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체온이 만나는 도시

벨리코 투르노보

가끔씩 내 심장이 잘 뛰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너무 오래 가지고 살아 점점 희미해지는 것들이 많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잊고 지내는 날들이 길어질수록 잊는 건 나인데 이상하게도 자꾸만 외로워진다. 나를 잊지 않고 사는 게 참 힘들다는 생각을 할 때쯤 떠밀리듯 이 도시에 도착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란 말을 믿지 않았다.

지도 밖으로의 여정

생각지도 못한 도시다. 이곳에 오게 된 이야기는 이렇다. 어제의 나는 소피아로 가기 위해 부쿠레슈티에서 낡은 6인실 기차를 타고 한참을 달리던 중이었다. 그렇게 불가리아의 국경 도시 루세까지 몇 시간을 홀로 넓은 객실을 차지한 채 달리다 보니 무료함에 온몸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여행 내내 아껴 읽으려 가져온 책도 얼마 전 다 읽어버렸기 때문에 결국엔 알지도 못하는 손금을 들여다본다거나 창밖의 나무들을 하나씩 세어본다거나 하는 일에 몰두하게 됐다. 그렇게 하나씩 세어본 나무가 모여 숲이 되어갈 무렵 객실로 한 소녀가 들어왔다. 내가 이곳에 오게 된 건 바로 이 소녀 때문이다.

소녀의 이름은 시아나였다. 시아나는 유창한 영어로 자기는 루세에 살고 있으며,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고 소피아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시아나가 가진 명랑한 리듬을 잘 따라가지 못해 말 대신 웃음을 짓게 되곤 했지만, 시아나는 다행히 그 웃음이 가진 의미까지 이해하고 있다는 듯 구김 없이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완행으로 흘러가는 국경 도시의 풍경을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짚어가면서 설명해주던 시아나는 자기는 이곳에서 태어났고 앞으로도 별일이 없는 한 계속 살아갈 고향이라고 했다. 그 말에는 어떤 자부심 같은, 외국인이 많은 관광도시에서 으레 느낄 수 있는 현지인들의 태도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이곳 또한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듯했다. 시아나의 가족들이 그래왔듯 그녀도 한 번의 삶을 하나의 도시에서 온전히 살아내는 것. 그저 무심히 던진 한마디였지만, 나는 시아나의 집 벽난로 앞에 오래 앉아 있었던 것처럼 마음의 온도가 조금 올라간 것 같았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시아나는 살짝 벌어진 내 여권 페이지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입국 스탬프들을 보며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스탬프를 하나씩 짚어가며 태국과 캄보디아, 일본에서부터 서유럽에서의 경험들과 이곳으로 오기까지의 여정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러나 시아나는 아무래도 그 여행지들보다 그곳에 모두 다녀온 나를 더 신기해하는 듯했다. 하는 수없이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밝혀두건대 강남스타일이나 김치 같은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다시 한참 소피아를 향해 가던 중 시아나가 갑자기 생소한 지명에 대해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특이한 이름이었고, 두 개의 도시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하나의 도시였던 그곳. 그곳이 바로 내가 머무르게 된 이곳, 벨리코 투르노보였다.

나와 당신의
체온이 닮았듯이

시아나는 마치 평화로운 일정 중 만난 소나기 같았다.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더니 사진첩을 열어 이런저런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벨리코 투르노보는 중세의 수도였으며, 지금은 젊은 사람들이 많이 떠나고 오랜 유적들과 낡은 집들이 남아있는,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라고 열정을 다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 또한 중세풍의 건축물들에 많은 관심이 있었기에, 게다가 시아나의 열정이 너무 강해 보였기에 연신 감탄사와 함께 고개를 끄덕거렸고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벨리코 투르노보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앞으로 30분 뒤에 어느 역에서 내려 열차를 갈아타야 한다는 것까지 알려준 채 뿌듯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시아나를 보니 안 갈 수도 없었다. 그렇게 갑작스레 행선지를 바꿔 도착한 중세의 수도는 산 능선을 따라 경사가 져 있고, 그 길 위에 낡은 갈색 지붕을 가진 집들이 촘촘히 모여 있는 작은 도시였다. 돌로 만든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가 저녁 식사 시간을 알리고, 어제와 다를 것 없는 하루를 마친 가족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떠드는 소리가 창문 너머로 조금씩 들려오고 있었다. 화려하진 않지만 정말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이다.

벨리코 투르노보의 숙소는 특이하게도 사전에 아침식사와 저녁식사를 함께 결제할 수 있으며, 모든 투숙객이 식사 시간마다 한자리에 모여 함께 식사를 하는 곳이었다. 처음에는 따로 식사를 해결하려 방값만 계산을 했지만, 짐을 풀어놓고 잠시 주변을 산책하는 동안에 많은 사람들이 먼저 다가와 여행은 어떤지, 불편한 건 없는지 물어보는 등 친절한 모습에 마음이 동해 식사까지 다시 결제하게 되었다. 심지어 짐을 내 방까지 옮겨주었던 남자는 이 숙소의 직원이 아니라 장기 투숙객이었으니, 모두가 받은 친절만큼 다른 사람에게 베풀며 지내고 있는 듯했다.

나도 한번 친절을 실천해보려 숙소 근처를 배회해보았지만 이곳의 사람들에겐 그저 갈 곳 없이 방황하는 여행자로 보였는지 오히려 도움을 주려 다가오는 통에 결국 방으로 도망치듯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 도시로 오는 동안, 그리고 이 도시에서 머무른 단 몇 시간 동안 몇 년 치의 친절을 미리 끌어다 받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모두의 환대를 받다 보니 몸이 더울 정도로 마음이 따듯해졌다. 이곳의 사람들에겐 이미 일상이 된 친절에 이토록 먹먹해지고 괜스레 눈가가 뜨거워 혼이 나고 있으니 나는 아직 어쩔 수 없는 이방인이다. 해 지는 창밖으로 하나둘씩 불을 밝히는 집들이 어느새 내 마음속에 들어와, 어두웠던 골목까지 모두 밝혀주는지 내 마음까지 멀리도 환하다. 고마운 얼굴들이 그리워진다.

심장이 뛰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잠자리가 낯선 탓인지, 마음이 더운 탓인지 한참을 뒤척이다 새벽이 지나서야 잠에 들 수 있었고, 덕분에 아침식사도 못 한 채 점심이 거의 다 되어서야 숙소에서 나올 수 있었다. 벨리코 투르노보는 걸어서 30분 정도면 마을의 끝에서 끝에 닿을 만큼 작은 도시다. 젊은 사람들은 시내의 벨리로 투르노보 대학 근처에서만 드문드문 보이고 거리에는 몇 없는 여행객들과 노인들뿐이다. 아주 오래전 문을 닫은 호텔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전쟁 끝에 잊혀버린 도시를 찾은 듯, 세기말적인 도시 안에서 정말 후세의 사람이 된 기분이 든다. 이런 광경을 보고 있으면 나 또한 어느 전생에서 이곳에 산 적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되고, 그 상상을 따라 광장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다 보면 한 생을 건너 전생의 고향을 찾아온 것처럼 쓸쓸한 눈빛을 갖게 된다.

어느새 늦은 점심이 되어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니 나이가 지긋한 노부부가 운영하는 불가리아 레스토랑이다. 긴 여행의 피로가 묻은 행색 덕분인지 멀리서 찾아온 여행자는 언제나 환영이라며 테라스의 특별한 자리로 안내해주겠단다. 딱 두 개밖에 없는 테이블 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주변을 보니 발밑으로 얀트라 강이 흐르고 마을의 차분한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런 곳에서라면 약간은 사치를 부려도 될 것 같아 스페셜이라고 쓴 메뉴를 주문했다. 그러자 주문을 받던 할아버지가 미소를 짓더니 “그건 너 혼자 먹기엔 너무 많아 더 괜찮은 걸 추천해줄게.” 하며 훨씬 저렴한 메뉴를 추천해준다. 이 도시, 지상에 남은 마지막 낭만일 수도 있겠다. 말문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사람들이 가득한 도시다.

저녁이 되자 벨리코 투르노보에 방문한 얼마 되지 않는 여행자들이 차르베츠 성채 밑에 모였다. 토요일 저녁마다 진행된다는 라이트 쇼를 보기 위해서다. 장미의 나라라는 불가리아를 상징하듯 차르베츠 성채가 붉은빛으로 물들고 초록빛 레이저가 멀리 뻗어 나간다. 이곳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이틀을 머무르게 되었으니 계획에 없던 방문치고는 꽤나 욕심을 냈다. 하필 그 기차를, 하필 그 객실에 앉아있지 않았다면 시아나를 만날 수 없었을 것이고 벨리코 투르노보 또한 내 삶에 없는 도시가 되었을 것이다. 

이렇듯 작은 우연만으로 하나의 삶이 알 수 없는 길로 방향을 틀게 될 때, 괜한 걱정 때문에 가지 못 한 길들이 사실 모두 이곳과 같이 아름다웠다면 나는 후회조차 못 한 채 얼마나 바보 같은 여행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떠밀리듯 찾아온 도시에서 넘칠 만큼 많은 걸 배우고 떠난다. 이제는 헤매는 길 또한 아름다울 것이기에, 어느 헤맴 끝에 나는 다시 이곳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에디터 김건태

글 김종연 사진 이훈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