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로가 기억하는 이야기

우리들의 청춘이 지나간 자리

현재의 순간은 자꾸만 어디론가 증발해 버리고 미래였던 순간은 어느새 내 앞에 도착하여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다. 그 기분은, 막 잠에서 깨어난 눈으로 얼굴 위에 쏟아져 내리는 아침 햇빛을 마주하는 것과 어딘가 조금 비슷하다. 너무 밝고 눈이 부시다. 준비된 얼굴로 아침을 맞이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싶지만, 어찌 되었든, 나는 어느새 내 앞에 도착해 빛을 내고 있던 청춘의 순간이 적잖이 당혹스러웠음을 고백한다. 소중한 것을 갖기엔 겁이 많고 미숙했던 시기였다. 우리들은 그 시절의 한 부분을 노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원효로에서 보냈다. 주목할만한 것도 아기자기한 멋도 없는 곳이지만 우리는 원효로에 모였다.

원효대사가 마신 물

원효로의 명칭은 신라 시대의 승려 원효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우리에게 원효는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을 마신’ 원효대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에 대한 설화는 너무나 인상 깊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원효대사가 동굴에서 잠을 자던 중에 갈증이 나서 물을 마셨는데, 다음 날 그 물이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인 것을 알게 되면서 마음가짐에 따라 썩은 물도 꿀물처럼 느껴진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이야기. 하지만 그때의 우리는 원효대사처럼 도를 닦지 않아서였을까. 젊음에 대한 마음가짐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모이지 않았다. 지난날의 나를 도무지 좋아할 수 없었고 과거의 실수들은 계속되는 추궁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밤에 어쩌자고 그 물을 마셨나, 그 물은 도대체 무엇이었나.’ 어떠한 깨달음도 없이 나와 내 친구들은 밤이 새도록 촛불처럼 떨고 있었다.

그리고 2010년 겨울, 나는 아주 쓴 물을 마시고 말았다.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만 것이다. 4년 동안 사귄 남자친구와 이별하는 것은 쓴 물을 삼키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애인임과 동시에 친구가 되는 바람직한 관계에서 친구도 애인도 아닌 허무한 관계가 되어버린 우리. 모든 것을 얼어붙게 했던 그 겨울밤에 양말도 신지 않은 채, 원효로에 서 있던 나.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원효로. 그때에 촛불 같은 친구들이 주변에 있던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원효로에 사는 친구와 부둥켜안고 원효로 길바닥에 짙고 둥근 물방울을 여러 개 남기고 나서야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를 잡아탔다. 그리고 택시 안에서 간신히 승려의 마음이 될 수 있었다. 그때, 택시 아저씨가 이런 말을 했다.
“날씨가 많이 춥죠. 근데 겨울에 추운 건 당연한 거예요.”

원효로 커피

공덕을 지나 이태원으로 가는 길, 용산경찰서와 용산구청을 가르는 길인, 원효로는 어찌 보면 조금 애매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젊은이들은 이태원으로 가고 회사원들은 공덕으로 가버리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스치는 곳이지만 멈춰 바라보는 곳은 아니다. 그러니 원효로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운동화를 신은 주민들이다. 그래서 이곳의 주말 모습과 주중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기대도 실망도 주지 않는 일정한 분위기가 일주일 내내 이어진다. 주말에 화사한 얼굴을 가졌다가 이내 우중충한 모습이 되어버리는 그런 공간은 주말이 지나면 문득 찾아온 누군가에게 실망감을, 남은 이들에게 공허함을 주기도 하는데, 적어도 원효로에는 그런 것이 없다(물론, 기대를 갖고 방문한다면 실망하며 돌아갈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천천히 걸어 다니는 원효로의 인도는 대부분 초록색 블록으로 맞춰져 있는데 무늬가 복잡하지 않아 설령 고개를 숙인 사춘기의 소년이나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이 오랫동안 땅을 보며 걷는다 해도 어지럽지 않을 것 같다. 원효로 가변에 세워진 건물들 뒤에는 주택가가 있는데, 길에 사는 고양이가 마음을 놓고 걸어 다닐 만큼 평화로운 곳이다. 새롭게 포장된 것은 없으나 여전히 단정함을 유지하는 곳. 오래된 건물들은 입을 모아 그런 것들을 이야기한다.

많은 젊은이들이 이태원으로 작은 짐을 옮기고 있을 때, 나의 몇몇 친구들은 들떠있는 이태원에서 조금 떨어져 있고자 원효로 근처로 모여들어 그곳의 주민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원효로를 자주 찾았던 것이 꼭 친구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용산경찰서를 지나 왼쪽으로 조금 더 가다 보면 매우 사랑했던 ‘원효로 커피’라는 카페가 나온다. 나는 종종 그곳에 갈 때 선뜻 들어가지 않고 외관을 꼭 한 번씩 바라본다. 화선지처럼 하얀 벽에 검은색으로 쓰인 글자, ‘원효로 커피’를 바라보고 있자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내 커피를 마시고 싶은 기분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청춘을 꽃과 같다고 말하지만, 나와 내 친구들은 그 말에 동의하지 않은 채, 카페 벽면에 크게 그려져 있는 꽃 아래에 앉아 까맣고 쓴 물을 잘도 마셔댔다. 그때 우리가 나눈 이야기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커다란 꽃 그림 아래에 모여있는 젊은이들을 떠올린다면 다른 이야기는 굳이 필요하지 않을 것도 같다. 그곳에 걸린 그림들은 퓨전 동양화 작가 홍지윤 씨의 작품으로 주로 꽃을 표현한 것들인데, 결혼식의 부케처럼 아름답고 행복해 보이기만 한 꽃은 아니고 어딘지 모르게 외로운 느낌이 드는 꽃이다. 마치 꽃의 일생을 보는 것처럼.

효창공원으로 가는 길가

지하철을 타고 원효로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6호선 ‘효창공원앞역’에서 내려 수많은 낡은 가게들을 지나쳐야 한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용산구의 재개발 정책에 따라 새 건물들이 이미 들어섰지만, 왼쪽은 아직 세월을 간직한 가게들이 버젓이 길가를 지키고 있다. 주로 아저씨들이 지키고 있는 카오디오, 보일러 설비, 퀵서비스 센터가 있으니 길가를 지나다 괜히 지갑을 꺼내게 되는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가까운 곳에 효창공원이 있다. 효창공원역에 내려 곧장 가는 방법도 있지만, 원효로로 들어가도 공원으로 향하는 길은 이어진다. 그러니까 원효로는 효창공원을 에둘러서 가는 길가에 있는 셈이다. 효창공원에 가면 젊은 사람들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을 훨씬 더 많이 볼 수 있다.

노인들은 비슷해 보이지만 저마다 다른 지팡이를 하나씩 손에 들고 공원으로 모여든다. 어쩐 일인지, 공원 곳곳에 놓인 운동기구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파마머리가 아니라 하얀 머리카락을 빛내고 있다. 효창공원은 유독 그곳을 찾는 노인들과 잘 어울린다. 굽은 등처럼 둥근 언덕이 여러 개 있고 위인들의 묘가 모여있는 곳, 효창공원이 만들어진 때는 1940년이라고 하니, 그곳 역시 나이가 많다. 젊은 우리는 그곳을 맴돌았다. 공원 안에 있는 ‘노인생애체험센터’에 간 것도 아니고 ‘백범 김구의 묘’에 가까이 다가간 것도 아니었다. 우리도 노인처럼 여기저기에 걸터앉아 있었다. 젊은이들과 노인의 공통점은 가난하고 외롭고 아프다는 것이다. 물론 모두가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원효로는 버스를 타고 지나치기는 쉬우나 머물러 돌아보기엔 어딘지 부족한 부분이 있다. 마치 집에서 만든 떡볶이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곳에 양념이 더해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 원효로의 길목과 벽면은 이미 많은 이야기들을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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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새움

사진 전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