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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선 — 선과 선분
단순한 선과 면의 이음, 그 안에서 피어나는 담백한 형태. 선과 선분을 생각하면 ‘우아함’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잔잔하게 기품이 있는 아름다움. 나의 공간 한 편에 존재한다면 내면은 그대로 충만해지지 않을까.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마음을 채운 것처럼.
요즘 어떻게 지냈나요?
안녕하세요, 도예 스튜디오 ‘선과 선분’을 운영하며 도예 작가로 활동하는 김민선입니다. 작가로서 개인 작업을 이어가며 선과 선분을 통해 다양한 도예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여러 브랜드와 함께 도자 제품을 만들기도 해요. 최근엔 새로운 취미로 발레를 시작했는데 이제 입문을 지나 아직 기초반이라 모든 게 흥미롭네요.
발레라니, 우아한 매력이 돋보이는 선과 선분의 작품들과 어울려요.
그런가요(웃음). 사용성보다는 형태적 유희에 더 흥미를 느끼고 초점을 두던 시절이 있었어요. 요즘은 담기는 대상을 언제나 고려해요. 무엇이 담기느냐에 따라 형태는 물론 두께, 무게, 유약의 질감, 색까지 여러 가지를 신경 써야 하죠. 신기하게도, 작품의 쓰임을 세밀하게 상상하며 최선의 선택을 하다 보면 흔한 형태와 질감으로 귀결되곤 해요. 도자기는 인류가 7천 년 이상 만들어 오는 것이기 때문에 이미 훌륭한 식기 형태들이 과거부터 존재하니까요. 과거의 작품들을 단순히 반복하지 않으면서 사용성을 고려하고, 또 저만의 색을 잃지 않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이 늘 어렵지만 그만큼 또 즐거워요.
아름답고 쓰임도 좋은 작업… 가장 어려울 것 같아요. 어쩐지 선과 선분에서 만든 도기에는 뭘 담기가 아깝다는 생각도 드는데, 만든 작품에 뭘 담아 먹기도 하나요?
아무래도 만들고 남은 기물이 많다 보니 자주 쓰게 되지만, 사실 제 작업 중에는 그릇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오히려 동료 작가들의 그릇을 하나하나 모아서 더 많이 사용해요. 직접 쓰면서 큰 공부가 되기도 하고요. 게다가 만든 사람을 알고서 음식을 담아 먹으면 그 작가의 시간을 상상하게 되어서 즐거워요. 물레에 앉아 이 그릇을 만들 때의 모습을 떠올리는 거죠. 먹는 시간은 정말 일상과 가까운 순간이잖아요. 가장 평범한 때에 삶의 또 다른 즐거움을 만들어 가는 일 같아요.
요리는 자주 하는 편인가요?
자주는 아니지만 여유가 있을 땐 꼭 하려는 편이에요. 할 줄 아는 요리가 좀더 많아졌으면 싶네요. 이런 점에선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기분이 들기도 해요(웃음). 도자기 외에 손으로 하는 것 중에는, 작년 이맘때쯤 고산요의 이규탁 선생님께 말차 다완의 역사와 함께 격불하는 법을 배웠어요.
격불이요?
네(웃음). 생소하죠. 격불은 말차를 만들기 위해 거품을 내는 작업이에요. 격불을 할수록 점점 능숙해지고 능숙해질수록 차 맛이 확연히 변하더라고요. 그 점이 정말 재밌고 또 마음도 차분해져요. 요즘도 종종 말차를 격불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격불, 궁금하네요. 꼭 도전해 봐야겠어요(웃음). 도예가로서, 음식을 담을 때 좋은 그릇의 기준이 있다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실까요?
정말 어려운 질문인데요(웃음). 일단 음식이 돋보여야 하겠죠. 음식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니까, 결국엔 음식을 즐기는 상황에 맞는 그릇이 좋은 그릇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매일 일상적으로 식사를 담는 가정에서 파인다이닝에서 주로 쓰는 그릇을 사용한다면 좋은 그릇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어요. 기능적으로 보았을 때 강도와 위생 면에서 고온 소성된 광택 있는 백자 그릇이 식기로 가장 우수하지만, 우리가 옷을 입을 때도 항상 기능만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조금 더 세심하게 다루고 관리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더 다양한 흙과 유약, 그리고 형태를 가진 그릇을 사용해 볼 수도 있겠죠.
도자는 언제 처음 시작했는지 궁금해요.
대학 입학과 동시에 접하게 됐는데 처음에는 흙이 아주 낯설고 어려워서 학부 중간에 영상 디자인을 동시에 전공했어요. 도예 작업에 정을 붙이지 못하다가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차차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한 거죠.
도예에서 영상, 그리고 다시 도예로 돌아온 거네요.
영상 디자이너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아니지만, 결국엔 어떤 방식으로든 서사를 전달해야 하잖아요. 아무리 짧은 영상이라도 보는 사람의 시간을 점유하니까요. 영상디자인을 공부할수록 빈약한 서사를 가진 제 작업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점이 아쉬웠어요. 움직이는 이미지 자체로 영상 디자인 일을 좋아했지만 제가 좋은 스토리텔러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가장 중요한 지점에서 한계를 느낀 거죠. 손으로 직접, 쓸모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던 그 마음을 그리워하며 다시 도자기를 만들게 됐어요. 도자기는 직접 손으로 결과물을 만져내고 또 실재하는 무언가를 담아내는 작업이에요. 그것 자체로 가치를 해석하지 않아도 이미 의미를 가득 품고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도자 작업에 민선 님의 어떤 취향을 담아가고 있는지 궁금해요.
어릴 때부터 형태보다는 색과 질감에 더 기민하게 반응했어요. 중학생 때 화실에서 보내던 시간들이 떠오르네요. 그림을 그릴 때도 형태를 잘 그린 날보다 쓰고 싶은 색을 잔뜩 쓴 날이나 연필 질감을 독특하게 표현한 날 혼자 더 만족스러워했던 기억이 나요. 요즘에도 옷이나 물건을 살 때 그림이 있는 것보다는 색이나 소재, 질감을 더 고심해서 고르게 돼요. 가끔 특정 원단에 집착하면 원단으로 옷을 검색하기도 해요(웃음). 음악을 들을 때도 멜로디보다는 사운드의 질감이나 악기의 레이어링에 더 집중하고요. 작업을 할 때도 복잡한 형태를 만드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고 오히려 색과 질감을 표현하는 데 더 집중해요.
선과 선분의 시작은 어땠나요?
지금 생각해 보면 막연하네요. 아주 사적인 이유 때문이었어요. 그때는 스스로 공예 작가보다 디자이너의 정체성이 더 강하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어요. 어디에 소속되지 않고 본인 작업을 한다면 스튜디오나 브랜드로 시작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해서 선과 선분을 구상했어요.
지금은 작가로서의 정체성이 더 강한가요?
해가 갈수록 개인 작업에 대한 책임감이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저 자신을 작가로 정체화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어느 순간부터 개인적인 저와 선과 선분 사이를 분리하는 일을 해왔는데…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네요. 지금은 많은 지점에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어요. 초기엔 저 혼자 수업을 하며 스튜디오를 운영했는데, 현재는 다양한 작가들과 함께 수업을 진행하기도 해요. 이전에는 선과 선분이 곧 작가 김민선의 작업명처럼 기능했다면 지금은 의미가 확장되었다고 생각해요. 개인 작업은 온전히 저로서 전개하지만, 선과 선분은 여전히 김민선의 도예 스튜디오이면서, 모든 선택의 기준과 방향이 외부로 향하고 있죠.
어떤 의미로 넓혀지고 있을까요?
선과 선분이 조금 더 세상에 ‘필요한’ 도예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매개가 되었으면 해요. “휴식을 위한 창작”이라는 문장도 이런 전환점에서 고심한 슬로건이에요. 공간으로서의 선과 선분에서 제공하는 것은 도예 수업이지만, 더 본질은 휴식이라는 생각을 해왔어요. 손을 움직이면서 마음이 안정되고 머리가 맑아지는 순간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요.
도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생각이 비워지는 매력이 있대요.
도예도 그렇지만 손을 움직이는 창작 활동은 명상과도 같아요. 적극적인 정신의 휴식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선과 선분의 수업 시간은 질 좋은 강의 콘텐츠를 넘어서 공간, 음악, 향, 차 등 도예 작업을 둘러싼 여러 요소에 세심한 디테일을 넣고 있어요. 모두 화려하게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는 요소들이지만 보이지 않는 선과 선분만의 노력이 묻어나죠.
선과 선분의 슬로건 문장이 떠올라요. 도예는 ‘창작을 통한 휴식’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처음과 지금, 도예를 하며 개인적인 가치관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처음 도자 작업을 다시 시작할 땐 상상하는 어떤 장면에 들어가는 오브제를 직접 만든다는 마음이 강했어요. 그러다 단순히 도자를 빚는 행위를 넘어 재료 자체를 공부하면서 흙이 도자기가 되는 과정에 엄청난 화학 작용이 일어난다는 걸 알게 됐죠. 익숙한 것에서 새로움을 발견한 기분이 들었어요. 거의 유사 지질 작용을 구사하는 정도의 열을 가해서 만들어 내는 이 결과물을 단순히 이미지에 필요한 오브제로서만 작용하게 하는 건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물 그 자체로서 의미를 더 깊게 담아내고 싶어요. 원하는 이미지를 구상하는 작업은 물론 흥미롭지만, 그 너머에 다른 미사여구를 추가하지 않아도 작품 자체가 물질로서 존재감이 있길 바라는 마음이 있죠. 도예가로서 가장 도달하고 싶은 목표가 생긴 것 같아요.
선과 선분은 앞으로 도자에 어떤 것을 담아갈까요?
요즘엔 조명 작업을 즐겁게 하고 있어요. 빛을 담는다는 개념이 좋아서요. 조명을 보면, 위가 뚫려 있는 구조적 특징이 있잖아요. 때문에 화분의 기능을 겸하기도 하고요. 실린더 형태인데 이걸 빛을 담는 회전하는 캔버스로 생각해 보고 있어요. 지금까지 연구한 유약과 재료들을 기물에 캔버스 삼아 담아내며 여러 시리즈로 만들어 보고 있으니 기대해 주세요!
에디터 김지수
사진 장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