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OUND
CLUB ONLY
SERIES
MEET AROUND
SUBSCRIBE
SHOP
비로소 홀로 서기
어느덧 40대 중반을 향해 가다 보니 인생에 대한 이런저런 질문을 받고는 한다. 대개는 방향을 잡지 못해 갈팡질팡하거나 딛고 서 있는 자리가 불안해 생기는 물음들이다. 결혼 관련 궁금증도 마찬가지다. “대체 어떤 사람과 결혼해야 하나요?” 이런 질문, 내가 여러 차례 받은 만큼 여러분도 궁금할 거라고 생각한다. 비혼주의를 고수하는 청년이 급증하고 있다고 해도 누군가는 결혼하고 백년가약을 맺는다. 아니, 대체 그들은 어떤 확신이 들었길래 둘이 한평생 함께하기로 다짐한 걸까. 비혼주의만큼이나 과거에 비해 급증한 게 이혼율이다. 이걸 부인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결혼하면서 동시에 이혼까지 고려하는 커플이 존재할 리 없다. 모두 자기가 죽기 직전까지 저 사람과 함께라면 ‘대체로’ 행복할 거라고 여기면서 식장 문을 두드린다.
주위를 쭉 한번 둘러본다. 엑스레이처럼 사람을 투시할 수 있는 심미안 따위 내게 없지만 어쨌든 ‘대체로’ 행복해 보이는 커플을 몇몇 떠올려본다. 물론 이게 정답이라고 말할 순 없다. 하긴, 마빡에 “우린 행복해요”라고 써 붙이고 다니는 커플을 찾아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들이 행복해 보인다는 건 이를테면 나만의 느낌이다. 단, 이 느낌은 나에게 소중하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썼듯이 “느낌은 희미하지만 근본적인” 거라고 믿는 까닭이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혼자 있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과 하라.” 결혼한다고 해서 샴쌍둥이가 되는건 아니다. 둘 중 하나는 출장을 떠날 수도 있고, 피치 못한 사정으로 주말부부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가족이 너무나 소중해 친구들과의 약속을 통째로 불참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누군가는 (시간의 차이는 있더라도) 혼자 남게 된다. 이 혼자일 때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물론 예외가 있을 수 있다. 다만, 모든 조언에는, 설사 그 조언이 거의 진리에 가깝다 치더라도 필연적으로 구멍이 뚫려 있음을 알아주기 바란다. 구멍 없는 조언은 없다. 즉, 모든 예외의 수를 상쇄할 수 있는 진리라는 건 유니콘과 같다. 바꿔 말하면 혼자 있기를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일지라도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영위하는 케이스가 어디엔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거다.
내 주변에도 한 명 있다. 그는 엄청난 마당발이다. 친구가 진짜 많다. 선후배까지 합하면 차고도 넘친다. 일주일이라는 시계가 그에게는 턱없이 부족해 보일 정도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을 어떻게든 내서 추억을 공유한다. 그러니까, 결국 태도의 문제라는 거다. 어쩌면 체력의 문제일수도 있고.
여기까지가 결혼에 대해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코멘트다. 자기 혼자서도 잘 먹고 잘 노는 사람과 만나라. 혼자 있기만 하면 불안을 이기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사람, 글쎄, 이런 사람도 결혼하면 어떻게 변할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10대, 20대 시절만으로 족하지 않은가. “인생이란 어차피 독고다이”라는 격언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따르르르릉. 전화가 온다. “오늘 저녁은 혼자 먹어. 나 일 늦게 끝나.” 기회다. 그간 도무지 갖지 못한 나만의 시간을 만들 수 있는 찬스다. 아, 고민된다. 저녁은 뭘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날까. 돈가스? 라면? 국밥? 평양냉면? 기왕 이렇게 된 거 돈을 좀 써서 스시나 오랜만에 먹어볼까? 이거 참, 세상은 넓고 맛있는 건 많다. 저녁 먹으면서는 뭘 할까. 가는 길에 책방에 들러 책을 하나 살까? 아, 어제 미처다 못 본 드라마가 있었지. 정주행 각이다. 다 먹고 집에 가면 씻고 소파에 누워서 책이나 봐야지. 나는 집에서 함부로 앉아 있지 않는 사람이니까.
최근 들어 청첩장 받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실제로 코로나19가 일상화되면서 미루고 미루던 결혼식을 이제야 치르는 커플이 많다고 한다. 부디 그들이 서로 간의 영역을 존중하면서 오랜 시간 행복하기를. 여기, 결혼을 앞두었거나 결혼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결혼 노래 두 곡을 모아봤다. 둘 다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마냥 아름답기만 한 곡은 아님을 미리 밝혀둔다. 시작부터 끝까지 완전무결한 결혼 생활이란 영화에서나 가능하다는 걸 간접적으로나마 알려주고 싶은 의도다.
미국과 미국 밖의 온도 차가 극심했던 곡이다. 미국에서는 빌보드 싱글 차트 85위로 폭망했는데 미국밖,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거의 국민 팝송 대접을 받았다. 물론 미국에서도 라디오를 중심으로 인기가 상당해 22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고 한다. 급격한 순위 상승은 없었지만 꾸준한 라디오 에어플레이로 이를 상쇄한 것이다.
내용은 솔직히 좀 무책임하다. 그래서 재미를 유발하는 곡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밤 우리는 지금 어리석은 짓을 하려고 하지 너랑 결혼하고 싶은 거 같아 네 눈빛 때문인지 아니면 취해서인지 그게 무슨 상관이야 너랑 결혼하고 싶은 거 같아”
나는 나이트에서 부킹으로 만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즐겁게 잘 살고 있는 부부를 안다. 한데 술 취한 정도가 뭐 대수일까.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결국 가장 중요한 건 결혼 이후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에 있을 것이다.
일차원적으로 봤을 때 이것은 사랑 노래다. 지금 들어도 슈퍼-모던한 기타 리프 위로 흐르는 가사를 일단 읽어보라. “당신의 모든 숨결 당신의 모든 걸음 나는 그걸 지켜볼 거예요” 그러나 작곡자인 스팅Sting이 고백했듯이 ‘Every Breath You Take’는 “정말 고약한 노래”다. 그의 말을 좀더 들어본다. “어떻게 보면 사악하다고까지 할 수 있어요. 질투와 감시, 소유욕에 관한 거니까요.”
우리는 보통 영미권 음악 팬들은 가사의 깊은 의미까지 이해하고 들을 거라고 지레짐작하곤 한다. 절대 그렇지 않다. 런던 경찰의 무자비한 폭압에 대한 반항으로 쓰인 클래시The Clash의 ‘London Calling’이 축구장에서 응원가로 소비되는가 하면 ‘미국은 망했다’는 주제를 지닌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의 ‘Born in the U.S.A.’가 미국 찬가로 둔갑해 불린 적도 있다. 이 곡도 유사한 경우다. 이 지독한 노래는 발매 이후 결혼식 입장곡으로 미국과 영국에서 널리 환영받았다.
어쨌든 반면교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골랐다. 질투와 감시, 소유욕을 통해 병드는 건 결국 상대방이 아닌 나 자신일 테니까.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꽤 적확한 결혼식 입장곡인가 싶기도 하다.
글 배순탁(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