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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것
원래의 것, 옳은 것을 먹다
시간이 흐르는 만큼 식문화도 숱한 변화를 겪는다. 1인 가구 증가와 바쁜 생활, 저녁 없는 삶은 부엌 한 켠에서 굳이 내 몸을 바삐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간편한 식사 습관을 정착시켰다. 하지만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변하지 않는 진리도 분명 있다. 하나의 생명을 보존하는 데 필요한 것은 가공된 것이 아니라 자연적인 것이라는 사실이다.
원룸촌의
생활
내가 사는 동네는 서울에서도 놀 거리가 없는 주거 밀집 지역이다. 그래서 작은 마트와 대형마트 하나, 떡볶이 집과 편의점, 정육점과 육개장 전문점, 기사식당과 마주한 세탁소가 전부다. 아파트 단지와 커다란 오피스텔을 제외하면 대부분 원룸 빌라가 들어서 있다. 출퇴근하는 직장인과 대학생들이 모여 얼굴도 이름도 모른 채 한 동네에서 살고 있다. 1인 가구가 많은 동네에 살면 한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주말마다 늦잠을 늘어지게 자고 누워있을 때 창밖으로 오토바이 소리가 달달달 들린다는 것이다. 그건 단언컨대 배달 음식이다. 그때 나는 누가 또 뭘 시켜 먹는 걸까 상상을 한다. 머릿속으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나도 배달 음식을 자주 시켜 먹었다. 다양한 메뉴를 빠르게, 그것도 집 안으로 직접 받을 수 있으니 편리함에 있어 이만한 호시절이 있었나 싶다. 그런 편의를 누리던 몇 개월 뒤, 목의 왼쪽 부분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더니 안에 염증이 쌓였다. 내 인생 처음으로 수술대에도 누웠다. 그 뒤로 각종 질병이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나왔다. 알 수 없는 알레르기와 독감, 오한에 시달려 구급차를 부른 적도 있었고, 장이 유난히 안 좋아 툭하면 장염에 걸려 친구들과의 무수히 많은 약속을 어기기도 했다.가만히 집에 누워 생각했다. ‘이렇게 살다가 죽는 거 아니야?’ 인터넷에서 보았던 자기도 모르게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건 갑자기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그들이 오랜 시간 스스로 축적해 온 결과일지도 모른다.
옳은 것을
먹습니다
옳것은 하나의 유통 플랫폼으로, ‘원래의 것, 옳은 것을 먹는다’는 의미로 만들어졌다. 먹거리에 대한 관심과 현대 사회의 식문화를 반성하고, 과거에 음식으로 이웃과 탄탄한 공동체를 이루던 때를 돌아보려고 했다. 건강하고 정직한 먹거리를 판매할 수 있는 하나의 장이 되었고, 사람들이 손쉽게 생산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도왔다. 쌀과 우유, 달걀, 설탕, 김치 등 사람들이 일상에서 쉽게 자주 접하는 먹거리의 유통 과정과 생산 과정을 돌아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오랜 시간이 흐르면 두터운 암벽처럼 몸에 켜켜이 쌓여 사람들의 건강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옳것은 덜 가공되고, 자연에 가깝고, 원래의 방식을 취한 올바른 먹거리를 찾았다. 그런 탐색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산자에게 신뢰를 얻는 일이었다. 자신의 생산물에 확신과 신념을 가지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덜 알려진 생산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랜 시간 자신의 자리를 버텨온 사람들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간다. 옳것이 생산자와 함께 구축한 것은 단순히 판매처가 아니라 하나의 공동체였다. 옳것 그리고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모여 건 강한 식문화 공동체를 구현하고자했다.
다란팜의
달걀 이야기
옳것의 유기농 방목 유정란은 담양 청정 자연에서 닭들이 자유롭게 뛰어놀며 땅 위의 곡식 낱알, 벌레와 지렁이, 산초 등을 먹으며 낳은, 닭의 활기와 생명력이 그대로 담긴 달걀이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달걀은 대부분 철창 안에 갇혀 사육되는 닭이 낳은 무정란이다. 태어나서 철창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닭에게 주어지는 것은 알을 낳는 역할뿐이다. 한 뼘 남짓한 철창 안에서 모든 동작이 제약된 닭들은 대소변도 철창 안에서 해결한다. 여기저기 흩어진 분뇨와 극심한 스트레스는 닭의 건강을 위협한다. 스트레스성 자학을 멈추기 위해 부리를 절단하고, 끊임없이 항생제를 투여한다.
‘까짓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는 역할만 충실히 한다면, 작은 닭 한 마리의 생명쯤이야 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식의 죽음을 그저 관망하고, 소비 형태에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다른 생명에게 ‘무자비’할 권리는 결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닭과 동등하다. 우리의 생명은 닭의 것과 결코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존중에서 비롯된 사육이 건강한 달걀을 낳고, 그렇게 사람들은 각자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 옳것의 방목 유정란은 생명의 존엄성을 이해하며 시작된다. 가장 안전하고 신체에 좋은 달걀이 만들어지는 하나의 과정이고 동시에 약속인 셈이다.
로브라운사의
사탕수수당 이야기
누군가 자급자족의 삶을 실천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가장 작은 것부터 시작한다고 해서, ‘설탕’을 직접 만들어보겠다고 말했다. 터무니없는 이야기처럼 들렸는데, 끝내 터무니없이 끝났다. 그가 말하기를 그저 설탕 하나를 만들려 했을 뿐인데, 자급자족의 방식으로 복잡한 수순이 기다리고 있을 줄 몰랐다고 했다. 사실 자급자족을 실천하려는 사람들이 말하는 ‘설탕’과 우리가 마트에서 쉬이 구매하는 ‘설탕’은 조금 다르다고 한다. 둘 다 사탕수수로 만들어지는 것은 같은데, 둘은 어쩐지 맛도 향도 다르다.
옳것은 이 작은 의문에서 ‘사탕수수당’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필리핀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인 네그로스Negros 섬은 사탕수수 생산량이 높아 필리핀에서 가장 많은 설탕을 생산하고 있다. 잃어버린 설탕을 찾아 다녔던 옳것은 오랜 시간 한 자리에서 사탕수수를 재배하고 있는 플로리안의 가족들에게 초대를 받게 되었다. 따뜻하고 다정한 말들이 오가고 그들의 말 뒤편으로 생산품에 대한 자부심이 단단하게 느껴졌다. 그들의 사탕수수당이야말로 건강한 설탕을 대신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실제로 사탕수수당 맛의 숨겨진 비밀은 제조 과정에 긴 시간과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데 있다. 먼저 수확된 사탕수수의 잎과 불순물을 손으로 하나하나 제거하는데 기계화된 제당 공장에서는 불순물을 제거하지 않은 채 당즙을 짜낸다. 그다음에 정제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맛의 가장 큰 차이가 나온다. 옳것은 우리가 먹고 있는 설탕은 많은 것을 잃어버린 설탕이라고 했다. 당도를 높이기 위해 색상과 향을 인공적으로 조절하여 가공한 것이다. 사탕수수 본연의 맛을 찾는 것, 기억하는 것, 다시 되찾는 것. 사탕수수의 귀여운 이름만큼 달콤한 일이다.
강대인 농부의
쌀알 이야기
밥이 주식인 문화권에서 태어났다. 된밥, 진밥, 고두밥. 물의 양과 뜸 들이는 시간에 따라 밥의 풍미도 달라진다. MBC 드라마 <대장금>에서도 밥과 관련된 장면이 나온다. 최고상궁을 뽑는 자리에서 경연 주제는 ‘밥’이었고 장금의 스승인 한 상궁은 모든 궁녀의 취향을 기억해 각자가 좋아하는 된밥, 진밥, 고두밥을 나누어 준다. 그녀의 애정에 감동한 나인들은 한 상궁을 최고상궁으로 뽑는다. ‘밥심’으로 살아가는 국가에서 쌀밥이 지닌 의미가 이렇다.
벼를 생각하려니 시 <대추 한 알>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비단 대추뿐만 아니라, 땅에서 나고 자란 모든 생명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논에 모를 심고, 잡초를 제거하고, 풍작을 기원하고, 추수하는 모든 과정에 농부의 손이 닿아 벼들이 강아지처럼 그를 따른다.
옳것은 백미를 비롯해서 현미, 적미, 녹미, 흑향미, 찹쌀을 판매한다. 농부 강대인 씨는 농약이나 화학비료로 오염되지 않은 농산물이야말로 인간의 생명을 보호한다고 믿었다. 그는 우렁이와 오리를 논에 풀었다. 우렁이와 오리는 잡초를 좋아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분홍색 우렁이 알이 벼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논이 보인다면, 그건 논에 우렁이가 산다는 것이다. 모는 병충해 없이 계절을 보내고 뙤약볕을 열심히 이겨낸 뒤에 사람들의 밥상으로 찾아온다. 쌀알이 하나하나 모이는 데에는 결국 자연의 순환과 농부의 뜨거운 애정과 우렁이와 오리의 도움이 있어야 했다. 모든 이의 역할이 하나라도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일. 그게 벼농사다.
부부 방앗간의
참·들기름 이야기
인터넷에서 한창 유행하던 메뉴가 있었다. ‘간계밥’. 간장계란밥의 줄임말로 고슬고슬한 밥에 간장을 쓱쓱 비비고 노른자가 탱글거리는 반숙 달걀 프라이를 올린다. 그리고 마지막 화룡점정은 참기름 한 숟갈. 어릴 적, 밥 먹을 시간이 없으면 엄마가 간간이 해주던 메뉴로 떠오르다가 오랜만에 간계밥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더니 어느새 인기 메뉴가 되었다. 간계밥과 함께 총각김치를 먹는 게 맛있네, 열무김치를 먹는 게 맛있네, 뜨거운 설전도 펼쳐졌다.
한국인의 밥상에서 참기름과 들기름이라고 하면, 밥도둑까지는 아니더라도 ‘밥소매치기’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하지만 근래에는 몇몇 참기름과 들기름 업체들이 과장 광고를 하고 실제 재료를 속여 팔아 소비자들이 분노하기도 했다. 이름하여 ‘가짜 참기름 사태’. ‘통참깨 100퍼센트’라고 속이고 참깨분말로 만들거나, 혹은 통참깨와 참깨분말을 적당히 섞어서 교묘하게 빠져나갔다. ‘부부 방앗간’은 참깨와 들깨를 저온압착식으로 기름을 짜낸다. 고온압착식으로 만들어진 시중의 제품에 비해 저온압착식은 기름의 양이 적어 훨씬 많은 깨가 소비되지만, 매력적인 황금색의 빛과 신선함을 유지하고 무엇보다 발암물질이 나오지 않는다. 영양분 파괴가 적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자극적이지도 않아 고소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어릴 적 기억과 자취생의 반찬과 엄마의 손맛을 책임지는 것은, 이러나저러나 참기름이다. 우리가 제대로 된 ‘진짜’ 참기름을 찾아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모두에게
옳은 것
‘먹을 것으로 장난치지 마라.’ 밥상머리 예절에서 배우는 것 중 한 가지다. 예부터 식량이 귀했던 우리나라 사람들은 먹을 것을 함부로 낭비하거나 장난치는 행동을 금했다. ‘밥 한 톨에 농부의 피와 땀이 섞였다’는 말은 한때 클리셰 같은 문구이기도 했다. 먹을 것의 소중함을 아는 것에서 옳은 먹거리를 생각하는 마음이 시작된다. 가족과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이 더 나은 먹거리를 찾는 힘이 되고, 생명을 진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도덕적인 사육 방법을 제안하게 되고, 자연에 대한 호기심이 환경을 해치지 않으려는 의지로 이어진다.
사람들은 우리의 생명을 연장해준 것에 짐을 지고 있다. 먹거리가 안전하고 모든 생명이 버겁지 않은 선한 세상이라면, 적어도 나의 소비와 교환되는 객체가 무언지는 잘 확인하고 염두에 둘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먹거리 소비자로서의 책임감이고 동시에 소비자를 자유에 이르게 하는 창구이기도 하다.
에디터 이자연
사진 옳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