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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로알드 달Roald Dahl.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모두 기묘하고 이상하다. 난 그가 초대하는 세계로 언제나 기꺼이 걸어 들어간다.
어린 시절 얌전하고 소심했으며 어른들에게 순종적이었다. 나는 숙제를 늘 성실히 해 와서 친구들에게 내 것을 빌려주던 아이. 처음으로 준비물을 학교에 가져오지 않은 날, 공중전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엉엉 울었으며 중국집에 전화로 배달 주문을 할 땐 대본을 적곤 했다. 그런 나의 취미는 꽤나 거칠었다. 남자아이들과 뒤섞여 매일 축구를 하거나, 영어 학원 위층 가정집 초인종을 몰래 누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곤 했다. 모범생이라는 갑갑한 틀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걸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자유분방한 성향이 혼란스러웠을지도. 그런 나는 삐딱하게 세계를 응시하는, 재치 있는 이야기를 좋아했다. 자주 귀 기울이곤 했던 사람은 ‘이야기꾼’이라 불리는 영국의 한 아저씨. 아저씨가 들려주는 괴상한 소설에 나는 자꾸 빠져들었다. 처음 만난 책은 이상한 모자를 쓰고 이상한 말투로 말하는 거대한 초콜릿 공장의 주인이, 공장으로 초대하는 황금 티켓을 초콜릿 포장지에 숨긴다는 이야기. 아저씨의 발칙함과 블랙 유머, 상상력이 자꾸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었다. 흔히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는 아름다운 성을 배경으로 순하고 고운 공주가 등장하는데, 그의 이야기는 달랐다. 뚱뚱한 아이가 식탐을 부리다 거대한 파이프로 빨려 들어가거나, 비상한 머리를 가진 초능력 소녀가 부모와 선생님을 골탕 먹인다. 책장을 펼치면 나는 거인과 소인, 거대한 복숭아, 수십 마리의 거북이, 마법이 가득한 세계로 종종 옮겨지곤 했다.
그의 이름은 로알드 달. 20세기를 살아간 영국의 작가다. 소설 《찰리와 초콜릿 공장》, 《마틸다》, 《제임스와 슈퍼 복숭아》, 《내 친구 꼬마 거인》 등이 모두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가장 대담하고, 신나고, 뻔뻔스럽고, 재미있는 어린이 책’을 썼다고 평가받는 작가. 그는 전형성을 조금씩 비트는 일에 재주가 있었다. 로알드 달이 들려주는 이야기에서는 어린이도 어른도 일반적인 모습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어떤 아이는 어른보다 의젓하고 지혜로우며, 어떤 아이는 마냥 순진하기보다 욕심이 가득하며 악하다. 또 어떤 어른들은 아이 같은 순수한 눈빛을 띠거나, 성숙함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이 탐욕에 사로잡혀 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누구나 뻔한 모습으로 그려지지 않는 이 세계에서, 나는 마음껏 일탈하고 마음껏 상상할 수 있었다. 그가 우스꽝스럽고 엽기적인 이야기만 늘어놓는 괴짜라고만 생각한다면 아쉽다. 로알드 달의 작품을 읽다 보면 우리 사회가 어떤 모습이며, 어린이가 크는 세상은 어때야 할지 헤아려보게 되니까. 로알드 달이 무대 위에서 유머와 상상, 독창성을 저글링할 때, 함께 손뼉 치며 지켜보는 객석에는 영화계 거장들도 있다. 그의 소설을 재료 삼아 자신의 개성을 더해 영상으로 구현한 감독들이다. 로알드 달의 소설과 짝이 되는 영화 세 편을 이어 꺼내둔다.
Book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가족들과 함께 좁은 집에서 살아가는 가난한 소년 ‘찰리’, 어느 날 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소식이 들려온다. 기발한 초콜릿을 만드는 ‘윌리 웡카’ 씨가 자신의 공장으로 어린이 다섯 명을 초대한다는 것. 그는 황금빛 초대장을 윌리 웡카 제품 안에 숨겨 두었다고 발표한다. 가족의 끼니가 먼저기에 쉽게 돈을 쓸 수 없던 찰리지만, 우연한 기회로 마지막 티켓을 발견하는 행운을 얻는다. 견학 날이 되어 공장 앞으로 모인 당첨자들은 찰리를 제외하고 어딘가 삐뚤어진 아이들이다. 식탐이 과한 아이부터 게임 중독자, 갖고 싶은 모든 걸 손에 넣으며 살아온 아이까지. 윌리 웡카 씨의 안내로 공장을 등장인물들. 예상치 못한 모험과 위험에 빠지며 공장주의 비밀스러운 계획으로 걸어 들어간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로알드 달의 기막힌 상상력이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다. 10초마다 색이 바뀌는 캐러멜, 깃털 모양 사탕, 모니터로 손을 넣을 수 있는 텔레비전, 호두 까는 다람쥐를 지켜보다 보면 그의 머릿속에서는 매일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건지 궁금해진다. 이 기상천외한 세계를 영화로 구현하는 일이 가능할까 싶지만, 팀 버튼Tim Burton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영화 〈가위손〉(1990), 〈크리스마스 악몽〉(1993), 〈빅 피쉬〉(2003), 〈유령신부〉(2005)등을 보여줬던 그는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막론하고 어두운 유쾌함, 환상적인 상상을 영화로 펼쳐내는 재주꾼. 팀 버튼이 재해석한 윌리 웡카의 초콜릿 공장은 기묘하고 아름답다. 원작 소설과 달리 윌리 웡카에 새롭게 부여된 설정, 약간 다른 모습의 결말을 찾아본다면 더욱 흥미로울 것이다.
Book
—《찰리와 초콜릿 공장》 로알드 달 글, 퀸틴 블레이크 그림, 지혜연 옮김 | 시공주니어
Movie
가난한 살림에 보탬이 될 거라며 간신히 얻은 티켓을 다른 사람에게 팔겠다는 찰리. 그런 소년에게 함께 사는 조지 할아버지가 단호하게 일러준 말이다. 세상에는 돈보다 소중한 가치가 있음을 알려주는 장면. 소설에는 없고 영화에서만 등장하는 대사다.
윌리 웡카의 공장에는 거대한 초콜릿 강이 자리한 방이 있는데, 실제 자연처럼 나무와 꽃, 풀이 가득하다. 이것들은 먹을 수 있는 초콜릿이나 사탕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팀 버튼은 촬영 세트장 또한 식용 가능한 소품들로 제작했다. 강물 역시 실제 초콜릿으로 만들려 했으나 제작비 문제로 비슷한 점도와 색깔을 내는 용액을 제조했다는 후문. 완벽한 연출을 위한 제작진의 노력이 숨겨진 장면이다.
Movie—팀 버튼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
Book
살면서 단 하루도 일한 적이 없는 부자 백작, ‘헨리 슈거’. 그는 여느 때처럼 도박을 하다, 우연히 그곳에서 책 한 권을 발견한다. 책 내용은 이러하다. 외과 의사 ‘존 F. 카트라이트’가 투시력을 가진 신비로운 인도인 ‘임흐라트 칸’을 만나, 수행을 거쳐 자신도 투시력을 얻었다는 것. 같은 능력을 원하던 헨리 슈거는 그날부터 훈련을 시작하고, 마침내 얻은 힘으로 도박에서 큰돈을 번다. 그러다 어느 날 몸에 이상을 느껴 자신의 몸을 투시해, 심장에 문제가 있음을 알아낸다. 생이 덧없다 느낀 헨리 슈거는 그 후 전 세계에 초호화 고아원을 짓기 시작한다.
팀 버튼처럼 블랙 코미디와 상상력을 작품 세계에 풀어놓는 감독은 바로 웨스 앤더슨Wes Anderson. 영화 〈로얄 테넌바움〉(2001), 〈다즐링 주식회사〉(2007),〈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 등을 만든 그는 개성 넘치는 미학의 소유자다. 완벽하게 조율된 색감과 좌우 대칭은 그의 지문과도 같은 연출법. 2023년, 웨스 앤더슨은 로알드 달의 소설 〈헨리 슈거〉, 〈독〉, 〈백조〉, 〈쥐잡이 사내〉를 각색해 작품당 15분 남짓의 단편 영화 네 편으로 선보였다.
긴 대사와 수시로 바뀌는 세트장은 연극을 보는 듯한 기분을 자아낸다. 한 인물이 여러 배역을 연기하는 것도 큰 재미다. 로알드 달과 웨스 앤더슨의 만남이라니, 난 여전히 이 둘의 이름이 나란히 적힌 것만 봐도 설렌다.
Book
—《헨리 슈거》 로알드 달 지음, 허진 옮김 | 교유서가
Movie
투시력을 얻은 헨리 슈거가 카지노에서 엄청난 실력으로 활약하자, 딜러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장면. 소설 속 문장을 그대로 말하는 듯, 헨리 슈거는 영화 내내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쓰인 대사를 발화한다. 헨리가 일인칭 시점으로 말하는 대사는 작은따옴표 안에 적힌다.
임흐라트 칸이 외과 의사 존 F. 카트라이트에게 자신의 투시력을 설명하고, 함께 듣던 의사가 어떤 훈련을 통해 그 능력을 얻게 되었냐고 묻는다. 임흐라트 칸이 대답하지 않자, 의사들은 기묘하다는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한다. 영화에서는 이처럼 제4의 벽을 허무는 연출이 반복된다.
Movie—웨스 앤더슨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2023)
Book
주인공 ‘여우 씨’는 아내와 새끼 여우 네 마리와 함께 살아간다. 인근에는 못되기로 소문난 농장주 세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보기스, 번스, 빈. 가족을 먹여 살리려던 여우 씨는 이들의 농장에서 몰래 가축들을 훔치곤 했다. 범인을 알게 된 농장주들이 가만있을 리 없다. 보기스, 번스, 빈은 총을 들고 여우 씨를 쫓지만 실패한다. 결국 이들이 도둑을 잡기 위해 택한 방법은 굴착기로 여우들이 사는 산을 파헤치는 것. 생태계는 파괴되고 산은 쑥대밭이 된다. 하지만 여우 씨는 굴하지 않는다. 굴을 파고 또 파서 농장까지 닿는 길을 만들고, 다양한 동물이 어울려 살아가는 땅속 마을을 만든다. 농장주들의 횡포 속에서 이들은 결국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인간의 탐욕이 산이며 바다를 모두 헤집어 놓는 시대. 악독하게 그려지는 보기스, 번스, 빈을 지켜보면 그들은 나와 전혀 상관없는 소설 속 인물일 뿐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테다. 우리 삶에서 고통받는 ‘여우 씨’는 누구이며, 나는 내 것을 주변인과 나누며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는 교훈적인 소설.
이 작품 역시 웨스 앤더슨 감독의 손에서 영화 〈판타스틱 Mr. 폭스〉(2009) 로 재탄생했다. 영화는 ‘미스터 폭스’라는 이름으로 다시 불리는 여우 씨에게 사실 도둑질 전과가 있었고, 이제는 지역 신문 칼럼니스트로 살아간다는 설정을 새롭게 부여했다. 스톱 모션으로 제작되어 모든 동물이 복슬복슬한 인형으로 등장한다. 러닝타임 내내 눈이 즐겁고 웨스 앤더슨의 천재성을 느낄 수 있다.
Book—《멋진 여우 씨》 로알드 달 글, 퀸틴 블레이크 그림, 햇살과나무꾼 역 | 논장
Movie
땅굴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미스터 폭스는 일상이 무료하기만 하다.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던지 언덕 위 나무집을 사겠다 결심한 그는 변호사 오소리 ‘배드거’를 찾아간다. 그 집은 농장과 가까우니 절대 살아서는 안 된다며 말리는 배드거. 미스터 폭스는 충고를 무시하며 위험천만한 일상으로 걸어 들어간다.
미스터 폭스에게 피해를 입어 화가 난 농장주들이 동물들의 터전을 파괴한 뒤 굴 출입구를 감시한다. 꼼짝없이 굴속에 갇힌 동물들 앞에 놓인 위험은 탈수와 허기. 오소리 배드거가 분노를 표출하자 미스터 폭스는 꾀를 낸다. 그가 말한 특별한 방향은 바로 악당들의 농장. 땅굴의 끝에서 그들은 식량을 발견한다.
Movie—웨스 앤더슨 〈판타스틱 Mr. 폭스>(2009)
에디터 차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