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OUND
CLUB ONLY
SERIES
MEET AROUND
SUBSCRIBE
SHOP
당신은 한 시대를 풍미한 빛나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당신을 따라 입고 동경해요.
말런 브랜도의 티셔츠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지.” 어두운 빛의 슈트, 깔끔한 보타이, 잘 쓸어 넘긴 은발 머리. 카리스마 넘치는 시선으로 영화 <대부>(1972)에서 명대사를 남긴 이 신사의 이름은 말런 브랜도Marlon Brando다. 개인의 삶에서는 여러 비판적인 견해도 많은 인물이지만,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배우임은 확실하다. 젊은 날들은 자유분방한 반항아의 아이콘으로, 중년기에는 무르익은 연기력으로 시대에 족적을 남겼다.
그가 대중에게 각인된 계기는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51)에 출연한 때. 브랜도는 폭력적이고 야성적인 등장인물 ‘스탠리’ 역을 맡아 열연했는데, 작품에서 늘 티셔츠를 입었다. 당시 군인들이 러닝셔츠처럼 속옷 용도로 착용하던 티셔츠를 브랜도는 일상복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 피부에 달라붙는 가벼운 차림은 그의 야성적이고 거친 면모를 돋보이게 했다. 근육으로 꽉 끼는 소매는 많은 남성들의 선망을 샀고, 그는 스타 배우로 급부상했다. 동시에 티셔츠도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이제 티셔츠는 그저 땀을 흡수하려고 입는 내의가 아니라, 언제나 쉽게 꺼내 입을 수 있는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문득 그를 좋아해 준 사람들에게 고맙다. 티셔츠를 속옷으로만 입는 세상은 지루함 그 자체니까. 친구들과 여행 기념으로 같이 산 “I ♥ LA” 티도, 회사 안보다 밖에서 더 자주 입는 사내 단체티도 없는 세상이라니. 셔츠를 차려입고 집 앞 슈퍼에 가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스타를 향한 선망은 우리가 재밌는 옷을 입고 즐기게 됐다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브랜도는 이 사실에 뿌듯했을까? 티셔츠를 입은 행인을 보면서 젊은 날을 회상하곤 했을까? 누군가의 옷장이 나의 영향력으로 채워져 간다는 건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경험일지도 모르겠다.
줄리아 로버츠의 슈트
레드 카펫이 길게 깔리고 기자들은 연신 플래시를 터뜨린다. 많은 스타가 한자리에 모이는 시상식. 여성 배우들의 화려한 드레스가 자리를 빛낸다. 다채로운 색상과 장식, 반짝이는 소재가 줄을 잇는 사이, 줄리아 로버츠Julia Roberts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길게 늘어뜨린 곱슬머리에, 근사한 슈트 차림, 자연스럽게 맨 넥타이까지. 휘둥그레진 사람들의 시선에 그는 시원한 미소로 화답한다.
줄리아는 90년대를 대표하는 할리우드 간판스타다. <귀여운 여인>(1990)으로 큰 사랑을 받으며 로맨스 영화 주연을 연달아 꿰찼고, 여자 배우 최초로 《VOGUE》와 《GQ》 표지를 장식했다. 그런 그가 공식 석상에서 자주 착용한 옷은 다름 아닌 슈트. 때로는 정중한 느낌의 검은색을 선택하거나, 때로는 경쾌한 노란색을 골라 개성을 드러냈다. 정장이 주는 성숙한 느낌 속에서도 줄리아만의 사랑스러움이 흐른다.
그가 <철목련>(1989)으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1990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을 잊지 못한다.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은색 정장을 입고, 한 손에는 트로피를 쥔 그 모습이 내게는 작은 충격이었다. 슈트를 이렇게도 입을 수 있고, 충분히 아름답다는 말을 전하는 것 같아서다. 그는 그때를 이렇게 기억한다. “저에게 그날은 전형적으로 차려입은 모습이었어요.” 정장이 주는 특유의 좋은 긴장감 속에서 줄리아는 편안하게 웃고 있다. 일 년 뒤 같은 시상식에서도 배우는 슈트를 선택했다. 바지 대신 미니스커트를 매치해 그만의 감각을 드러냈다.
언젠가는 줄리아처럼 입어 보고 싶다. 넥타이와 정장 차림을 한 내가 궁금해서다. 그럴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낯선 내 모습이 내게 제법 마음에 들길, 줄리아가 느낀 기분 좋은 새로움을 나도 경험하길 바란다. 그리고 환하게 웃어야지. 그가 그랬던 것처럼!
이효리의 링 귀걸이
‘세기말 패션’이 유행이라고 한다. 허리선에 맞춰 입는 바지부터 트레이닝복 세트, 무테안경까지. 2000년대 초를 연상하게 하는 아이템을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 아이돌들은 자신이 태어날 무렵 인기를 끈 스타일을 근사하게 소화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옷차림에도 유행의 흐름이 조금씩 섞여 들어간 것을 본다.
‘Y2K’ 스타일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뮤즈로 자주 꼽는 인물이 있다. 스타라는 이름이 척 들어맞는 사람, 여전히 우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뮤지션, 이효리다. 4인조 걸그룹으로 처음 모습을 비춘 그는 2003년부터 홀로 무대에 올랐고, ‘10 Minutes’, ‘U-Go-Girl’ 등은 발매하자마자 시대를 대변하는 유행가가 됐다. 자유롭고 도발적인 이미지에 대중은 폭발적으로 호응했고, 이효리는 문화의 중심에 섰다.
그를 대표하는 아이템이라고 한다면 나는 링 귀걸이를 꼽겠다. 작고 귀여운 것보다는 지름이 큰 링을 말하는 거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소화할 사람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 이효리는 그 액세서리가 퍽 잘 어울린다. 은색 고리가 건강하고 화려한 느낌을 증폭시키는 것 같달까. 고리 크기가 아무리 커도 그는 멋지게 보일 거라는 상상을 펼쳐 본다. 한때는 자연을 곁 하고 느긋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다시 무대에 선 그의 모습은 어색함이 없다. 때때로 예전 같은 스타일링을 시도하는데, 여전히 멋지다. 링 귀걸이는 그와 계속 함께하며 팬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어릴 때 어른의 상징은 링 귀걸이라 생각한 적이 있다. 단아한 진주보다는 대담한 액세서리를 선택하는 모습이 멋진 언니 같아 보였달까. 지금 나는 귓불도 막히고 장식품은 귀찮게 여기는 사람이 되었다만….
내 마음속에는 늘 큼지막한 은색 고리가 있다.
글 차의진
일러스트 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