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취향으로부터 자랄 너의 우주

남필우 ㅡ 편집자·김새롬 ㅡ 일러스트레이터

아이에게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라고 했다. 아빠 남필우와 엄마 김새롬이 서진이에게 주고 싶은 것은 단순히 유익한 것이 아닌, 자신들의 취향이 담긴 세계다. 글로벌 아티스트 에이전시 ‘핀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디자인 스튜디오 ‘폴라웍스 아트코’를 운영하며 매거진 《BGM》과 《hep.》을 만드는 아빠, 일러스트레이터 ‘로말리’ 엄마와 함께 보내는 하루 동안, 서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걸 알아채는 감각을 쌓아간다.

방금 서진이가 저한테 그림 선물을 주고 갔어요.

필우 에디터님을 그렸나 봐요. 서진이가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요. 나중에 가치가 올라갈 수도 있으니 잘 보관해 주세요(웃음).

 

그럴게요(웃음). 서진이는 굉장히 외향적인 것 같아요. 두 분도 그런 편이세요?

새롬 서진이는 관심받거나 칭찬받는 걸 좋아해요. 예전에 ‘스탠딩에그’의 ‘SAY YES’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요. 자기 모습이 영상에 나오는 것도 되게 좋아하더라고요. 우리는 서진이만큼 외향적이지는 않지만 사람들을 굉장히 좋아해요.

 

서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지인들도 자주 만나고 즉흥적인 여행도 즐기는 부부였다면서요.

필우 맞아요. 둘이 새벽에 갑자기 바다로 떠나기도 하고, 놀면서 24시간 이상 깨어 있던 적도 있어요. 익스트림한 활동도 좋아했고요. 결혼 1주년 때는 같이 인천 굴업도로 백패킹을 갔거든요. 그런데 태풍 오고, 바람에 텐트 안 날아가게 하려고 애쓰고…. 그런 기억도 있네요.

새롬 아이 낳고 나서는 그런 생활과 완전히 단절됐죠. 둘 다 예쁜 거 보는 걸 좋아하는데 이제 그런 공간은 가끔 갈 수 있고, 집에서의 생활이 주예요. 그래서 집을 더 예쁘게 꾸미려고 하나 봐요.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은 이전과는 아주 다르죠?

필우 예전에는 육아의 타임테이블을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아기가 자다가 두 시간마다 깬다는 걸 몰랐어요. 그때마다 일어나니까 피로가 누적되더라고요. 개인 시간을 보내려면 아이의 생활 패턴에 맞추고 남는 시간을 활용해야 하는데 그 시간에도 피곤했어요. 서진이가 유치원을 다니는 지금까지도 새롬이는 본인의 삶이 거의 없어요.

새롬 그래도 지금은 아이가 유치원을 가면 개인 시간을 보내고, 서진이도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많아지다 보니까 좀 나아지긴 했어요. 요즘엔 오빠가 조금 늦게 퇴근하고 들어와도 마음의 여유가 있고요.

 

서진이의 탄생을 기점으로 부부의 모든 생활이 아이 중심이 된 거네요.

필우 네. 요즘 식당에 가면 저와 새롬이가 각자 음식을 끝까지 안 먹고 일단 기다려요. 서진이가 전보다 식사량이 늘어서 더 먹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우리의 1순위는 서진이가 맞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이젠 결혼 안 한 친구들과 만나기가 좀 어렵긴 해요. 서진이를 데리고 가기엔 모임 시간이 너무 늦거나, 서진이랑 같이 즐길 거리가 없어요. 반면에 아이가 있는 새로운 가족들과 만남이 이어지더라고요. 아이가 있는 집은 식당 고르는 기준, 라이프 스타일 같은 것들이 다르거든요.

 

결혼 초 두 분이 즐기던 삶이 워낙 자유로웠기 때문에 아쉬움이 더 클 것 같기도 해요.

필우 그래서 예전에 둘이 즐기던 걸 서진이도 함께 집에서 경험하게 하려고 노력해요. 처음엔 셋이 같이 그림을 그렸어요. 그림은 엄마의 취향이에요.

새롬 요즘엔 서진이가 꽂히는 음악이 있으면 아빠와 공유하더라고요. 아빠가 매달 서진이한테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준다고 구형 아이팟도 샀어요.

 

우와, 아빠가 만들어주는 플레이리스트요?

필우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도 플레이리스트를 만들 수가 있지만 물성으로 만지게 해주고 싶어서 MP3 파일을 매달 30곡씩 구매하고 아이팟에 넣을 거예요. 월별 주제도 정하고요. 서진이에게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려주고 싶거든요. 제가 아이한테 해줄 수 있는 작은 프로젝트예요. 나중엔 록 페스티벌 같은 데 함께 가는 게 꿈이기도 해요. 음악이든 그림이든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여러 도구가 있으면 좋겠어요.

새롬 저는 아침에 서진이를 등원시킬 때 차에 라디오를 틀어놓는데 이제는 음악이 나오면 악기만 나오는지, 목소리가 나오는 음악인지 구분해서 저한테 얘기도 해주더라고요.

이렇게 아이가 다양한 걸 보고 경험하게 하는 이유가 궁금해요.

필우 서진이가 멋진 편집인이 됐으면 좋겠어요. 요즘은 책을 넘어서 다양한 걸 편집하는 시대잖아요. 여러 경험을 하며 안목이 높아져서 자기 기준에 따라 추천할 수 있는 것들을 선별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요. 그리고 요즘은 어린 친구들도 유튜브에서 어른들이 보는 걸 같이 보잖아요. 이왕 그런 시기를 겪어야 한다면 우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콘텐츠를 같이 보고 들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만의 세계도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만화도 보지만요.

새롬 다른 부모님들도 똑같겠지만 새로운 걸 경험하게 한다고 무조건 즐거워하지는 않으니까, 회의감이 들 때도 물론 있어요. 대단한 전시를 보여준다고 아이가 감탄하지는 않더라고요(웃음).
필우 그래서 주변에 재밌는 직업을 가진 분들이 많으니까 좀더 크면 그분들이랑 같이 시간을 보내게 하고 싶어요. 음악 작업이나 그림 그리기를 경험하게 한다면 저 친구에게 큰 도움이 되겠죠.

 

부모님의 취향뿐만 아니라 주변인들의 취향에도 좋은 영향을 받겠어요.

필우 그럴 것 같아요. 제가 서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 일기에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많이 썼더라고요. 그중에 그런 것도 있었어요. 아빠는 네가 좋은 친구들을 만나기보다는 네가 친구들에게 좋은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이 자신이 됐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였는데요. 이건 이기적인 것과는 조금 달라요. 새롬이와 저는, 아이가 내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일찍부터 알기를 바라요.

 

필우 씨는 편집인이 되기 전에는 음악을 했다고요.

필우 저는 배고픈 걸 모르고 하는 일이 그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저한테는 음악이 그랬거든요. 악기 연주하고 음악 하는 게 삶에서 제일 재밌었어요. 곡도 쓰고 녹음도 하면서 팀을 확장해 나갈 때 새롬이를 만났죠. 지금은 조금 미뤄뒀는데 언젠가 음악을 하는 게 삶의 목표예요.

 

새롬 씨는 일러스트레이터 로말리로 활동하고 있죠?

새롬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관련 없는 일을 했었어요. 그러다가 결혼하고 나서 오빠가 다시 그림을 그리면 어떻겠냐고 제안하더라고요. 일러스트랑 포토숍을 다시 공부해서 취미로 그림을 시작했는데 오빠가 일러스트 페어에 출전해 보자고 해서 재밌게 다녀온 뒤부터 일러스트레이터 활동을 시작했죠. 마침 그때 아기가 생겨서 일을 쉬었지만요.

필우 일러스트 페어가 전환점이 됐어요. 보통 조그만 부스에 작품을 올려놓기만 하는데 우리는 새롬이 작품이 공간과 어울리도록 핑크색 벽에 앤티크 가구도 갖다 놓고 연출했거든요. 그리고 귀여운 캐릭터 중심의 일러스트가 아니라 누구나 아는 사물을 친근하게 표현하니까 색달랐나 봐요. 사람들 반응이 좋았고 그 뒤로 협업도 많이 했죠. 그리고는 작업실을 마련하려고 했는데 서진이를 갖게 돼서 그러진 못했어요. 좀 아쉽기도 해요. 중간중간 삽화 작업은 계속해 왔지만요.

어떤 마음으로 일러스트 페어에 나가보자고 제안한 거예요?

필우 일러스트 시장에서 빈틈이 보였는데 그 영역에서 새롬이가 빛을 발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게 그때는 정확히 맞았어요(웃음). 새롬이가 작업을 시작한 건 저한테도 전환점이 됐는데요. 이전까지 매거진을 만들겠다는 계획만 갖고 있다가 새롬이의 일러스트 북을 만들어주게 됐어요. 어쩌다 보니 제 첫 출판물이 새롬이의 작품집이 된 거예요. 그걸 계기로 출판을 시작했죠.

 

와, 아내와의 작업이 다양한 매거진을 발행하게 된 기반이 된 거네요?

필우 그렇죠. 이전엔 제 개인적인 결과물도 없었고, 관찰자로서 그림이나 디자인을 좋아했다면, 일러스트 페어 이후로는 플레이어로서 적극성을 띤 것 같아요.

새롬 저도 혼자였다면 못 했을 거예요. 저는 워낙 아날로그적인 사람이라 그림에 그래픽을 넣는 법이나 행사에 참여하는 경로도 잘 몰라요. 둘이 시너지를 낸 거예요.

필우 서로 못하는 걸 해줄 수 있는 부분이 잘 맞았어요. 일상에서도 서로 잘하고 못하는 부분이 명확히 나뉘어 있어요.

 

어떻게요?

필우 예를 들어 새롬이가 닦아내는 청소를 잘한다면, 저는 정리를 잘해요. 같이 하면 집이 더 깨끗해지는 거죠.

새롬 또 저는 한 번에 몰아서 하는 걸 못 해서 매일 어느 정도 깨끗한 상태가 유지되어야 하는 사람이에요. 설거지도 쌓아놓는 걸 싫어하고요. 그런데 오빠는 이만큼 쌓아놓고 해결하는 스타일이에요.

필우 정리라는 건 정리할 게 쌓여야 하니까요(웃음).

 

맞아요(웃음). 두 분의 성향 차이가 일에서 시너지를 발휘할 때도 있어요?

필우 저는 한 작품에 담긴 이야기를 살펴보는 편이라면, 새롬이는 직관적인 느낌을 봐요. 그래서 디자인할 때 새롬이한테 얻는 조언이 큰 도움이 돼요. 매거진 내기 전에 표지도 항상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거든요. 시장에 나가기 전 일단 예방 주사를 맞는 느낌이랄까요?

새롬 사장한테 확인받는 것처럼 결과물을 한 번씩 보여줘요(웃음). 제 시선을 믿어주니 고맙죠.

 

디자인과 관련이 깊은 부부라 그 차이도 발견할 수 있나 봐요. 필우 씨처럼 새롬 씨도 작업할 때 남편에게 영향을 받기도 해요?

새롬 작업에서는 별개인 것 같긴 해요. 저는 워낙 작업을 즉흥적으로 하고 몰입도가 높은 날만 작업을 이어가는 편이거든요.

필우 제가 해외 아티스트를 국내에 소개하는 플랫폼에서 일하니까 새롬이가 봤으면 하는 걸 보여주곤 했는데, 별 소용이 없어요(웃음). 새롬이는 본인 안에서 우러나와야 작업을 할 수 있는 스타일이라서요. 그래서 우리는 어딘가를 같이 가야 해요. 같이 보고 느껴야 영감이 더 샘솟는 것 같아요.

 

공통적인 취향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공간, 음악… 어떤 분야에서든지요.

필우 우리는 깔끔하고 컬러풀한 공간을 좋아해요.

새롬 예전에는 ‘무인양품’처럼 정제된 느낌을 좋아했는데 아파트에서는 그런 스타일이 심심하더라고요. 또 집이 아예 작다면 꾸미기가 좀더 쉬운데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아서 오히려 색깔을 둬야 재밌을 것 같았어요.

 

색이 다양해서 곳곳에 시선이 향하게 돼요. 그럼 이참에 집 소개도 해주실래요?

새롬 먼저 거실은 가족들이 식사도 하고 제가 작업하는 공간이에요. 카페 같은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느끼고 싶고 색감을 워낙 좋아하니까 색깔 있는 가구를 많이 놨어요. 아이가 어릴 땐 거실에 놀이 매트 깔고 장난감을 바닥에 놓고 지냈는데, 아이가 좀 큰 뒤엔 아예 방을 만들어줬어요.

 

그러고 보니 일반적인 집과 달리 거실에 소파가 없네요?

새롬 패브릭 소파가 먼지가 많이 나니까 서진이한테 좋지 않을 것 같았고, 소파가 공간도 많이 차지해서 다른 걸 꾸며 놓기가 어려워서 치웠어요. 그런데 오빠가 퇴근하고 앉아서 쉴 공간이 없긴 해요.

필우 하지만 지금 앉아 있는 의자도 있고요. 잠깐 숨겨 놨는데 편한 캠핑 의자가 있어서 혼자 거기서 쉬기도 해요(웃음).

 

캠핑 의자 너무 편하죠! 서진이 방은 서진이한테 소개를 들어봐도 될까요?

새롬 (함께 방으로 이동한다.) 서진아, 이모한테 이 방은 어떤 방인지 소개해 줄래?

서진 (의자를 가져온다.)

새롬 아, 이모한테 의자 드리는구나.

 

고마워요. 여기 앉아 있을게요.

필우 서진이가 소개해 드려. 서진이는 여기서 뭐 하고 지내?

서진 놀고 책 읽고 그림 그려요.

새롬 이 방의 주제는 뭐야?

서진 (엄마, 아빠와 찍은 사진, 그림을 가리킨다.) 여기에 힌트가 있어요.

 

엄마, 아빠 사진이랑 서진이가 그린 그림을 많이 붙였구나? (새롬에게) 예전에 SNS로 본 구조와 방이 또 달라졌어요.

새롬 서진이가 그랬어요. 내 방은 왜 이렇게 진화를 많이 하냐고. 엄마, 아빠가 소품을 놓고 계속 무언가를 바꾸니까요.

 

방에 있는 소품들은 부모님 취향이 담긴 건가요?

새롬 맞아요. 벽에 CD플레이어도 걸려 있는데요. 아빠 취향은 음악이잖아요. 서진이가 듣고 싶은 음악을 스스로 틀 수 있도록 아빠가 설치해 줬어요.

옆방은 아빠 작업실이죠? 컬러풀한 거실보다는 좀더 정제된 느낌이에요.

필우 거실과 다르게 차가운 느낌이 나면 좋을 것 같아서 스틸이나 화이트, 블랙이 주 컬러가 되도록 맞췄어요.

새롬 바빠서 밤을 자주 새우는 편이라 여기서 혼자 일하고 조용히 출근할 때가 많죠.

 

소개해 주셔서 감사해요. 바쁜 아빠지만 퇴근 후에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꼭 지킨다고요.

필우 같이 시간을 보내려고 엄청나게 노력해요. 사람인지라 피곤할 때도 있지만요. 요즘은 트럼프 카드로 서진이가 정한 규칙대로 말도 안 되는 게임을 해요. 요새는 듣기 어려운 ‘애국가’나 ‘독도는 우리 땅’ 같은 곡도 들려주고요. 또 의정부미술도서관에 매주 가서 동화책 두 권 읽어주고, 간식도 먹고 한 바퀴 둘러보고 나와요. 공간이 예뻐서 저희도 가면 기분이 좋고, 서진이가 도서관을 멀게 느끼지 않길 바라서요. 교육이자 취미로 받아들이면 좋겠어요.

 

그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어요?

필우 그런 거 아닐까요? 인성. 제 주변엔 멋진 분들도 많지만 상대방을 배려할 수 있는 사람들과 오래 교류하는 것 같고, 그런 사람들을 곁에 두는 게 좋더라고요. 서진이가 아빠와 시간을 보내면서, 의견도 내고 아빠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작은 사회를 경험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이 시간을 중요하게 여겨요.

 

저녁 시간도 아이에게 다양한 걸 보고 듣고 경험시켜 주는 일이 대부분이네요.

새롬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건 거기까지라고 생각해요. 억지로 공부를 시키고 싶지는 않아요. 잘하면 물론 좋겠지만 공부만 잘한다고 사회에서 영향력을 크게 발휘하는 사람은 주위에서 많이 못 본 것 같거든요. 아이가 재미있게 크면 좋겠다는 마음이 더 크죠. 그래서 아이의 계획표를 짜서 움직이게 하지 않고 선택에 맡기는 편이에요. 숙제를 안 하면 선생님께 혼나는 건 너의 몫이니 네가 결정하라고 말하기도 하고요(웃음).

필우 공부를 잘해야 성공하는 건 아니라는 새롬이 말에 정말 공감해요. 관계를 잘 맺는 사람들이 더 성공하는 것 같아요. 필요할 때는 상대가 원하는 이야기를 해주고, 본인을 어필해야 할 때를 위해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넓은 시야도 가져야 하잖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두 분의 교육 방식이 아이가 주체적으로 자라는 데 도움이 되겠어요.

새롬 최근에는 윗옷부터 양말까지 빨간색을 입고 나가겠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럴 땐 제 의지를 발휘하지만 아이 선택을 인정해 주는 편이에요.

필우 감각적인 사람들이 성공하는 시대잖아요. 저도 많은 분들을 인터뷰하다 보면 할아버지가 쓰던 카메라로 사진을 찍다가 포토그래퍼가 되거나, 아빠가 기타 치는 걸 보고 기타리스트가 된 경우가 있어요. 주변 환경이 확실히 중요한 거죠. 그리고 새롬이가 말한 것처럼 본인의 선택에 따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게 다음 단계인 것 같아요. 좋지 않은 선택을 했다면 그 결과를 감내하고, 다음 선택을 잘할 수 있는 사람으로 크면 좋겠어요. 짧은 시간 내에 자신의 선택에 대한 결과를 상상하고 예상할 수 있는 사람이요.

필우 씨는 다양한 일을 하면서 매거진도 꾸준히 발행하고 있잖아요. 많은 일을 하면서 가정의 삶까지 놓치지 않는 모습이 대단하게 느껴져요.

필우 저는 한 사람으로서의 삶을 잘 살아내고 싶거든요. 또 회사나 집에서 동일한 사람이 되고 싶고요. 그렇지 못한 사람이 많잖아요. 제가 시간 분배를 잘하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그 덕분에 우리 가족이 행복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더 치열하게 사는 분들도 많은데 저는 그래도 안정된 상태에서 나아갈 수 있는 정도예요. 할 수 있는 선에서 행복한 마음으로 일과 가정을 챙기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한 사람으로서는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서진이에게는 어떤 부모님이 되고 싶은지 듣고 싶어요.

새롬 지금 제 꿈을 펼치는 것보다는 항상 아이 옆에 있어 주고 싶어요. 멋지게 일하는 것도 좋지만 아이가 필요할 때 곁에 있길 바라요. 서진이가 요즘은 그러더라고요. “엄마가 기르는 토마토를 잘 키워서 시장에서 팔고 맛있는 밥을 사줬으면 좋겠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좋은 엄마는 밥을 사주는 엄마인지, 밥을 해주는 엄마인지 싶었지만요(웃음). 서진이한테 어떤 엄마가 좋은 엄마일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가까이서 사랑해 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커요.

 

귀여운 대화예요(웃음). 필우 씨는 어떤 꿈을 꿔요?

필우 개인적으로는 음악을 언젠가 꼭 하고 싶어요. 프로필에 싱어송라이터나 뮤지션이라고 쓰는 게 최종 목표예요. 서진이에게는 그냥 재밌는 아빠가 되고 싶어요.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는 재밌는 아빠요. 그리고 존경까지는 아니어도 멋진 아빠였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서진이가 감각적인 시야가 생겼을 때 아들에게 제가 만든 결과물이 멋지다는 얘기를 듣고 싶어요. 그걸 염두에 두고 어떻게 하면 시대에 얽매이지 않고 멋진 결과물을 만들지 고민하면서 일해요. 꿈꾸고 성장하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주고 싶어요. ‘아빠는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계속하고 싶은 게 있네.’ 하고요.

서진이네 가족의 취향이 담긴 소품들

1. 바다 생물 그림 시리즈

셋이 함께 만든 작품이에요. 단색화를 소장하고 싶은데 가격이 부담스럽다 보니 새롬이가 마스킹 테이프를 붙여서 비슷하게 만들었어요. 어느 날 서진이가 바다 생물을 시리즈로 그려내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림 위에 제가 생물 이름을 썼고, 새롬의 단색화 위에 붙였어요. 우리가 순간순간 쏟아낸 감각들이 모인 결과물이에요.

2. 뱅앤올룹슨 빈티지 유선 전화기 베오컴

우리 가족이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 물건의 특성이 응축된 소품이에요. 서진이가 멀티미디어 기능이 있는 휴대폰을 바로 쓰기보다, 유선 전화로 전화 예절을 배우길 바랐어요. 구매 전 전화기를 보여주니 서진이가 너무 좋아해서 단숨에 개통까지 했죠. 이제 벨이 울리면 부리나케 달려와서 전화를 받고 신기해해요. 예쁘기도 하고 옛날 생각도 나는 물건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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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차의진

포토그래퍼 임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