 커다란 마트, 각종 가공제품 공장으로 이동하여 그날의 식탁에 오르게 된다. 경매라는 제도가 다소 생소해 알아보니 일본과 대만 등 몇몇 국가에서만 진행된다고 한다. 커다란 농지를 가진 외국의 경우 생산자의 힘이 세기 때문에 대형 유통업체와 직접 거래해도 무리가 없지만 보다 영세한 우리나라 생산자들은 보호가 필요하다는 이유다. 생산자는 가락시장 내 공인된 아홉 개의 도매시장법인과 손을 잡고 그들에게 위탁하는 방식으로 스스로의 권리를 찾게 된다.

도매시장법인은 경매 업무 이외에도 정가수의매매라는 제도를 통해 식품 가격의 변동폭을 줄이는 데 힘쓴다. 가령 날씨가 가물어 그해 모든 농사가 흉작이 된다면 농산물의 가격은 폭등하고 그 피해는 온전히 소비자의 몫이 될 것이다. 이때 도매시장법인이 생산자와 중도매인 간의 중간자로서 이견을 조율하고 전체 농산물 가격 안정에 중심축이 되는 것이다. 사실 이런 이야기들이 모두에게 흥미로운 소재는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우리들의 일’은 진행되고 있으며, 그것을 맡아서 대신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한 번쯤은 생각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생산자

땅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

“농사는 사람이 짓는 게 아니라 하늘이 짓는 거예요.”

‘사농공상’이라고 해서 옛날에는 농사를 짓는 사람이 글을 읽는 사람 다음으로 대접을 받았지만 지금의 농부는 그저 지루한 일을 하는 사람들처럼 여겨지곤 한다. 실제로 그들의 깊은 얼굴을 보면 하나의 농산물이 상자에 담겨 시장에 나오기까지 몇 개의 계절 동안 전전긍긍했을 것이 그려진다. 처음 시장이 생겨 위탁판매를 했을 때는 생산자는 가장 약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영세해 힘이 없었고, 몇몇 유통 상인들의 횡포에 시세가 얼마인지, 자신들의 물건이 몇 개나 팔렸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가락시장에 경매 제도가 생기면서 거래는 보다 투명해졌고, 그들 역시 적절한 보상을 받으며 인정받기 시작했다.

검사원

소비자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들

“간혹 결과에 반발하는 출하자도 있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안전이 우선이죠.”

안전성 검사원을 만나기 위해서는 몇 개의 출입문을 거쳐야 한다. 그만큼 엄중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방증이다. 그들은 가락시장에 모인 농수산물 약 80여 개 품목에 대해 안전성 검사를 실시하는데, 깻잎과 시금치같이 잎을 섭취하는 엽채류를 중점적으로 검사하며 농약과 중금속, 미생물의 정도가 기준치 이상을 넘기는 경우에는 유통 및 출하 제한 조치를 취한다. 물건은 폐기하고 한 달간 해당 상품 출하자의 모든 상품 출하를 금지하는 것이다. 출하된 식품이 경매를 거쳐 유통되기까지 채 반나절도 걸리지 않기 때문에 최대한 빠른 검사가 필수적이다.

경매사

생산자와 중도매인의
저울 같은 사람들

“경매사는 누구보다 시세를 정확하게 알고 빠르게 예측해야 해요.”

경매사는 생산자의 물건이 조금 더 높은 가격으로 팔릴 수 있도록 응원하는 존재다. 경매가 시작되면 그들은 자신만의 추임새로 연신 경매를 독려하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그 입에 집중하게 한다. 하나의 품목이 낙찰되기까지의 시간은 길어야 5초를 넘기지 않는데, 경매사의 말이 더 빠르고 화려하게 이어질수록 경쟁에 불이 붙는다. 물론 그 모든 과정을 통제하기 위해 경매사는 누구보다 정확하게 물건의 품질과 수량, 현지사정 등을 파악해야 한다.

중도매인

생산자와 소비자의
연결고리가 되는 사람들

“이 정도면 괜찮은 물건이죠. 계절이 좋아서 좋은 물건이 많이 들어와요.”

처음에는 중도매인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지 못했는데 가락시장에서 이틀간 머물며 그들이야말로 유통의 중심이라는 것을 알았다. 경매를 통해 생산자의 상품을 대량으로 매입해 대형 마트나 소매상에게 판매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다. 경매가 시작되면 중도매인들은 리모컨을 손에 쥐고 서로 미묘한 신경전을 벌인다. 긴장의 시간들. 소비자의 경우 언뜻 유통의 과정이 줄어들수록 저렴한 가격으로 물건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그들이 없다면 좀 더 나은 품질의 상품을 만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역원

눈에 띄지 않지만
꼭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

“우리 같은 사람은 인터뷰 안 해요. 여섯 시 뉴스 나올까 무서워.”

가락시장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기 가장 힘든 사람들은 바로 하역원이다. 그들은 늘 지게차를 타고 분주하게 움직이며, 해가 가장 높은 시간부터 새벽까지 무거운 짐 속에 파묻혀 뜨겁게 일한다. 몇 가지 궁금한 것들을 물어봐도 질문과는 상관없는 푸념들을 먼저 털어놓는다. 늘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만 감당해야 하는 것도 결국 자신들의 몫이라고, 스스로를 가락시장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 가장 대접을 못 받는 처지라고 말한다. 거칠게 말하기는 하지만 어쩐지 그들이 참아왔을 힘든 시간들이 보이는 듯해 쉽게 말문을 뗄 수가 없다.

직판상인

소비자와 만나는 첫 번째 사람들

“이곳에서 15년 동안 과일을 팔았어요. 노하우? 손이 조금 더 빨라졌다는 것?”

가락시장의 판매상인들은 지금 이사 중이다. 과거 도매 유통과 판매가 한 공간 안에서 이뤄졌을 때는 소비자뿐만 아니라 상인들 역시 각종 위험에 노출되기 일쑤였다. 멀리에서 농산물을 실은 커다란 트럭이 지나다니고, 날씨가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계절과 싸우며 일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가락시장 시설현대화사업 후 생긴 가락몰에서 상인들은 보다 쾌적하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가락시장에서
산 물건들

가락시장의 커다란 부지를 돌며 몇 개의 탐나는 먹거리를 골랐다. 저렴한 가격도 매력적이지만 목소리가 커다란 상인들 사이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으면 사람 사이에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01 고구마 | 가격 2kg 5천원
02 토마토 | 가격 10kg 8천원
03 바나나 | 가격 20개 5천원
04 망고스틴 | 가격 20개 1만2천원
05 파프리카 | 가격 6개 1천원
06 브로콜리 | 가격 3개 1천원

처음에는 이곳을 그저 서울 어딘가에 있는 커다란 시장 하나쯤으로만 생각했는데, 그 넓고 오래된 땅을 직접 걷고, 바라보고,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문득 ‘사람’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리고 감히 사람은 살기 위해 먹고, 그 밥을 벌기 위해 다시 근근이 사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소설가 김훈은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글에서 ‘모든 ‘먹는다’는 동작에는 비애가 있다’라고 썼다. 내가 이틀간 시장 곳곳을 돌며 사람들의 표정에서 발견한 것 또한 일종의 비애였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들이 모두 슬프고 힘들게 산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삶의 쓴맛을 아는 사람들이 모여 시장을 지키고, 다시 시장은 밥상에 올라 누군가를 움직이게 한다. 어쩐지 거창한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 같지만, 꼭 필요한 곳에서 나 대신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을 보며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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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건태

포토그래퍼 안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