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바보같이 잘 지내

알 이즈 웰

나의 모든 걱정이 주문 하나로 해결된다면 어떨까. 아니, 해결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하루에도 수십 번씩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주면 좋겠다. 영화 <세 얼간이>에서 주인공 ‘란초’는 불안할 때면 “알 이즈 웰, 알 이즈 웰”이라고 중얼거린다. 모든 게 잘 될 거라는 속삭임. 현실에서는 영화 같은 일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겠지만 한 번쯤 속는 셈 치고 믿어보고 싶다. 그리고 그 마음은 돌연 제주로 내려가서 파스타 집을 연 세 명의 여자 소식을 알게 된 후 더 간절해졌다. 그들에게도 주문이 통했던 걸까? 제주에 가서 직접 묻기로 했다.

푸른 앞마당

남쪽에 있는 숙소에서 북동쪽에 있는 ‘알 이즈 웰’까지 가기 위해 동일주 버스를 탔다. 정류장을 알려주는 안내방송에 귀를 세우며 한 시간 조금 넘게 갔을까, 드디어 한동리 버스 정류장에 닿았다. 혹시라도 목적지를 지나칠까 오는 내내 잠도 못 자고 퀭한 눈으로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넋이 나갔는지 눈앞에서 그만 정류장을 지나쳤다. 바보같이. 그날은 봄이라는 게 무색할 정도로 바람이 세고 기온도 낮았다. 아침도 안 먹고 간 탓에 더 쓸쓸한 느낌이 들어, 옷을 한껏 여미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인터뷰를 하기도 전이었지만 김이 모락모락 나는 파스타가 생각났다. 머릿속에서는 포크로 돌돌 만 면을 입안에 가득 넣는 장면이 계속해서 재생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가게 앞에 다다르자 ‘정말 이곳에서 파스타를 팔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바다가 바로 앞에 있어 터가 좋아 보였지만, 십분 가량 길을 걸어오면서 보았던 가정집들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돌담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전형적인 제주가옥이었다. 세 채의 집과 낮은 지붕. 그리고 한 집 건너 있던 하얀 개가 이곳에도 보였다.가게로 추정되는 건물의 문을 두드렸는데 반대편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노크를 한 곳이 가게가 맞았는지 그녀는 그곳에서 잠시 기다려달라고 했다. 알록달록한 의자에 가방을 놓은 지 일 분이 지났을까, 금세 세 명의 여자가 모였다.

주저하면 뭐해

세 여자는 당황스러울 만큼 당당한 민낯이었다(민낯이 아니면 어쩌지). 처음엔‘조금 앞당겨진 일정 때문이었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그들과의 대화를 마치고 나서는 ‘티브이 방송에 나온다 해도 달라지지 않겠구나’라고 나는 짐작했다. 꾸밈이라는 게 외모를 가꾸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겠지만, 그 어떤 뜻일지라도 그들에게 꾸민다는 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다. 우선 가게 자체에서도 단출함이 느껴졌다. 오래된 가옥의 모습을 굳이 숨기지 않았고, 그래서 제주의 여느 카페처럼 아기자기한 느낌 대신 오히려 조금 투박한 느낌을 들게 하였다. 교자상처럼 큰 상의 윗부분을 뜯어내어 긴 원목을 붙여 만든 그럴싸한 테이블부터, 손 글씨로 빼곡히 채워진 벽면이 그랬다. 이곳의 주인이 그들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이곳에 오기 전까지 친한 친구끼리 가게를 만든 거라고 예상했었는데, 그들은 동갑내기 친구가 아니었다. 어떻게 만난 사이냐고 묻는 내게 그중 체구가 가장 작은 사람이 먼저 입을 떼었다. “저는 노민정(34살)이고요. 얘는 신은선(32살), 그리고 단발머리 친구는 이수정(30살)이에요. 제가 근무했던 외식업체에서 수정이가 아르바이트를 했었어요. 2년 정도 같이 일했었죠. 수정이가 그만둔 이후로 가끔 안부 전화를 하는 사이였는데, 하루는 수정이가 직장생활이 너무 힘들다면서 만나자는 거예요.

그때 저도 주방 일에 지쳐있을 때였죠. 그렇게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제주에서 식당을 해보자는 얘기가 나왔어요. 같이 하자고 하는 언니가 있다면서 적극적으로 추진했어요. 그리고 그 애는 은선이었고요. 그렇게 같이 시작하게 됐어요.” 그들은 날짜까지 얘기하며 세세하게 그날의 일들을 기억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은 3개월도 안 되어 실행되었다며, 그 당시를 떠올리는 듯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셋이서 작년 5월 중순쯤에 내려와서 집을 알아봤어요. 인터넷에서는 농가주택에 관한 정보도 많이 없어서,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면서 얘기를 들었죠. 대부분 발품을 팔아 구한다고 하더라고요. 게스트하우스가 하도리에 있었거든요. 그냥 버스를 타고아무 곳에 내렸는데 그 동네가 한동리였어요. 그 당시에는 한동리라는 곳이 있다는 것도 몰랐어요. 그렇게 8시간을 걸어 다녔는데, 자꾸 처음 본 이 집이 생각나더라고요. 뚜렷한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이 집만 한 곳이 없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정자에 앉아 계시는 어르신께 물어본 후에 사무소까지 가서 주인을 알게 됐죠. 그리고 일사천리로 계약을 하고 공사를 시작했어요. 그러고 보니 집도 거의 3일 만에 구한 거였네요.”

다 하게 돼 있어

시작이 수월했던 그들에게 이 집은 엄청난 고난이었다. 오랫동안 폐가였기 때문에 수리할 곳이 많았다. 게다가 그 당시 제주는 30년 만에 가뭄일 정도로 무덥고 습한 날의 연속이었다고. 그들은 아무것도 모른 상태였지만 일단 팔을 붙여 무엇이든 시작하자는 마음이었다. 

“생각보다 공사비용이 많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전기랑 설비 빼고는 저희가 하기로 했죠. 기술자를 부르면 이삼일이면 끝날 거를 저희는 일주일씩 하곤 했어요. 설비해주시는 아저씨가 많이 알려 주셨어요. 전화해서 이것저것 물어봐도 귀찮아하시지 않고, ‘여기까지 해놔라!’하며 숙제도 내주셨죠. 지금 생각하면 힘들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애착이 가요. 아직 일 년이 안 되긴 했지만 가끔씩 저희가 이곳에 있는 게 신기할 때가 있어요.” 

가게를 만드는 일이 정말 고됐을 것이라 생각한 건, 그들이 운영하는 카페의 사진을 보고 난 후였다. 그곳에는 알 이즈 웰이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이 사진으로 남겨져 있었는데, 사진 안에는 지금과 사뭇 다른 얼굴들이 있었다. 피죽도 못 얻어먹은 것처럼 핼쑥한 모습이었다. 그러면서도 어찌나 바보같이 웃고 있는지, 이곳의 이름이 왜 영화 <세 얼간이>에서 나온 건지 알 것 같았다

그들은 그땐 정말 말도 안 되게 더운 날씨였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진짜 한여름인 6월부터 8월 말까지 공사를 했거든요. 정말 더우면 바닷가에서 스노클링 장비를 들고 가서 더위를 식히곤 했어요. 그때는 전기 연결도 안 돼서 냉장고도 없었어요. 그래서 근처 식당에서 병맥주를 사서 마시기도 하고, 바닷물에 담가놓고 마시기도 했어요.” 그리고 보니 카페에서 술을 마시는 그들의 사진을 자주 보았던 것 같았다. 술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그들은 꽤 연륜 있는 아저씨처럼 대답했다. 

“밤에 공사를 다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멀뚱히 티브이 보기도 좀 그렇고, 밥하기도 귀찮다 보니, ‘그럼, 우리 술 한잔 할까?’ 이런 분위기가 되더라고요. 그렇게 매일 술을 마셨던 것 같아요. 막걸리를 많이 마셨어요. 공사하시는 분들이 막걸리 드시는 이유를 알 것 같더라고요. 약간 알딸딸한 기분에 노래 부르면서 일하면 좋아요.” 그렇게 술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레 알 이즈 웰의 음료인, 한라산 소주를 넣은 한라산 토닉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말이 나온 김에 우리는 늦은 아침을 먹기로 했다.

음, 훌륭해

한두 가지 정도의 음식이 나올 거란 생각과 달리, 네 개의 파스타와 음료가 상을 가득 채웠다. 크림, 오일, 토마토, 페스토로 이뤄진 파스타와 색이 고운 음료들. 요리를 담당하고 있는 민정 씨가 이곳의 대표적인 파스타에 대해 설명했다.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건 대게 크림 파스타에요. 백 퍼센트 생크림을 써서 부드럽고 굴 소스가 대게의 비린내를 잡아줘요. 또 탱 파스타는 저의 예명인 ‘탱’을 붙여서 만든 메뉴인데 제철 재료에 따라 바뀌어요. 요즘에는 봄나물 페스토로 만들고 있어요. 재료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저희는 주문이 들어오면 면을 삶기 때문에 식감 자체에서 차이가 있을 거예요.” 

그녀의 설명을 들으며 먹었지만 사실, 식감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그 정도로 소스가 맛있었기에 면이든 밥이든 모두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그리고 기대했던 한라산 토닉도 맛볼 수 있었는데, 첫맛은 달달하면서도 끝에선 알코올 향이 퍼지는 게, 빨대를 치운 뒤 들이키고 싶게 만들었다. 물론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나였기에 무리하진 않았지만.

여자 넷이 모여서 그런지 말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명절엔 그렇게 여자 혼자 오시는 손님이 많다며, 그 심정을 우리도 이해할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부터 옆 동네에서 때리는 주인을 피해 돌아다니는 강아지(알)를 데려온 슬픈 사연까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먼 곳에서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반갑고 편한 자리였다. 그 이후로도 한 시간 정도가 더 지나서야 우리는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었다.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는 내게 그들은 한참을 고민하더니 이런 말을 했다. 

“주변에서는 저희 사이가 항상 사랑이 꽃필 것 같다고 하는데, 사실 매일 티격태격해요. 처음에 집을 알아보러 다녔을 때 누군가 그랬어요. “너네 잘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잘 싸우는 거야”라고요. 저흰 지금도 잘 싸우고 있어요.”

결국엔

요즘의 나는 다시 스물한 살로 돌아간 것처럼 모든 게 서툴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 사잇길에서 매일같이 흔들린다. 열병이라도 난 듯 가슴이 답답하다 못해 울렁거린다. 누군가는 그것을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오는 흔한 병이라 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여러 핑계를 대며 떠난 제주 여행에서 나는 어떤 개를 만났다. 금능 바닷가의 얕은 물에서 수영하던 떠돌이 개. 평소라면 그 애를 보고 남몰래 눈시울을 붉혔을 테지만 제주였기 때문일까, ‘야, 너 인마… 좋겠네.’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사람들을 따라 방방 뛰어다니는 모습이 어지간히 행복해 보였다. 앉아서 그 애의 모습을 구경하고 있으니, 그녀들이 생각났다. 바다를 가로질러 제주에 와서 맘껏 수영하고 일하고 여행객들을 만나는 모습이 이 녀석과 다르게 보이지 않았다. 언제까지 부럽다는 생각만 하고 있어야 할까. 혼자의 여행이 겁나서 공책에 끄적이기만 했던 여행지들을 쭉 훑어 보았다. 그리고는 아주 충동적으로 항공권을 예매했다. 그래, 어쩌면 나에게는 도화선에 불을 붙여줄 용기가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안정이라는 건 없을지라도 한구석에 마음이 묶여있는 삶보다는 나을 것 같다. 뭐, 모든 게 잘 되겠지. 알 이즈 웰, 알 이즈 웰…….

알 이즈 웰의 카페와 벨롱장(세화에서 열리는 오일장)에선 파스타 소스도 판매하고 있다. 때에 따라서 소스는 비스큐, 토마토 등으로 메뉴가 달라진다. 수량이 한정되어있으므로 사이트에서 공지를 확인하는 것이 좋겠다

알이즈웰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 1288-5
cafe.naver.com/hdalliswell
Tel 070-8803-2699
Open

월~토 10:00~20:30
일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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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포토그래퍼 이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