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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웅·송현정 — 아시 하우스
새로운 걸음을 시작하며
그림 같은 집을 보았다. 잘 익은 밤의 색을 닮은 산등성이를 어깨에 두른 그곳은 군더더기 없이 담백한 모습이었다. 세상의 시끄러운 소음은 기척도 느껴지지 않고, 집을 채운 부부의 취향만이 나긋한 목소리를 내며 흘렀다. 그 모습이 참으로 슴슴하고도 안온하다. 서울을 훌쩍 떠나 가평 산골에 집을 지은 하태웅·송현정 부부는 오늘도 단정한 마음으로 오는 이를 기다린다. 부부의 아름다운 기억을 꺼내둔 아시 하우스에서.
흔히 떠올리던 가평의 모습보다 평화로운 곳이네요.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현정 안녕하세요. 어제 눈이 많이 쏟아져서 오시는 길을 걱정했는데, 다행히 오늘 햇살이 좋아서 꽤 녹았어요.
태웅 가평이 위아래로 긴 지형인데 중간에는 자라섬처럼 친근한 곳이 많고, 여기는 위쪽이라 갈수록 포천과 접할 정도로 깊숙이 들어가거든요. 오는 길에 명지산, 운악산을 보셨을 텐데 보통 등산하러들 오세요.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덕분에 이렇게 아름다운 공간에 와보는걸요. 집과 스테이를 아울러 ‘아시 하우스ASI House’라고 부르고 있죠. 문을 연 지는 얼마나 되었어요?
태웅 스테이는 작년 12월 23일에 오픈했어요. 연말과 연초에 쉬러 오는 분들이 많아서 바쁜 새해를 보냈죠. 문을 연 지 얼마 안 됐는데도 찾아와 주시는 게 고맙고 신기하더라고요. 정신없이 보내다가 이번 주부터는 조금씩 여유를 찾고 있어요.
따끈따끈한 곳이었군요. 오늘은 머무는 손님들이 안 계신가 봐요.
현정 맞아요. 아직 쉼과 일의 루틴을 파악 중이긴 하지만, 보통 주말이 가까워질 즈음 손님들이 몰렸다가 그다음 주 초반에 빠지거든요. 오늘 같은 수요일이나 목요일은 주로 스테이 관리 작업을 해요. 밀린 빨래와 청소를 하고, 웰컴 푸드와 조식용 수프를 만들거나 마당과 공간 정비를 하죠. 먼저, 커피를 좀 드릴까요? 이건 웰컴 푸드로 내어드리는 마들렌이에요.
직접 구우셔서 더 맛있겠어요. 그럼 소개부터 시작해 볼까요?
현정 아시 하우스를 만들고 운영하는 송현정, 하태웅입니다. 사실 이런 말보다 요즘 제 직업은 ‘청소부’라고 하고 싶어요. 시골에서 청소하면서 가끔 빵 만들고 손님들을 맞이하는 일이라, 이전과는 좀 다른 삶을 살고 있거든요.
태웅 그럼 저는… 정원사나 농부?
현정 오, 더 멋있는데?
고양이 친구들도 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네요.
현정 첫째 밤이랑 둘째 벼루인데요. 밤톨 같은 얼굴인 밤이는 사람을 좋아하는데 고양이 루틴상 낮잠 잘 시간이에요. 아마 잠이 깨면 슬슬 나올 거예요. 벼루는 까만 고양이라 먹을 가는 벼루에서 따왔는데, 낯선 사람을 무서워해서 적응할 시간이 필요해요. 지금 어디선가 지켜보면서 안전한지 파악 중일 거예요.
부디 저를 안전한 사람으로 느끼길요(웃음). 공간 구성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어요.
태웅 카페 겸 스테이 리셉션으로 쓰이는 공간의 옆문을 열면 집으로 이어지는데요. 보조 주방을 지나 거실로 들어오면 차례대로 주방과 침실, 화장실과 세탁실이 보여요. 세탁실 옆에는 야외로 나가는 현관이 하나 더 있는데 거기다 청소 도구를 모아두었어요. 보통은 그쪽 문으로 출입하곤 하죠. 원래 여기가 90년대 벽돌로 지어진 고깃집이었는데, 리모델링해서 지낸 지는 7개월 정도 되었어요.
현정 집과 달리 스테이는 완전히 새로 지은 건물이에요. A동과 B동으로 나누었는데, 구옥의 예스러운 건물과 신축의 세련된 모습이 어긋나지 않고 조화로워서 만족해요.
아시 하우스에 대해 듣기 전에 가평으로 오기 전의 삶이 궁금해요. 두 분, 어떻게 만나셨어요?
현정 연애 프로그램 인터뷰 같은데요(웃음). 대학교 같은 과 선후배 사이였는데, 나이 차이가 나서 함께 다니진 않았고 졸업한 후에 아는 선배한테 소개받았어요. 그때 둘 다 회사에서 디자인 업무를 했다 보니 이야기가 잘 통하더라고요. 유머 코드도 비슷하고 영화를 좋아하는 취미나, 싫어하는 것도 비슷했어요. 둘 다 친구가 많이 없어서 집에 있는 거 좋아하고요.
태웅 깊게 생각하고 이야기 나눌 사람을 만나는 게 쉽지 않은데, 현정이랑은 그게 가능했어요. 그런 시간이 쌓이다 보니 결혼까지도 자연스러웠고요. 무얼 할 때 맞지 않았고 어떤 위기가 있었고… 이렇게 말할 만한 거리가 없어요.
그럼 결혼 후 첫 집은 서울에 있었어요?
현정 월곡역 주변 작은 아파트에서 살았어요. 전세 가격도 저렴했지만 근처에 홍릉숲이 있어서 숨이 트이는 기분에 선택했어요. 한 4년 정도 살았는데, 그동안 공간을 꾸미는 시각부터 라이프 스타일, 가치관까지 많은 게 변했어요.
태웅 그 집에서 우리가 좋다고 느끼는 걸 계속 모으고 팔기를 반복했거든요. 미드 센추리부터 동양풍 아이템, 프렌치 모던까지 웬만한 스타일을 다 직접 해보고 질리면 또 바꿨어요.
한 번 바꾸기도 힘든 공간을 왜 여러 가지 스타일로 바꿔가며 채웠어요?
현정 그때는 뭔가 물건을 사고 또 사도 만족이 안 됐어요. 마음에 들어 구입했는데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둥둥 떠 있고요. 지금 생각하면 물건으로 가득 차 있는 집이라 너무 답답해요. 가평으로 터전을 옮길 때는 아시 하우스에 두고 싶은 것들만 추리고 나머지는 다 팔았어요. 이곳에 오면서 물욕이 사라졌는지, 집 안에 가구나 오브제도 빽빽하게 채우고 싶지 않고 옷을 사지 않은 지도 꽤 되었어요.
그때는 무언가 만족스럽지 않거나 공허함을 느꼈던 걸까요? 그러고 보니, 태웅 씨는 서울에서 어떤 일을 하셨어요?
태웅 저는 인터랙티브 미디어 디자인을 시작으로 여러 경력을 쌓다가 인테리어 스타트업인 ‘아파트멘터리Apartmentary’의 창업 멤버로 함께했어요. 경영진과 실무진을 조율하고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 일을 맡았죠. 8년 가까이 일했는데, 그때는 일상의 목표가 곧 회사의 성장일 정도로 열심히 했어요. 사람이 머무는 공간의 변화를 끌어내는 브랜드다 보니 나의 공간에 대해서도 여러 번 생각할 수 있었는데요. 이것저것 다양한 취향을 보다 보니까 우리와 잘 안 맞는 것도 알게 되더라고요.
현정 씨는요?
현정 저도 디자인을 전공해서 작은 스튜디오에 입사했어요. 특이한 게, 회사 대표님이 취미로 고급 자전거를 수입하셨는데 그걸 다시 비싸게 되팔기 위해 옷 입히고 매장 꾸리는 일을 맡았어요. 그런데 저는 자전거 탈 줄도 모르거든요. 에너제틱한 라이프 스타일을 즐기는 척 일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이후에 좀더 큰 교육 회사로 가서 수험생 대상 프로그램을 디자인할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회사 크기의 문제일까 싶어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대기업에 들어갔는데, 저와 맞지 않는 캐릭터 제작 업무를 맡게 된 거예요. 좋은 회사에 들어가면 끝날 줄 알았던 고민이 다시 시작된 거죠.
여러 시도를 했지만 잘 맞진 않았네요.
현정 대기업으로 옮기면서 결혼하고 신혼집도 꾸렸는데, 그때 계속 뭘 샀다고 했잖아요. 일과 삶이 일치되지 않으니까 거기서 큰 공허감을 느꼈나 봐요. 주변에서 일과 삶을 분리하라고 조언하길래 완전히 떼어놓았는데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면서 더 불행해졌죠.
사실 분리하는 게 쉽지 않잖아요. 하루 중 일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긴데요.
현정 그러니까요. 나와 맞지 않은 공간에서 보낸 시간을 보상받듯 무얼 사서 집에 가져다 두기는 하는데 만족이 안 되는 이유를 그때는 몰랐어요. 회사에서 야근하고 오느라 내가 고른 가구나 티팟은 볼 시간도 없었고요. 회사를 다니는 것에 대해, 우리의 삶이 어떤 노선을 타야 하느냐에 대해 남편과 함께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죠.
태웅 일과 삶은 다른 게 아니라 삶 안에 일이 있는 거잖아요. 그 사이의 이질감을 덜고, 둘을 함께 보기로 인정했어요. 저도 브랜드 디자이너로 오래 일하다 보니까, 이 일의 궁극적인 도달점은 어딜까 생각했을 때 회사는 아닌 것 같더라고요. 회사에서는 늘 새로운 걸 보여줘야 하고 변화를 만들어야 하는데, 저희는 언제나 그대로인 브랜드가 좋았거든요. 브랜드가 한 사람 같았으면 좋겠다는 게 저희의 새로운 지향점이었어요.
브랜드가 하나의 사람 같다는 건 어떤 의미예요?
태웅 저와 현정이 좋아하는 브랜드를 떠올려봤을 때, 그 안에 머무는 사람이 연상된다는 공통점이 있었어요. 망원동 ‘스몰커피’나 ‘훈고링고브레드’, 서촌 카페 ‘mk2’처럼 공간과 어긋나지 않은 사람이 일하고, 그들이 만들 것 같은 음료를 팔고, 또 그걸 좋아할 것 같은 손님들이 찾아오는 거요. 한 사람의 취향이 진득이 묻어 나오는 걸 좋아하다 보니 해외여행 가서도 으리으리한 호텔보다는 작은 에어비앤비에서 묵거든요. 현실적으로 서울에서는 우리 두 사람이 가게도 하고 고양이도 함께 살 공간을 찾는 게 불가능에 가까워서, ‘그렇다면 꼭 서울이 아니어도 되잖아?’ 싶었어요. 직장만 아니었다면 서울에 살지 않았을 테니까요. 거기서 하고 싶은 건 이미 충분히 경험했어요.
현정 그래서 그 주 주말부터 빠르게 전국을 돌아다니기 시작했죠. 좋은 땅을 찾아보자며(웃음).
그렇게나 빠르다니(웃음)! 그럼 왜 스테이를 만들고 싶었어요? 이유를 들으면 삶에서 무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전해질 것 같아요.
태웅 우리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일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가게는 정확한 시간에 열고 닫아야 하고 휴무일도 지켜야 하지만, 스테이는 손님을 응대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집에서 일상을 보낼 수 있잖아요.
현정 그리고 우리의 취향을 공유하고 싶었어요. 애정을 담은 소품들과 가구, 음악, 향기까지 차려두면 그걸 좋아하는 분들이 와서 향유해 주길 바랐어요. 사람들이 한 공간에 온전히 젖어들려면 하룻밤을 보내는 형태가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소수를 위한 초대의 개념이었죠.
공간이 머무는 사람에게 주는 힘을 이미 알고 있었나 봐요.
현정 신혼여행으로 떠났던 프랑스 남부 보르도 지방에서 마구간을 개조해서 만든 에어비앤비에 머문 적이 있어요. 가는 길도 불편하고 오래된 벽돌로 지어서 컴컴한데다가 안에는 말안장 같은 게 걸려 있는 독특한 곳이었죠. 옆에는 주인이 직접 운영하는 레스토랑과 수영장이 붙어 있었고요. 되게 이상한데, 모든 곳에서 주인이 느껴지는 거예요. 백 년 넘은 고택에서 주인이 열심히 쓸고 닦은 구석들이 보이고,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컵과 테이블이 있었어요. 음식도 별것 아닌데 맛있어서 그때의 기억이 참 좋게 남아 있죠.
태웅 아시 하우스의 슬로건으로 “우리의 아름다운 기억을 통해서”라는 말을 쓰는데요. 저희도 공간에 기억들을 꺼내두고 행복했던 마음을 녹이면, 그걸 알아봐 줄 사람들이 올 것 같았어요.
그럼 주말마다 ‘좋은 땅’을 찾으러 어디를 다녔어요?
현정 고성과 강릉, 이천, 여주, 인제, 태안, 양양까지…. 네이버 지도에서 거리뷰로 산세가 좋아 보이는 지역이나 구석에 있는 스테이를 발견하면 그 길로 출발했어요. 큰 마을이 있는 곳은 사람이 많을 테니 피하고, 근처 부동산 여러 곳을 들르면서 시세를 확인했죠. 간 김에 주변 맛집이나 카페에 들르기도 하고요.
태웅 현정이가 땅의 기운이 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잠시만요, 현정 씨. 땅의 기운은 뭔가요?
현정 (웃음)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런 게 있어요. 저만의 더듬이를 움직이면 느껴지는 건데요. 어떤 땅은 밟았을 때 햇살도 비추고 포근히 안아준다는 느낌이 들지만, 어떤 곳은 큰 산을 두르고 있어도 내가 잡아먹힐 듯 그림자가 크고 무서운 곳이 있어요. 거기서는 사는 모습이 상상이 안 되더라고요. 지금 있는 이곳은 커다란 산들이 주변을 에워싸도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신기하네요. 현정 씨가 땅의 기운을 살폈다면 태웅 씨는 무얼 기준으로 삼았어요?
태웅 ‘핀터레스트’ 같은 데 보면, 울창한 숲 안에 불빛 하나가 딱 보이는 장소의 사진들이 있어요. 그렇게 만들 수 있는 곳인가를 살폈어요. 그런데 조금 황당하게도, 여기를 발견한 건 발품 판 덕분이 아니라 유튜브 덕분이에요. 원하는 평수를 검색하니 다양한 전문가들이 드론으로 터를 촬영해서 정보까지 깔끔하게 올려두었더라고요. 영상을 보고 직접 와보니까 붉은 벽돌로 된 건물이 예뻐서 바로 결정하게 됐죠. 회사를 다니며 아시 하우스를 준비하다가, 터를 옮겨야 할 때가 되었을 때 일을 그만두고 가평으로 옮겨 와 리모델링과 건축에 몰두했어요.
리모델링은 어느 정도 기간이 걸렸는지 궁금해요.
태웅 계획보다 두 배가 더 걸려서 1년 정도 공사를 했어요. 리모델링이든 건축이든 큰 구조는 전문가가 짜줘야 하기 때문에 건축사에 의뢰했고, 저랑 현정은 각각의 전문가들을 꾸리고 일정을 조율하면서 콘셉트를 기획하는 역할을 담당했어요. 손님들에게 제공하고 싶은 모습이나 경험도 설계하고요. 거실의 크고 넓은 창과 각 공간의 구조는 원형을 최대한 살려낸 거예요. 큰 고깃집에 있는 신발 벗고 방에 앉는 단체석이 리셉션 공간이 되었고, 부엌으로 쓰던 곳은 안방이 됐어요. 전체 구조는 살리되, 저희가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쓰임을 바꾼 거죠. 기획까지는 별문제 없었는데, 공사 도중에 자잿값이나 인건비 등이 너무 많이 올라서 저희가 시공에도 직접 힘을 보태야 했어요.
예를 들면 어떤 작업인가요?
태웅 스위치나 문고리 등 공간의 디테일을 살릴 부분들을 전부 직접 준비했고요. 페인트칠하고 실리콘 바르고 타일도 붙이고 마감재도 발랐어요. 현장 작업자분들의 조수처럼 따라다니면서 함께 한 거죠. 사실 페인트칠 같은 일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집 만들 때 연습하면서 능숙해진 후에 스테이에 적용했어요. 거실에 놓은 하얀 책장도 직접 칠한 건데, 아마 자세히 보시면 군데군데 터져 있을 거예요.
생각만 해도 쉬운 작업은 아닐 것 같아요.
현정 전문가가 괜히 있는 게 아니구나!
태웅 (웃음) 그래도 어딘가 터지고 덧발라야 하는 부분들이 보이는 것 자체가 우리만의 스토리라고 생각해요. 손맛 같기도 하고요. 둘이서 가만히 거실에 앉아 있다가 문득 “아, 저기 다시 발라야겠네.”, “이따가 실리콘 작업 좀 해야겠다.”라며 대화하게 되니까 더 애착이 생겨요.
이쯤에서 아시 하우스라는 이름의 의미가 궁금해져요.
태웅 여러모로 모호한 느낌을 주고 싶어 정한 이름이에요. 보통의 스테이들은 어떤 공간을 꾸렸는지 느껴지도록 이름을 짓잖아요. 저흰 그렇게 접근하고 싶지 않았어요. 회사에 속해서 일할 때, 네이밍이든 디자인이든 모든 요소에 의미를 부여해야 했거든요.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 온갖 의미를 갖다 붙이는 게 무의미하다고 느꼈어요. 현정 그래서 부르기 쉽고 스펠링이 짧은 단어들을 마구 뱉어보다가 툭 정해진 이름이 ‘아시’예요. 어느 나라 말인지 알 수 없는 느낌 그대로 좋았죠. 이곳에 와서 각자 느끼는 이미지가 있을 텐데, 그걸 ‘아시’라고 생각해 주시길 바라요.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담아두는 공간의 이름으로요.
집에서 부엌을 둘로 나눠 사용하는 게 눈에 띄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어요?
현정 제가 요리나 베이킹을 좋아해요. 일은 한 프로젝트를 매듭짓는 데까지 오래 걸리니까 결과를 바로 알 수 없지만, 요리는 빠르면 30분 안에도 결과물이 나오거든요. 원하는 대로 플레이팅 할 수 있고, 맛도 조절할 수 있으니까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스테이를 준비할 때도 조식 서비스를 하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요리할 공간이 필요한데, 주방이 하나면 식자재 보관이나 동선 면에서 효율적이지 않을 것 같았죠. 결국 보조 주방을 하나 더 만들고 거기서 수프를 끓이거나 베이킹을 해요. 수프는 계절에 따라 주재료가 다른데, 가을과 겨울에는 제철 식재료인 단호박으로 만들어요.
보글보글 끓는 수프를 상상만 해도 먹음직스럽네요.
현정 여름에는 집 앞에 꾸린 텃밭에서 토마토를 길러서 그걸로 수프를 끓여보고 싶어요.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집이다 보니, 밤이와 벼루를 위해 신경 쓴 부분도 있어요?
태웅 그럼요. 거실 창문을 보시면 다 턱이 있거든요. 캣타워는 한편에 작게 두고, 이 창가에 앉아 아이들이 밖을 구경하게 만들었어요. 새들이 날갯짓을 하면 집 안에서 그걸 보고 막 잡으려고 해요.
현정 얘네한테는 엄청 큰 텔레비전인 거죠(웃음).
스테이에 대해서도 들어볼게요. 쓰는 이가 다르니 공간을 만들 때 중점에 둔 부분도 다르곘어요.
태웅 시선의 방향이 다르게 되어 있어요. 하나의 터에 있지만 저희가 지내는 집과 적당한 거리를 두어서 서로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도록요. 또 차가운 금속과 유리가 겉면에 드러나는데, 내부에는 따뜻한 붉은 기를 띤 나무 소재로 구성해 두었죠. 빈티지 가구들과 오브제들까지 통일성이 높은 공간이에요.
현정 스테이를 만들 때 ‘판즈워스 하우스Farnsworth House’라는 금속과 유리로 지어진 미국의 건축물을 레퍼런스로 삼았어요. 남편이 핀터레스트에서 보고 꿈꾸던 공간처럼, 숲속에 군더더기 없는 건물이 딱 하나 놓여 있는데 자연과 완벽히 어우러져 있죠. 그 모습이 매력적이었어요.
태웅 그런 점에서는 아직 아시 하우스에서 아쉬움을 느껴요. 좀더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 윤기가 나고, 흘러간 세월이 느껴져야 자연과 하나로 어우러질 테니까요.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겠죠.
저는 보자마자 엄청 큰 창이 눈에 띄더라고요. 건축에서 창이라는 건 사람의 의도가 가장 짙게 묻은 부분이 아닌가 싶어요. 어디에서 무얼 하면서, 어떤 모습을 보도록 유도하니까요.
태웅 자연 속에 포근히 안긴 느낌을 주고 싶다면 정답은 창이라고 생각해요. 집 안에서도 사계절을 볼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어요. 비용적으로도 가장 힘을 준 부분이고, 풍경은 또렷하게 보이되 단열도 놓치지 않아서 스테이 내부는 굉장히 따뜻해요. 오신 분들이 남긴 말 중 기억에 남는 게, 아시 하우스의 사계절을 보고 싶다는 이야기였어요. 외국에서는 여름이나 겨울 휴가에 가족들이 같은 장소를 주기적으로 방문하잖아요. 기념일마다 찾는 레스토랑이 정해져 있기도 하고요. 아시 하우스에서 시간의 흐름을 만끽하고 매해 모습을 기록하신다면 참 기쁠 거예요. 저희는 변함없이 여길 지킬 거고요.
아시 하우스에 오래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하시네요.
태웅 물론 아시 하우스가 우리를 어딘가로 데려갈 수도 있겠죠. 아직은 그게 어디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확장되거나 길이 틀어질지도 몰라요. 다만 확실한 건, 여기서 앞으로도 쭉 산다는 거예요. 그 결정에는 확신이 있어요.
모든 공사가 끝난 날을 다시 떠올려볼게요. 어떤 심정이었어요?
태웅 사실 공사가 마무리되면 터뜨리려고 했던 샴페인이 있었는데요. 아직도 못 열었어요.
어머나, 왜요?
태웅 아직도 안 끝난 것 같아서요(웃음). 직접 시공했다 보니 관련 도구들이 많은데, 그걸 여태 쓰고 있어요. 시선이 닿으면 손봐야 하고 다른 누가 돌봐주는 게 아니라 우리 것이다 보니 계속 더 가꾸고 싶고요. 그래서 그런가 봐요.
현정 저는 조금 마무리되었다는 생각은 들어요. 무사히 오픈했고 연말과 연초에 손님들이 오셔서 피드백도 주셨으니 ‘이제 됐다!’는 마음이에요. 문을 열기 전까지는 새벽만 되면 눈이 떠지고 날도 서 있었는데 차차 누그러지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태웅 아무래도 오늘 터뜨려야겠네요.
(웃음) 두 분이 집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은 어딘지 궁금해요.
현정 음, 스테이 리셉션으로 쓰는 카페 공간이요. 우리 집의 일부를 떼어서 공유 공간으로 놔둔 거라 아쉽기도 했는데, 오히려 지금은 거기서 보내는 시간을 좋아하게 됐어요. 작은 데스크에 앉아 체크인 할 손님을 기다리면서 책을 읽고 일기도 써요. 차분하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시간이 평화로워요.
태웅 저는 거실이에요. 일단 바깥으로 통하는 문이 두 개라 어떤 상황에서든 실용적이고요. 거기서 책을 읽고 싶어서 라운지체어를 샀거든요. 지금까지는 바빴지만 앞으로는 그럴 여유가 많아질 거라는 예감이 들어요. 좋아하는 소품들을 모아둔 아카이빙의 공간이기도 하고요.
공간이 하나의 분위기를 취할 수 있는 건 두 분의 취향이 비슷해서일까요?
현정 그런 것 같아요. 어떤 오브제를 보고 속으로 예쁘다고 생각하는데 남편이 똑같이 말할 때가 있거든요. 태웅 취향이 넓었으니까 이것저것 시도해 보면서 실패도 하고 오랫동안 좋아할 만한 것들을 찾아내게 된 것 같아요. 서로 함께한 세월이 쌓이다 보니 맞춰진 것도 있겠죠. 지금은 자연스러운 게 가장 아름다워 보여요. 유행에 민감한 도시에서 벗어났으니 느긋한 자연스러움이 좋아요.
그럼 식성은요?
현정 좀 달라요. 저는 자극적이고 맵고 짠 것들을 좋아하고 남편은 슴슴하고 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 있는 요리를 좋아해요.
주로 읽는 책의 장르는요?
태웅 저는 자기계발서나 데이터 분석 도서를 읽고, 현정은 문학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다른 무엇보다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 비슷한 거네요. 아름다운 물성을 보기만 하는 것과 수집해서 나의 공간에 두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태웅 이 아름다움을 오랫동안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면 내 공간에 두고 싶어져요. 물건도 하나의 가족처럼 함께 생활하는 거잖아요. 쉽게 내버릴 만한 물건들은 마음에 들어도 가져오지 않아요. 저와 현정만의 기준이랄까. 일종의 책임감 같기도 하고요.
현정 조금 비슷한 이야기로 아시 하우스를 만든 후에는 기준이 ‘우리’가 되었어요. 비싸거나 구하기 어려운 걸 떠나서 무엇이든 우리스러운가, 우리와 어울리나 여러 번 고민하게 돼요. 이렇다 보니까 평소에 누군가에게 선물할 때 정말 괴롭더라고요. 물건이라는 게 나한테는 좋지만 상대방에게는 짐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결국 그 사람이 식당에서 무얼 먹었는지 떠올리면서 요리를 해주거나 와인을 선물하곤 해요.
아시 하우스에서 두 분에게 특별한 아이템이 무얼까 궁금해요.
태웅 음…. 스테이 A룸에 들어서면 조명을 올려놓은 사이드보드가 있거든요. 데이비드 로젠이라는 디자이너가 만든 건데, 그 서랍장 하나가 스테이 내부 인테리어의 디자인 방향이 되어줬어요. 붉은빛으로 태닝된 빈티지 우드에 손잡이는 앤틱한 느낌이라서 투박하면서도 우아함이 느껴져요. 그동안 유명한 브랜드 제품도 많이 써봤지만,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디자이너의 가구 하나가 이곳까지 와서 많은 이미지를 파생시키고 줄기를 만들어줬다는 점이 특별한 물건이에요.
현정 저는 작은 것들, 차 도구가 떠올라요. 숙우나 티팟 같은 것들인데 서울에서는 그걸 사 두고도 온전히 즐길 여유가 없었어요. 오히려 이곳에 와서야 진가를 발견하게 된 거죠. 차를 마시러 간 카페에서 눈여겨보거나 빈티지 숍에서 구매해요. 리셉션에서의 기다림을 함께해 주는 아이템이에요.
함께하는 시간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물건이네요. 좋아하는 것에 둘러싸여 지내는 건 삶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현정 저와 남편이 일주일 중 일주일을 여기서 보내거든요(웃음). 누군가는 심심하지 않은지, 고립된 기분이 들지 않는지 묻곤 하는데, 전혀 아니에요. 왜 여기서 보내는 시간이 지겹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 우리가 좋아하는 모든 게 이곳에 있기 때문이에요. 그걸 만끽하면서 보내는 것만으로 충분해요.
태웅 쉴 때도 좋아하는 가구에서 쉬고, 일할 때도 내 손에 꼭 맞는 물건들로 청소하니까 다른 어딘가에 목마르지 않아요. 새로 생긴 카페나 팝업 스토어 같은 데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올라와야 하는 시골에 있어도 행복해요. 가장 좋아하는 게 자연이었기 때문에, 날마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자연을 보면서 지내는 거죠.
이곳에서의 일상이 더할 나위 없이 충만해 보이네요.
태웅 쉼이라는 개념도 달라졌어요. 가만히 있는 것이 쉬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온전한 쉼이라고요. 이곳에서의 노동은 누군가 시킨 게 아니기 때문에 전부 자발적인데요. 청소나 정원 관리처럼 자발적인 노동이 즐겁고 재미있게 다가와요.
가만 보니 이야기 중 ‘청소’가 자주 등장하는데요. 스테이의 주된 업무 중 하나인가 봐요.
현정 맞아요. 청소 노동을 주로 한다고 하니 사무직으로 일할 때보다 안타깝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부모님도 그렇고요. 저한테는 청소라는 게 깨끗하게 만든다는 목표 하나로 나아가는 거니까 어찌 보면 명상처럼 느껴져요. 깨끗이 닦는다, 주름을 핀다. 이런 단순 반복 행위를 하면서 몸과 마음을 비우는 기분이 들어요. 사람마다 노동의 가치가 다르다는 게 새삼 와닿아요.
집을 청소할 때도 비슷한 생각을 하세요?
태웅 오, 집은 좀 달라요(웃음). 스테이는 손님이 왔을 때 먼지 한 톨 없어야 된다는 수련의 마음으로 한다면, 집은 조금 지저분해도 괜찮아요. 커트라인이 낮은 거죠.
스테이 관리를 모두 마치고 손님도 없는 하루에는 두 분이 무얼 하며 보내는지 궁금해요.
현정 근처에 조종시네마라고 동네 극장이 하나 있어요. 독립 영화를 좋아하는데 큰 상업 영화만 상영하는 터라 아쉽지만, 그래도 없어지면 안 되니까 꾸준히 가요. 서울 나들이를 갈 때도 있는데,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영화 보고 카페 가는 게 거의 고정 코스예요. 대도시 서울이 싫어서 왔지만 가끔 가서 북적이는 인파에 휩쓸리고 오는 건 재밌더라고요. 에너지를 다 쓰면 지쳐서 “얼른 돌아가자….” 하고요.
에너지를 얻기도, 쓰기도 쉬운 곳이죠(웃음). 취미가 같으니 여가를 함께 보내기에 좋겠어요.
태웅 맞아요. 영화는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저와 현정이 더 깊이 대화하도록 만들어주니까 좋아요. 서로의 생각이 같지 않아도 흥미롭고요. 그중에서도 독립 영화는 사소한 이야기를 참 많이 하는데, 생각해 보면 우리의 일상처럼 느껴져요. 우리 삶이 상업 영화처럼 매번 어마어마한 사건이 일어나는 게 아니다 보니, 시선이 사소한 것에 더 쉽게 닿는 것 같아요.
태웅 씨는 사진이나 음악에도 관심이 있다고 알고 있어요. 리셉션에 틀어두는 플레이리스트를 직접 고른다고요.
태웅 사진과 음악은 어릴 때부터 좋아했어요. 무얼 할 때 공간에 음악을 틀어두고 원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집중이 잘되더라고요.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씩 스포티파이에서 아시 하우스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재생해요. 국적이나 가사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지만, 음악이 상황의 배경이 되는 걸 선호해요. 자기주장이 강한 멜로디나 가사는 잘 듣지 않죠. 리셉션에서 손님들과 마주하는 잠깐의 시간 동안 성향을 파악하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저마다의 성향과 비슷한 노래를 들려 드리고 싶어서예요. 단골손님이 생긴다면 그분들의 음악 취향을 기억해 두고 싶어요.
아시 하우스 홈페이지나 인스타그램에 올라가는 사진도 모두 직접 찍고 있죠?
태웅 맞아요. 매일 다른 모습을 기록하기 위해 늘 주머니에 카메라를 넣고 다녀요. SNS나 웹 페이지도 저한테는 하나의 공간이거든요. 그걸 봤을 때 어떤 느낌, 어떤 세계처럼 닿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담아서 촬영하고 있어요. 아시 하우스는 꿈같은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좀더 희미한 느낌으로 담고 있고요. 음악처럼 사진으로도 세계관을 만드는 작업이 재미있어요. 가만 보면, 현정의 요리도 그렇고 취미가 일의 영역으로 넘어간 것 같기도 한데, 오히려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아요. ‘이제 우리는 다 할 수 있잖아. 우리가 하면 되지.’ 이렇게요.
그럼 이번 생은 아시 하우스에서 보내기로 했으니, 다음 생을 상상해 볼까요? 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현정 이번 생의 저는 직업의 세계를 너무 몰랐던 것 같아요. 한때 식물에 한창 빠졌던 적이 있어서 다음 생에는 정원사를 하고 싶어요. 자연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으니 오히려 공부할 수 있는 세계가 무궁무진하더라고요. 이 꽃이 왜 죽었는지, 이 나무는 왜 옆집에만 피는지 깊게 알아보고 싶어요.
태웅 학창 시절로 돌아간다면… 작곡 공부를 해보고 싶네요. 음악이라는 게 무형의 창작물인데 누군가에게 끼치는 영향이 막대하잖아요. 만든 이가 사라져도 음악은 계속 존재하고요. 멋지고 신기한 존재, 아름다운 존재라고 생각해요.
슬슬 마무리를 지을 시간이에요. 아시 하우스에서 지나온 시간보다 앞으로가 더 길 텐데, 어떤 삶을 꿈꾸고 있는지 궁금해요.
현정 일상이 유지되면 좋겠어요. 저는 평범한 일상이 흔들리는 게 무섭거든요. 하루하루 똑같이 반복하면서, 지금 오신 손님들이 아주 나중에 와도 여전히 이 자리를 지키고 싶어요. 물론 모습은 조금 늙었겠죠?
태웅 저도 비슷해요. 아시 하우스라는 건 결국 저와 현정이니까 어떤 형태가 되어도 중심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잔잔하게 살아가고 싶어요.
현정 맞아, 무탈하게 반복되는 일상.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지만요.
아시 하우스는 그럴 것 같은데요? 다음엔 저도 두 분의 아름다운 기억을 살피러 올게요.
현정 물론이죠! 꼭 오세요.
에디터 이명주
포토그래퍼 강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