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식탁에 둘러앉아

나카가와 히데코 ㅡ 구르메 레브쿠헨

두 개의 부엌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하나는 가족의 일상을 영위하는 공간이라면, 다른 하나는 호기심을 안고 모인 낯선 이들이 재료 손질부터 요리, 뒷정리까지 함께 하며 넓은 의미의 ‘식구’가 되는 공간이다. 이 특별한 요리 교실 ‘구르메 레브쿠헨Gourmet Lebkuchen’을 15년째 이끌어오고 있는 나카가와 히데코는 반질반질 윤이 나는 솜씨로 사람들을 요리의 세계로 안내한다. 어깨너머 배운 아버지의 레시피와 자연스레 체득한 요령은 그릇에 소박하게 담겨 식탁에 놓인다. 그 주변에 둘러앉아 소소하고도 유쾌한 이야기를 음미하니, 좋은 맛을 완성하는 건 만든 이의 마음이라는 게 또렷해진다.

참 신기한 게, 나의 레시피가 아니니까 맛이 어떨지 의문스러운데
만들고 보면 아버지의 맛과 닮아 있어요. 시공간을 초월한 맛이라고 표현하곤 하는데, 아버지의 요리가 나에게로 와서 오랫동안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조용히 스며든 요리하는 삶

여기가 바로 히데코 선생님의 요리 교실이군요. 주말인데도 시간 내어주셔서 감사해요.

어서 오세요. 돌아오는 화요일부터 올해 첫 학기 요리 교실이 열려요. 오늘이 방학 마지막 날인 거죠.

 

그럼 마지막 휴식을 방해한 건 아닌지….

괜찮아요, 마음먹고 있었어요(웃음). 연희동에서 15년째 운영하는 요리 교실 ‘구르메 레브쿠헨’은 1월과 2월이 방학이에요. 쉬는 동안 곧 나올 책도 열심히 썼고 ‘북 레브쿠헨’이라는 출판사를 만들어서 요리와 일상을 담은 책들을 꾸준히 내보려고 준비했어요. 사실 저는 방학에 더 바빠요. 수업을 진행할 때와 달리 약속이 많거든요. 캘린더에 더 이상 메모할 칸이 없을 정도예요.

 

알차고 즐겁게 보내셨네요. 그러고 보니 연희동에 참 오래 계셨어요.

94년도에 한국에 왔으니까 올해로 30주년인데요. 처음 도착한 동네가 이곳이었어요. 예전에 연희3동이라고 불리던 동네인데 대학교 근처다 보니 하숙집이 많았거든요.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린 후에는 아이들 학교나 학원 때문에 강남으로 이사 갔었는데, 네모난 빌딩만 늘어서 있는 게 너무 답답하더라고요. 결국 연희동으로 다시 돌아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거예요. 처음 마주한 동네다 보니까 애착도 생기고, 특히 동네 마트인 ‘사러가’를 참 좋아해요. 크진 않지만 허브나 이국적인 재료가 많고 과일과 채소도 신선해요.

 

동네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마트 때문이라니, 장 보러 자주 가세요?

거의 날마다 가요. 그런데 요즘 마트에서 체감하는 물가가 너무 올라서 보통 장을 보던 비용의 반 정도로 줄였어요. 원래 마트에서 100만 원을 썼다면 지금은 50만 원만 쓰고, 남은 건 가락시장이나 허브 전문 농부들에게 직접 주문하거나 쿠팡 배송을 쓰는 거죠. 농담이지만, 사러가 마트의 매출액이 반으로 줄었을지도 몰라요(웃음).

 

집에 대한 설명도 간단히 들어볼까요? 1층과 2층으로 나뉜 주택인데, 마당으로 들어오는 문에 문어가 그려진 현판이 달려 있더라고요.

맞아요. 둘째가 어릴 때 문어를 좋아해서 그린 그림이에요. 우리 가족은 2층에 살고, 1층에는 원래 편집자로 일하는 친구들이 세를 들어 살았어요. 제 책 《지중해 요리》를 함께 만든 편집자죠. 요리 교실을 열기로 마음먹었을 때 연남동에 공간을 알아봤는데 영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어요. 때마침 편집자 친구들이 집을 비운다고 해서 어디 멀리 가지 않고 1층을 교실로 쓰게 됐죠. 1층 방 하나만 아이가 쓰고 남은 가족들의 공간은 모두 2층에 있어요. 아, 맞아요. 그리고 저 남편 있고 아들 둘 있어요. 자꾸 가족들 소개를 까먹네요. 저밖에 생각이 안 나요.

 

(웃음) 오늘은 선생님에게 요리를 만들고 나누는 일상에 대해 듣고 싶어서 찾아왔어요. 우선 선생님의 부모님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무탈하게 지내고 계신가요?

어머니는 작년 12월에 돌아가셨어요. 치매를 10년 가까이 앓으셨는데, 몸이 약하기도 하셨고 폐렴이 찾아오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작별하게 됐죠. 어르신들은 갑자기 그런 일이 생긴다고는 하지만, 치매 증상 말고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던 터라 많이 놀랐어요. 특히 아버지는 전날까지 같이 아이스크림도 드셨는데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해서 충격이 크셨죠. 아버지는 올해로 아흔이세요.

 

아버지 마음이 많이 안 좋으셨겠어요.

장례식 마치고 부모님 댁에 가니까 뭔가 허전했어요. 엄마가 대단했던 게 그 와중에도 매일 아버지가 입을 옷을 챙겨주고 빨래도 스스로 하셨대요. 세탁기에 세탁물과 세제를 넣고, 까만 옷과 하얀 옷도 구분하셨고요. 어머니가 없는 아버지는 파자마가 어디 있는지, 어떤 양말을 꺼내 신어야 할지도 모르는 거예요. 지금은 아버지도 치매 환자들이 소규모로 모여 사는 요양원에 머무는데, 스무 명 중 할머니가 열아홉 분, 할아버지는 아버지 단 한 명이래요. 모이면 같은 얘기 반복하고, 영양사 선생님 도와서 조리실에서 요리도 하신다더라고요. 동생이랑 “엄마 벌써 잊어버린 거 아냐?” 우스갯소리도 하는데, 지금은 잘 지내세요.

 

다행이에요. 아버지는 프랑스 요리 셰프로 일하셨다고 알고 있어요.

임페리얼 호텔의 프렌치 셰프셨는데 항상 바쁘셨죠. 어릴 때 바다나 유원지에 놀러 갔던 기억을 더듬어보면 엄마랑 저, 동생밖에 없어요. 서비스업이라는 게 남들 놀 때, 쉴 때, 즐길 때 일해야 하는 거잖아요. 게다가 그때는 요즘 젊은이들이 워라밸을 말하는 것과는 일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랐고요. 쉬는 날이 돌아오면 나폴리탄이나 오므라이스, 햄버그스테이크, 가츠샌드 등을 해주셨던 게 떠올라요. 빵 사이에 튀긴 고기를 넣는 아버지표 가츠샌드는 식빵 하얀 부분의 겉면을 살짝 구웠는데 그게 참 고소해서 맛있었어요. 명주 씨도 한번 해봐요. 돈가스는 튀긴 거 사 오면 되니까 쉬워요.

표고버섯 튀김과 하몽

가츠샌드 좋아하는데 팁 꼭 기억할게요. 아버지가 바쁘시니 어머니와 보낸 시간이 많았겠어요.

음, 그렇지만 어머니랑 친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사이가 안 좋은 게 아니라 그다지 가깝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어요. 만들어주신 요리도 잘 떠오르지 않고요. 엄마가 치매에 걸린 후에 제가 한번 물어본 적 있어요. “엄마는 무슨 요리를 잘했어? 뭘 좋아했어?” 하니까 그냥 싫대요. 카레나 양식처럼 아버지의 전문 분야라고 생각하는 요리는 절대 직접 하지 않고 아버지께 부탁하셨어요.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배우거나 해보고 싶었을 텐데 그렇진 않았던 거죠. 저도 요리는 아버지한테 배운 거예요.

 

아버지는 호텔 셰프를 그만둔 후 작은 레스토랑을 운영하셨다는데,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해져요.

도쿄 도심에 연남동을 닮은 동네가 있는데 거기서 조그만 프렌치 비스트로를 열었어요. 다채로운 색깔이 많은 곳이었죠. 젊은 사람들이 바글바글 오는 것보다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가 모이는 곳이랄까요? 할아버지들이 신문 보면서 생토마토로 만든 나폴리탄 스파게티 먹고, 일본식 모닝커피가 서빙되는 곳 말이에요. 아버지가 일흔여덟 살이 될 때까지 운영하셨는데, 직원은 주방 일을 도와주시는 아주머니 단 한 분이었어요. 그리고 아버지는 운전을 못 하셔서 재료를 사러 갈 때마다 자전거를 타셨던 게 아직도 떠올라요. 그때 레스토랑을 도와드리면서 요리를 배웠기 때문에 그 공간이 참 좋았는데, 2011년 도쿄 대지진이 일어난 뒤 어머니가 너무 불안해하시고 아버지도 연세가 많으셔서 문을 닫게 되었죠. 아버지가 그 후로 저한테 택배를 보내셨어요.

 

뭘 보내신 거예요?

주변 정리라고 할까, 가지고 있는 식기나 조리 도구들을 보내주신 거였어요. 백자로 된 찻잔과 티팟, 에도 시대에 만들어진 그릇과 술잔도 있고 여러 종류의 식칼도 있었죠. 배에 실어 가져온 거라 여기저기 금이 가거나 이가 나가서 ‘킨츠기’ 공예법으로 붙여두고 아직까지 쓰고 있어요.

 

전부 귀한 것들이네요. 왜 주신 걸까요?

쓰라고 주는 거지 뭐(웃음). 당신은 아끼느라 박스에 넣어두고 평생 단 한 번도 꺼내 쓰지 못했대요. 저랑 남편이 가져가서 맘껏 쓰라고 하시더라고요. 요리 서적들, 레시피 노트도 있었어요.

아버지한테 요리를 배우셨다고 하셨죠. 좀더 자세히 듣고 싶어요.

아마 요리에 대한 모든 걸 배웠을 텐데요. ‘베샤멜 소스béchamel Sauce’(버터와 밀가루에 우유를 넣어 만든 화이트소스로 프랑스 요리에 자주 쓰임)와 고기 굽는 법, 파이지 반죽법, 달걀과 버터를 섞는 요령 같은 것도 알려주셨어요. ‘오늘 이걸 가르쳐 줄 거야!’라고 포고하듯 한 게 아니라 어깨너머로 가르치고 배운 거죠. 이런 말 써도 되나 모르지만, 전 요리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니 일명 ‘야매 요리’를 만들어요.

 

그렇기에 더 자연스럽고 다정한 맛이 느껴지는 게 아닐까요(웃음)?

그럴지도 모르죠. 셰프들은 대부분 비법이 있어도 기록해 두는 일에 더딘데 아버지는 일찌감치 컴퓨터로 정리하셨어요. 그 덕에 《아버지의 레시피》라는 책이 탄생할 수 있었죠. 아버지가 만든 토대에 한국 사람들이 쉽게 만들 수 있고 좋아할 만한 맛을 제가 조금씩 더해서 완성한 책이에요. 요리사로서 큰 호텔에 있으면 안정적이잖아요. 그렇지만 아버지는 세상이 자기를 셰프라고 불러도, 스스로는 요리를 만들어서 가르쳐 주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 하셨어요. 몸이 안 좋아지신 후에 같이 비프스튜를 끓인 적 있는데, 그 와중에도 당신이 무얼 만들고 있는지 잊으시더라고요. 그런데 저한테 생선 다루는 법을 가르쳐 주지 못해서 아쉽다고 하시는 거예요.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제가 생선에 좀 약하거든요(웃음). 아버지는 알게 모르게 제게 영향을 많이 주신 분이기 때문에,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아마 요리 교실도 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아버지에게서 딸에게로 전해진 햄버그스테이크의 레시피는 다진 고기와 양파밖에 없었던 옛 동독의 친구들에게, 그리고 지금은 서울의 요리교실로 전해졌다. 또한 어렸을 때는 일본에서 할아버지의 햄버그스테이크를, 지금은 서울에서 어머니의 햄버그스테이크를 먹어온 아이들에게 전해졌다. 대학생이 되고 마음의 여유가 생겼는지 먹보인 큰아들은 외할아버지에게서도 내게서도 햄버그스테이크 만드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아직까지 나는 아들의 햄버그스테이크를 먹어보지 못했다. 그 맛이 어떨지 무척 기대된다.

— 나카가와 히데코, 《아버지의 레시피》 중에서

부모님의 레시피를 이어받아 자신의 요리를 만든다는 건 선생님께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요.

참 신기한 게, 나의 레시피가 아니니까 맛이 어떨지 의문스러운데 만들고 보면 아버지의 맛과 닮아 있어요. 시공간을 초월한 맛이라고 표현하곤 하는데, 아버지의 요리가 나에게로 와서 오랫동안 남아 있는 것 같아요. 누군가 아버지께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 물어봤대요. 아마 아흔 살이라는 걸 몰랐던 거겠죠? 그랬더니 “요리하고 싶어, 요리할 거야.” 이렇게 답했대요. 그걸 듣고는 조금… 서글펐어요. 저는 목표가 딱 있는데요. 여든여덟 살까지 요리 교실을 열고, 예순여섯 살까지 책 50권을 낼 거예요. 남은 시간을 계산해 보면… 지금 이럴 때가 아니라 부지런히 써야겠네!

 

다시 한번 시간을 내어주셔서 감사해요(웃음). 그런데 대학 시절, 부모님께서는 일본에서 요리의 길을 걷길 바라셨지만 훌쩍 스페인으로 떠났다고요.

음, 사실…. 남자 친구가 있었어요.

 

(일동 폭소한다.) 아니 선생님!

달리 무슨 이유가 있겠어요(웃음). 아버지 일로 온 가족이 독일에 잠시 머무르다가 저는 스페인으로 갔어요. 당시 무얼 하고 싶은지 몰라서 쉽게 선택했던 것 같아요. 독일은 식문화가 다채롭거나 매력적이진 않은데, 스페인은 식재료가 풍부하고 해안 도시도 많아 수산물 종류도 다양한데다가 햇살이 좋아서 사람들 간의 에너지가 넘쳐 보였어요. 그간 아버지의 부엌에서 봤던 건 대부분 손질된 재료였거든요. 바로 넣으면 되는 상태. 스페인에서 본 건 완전히 달랐죠. 그래서 시장 가는 것도 너무 재밌었고, 먹는 사람도 없는데 주말마다 바구니 가져가서 한가득 사 들고 돌아오곤 했어요.

 

그렇게 3년을 보내다가 이후에는 한국으로 오셨죠.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에 어학 연수 겸 지낸 거였어요. 그때 남편을 만나게 됐는데, 일본으로 돌아가는 출국 전날에 직접 준비한 밥상을 차려줬어요.

 

어머나….

갓 지어서 따끈한 완두콩밥이랑 오뚜기 미역국, 어묵볶음 같은 걸 해줬더라고요. 그중에서 완두콩밥이 정말 맛있었어요. 특별한 조미료나 레시피가 있는 게 아닌데 한입 가득 먹을 때마다 눈물이 나는 거예요. 그때 그 밥맛이 아직까지 떠올라요.

 

그 한 그릇이 선생님을 한국에서 지금까지 살게 한 거네요.

맞아요. 완두콩밥 때문인가 봐요.

먹고 마시고 나누는 시간 속에

구르메 레브쿠헨 요리 교실은 어떻게 시작된 건지 궁금해져요.

그 이후로 일단 귀국 수속은 다 해두었으니 일본에서 어머니랑 며칠 지내고 다시 한국으로 왔어요. 저의 30대는 남편과 결혼하고 아기를 낳아 육아하는 데만 쓴 것 같아요. 어디선가 사주를 봤는데 30대가 암흑의 시대라고 하던데, 그래서 그런 건가(웃음)? 그래도 주말에 지인들 불러 파에야 만들어주고 아이들 데리고 캠핑장 놀러 가면서 소소하게 즐거웠어요. 마흔 살에 연희동으로 이사 온 뒤에는 요리 교실을 다니다가 만난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파에야를 가르쳐 주었는데, 오는 사람이 하나둘 많아지면서 요리 교실처럼 되어버렸어요. 그때부터였죠.

 

특별한 결심이 있었다기보다 자연스레 요리라는 일과 연결된 거네요.

맞아요. 지금도 그 마음은 여전해요. ‘이거 그만둬도 돼.’라는 생각으로 하거든요. 여태 나온 책들도 의식적으로 쓴 게 아니라, 요리 교실이 오랫동안 열리면서 이야깃거리가 잔뜩 생기니까 자연스레 글로 정리하게 된 거예요.

선생님의 요리 교실은 조금 특별한 점이 있어요. 재료 손질부터 먹은 뒤 뒷정리까지, 모두가 함께 한다면서요.

보통 요리 수업에 가면 모든 게 세팅되어 있어요. 손질된 재료들이 접시에 쓸 만큼만 담겨 있고 먹은 뒤에는 그릇을 그대로 남겨둔 채 헤어지죠. 별로 재미가 없어서 수업에 앉아 있다가 존 적도 있어요. 그러다 베트남 선생님 ‘미세스 수’의 요리 교실을 들으러 갔는데 한국과 재미 교포, 일본까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둘러앉아 재료 손질부터 하는 거예요. 요리를 마치면 선생님도 식탁에 앉아서 함께 먹고 뒷정리도 나눠서 하고요. 그 방식이 즐거워서 그대로 하고 있어요. 하는 사람과 치우는 사람이 나뉘지 않도록.

 

그런 점이 재미있어서 꾸준히 오는 수강생도 많겠어요.

수강생 중 70퍼센트는 재수강을 하고, 30퍼센트는 몇 년 단위로 꾸준히 오는 친구들이에요. 10년 가까이 된 친구들도 있고요. 왜 이렇게 오랫동안 다니는지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자기 생활의 일부가 됐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다들 소매 긴 블라우스 같은 거 입고 오다가 이제는 운동복에 운동화 신고들 와요. 요리가 마냥 예쁘고 깔끔한 일이 아닌 걸 아니까. 그런 친구들이 많으니 지중해, 스페인, 일본, 한식이 많은 술안주까지 네 가지 테마를 고정적으로 열고 1년마다 메뉴 구성을 바꿔요. 그때의 관심사에 따라 몇 가지 테마를 더할 때도 있고요.

단순히 배우는 게 아니라 함께 나누는 요리의 즐거움도 만끽하는 시간이겠어요. 수강생 사이에서 ‘수자 언니’라고도 불리신다고요.

‘나카가와 히데코中川 秀子’라는 이름의 한자를 한국어로 읽으면 ‘중천 수자’가 되거든요. 보통은 선생님이라고들 부르지만, 수업이 끝나고 밖에서 같이 술 먹을 때 수자 언니라고 부르는 친구가 있어요. 재미있는 별명이죠. 그래도 저는 사제지간의 거리는 꼭 유지하려고 해요. 너무 가깝게 다가갔다가 오히려 탈이 난 경험이 있거든요. 사람 사이에는 바람이 통할 만큼의 거리가 필요해요.

 

맛있는 요리에는 술이 빠질 수 없잖아요. 《히데코의 사계절 술안주》, 《히데코의 사적인 안주 교실》 등의 책도 쓰셨고요. 음식과 술을 함께 즐기는 ‘반주’를 좋아하세요?

저는 밥을 못 먹어요.

 

네?

술이 없으면 밥을 못 먹어요(웃음). 너무 피곤한 날이 아니라면 식사에 와인이나 위스키를 한잔 곁들이는 경우가 많아요. 아님 남편과 나가서 술을 마시거나. 예전에는 맥주도 좋아했는데 요즘엔 조금 덜 마셨네요. 술이 더해지면 음식이 더 맛있게 느껴지니까 요리하는 도중에도 ‘아, 와인 냉장고에 있는 그거랑 잘 어울리겠다.’ 생각하게 돼요. 무얼 마시느냐에 따라서 양념도 조금씩 변주를 주고요.

 

애주가셨군요(웃음)! 선생님의 ‘사적인’ 안주를 소개해 주세요.

여러 사람과 집에서 술을 마실 때 안주를 만드는 저만의 룰이 있어요. 만드는 사람도 술자리를 즐길 수 있도록 아주 간단한 걸 하는 거죠. 한우를 구워 소금 살짝 찍어 먹거나, 마트에 가면 마른 두부를 파는데 들기름을 두르고 구워요. 밀가루 같은 거 필요 없이 두부만 팬에 올려 양면을 노릇하게 굽고 갈치속젓 얹어 먹으면 맛있거든요. 누군가를 위한다기보다 내가 먹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아무래도 셰프 체질은 아닌가 봐요.

짓궂은 질문도 하나 해볼게요. 평생 딱 한 종류의 술만 마셔야 한다면 무얼 고르실 거예요?

아, 어렵네. (잠시 고민한다.) 샴페인 아니면 브루고뉴 화이트 와인! 깔끔해서 그냥 마셔도 좋고 다양한 요리에 곁들이기도 좋거든요. 저는 좋은 술에 집착하진 않아요.

 

이런 일상과 생각을 열심히 책으로 옮겨내시죠. 50권 출간이 목표라는 이야기도 하셨고요. 글을 쓰게 만드는 원동력이 무엇인가요?

수강생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나 야채 가게 아저씨, 소금 가게 아저씨처럼 식재료를 공급해 주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좋아해요. 그걸 통해 만나는 사람과 일상이 재미있으니까 요리 교실을 하는 거고, 책은 즐거움의 결과물일 뿐이죠. 요즘에는 아침형 인간이 되어서 원고 마감이 있을 땐 5시나 6시쯤 일어나 쓰곤 해요. 일명 ‘그분’이 오시면 술술 써지지만 아니라면 하루에 다섯 줄은 꼭 채운다는 마음으로요. 레시피는 머릿속에 있으니 쓰기 쉬워도 이야기 소재는 잊지 않기 위해서 노트에 기록하고 있어요.

 

어떤 마음과 의미를 담아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는지 궁금해요.

한때 기자로 잠시 일했을 정도로 글쓰기를 좋아하긴 하지만, 스스로도 어떤 마음을 담고 있는지 궁금해서 생각해 본 적 있어요. 결국에는 정체성 때문인 것 같아요. 즐거운 일을 하고 그걸 기록하면서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를 되새기는 거죠. 여태 한국에 있는 이유, 내가 살고 있는 이유. 더 나아가서 제 이야기로 요리에 대한 힌트를 드릴 테니 보는 분들이 직접 해보면 좋겠다 싶어요. 잠시 유행하고 말 메뉴가 아니라 아버지와 저의 시간이 담긴 메뉴들이기 때문에.

부엌은 식단이나 순서, 정리를 고민하며 조리에 분투하는 장이면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며 기쁨을 느끼고 행복을 나누는 즐거움의 장이다. 또 타인과 함께 음식을 만들면서 대화를 즐기는 교류의 장이기도 하다. 특히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창의성으로 가득 찬 설렘의 장소다.

— 나카가와 히데코, 《음식과 문장》 중에서

프로방스식 여름 채소 오븐 구이

이제 부엌은 선생님에게 놀이터 같겠어요.

그렇죠. 부엌이란 내 생활의 일부예요. ‘일부’ 이상으로 말하면 뭔가 맨날 부엌에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요리를 마치면 행주 삶아 두고 딱 떠나거든요(웃음). 음식을 만들기 귀찮거나 도무지 틈이 안 나는 날에는 외식도 곧잘 하고요.

 

하는 사람의 에너지가 중요한 행위니까요. 조리 도구나 식기를 구매할 때 기준이 있나요?

결국에는 쓰는 사람과 잘 맞는 도구인지가 중요해요. 요즘에는 기능성이 떨어지는 제품도 많아서 쓰기 편한 걸로 우선 고르기도 하죠. 그래서 감자 깎는 필러는 ‘무인양품’ 것만 쓰고요. 개인적으로 디자인은 저한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냄비도 요리마다 다르게 쓰는데, 디자인이 탁월하다고 특별히 더 뛰어나다는 느낌은 못 받았어요.

 

기준은 경험을 따라 만들어지는 거네요. 그럼 선생님에게 ‘좋은 식사’란 무얼까요?

요리에는 수많은 방법이 있으니까 식재료가 완성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토마토라면 제대로 좋은 걸 사서 그냥 먹어도 좋고 잘라서 올리브 오일과 소금만 뿌려도 맛있고, 팬에 뭉그러질 때까지 볶다가 파스타를 삶아버려도 돼요. 그렇다고 비싼 식재료일 필요도 없어요. 제철에 사야 적당한 가격에 살 수 있으니 때를 맞춰서 잘 고르면 누구나 좋은 식사를 할 수 있어요.

 

어떤 이야기에서 “요리도 패션도 인생도 덧셈보다는 뺄셈”이라는 말씀을 한 게 인상 깊었어요.

처음에는 패션에 대한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음식도, 사는 것도 빼는 게 중요한 것 같더라고요. 사실 빼는 게 더 어렵잖아요. 요리할 때 재료에 온갖 소스를 올린다고 생각해 보세요. 맛이 없진 않겠지만 그게 좋은 모습으로 느껴지나요? 절대 아니거든요. 사람도 나이 먹으면 아등바등 다 가지려고 하기보다 하나둘 짐을 정리하잖아요. 그거 못하면 되게 미운 할머니, 할아버지 되고요. 제가 살고자 하는 태도는 빼는 것과 같아요.

 

마음에 새겨두고 싶은 이야기예요. 이제 곧 완연한 봄이 올 텐데, 선생님에게 4월의 맛은 무얼까요?

그때면 봄나물 잔치가 열리지 않을까요? 두릅이나 냉이, 달래…. 마트에서 깔끔하게 손질된 것도 좋지만 밑에 흙이 묻어 있는 자연산의 향이 훨씬 달아요. 된장이나 고추장 넣고 무치는 것보다 살짝 밀가루만 묻혀서 튀기거나, 심플하게 소금과 참기름 또는 들기름으로 버무리고 싶어요. 간이 세면 본연의 향이 느껴지지 않을 테니까.

 

상상만 해도 맛있겠어요. 마지막으로 많은 사람이 오고 간 구르메 레브쿠헨 교실에 초대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살짝 알려주실래요?

바로 떠오르는 사람은 요리 잘하는 배우 누구더라, 류수영(웃음)? 그런데 좀더 생각해 볼게요. 올해로 구르메 레브쿠헨이 15주년이니까, 그동안 수업을 위해 많이 도와주셨던 분들을 초대해서 함께 식사하고 싶어요. 더불어 한국에 온 지 30년 되었으니 연이 닿은 분들과 모여 이벤트를 열고 싶고요. 그때 오실래요? 좋은 장소 있으면 알려주세요.

히데코의 손이 자주 닿는 조미료

1. 소금
최신일 사장님의 염전에서 생산된 소금을 선호합니다. 그 기간만 해도 벌써 10년이 다 되었네요. 전라남도 신안군에 속한 도초도라는 섬에서 만들어지기에 구르메 레브쿠헨 요리 교실에서는 ‘도초도 소금’이라고 불려요. 조미료의 기본 중 기본입니다.

2. 조선간장
한식에 쓰이는 간장의 종류는 국간장, 양조간장, 조림간장, 진간장 등 무척 다양합니다만 역시 조선간장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특히 이 간장은 제가 10년 넘게 배우고 있는 한식 선생님의 장독대에서 나오는데, 맛이 진하고 깊습니다. 한 병 값이 비싸기에 아껴 쓰고 있어요.

3. 후추
후추는 소금만큼이나 요리에서 다양하게 사용되는 조미료입니다. 인도뿐 아니라 캄보디아, 아프리카 대륙 등 여러 열대 지역에서 생산되는데 특징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요리 따라 구분하여 넣어도 좋습니다. 후추 통을 여러 개 마련해서 용도별로 보관할까 생각 중이에요.

4. 올리브 오일
브랜드 ‘라퐁Lafont’의 오일을 주로 사용합니다. 식용유 중 가장 즐겨 쓰는 것이 올리브 오일인데 생산지에 따라 맛의 차이가 커서, 재료와 요리법에 따라 바꾸곤 해요. 일반 가정에서는 무난한 블렌딩 올리브 오일을 사용해도 충분히 좋은 맛을 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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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명주

포토그래퍼 강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