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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졌다. 드디어 스물이 넘고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아빠의 유품인 니콘 카메라를 꺼내 들고 여행을 떠났다. 엄마의 울타리 안에 있던 내가 품에서 떠나고자 한다는 걸 엄마는 언제쯤 인지했을까. 그래서 허하고 외로웠을까. 그런 걸 떠올린 건 무려 8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우리 백령도 갈까?”
엄마는 “이제야 엄마도 생각이 났느냐.”며 핀잔을 주었지만, 어조가 가벼워서 그런 줄도 몰랐다. 그저 우리나라에도 있다는 모래언덕 생각뿐이었다. 드디어 당일이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엉망이었다. 분당에서 인천여객터미널까지 가기가 쉽지 않았다. 엄마와 함께 간다고 힘이 잔뜩 들어가서 중간에 방법을 바꾼 것이 패인이었다. 우리가 인천여객터미널에 도착한 순간, 배는 이미 떠나고 1시간이 지나있었다. 사실 모든 문제는 나였음에도 오래 준비한 엄마와의 여행을 망친 탓에 잔뜩 얼굴을 찡그리고 툴툴거렸다. 참 어린애 같은 대응이었다. 어린애가 된 나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준 엄마는 다른 여행이 어떨지 제안했다. 사실 다른 대안도 딱히 없었다.
섬을 소개하는 몇 개의 소책자를 들고 엄마와 함께 섬을 골랐다. 이름이 예쁜 자월도와 이작도가 마지막 후보지였다. 입안을 구르는 소리가 유난히 고와 대이작도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여행은 이미 늦어졌고, 느긋하게 여객선으로 떠났다. 당연히 숙소도 식당도 정해진 것 하나 없었다. 다행인 것은 선착장에서 내려갈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라는 점. 10여 분 걷다 보니 식당 하나가 눈에 띄었다. 식당에 들어가 연안에서 잡았다는 쫄깃한 광어 회와 매운탕을 먹었다. 인심 좋은 식당 주인은 가족 먹이려고 아침에 따왔다는 두릅 한 접시도 함께 내어주었다. 내친김에 괜찮은 숙소를 묻고, 신축했다는 작은 민박집에 남은 매운탕을 싸오기까지 했다. 모든 것은 일사천리, 제법 괜찮은 시작이었다.
TV도 없고, 컴퓨터도 없고, 정보라고는 여객터미널에서 집어 온 지도 한 장이 전부였다. 작은 방에서 뒹굴거리다 해가 질 때쯤 석양이 좋다는 부아산으로 향했다. 부아산까지는 새길과 구길이 있는데, 좀 돌아가더라도 오래된 길을 가기로 했다. 매끈하게 닦여있지는 않지만 별로 오래 걸리지도 않고,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 그런지 더 자연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석양이 조금씩 내리는 길을 엄마와 함께 걷다 보니, 저녁의 상쾌한 내음이 코끝에 맴돌았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빨간 구름다리가 보였다. 부아산 정상에 가까워졌다는 뜻이었다. 좁은 구름다리에서는 엄마가 앞서고 별생각 없이 따랐다. 중간쯤 갔을까. 엄마가 고개를 돌리고 씩 웃더니 다리를 있는 힘껏 흔든다. 견고한 다리라도 흔들리니까 잔뜩 불안해져서 짜증을 부렸는데도 엄마의 짓궂은 웃음소리가 구름다리에 기분 좋게 걸렸다. 구름다리 끝에 선 엄마를 아빠의 카메라로 담았다. 브이 자를 그린 엄마가 해맑게 웃고 있었다.
잠들기 전 쉬자는 엄마를 졸라 밤바다를 산책했다. 공기에 물기가 있더니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아침부터 비가 흩날렸다. 우산을 쓰기에는 번거롭고 맞고 있으면 언제 젖는지 모를 가랑비였다. 축축한 날씨에도 풀등은 대이작도에서만 볼 수 있는 데다가 썰물 때 겨우 서너 시간만 볼 수 있는 귀한 곳이라 바다를 여기저기 돌아서 간신히 배를 탔다. 소록소록 내리는 비에 젖어드는 풀등이 운치가 있었다. 여행하는 내내 손을 꼭 붙잡고 있던 모녀가 모처럼 따로 섰다. 저 멀리 비 내리는 풀등 위에 엄마가 서 있었다. 나는 눈으로 엄마를 쫓았다. 엄마의 등 뒤로 고단하지만 단단한 삶이 어렸다. 당장에라도 달려가 엄마의 어깨에 볼을 비비며 어리광을 부려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엄마의 시간을 방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기도 잠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풀등에 발을 내디디고 불과 10여 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물결 자욱이 남은 젖은 풀등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대이작도는 크지 않기에 쉬엄쉬엄 돌기 좋았다. 유명한 곳들은 숙소에서 도보로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천천히 가라는 표지판이 차에게만 말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도 말하는 듯했다. 섬 안에 들어서면 급할 것이 없었다. 높지도 멀지도 않은 공간에 볼 수 있는 모든 풍경이 있었고, 멈춰 서 면 문득 보이는 풍경 중에 값진 것들이 많았다. 아직 지지 않은 붉은 동백이 그렇고, 작은 교회 같은 것들이 그러했다. 머물고 시간을 들여야만 선명하게 새겨지는 것들이 있다는 걸 배우고 있었다. 마치 사진을 찍을 때처럼 지금까지 조바심을 내서 급하게 찍으면 흔들리고, 초점이 맞지 않아 흐릿해서 버려지거나 잊히는 그런 여행을 해온 건 아니었을까.
민박 주인아저씨께 우리가 보지 못한 섬 반 바퀴를 돌아보고 싶다고 청하니 흔쾌히 받아주셨다. 차를 가져오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런 특혜를 준단다. 넘어가 봤자 볼 거라고는 계남분교뿐이지만 자신과 아버지가 그 학교를 나왔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그 웃음에서 모교에 대해 애틋함이 느껴져 나도 함께 웃었다. 대이작도에 있는 계남분교는 <섬마을 선생>이라는 영화를 촬영한 곳이다. 물론 관리되지 않아 여기저기 낡고 허름했지만, 특유의 멋이 있었다. 섬마을에 있는 분교이기 때문에 전출 온 선생님을 위한 부엌 같은 것이 신기해서 시간을 들여 둘러보았다. 한쪽에 차를 대고 먼바다를 바라보는 주인아저씨의 시선 끝에 추억이 매달렸다. 바다라는 운동장을 가진 아이들 중 섬에 뿌리를 내린 몇몇은 종종 이렇게 학교를 들여다보는 듯했다.
엄마와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기 아쉬워 제일 시간도 늦고 오래 걸리는 배를 골랐다. 딱히 갈 곳도 없어 선착장 근처에서 제일 비싼 봉지 과자를 하나 사 들고 엄마와 시간을 보냈다. 엄마는 여행 내내 내게 궁금한 것들이 많았다. 그동안 내가 한 여행은 어땠고,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이 어떤지. 그제야 나도 엄마가 궁금해졌다. 제법 자란 나를 업고 남편을 배웅하던 꽃 같던 엄마가 남편을 잃고 어렵게 우리를 키웠는데, 이제 와 다 컸다고 울타리를 넘어 나가버린 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엄마의 대답은 생각보다 쉽고 간단했다. “울타리 안이든 밖이든 여전히 걱정이지만, 결국 사랑이더라고.”
대이작도 여행 팁
여름 성수기에는 사람이 몰려서 여행기 속의 여유를 느끼긴 어려울 수도 있다. 되도록 성수기를 피해서 찾아갈 것. 차를 가지고 들어가면 편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숙소에서 픽업 서비스를 제공하니 이 점을 참고하면 좋겠다.
글 사진 김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