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으로 어서 오세요

민용준∙이주연 — 시네밋터블

나른한 햇살이 쏟아지는 오후, 정지된 풍경처럼 모든 것이 평화로워 보이는 옥인동 한편에서 노란 현관문을 두드렸다. 곧이어 문을 연 민용준·이주연 부부는 우리에게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시네밋터블이라는 이름으로 영화를 말하고 요리를 내어주는 이들은 얼마나 많은 손님에게 말간 얼굴로 인사를 건넸을까. 익숙하고 뻔하던 인사말이, 낯선 방문객에게 기꺼이 문을 열어준 인사말이 유독 다정하게 들렸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여기가 옥인동이죠? 골목들이 아름답더라고요.

용준 오시는 데 힘들지는 않으셨어요? 길을 찾기 어려웠을 텐데. 옥인동에서도 안쪽에 자리한 연립 주택이라서요. 올라오면서 보셨겠지만 여기는 3층이 가장 높은 층이라, 바깥으로 보이는 동네 풍경이 색달라요. 저기 보이는 게 인왕산 범바위인데요. 그 주변에 조그맣게 움직이는 건 전부 등산객이에요. 밤에는 인증 사진을 찍거나 길을 찾느라 플래시가 번쩍이는데 그걸 보는 것도 나름 재미있죠.

 

어? 저기 어둠 속에 고양이가 있네요. 눈이 마주쳤어요.

주연 이 집에서 6년 넘게 함께 산 ‘구니니’예요. 부쩍 건강이 안 좋아져서 병원에도 가고 수술도 했더니 기운이 살짝 없어요. 아마 지금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니 무슨 상황인지 궁금한 것 같은데, 눈을 보니 편안한 상태네요. 조금 있으면 슬렁슬렁 걸어 나올 거예요.

 

이야기를 나누면서 구니니를 기다려 볼까 봐요. 먼저 간단하게 인사해 주실래요?

주연 저희는 옥인연립을 고쳐서 살고 있는 부부이자 ‘시네밋터블Cinemeetable’ 운영자예요. 저는 프리랜서 에디터로 주로 미식 관련 기사를 쓰고, 남편은 영화 저널리스트이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어요. 아, 그리고 구니니의 집사기도 하네요.

용준 구니니의 소개도 할까요? 이 근처에 청와대가 있었다 보니 군인아파트가 가까운데 그곳에서 발견된 고양이였어요. 임보를 하던 친구네서 데려와 여태껏 지내고 있죠. 사람은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데 고양이들에게는 겁을 먹어요. 아마 누군가 집에서 키우다가 내보낸 것 같은데 그때 길고양이들에게 치였나 봐요.

 

잠시 둘러보니 영화 관련 굿즈들과 큰 테이블이 먼저 눈에 띄네요. 여기가 영화와 요리를 나누는 시네밋터블의 장소구나 싶었어요.

용준 물건이 많죠? 시네밋터블이 영화에 대한 해설을 들려주고, 영화 속에 등장한 음식을 먹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이름도 영화의 ‘Cine’와 음식을 먹는 공간인 ‘Table’이 만난다는 뜻이에요. 가능성의 의미를 더하고 싶어서 ‘Able’에도 방점을 찍었는데요. 이 집에서 여러 사람이 모이면 재미있는 대화와 일들이 벌어질 것 같았어요. 실제로도 그랬고요.

주연 2020년 2월부터 지금까지 58회 정도 했더라고요. 첫 해에만 50번 가까이 열었던 것 같아요. 코로나19가 심했던 시기에는 중단했다가 올해 들어 다시 조금씩 문을 열어두는 중이에요.

 

그럼 영화는 용준 씨가, 요리는 주연 씨가 맡아서 진행하는 거예요?

용준 맞아요. 1부와 2부로 나눠진 셈이죠. 1부는 제가 시각적 자료를 활용해서 영화 해설을 하는 시간이에요. 신청 받을 때 감독과 영화, 요리를 공개하기 때문에 다들 영화를 본 후 관련된 이야기를 들으러 오시는 건데요. 그에 맞춰 세심한 해설을 하는 편이라 길 때는 1부만 해도 세 시간이 넘어요.

 

세 시간이요? 대학교 수업도 한 시간 반이면 쉬는 시간을 주는데요….

용준 저도 모르게 그렇게 되더라고요(웃음). 이제는 짧게 이야기하면 생각보다 그렇게 길지 않았다며 아쉬워하는 분들도 계세요. 물론 화장실은 맘 편히 가시게 하고요.

주연 1부가 진행될 때, 저는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어요. 맛있는 냄새가 거실로 새어 나가다 보니 해설 듣는 분들이 힘들어하시기도 해요. 이후에 주방으로 오시라고 부르면, 다들 엄청 행복한 얼굴로 식탁에 모여 앉아 맛있고 빠르게 식사를 마치세요. 2부에서는 좀더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어서 식사 후에 술이나 디저트 같은 것도 내어드려요.

용준 지금 생각해 보니 저는 아내의 시간을 클라이맥스로 만드는 역할이었네요.

주연 사실 1부는 2부를 위한 예열 단계라고 생각해요(웃음).

 

그런 비밀이 있었군요(웃음). 사적인 공간에 낯선 사람들을 초대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용준 물론 두려움이 있었죠. 오는 분들의 연락처와 이름만 알거든요. 그래도 수십 번 하다 보니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훨씬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같은 취향과 마음으로 모였다는 믿음의 벨트라고 할까요? 누군가를 부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으니,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고민이 들더라고요. 오라고 한들 사람들이 돈을 내고 와줄까 싶었고 우리가 준비한 것들이 만족스럽지 않을까 봐 걱정됐어요.

주연 음, 그런데 저는 누구든 와줄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두 분이 다른 생각이었네요.

주연 저와 남편이 친한 사람들끼리 모여 맛있는 음식 나누면서 대화하는 걸 좋아해요. 이 집으로 이사 온 뒤부터 친구들을 집에 불러서 시간을 보냈는데요. 저희가 준비한 공간과 시간을 정말 좋아해 줬어요. 소셜 다이닝을 해보고 싶던 터라 이게 단순한 만남이 아닌 의미 있는 모임이 되면 어떨까 생각했죠. 게다가 남편이 영화 기자니까 설명과 함께 영화 속 요리를 먹으면 좋겠다는 기획도 바로 떠올랐고요. 딱 한 가지 고민은 이 사람이 해설을 하긴 하는데 잘하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가족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볼 일이 없잖아요.

용준 저를 못 믿었던 거죠(웃음).

주연 그랬나 봐(웃음). 그러다가 우연히 지인이랑 남편의 해설을 들으러 가게 된 적이 있어요. 부끄러우니까 제일 끝자리에서 앉아서 혹시 실수하는 건 아닌지 조마조마하게 지켜봤죠. 그런데 어땠는 줄 아세요? 끝날 때 완전히 몰입해서 엉엉 울면서 나왔어요. 다음 날 바로 이야기했죠. 시네밋터블 해보자고.

 

어쩌면 동업이라고도 볼 수 있을 텐데, 부부가 함께 일하는 건 어떤가요?

주연 우리 집에 그냥 놀러 오는 분들이 아니라, 정당한 금액을 내고 무언가 얻기 위해 오시는 분들이니 서로 더 깐깐하게 굴게 돼요. 각자 맡은 부분을 잘하는지 불신과 검증이 오가거든요. 서로 피드백도 정확하게 주는 편이에요. 끝없이 의심하고 경쟁하고….

용준 똑바로 하고 있는지 감시하고… 많이 투닥거리죠. 가장 중요한 건 서로를 믿지 않는 거예요.

 

두 분만의 ‘티키타카’가 오가네요(웃음). 시네밋터블 소재를 선택할 때 기준이 있나요?

용준 마냥 대중적인 작품을 고르기보단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할지가 가장 중요해요. 아무리 재밌게 봤어도 해설이 필요 없는 경우도 있고, 생각보다 별로인데 무슨 의미인지 너무 궁금할 수도 있어요. 후자는 영화가 나쁘다기보다 나한테 메시지가 와닿지 않아서, 좋아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고요. 해설을 들으면 영화를 바라보는 시야가 훨씬 넓어져요.

 

알면 알수록 보이는 게 많아지는 것 같아요.

용준 사실 영화 속 의미 같은 거 모르고 살아도 삶에 문제없잖아요. 하지만 이런 재미를 깨닫고 나면 즐거움이 커져요. 이 감독을 흥미롭게 바라보면 저 감독은 어떨지 궁금해지고, 재미가 하나씩 늘어나는 거죠. 이건 세상을 보는 관점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해요. 무언가를 파고들어 볼수록 평소에는 잘 몰랐던 나에게 접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요.

 

무궁무진한 세계네요. 주연 씨는 수십 편의 영화에 등장하는 요리를 만들었는데 유독 기억에 남는 게 있어요?

주연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2016)를 다뤘을 때가 떠올라요. 조진웅 씨가 맡은 코우즈키가 실은 조선인이면서 일본인인 척 사는 인물이었는데요. 입맛은 여전한지 평양냉면을 먹어요. 그 장면이 인상 깊어서 난생처음 만들어 보기로 했죠. 유명한 노포들이 내는 맛을 구현하기는 어려우니, 실제로 평양에서 먹듯 동치미 국물에 고기 육수를 섞기로 했고 그렇게 매주 동치미를 담갔어요. 모든 동치미의 맛이 일정해야 하니까 종갓집 며느리처럼 ‘씨 국물’을 남겨두고 만들고 또 만들고. <도전 요리사!> 같은 가상 프로그램을 찍는 기분이었달까요? 

 

매주 똑같은 맛의 동치미라니, 고된 일을 해내셨어요. 시네밋터블에는 주로 어떤 분들이 오세요?

주연 영화를 좋아하거나 먹는 걸 좋아하거나, 또는 둘 다 좋아하거나예요. 캐릭터가 뚜렷한 프로그램이다 보니 기호가 중요하거든요. 한편으로 신기했던 건 생각보다 집이 궁금해서 오시는 분들도 많았다는 거예요. 사실 집에 대한 애정이 조금 식어가고 있었어요. 오래 살기도 했고 익숙한 구조를 바꾸는 걸 좋아하거든요. 제가 바라보는 집은 항상 똑같은데, 사람들이 오면 낯선 장면을 발견해 주니까 공간이 새롭게 보였어요. 이제는 오히려 더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여기선 언제부터 지낸 거예요?

주연 2017년도 봄이었어요. 신혼집이 근처에 있었는데 햇빛이 잘 안 들었어요. 마침 프리랜서를 시작했을 때라 집에 하루 종일 혼자 있었거든요. 빛이 안 드니까 음침하고 습한 기운이 돌더라고요. 동굴 같은 집을 나와서 또 구렁이 같은 골목을 내려오는데, 갑자기 누가 조명을 켜놓은 것처럼 거리에 햇빛이 환하게 비추는 거예요. 그 햇빛 조명 아래 이 연립 주택이 있었죠. 이사 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서 매물이 나오면 남편을 설득해서 함께 보러 왔어요. 흑심을 품고 있지만 “구경에는 돈이 안 들잖아!” 하면서요.

용준 처음에는 이사를 반대했어요. 주택이 1979년에 지어진 이후로 한 번도 고친 적 없고 한동안 사람도 살지 않았대요. 여기저기 다 녹슬고 고리로 여닫는 창문은 뒤틀려 있고 바닥은 새까맸어요. 집을 거의 새로 짓듯 고쳐야 했죠. 아내가 공간을 구성하고 채워 넣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 저를 연신 설득했고, 결국 넘어갔어요(웃음). 아까도 말했지만 3층이 꼭대기 층이라 천장을 더 높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최대한으로 올리고 벽 대신 책장으로 공간의 경계를 만들어서 답답함을 해소했어요. 주방 한편에 달려 있던 작은 방을 없애고 베란다를 터서 넓게 만든 덕분에 시네밋터블을 하는 커다란 테이블도 들어올 수 있었죠.

 

설득에 넘어간 덕분에 아늑한 두 분의 공간이 탄생한 거네요.

용준 그렇죠. 집 현관문을 노란색으로 칠했는데 저는 그게 가장 마음에 들어요. 보통은 세월의 흔적이 보이지 않도록 짙은 색을 칠하잖아요. 일반적인 생각을 뒤집는 밝은 노랑이라 경쾌하게 느껴져요.

주연 저는 집 안에서 보는 바깥 풍경을 좋아해요. 계절마다 달라지는 자연의 빛깔을 볼 수 있거든요. 근처에선 보기 힘든 두충나무 자태나 인왕산을 오르는 사람들도 귀엽고요.

용준 근데 생각해 보니까 우리 둘 다 집 바깥만 좋아하고 있잖아?

 

(웃음) 어쨌든 이곳에 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거겠죠? 집에서 시네밋터블이 끝난 상황을 상상해 볼게요. 어떤 모습인가요?

주연 손님들이 다 가시면 둘 다 일단 소파에 널브러져요. 무사히 끝냈다는 안도감에 에너지도 바짝 썼으니, 힘을 쫙 풀고 잠시 멍하니 쉬죠. 남편과 오늘은 어땠는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주방으로 돌아와 뒷정리를 하기 시작해요. 설거지며 청소거리가 잔뜩 쌓였으니까요. 이런 부분은 고되어도 할 때마다 즐겁고 신나요. 한 번 오신 분들이 다시 방문해 주시면 기쁘고, 시네밋터블에서 만나 가까운 사이가 되기도 해요. 어떤 날은 새벽 세 시까지 먹고 마시며 수다 떤 적도 있을 정도로요. 이외에는 남편과 단골 바에 가서 회포를 풀기도 해요.

 

이쯤 되니 용준 씨와 주연 씨의 인연이 궁금해져요. 어떻게 처음 만났어요?

용준 같은 회사를 다녔어요. 서로 다른 부서에서 소속팀의 매거진을 만들던 때라 자세히는 몰랐어요. 그러다 우연히 팀끼리 같이 술을 마시면서 처음으로 인사하게 됐죠. 근데, 정말로 안 맞더라고요(웃음).

주연 다시는 술 같이 안 먹어야지 싶었어요. 너는 오늘이 끝이다!

 

아니, 무슨 드라마 같은 만남인데요?

주연 그땐 그랬어요(웃음). 이후에도 몇 번 더 같이 술 마시게 돼서 이를 갈면서 나갔는데, 얘길 좀더 해보니까 그렇게 이상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 거죠. 남편이 먼저 만나자고 해서 3년 정도 연애하고 결혼했어요. 

용준 그땐 우리가 결혼한다는 것도, 회사를 나온다는 것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둘 다 에디터에 프리랜서라서 좋은 점이 있어요. 에디터 일이라는 게 어찌 보면 굉장히 불규칙한 생활인데, 일상의 오르내림을 서로 이해해 줄 수 있으니까요. 지금까지 잘 지내는 걸 보면 다른 누구보다 함께 있을 때가 가장 재미있나 봐요.

지나온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볼게요. 용준 씨는 영화라는 분야에 집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용준 기자로 처음 일한 곳이 영화 웹진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리뷰 기사를 쓰거나 감독과 배우 인터뷰를 자주 하게 됐죠. 배운 도둑질이라고 할까요? 열심히 배우고 체득했으니까 어떤 일을 맡더라도 자연스레 관심이 가더라고요. 저한테는 붙잡을 수 있는 무기이자, 일의 코어가 영화였던 거죠. 《ELLE》나 《Esquire》같은 패션지에서 피처 에디터를 할 때는 라이프 스타일과 트렌드를 다루는 기사도 썼어요. 패션지에서는 완전히 낯선 일이었던 촬영 디렉팅도 했는데, 너무 어려워서 그걸 굳이 내가 해야 할까 하는 건방진 생각도 했어요. 참 신기한 게, 낯선 시도가 쌓일 수록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넓어지더라고요. 영화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돼서 그때부터는 즐겁게 했던 것 같아요. 

 

어떤 경험과 시도든 나중에 도움이 될 때가 오나 봐요. 

용준 그럼요. 예전에 서빙 알바를 오래 했는데, 그것도 시네밋터블에 도움이 돼요. 한 손에 트레이를 얹고 많은 요리 접시들을 안전하게 옮길 수 있거든요. 나를 해치지 않는 경험이라면 언제든지 해봐야 한다는 마음이에요. 

 

《어제의 영화. 오늘의 감독. 내일의 대화》를 쓰셨죠. 열세 명의 감독과 나눈 인터뷰를 상당한 분량으로 담은 책이에요. 

용준 저에게 좋은 영화는 좋은 꿈 같아요.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극장에서 나올 때 아쉽다는 마음이 들잖아요. 기분 좋은 꿈을 꿀 때 깨고 싶지 않다는 감정과 비슷한 것 같아요. 그 여운이 저를 영화 바깥으로 이끌어서 그걸 만든 사람의 시선이 궁금해져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요리사가 궁금해지듯이요. 만든 이와 대화를 나누면서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를 확인해 보고, 함께 의미의 원점으로 가보는 거죠. 그래서 인터뷰라는 방식을 선택하게 됐어요. 아시겠지만 인터뷰는 참 지난한 작업이에요. 준비에는 품이 많이 들어가고, 지금처럼 촬영까지 하면 해야 할 일이 산더미죠. 주변 사람들과 소통도 긴밀해야 하니, 영화로 따지면 프리프로덕션부터 포스트프로덕션까지 해내는 거예요. 게다가 섭외는 또 얼마나 녹록치 않은가요. 

 

(고개를 끄덕이며) 이번 인터뷰에 흔쾌히 참여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했어요. 

용준 지금껏 쌓아온 업보가 있어서요(웃음). 그런데도 불구하고 인터뷰를 하는 이유가 무얼까 고민해 봤는데요. 이건 나와 저 사람의 대화를 통해 탄생한 작업물이잖아요. 다른 누군가가 똑같이 할 수 없는, 나만이 해낼 수 있는 고유함이 존재하는 거죠. 직접 대면한다는 것도 매력적이에요. 보이지 않는 상태에선 전해지지 않는 온도가 마주하면 바로 와닿으니까 귀한 시간이에요. 눈을 마주 보고 이야기를 해야 말의 의도가 분명해지고 공감도 진심으로 해줄 수 있고요. 

 

인터뷰가 고유하고 귀중한 대화라는 말에 공감해요. 

용준 여담이지만 예전에는 “이번 인생은 망했다!”라는 말을 진심 반쯤 담아서 내뱉곤 했어요. 그때는 정말 그런 기분이었거든요. 이 책을 내면서 자주 하던 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어요. 존경하는 열세 분의 감독님이 호의를 갖고 시간을 내어주었는데, 아무렇게나 가벼운 말을 하는 인터뷰어가 되고 싶진 않았어요. 이제는 그런 말을 일절 안 해요. 이 책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초점을 맞춘 건 아니거든요. 모든 거장들, 잘 만든 영화를 세상에 내보인 감독들도 저마다 고민이 있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풀어갔다는 시선으로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번에는 주연 씨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용준 씨보다도 먼저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했죠? 

맞아요. 저는 익숙한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새로운 걸 도전하고 시도해 보는 게 재미있는 사람이에요. 회사 생활을 하면서 한 매체에서만 말을 짓고 콘텐츠를 만들다 보니 반복적인 일상이 되어버렸어요. 아무리 새로운 기획을 해봐도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리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죠. 퇴사 후에 다양한 일을 주도적으로 해보기로 마음먹고 제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들에 집중하고 있어요. 

 

그렇게 해서 알게 된 좋아하고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주연 새로운 걸 기획하는 거요. 그건 회사에 속해 있을 때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편집장이나 동료들이 촬영 기획 하나를 이런 방식으로 할 수 있겠냐, 너무 어려울 것 같다고 하는데, 그냥 제가 캐리어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다 챙겨서 취재 나가곤 했어요. 주어진 상황에 가진 것을 더해서 최대한 참신하고 완성도 높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거죠. 이후에는 그게 시네밋터블로까지 이어졌다고 생각해요. 작게는 집이라는 공간을 채울 때부터 크게는 우리 둘만의 프로그램 구성과 진행까지, 기획하고 실행하는 일이 즐거웠어요. 

 

책을 만드는 일과 공간이나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일은 조금 다르게 보이는 데요. 

주연 제 시선에선 전부 같아요. 후자는 피부로 만진다기보다 분위기로 체감하는 것이라 더 입체적이고 레이어가 많을 뿐이죠.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거기에다 살을 붙여가며 완성물을 만드는 건 모든 일에 필수적인 과정이니까요. 

 

요리하는 건 원래부터 즐겼는지 궁금해요. 

주연 끼니를 챙겨야 하니 요리는 자주 했어요. 식사 시간마다 새로 만든 음식을 먹는 걸 좋아하거든요. 잘 차려 먹고 싶은 날에는 풍미를 생각하면서 어울릴 만한 술이나 디저트를 곁들이고, 예쁜 식기에도 담아요. 제가 음식을 차려야 가족들, 시네밋터블에 와준 손님들이 공간을 더욱 밀도 높게 즐기고 행복해지잖아요. 저한테 그런 능력이 있고, 능력을 쓸 기회가 있다는 데서 요리가 자존감을 높여주는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영화와 요리 모두 취향이 중요한데요. 두 분의 취향은 비슷한가요?

주연 예상하셨을지도 모르지만 하나도 안 맞아요(웃음). 저는 매 끼니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서 먹고 싶은데 남편은 간단한 밑반찬만 있어도 잘 먹어요. 제가 음식이 주는 행복을 안다면 남편은 음식이 주는 효용성을 우선으로 생각하나 봐요. 영화도 옛날에는 봉준호 감독이나 박찬욱 감독의 작품은 잘 안 봤어요. 시네밋터블을 시작한 뒤에 남편한테서 귀동냥 얻으며 다시 꼼꼼히 보니, 잔혹한 것 같던 이야기가 절절한 연애 스토리로 와닿더라고요. 그동안 편협한 취향을 갖고 있던 게 아닐까 싶어서, 감독들의 매력을 재발견하는 건 취향이 달라서 얻는 장점같아요.

 

생활 패턴은 어때요? 마감에 맞춰 일상을 조절해야 하잖아요.

용준 마감이 다가오면 하루 종일 일해야 하잖아요. 잠을 양보하고 일에 온 정신을 쏟기도 하고요. 예전에는 잠이나 휴식이 부족할 때 애가 탔다면 이제는 오늘 하루 잠을 좀 못 잤더라도 ‘뭐, 내일 자면 되지.’ 하며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도 밤은 절대 안 새우려고 해요. 마흔이 넘으면서 하루만 날을 꼬박 새워도 여진이 2-3일은 가는 것 같거든요. 이어진 일정에도 영향을 주고요. 규칙적인 수면 패턴을 갖고 있진 않지만 이거 하나는 꼭 지키려고 해요.

주연 일이 많을 땐 하루 24시간 내내 둘이 집에 있지만, 누구에게 맞추지 않고 각자의 일상으로 지내요. 저는 마감 기한을 꼭 지키는 편이라 그 전까지는 무리할 때도 있는데요. 기한을 지키는 게 상대방을 위한 이유도 있지만 누군가를 기다리게 한다는 것 자체가 견디기 힘들어요. 그런 면에서는 남편이 느긋한 것 같아요. 일정을 최대한 맞춰서 진행하되, 변수가 생겨도 크게 부담을 느끼진 않거든요.

 

그렇군요. 평소에 잠은 잘 주무세요?

용준 누웠을 때 무리 없이 잠드는 건 하루에 무얼 했느냐가 많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요. 가끔 잠이 안 온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거든요.

주연 덜 고생한 거 아닐까(웃음).

용준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야? 아무튼 예전에는 늦게 일어나면 죄책감이 들었어요. 무조건 아침부터 하루를 시작해야 할 것 같은, 그렇지 않으면 삶을 낭비하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 있잖아요. 이제는 낮과 밤의 시간을 대부분의 사람이 아닌 나의 기준에 맞춰서 이끌어요. 늦잠 자도 부끄러운 기분 없이 푹 자고 일어나면 돼요.

 

이제는 언제 일어나느냐가 성실성의 기준이 아닌 거네요. 일상에서 지키는 원칙이 또 있을까요?

용준 아침에 꼭 청소를 해요. 집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긴데, 아침부터 곳곳이 어질러져 있으면 마음이 불편하더라고요. 깔끔하지 못한 부분이 자꾸 시야에 들어오니까 거슬리고요. 어쨌든 내가 지낼 공간이라면 무심하게 방치하거나 자포자기한 느낌이 들지 않도록 청소기라도 돌려요. 일상의 나사를 조이는 행위같은 거죠. 

주연 그리고 올해 초부터는 아침 식사를 하기 전에 식전 채소를 먹고 있어요. 샐러드를 포함한 생채소나 가볍게 드레싱을 뿌릴 때도 있고, 찌거나 굽기도 해요. 식이섬유가 많은 채소를 먼저 섭취한 후에 식사로 단백질이나 탄수화물 등을 조화롭게 먹는 게 몸에 좋대요. 저희가 열두 시 정도 되어야 첫 끼니를 먹거든요. 계속 공복으로 있다가 수분이 많은 잎채소를 아삭아삭 씹으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피로 회복도 되는 느낌이에요.

일어나서 처음 먹는 거라 식감이나 맛이 더 예민하게 느껴지나 봐요. 쉬실 땐 무얼 하세요?

용준 쉴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최고죠. 약속이나 일로 외출하는 게 아니라면 집에 있는 걸 좋아하거든요. 한번은 일 하느라 일주일 동안 아예 안 나간 적도 있어요. 요즘에는 그것보단 좀더 움직이면서 에너지를 소비해 보려고 하는데, 걷기가 제일 만만해서 아내 따라 밤마다 산책을 다녀요. 그동안은 걷는 걸 비효율적인 행동이라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동네 이곳저곳 밤 산책을 나서니 매일 지나는 거리도 새롭게 보이더라고요. 에디터는 일상 속 사소한 것도 붙잡아 하나의 소재로 활용하곤 하니까, 저한테 휴식이자 큰 영감이 되어줘요.

 

가만 보니 집에서 놀고 일하고 만나고, 모든 게 이루어지네요.

주연 가장 나답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이라서 그런가 봐요. 모임을 주최한다고 하면 저를 외향적일 거라 기대하시는데, 내향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이거든요. 평소라면 제 이야기 하는 걸 조금 부끄럽게 여겼을 텐데, 집과 시네밋터블은 다 제 손을 거쳐 간 것들이니까 하나도 어색하지 않아요. 익숙하니까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들도 있을 거고요.

 

집만 있다면 무엇이든 해낼 두 분께 앞으로 꿈꾸는 일상이 있다면요?

용준 집에서 이것저것 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이곳에서 탄생한 무언가가 집의 의미를 나타내기도 해요. 인터뷰를 모은 제 책도, 우리의 시네밋터블도요. 이 집을 생각하면 함께 떠오르는 증거 같은 물건 하나를 더 갖고 싶은데 아마 책이 아닐까 싶네요.

주연 저는 시네밋터블을 더 자주 열고 싶어요. 만남에 제한이 사라졌으니 많은 분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 보내고 싶거든요. 구니니에게 애정을 보내주시는 분들도 만나고요.

용준 그래, 그러려면 이제는 좀 덜 싸우고 잘 지내보자.
(일동 웃음을 터뜨린다.)

시네밋터블의 테이블 둘러보기

1. <벌새>(2019)
김보라 감독의 데뷔작 <벌새>와 초기 단편 영화로 그의 세계를 탐구한다. 이어진 식사에서는 실타래 감자전과 제철 솥밥, 4색 장조림, 홈메이드 멍게 젓갈을 대접한다. ‘구름아양조장’의 한정판 천도복숭아 술 ‘사랑의편지’까지 곁들이면 완벽한 영화의 만찬이 된다.

2. <아가씨>(2016)
<아가씨>를 비롯한 박찬욱 감독 작품 해설에 진한 육향이 풍기는 가정식 냉면을 더했다. 영화에도 등장한 쑥떡과 막대사탕을 웰컴푸드로 제공하고, 오니기리에 사케 한 잔을 곁들인 후 와인을 마시며 영화의 여운을 이어나간다.

3.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8)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인상적인 영화를 만들어온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작품 세계를 들여다보며 복숭아 술과 감자 뇨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올리버가 좋아한 살구주스와 반숙달걀, 누텔라잼에 곁들이는 브레드까지 풍요로운 이탈리안 식탁을 즐겨본다.

4.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타란티노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아홉 편을 톺아보는 프로그램으로 시그니처 버거 ‘빅카후나’를 연상시키는 치즈버거,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2019) 속 맥앤치즈와 사우어크라우트, <데쓰 프루프>(2007) 속 나초그랑데를 준비한다. 거기다 디카프리오처럼 마셔보는 홈메이드 마가리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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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명주

포토그래퍼 김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