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선택으로 일구는 자리

문예진·김진호 — Oth,

숱한 실패에도 사람은 계절과 시간을 통과하며 조금씩 단단해지는 법을 배운다. 집은 사람이 뿌리내린 땅이 되어, 삶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자리로 남는다. 두 사람의 오롯한 선택으로 튼튼히 다진 이 자리에서 진호와 예진은 가장 자신다워지고 있다.

이 집에 오기 전에는 집에 가기 싫어서 계속 밖으로만 돌아다녔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했던 거겠죠. 그런데 지금은 자연스럽게 집으로 돌아오고 싶어져요.

계절을 감각하며 지내는 일이 일상에 또 어떤 변화를 줬나요?

예진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걸 몸으로 느낄 수 있어서 좋아요. 멈춰 있는 느낌이 아니라, 내가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감각이 생기거든요. 예전에는 막혀서 고여 있는 물 같았다면, 지금은 흐르는 물이 된 기분이에요.

진호 회사에 다닐 때는 하루 종일 실내에 있다 보니 밖에 비가 오거나, 날씨가 많이 덥거나 추워도 크게 와닿지 않았어요. 퇴근할 때 돼서야 “아, 오늘 비가 왔구나.” 하고 알게 되는 정도였죠. 변화가 눈에 보이지 않으니 시간의 흐름도 잘 느끼지 못한 채 지나가더라고요. 지금은 창밖 풍경이 계속 달라지니까, 계절이 지나가고 시간이 쌓이고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돼요.

예진 그리고 겨울에만 누릴 수 있는 특권도 있어요. 새들이 찾아오거든요. 숨을 곳이 많지 않다 보니 나무에 앉아 자기들끼리 소통하는 모습이 잘 보여요. 가끔 망원경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집에 있는 새 도감 책을 펼쳐 놓고 “무슨 새일까?” 맞혀보는 재미도 있어요. 그런 소소한 순간들이 이 집에서만 가능한 즐거움이에요.

 

창밖 풍경이 아까워서 손님들을 초대하기도 한다면서요.

예진 맞아요. 창밖에 있는 나무가 은행나무거든요. 가을이 되면 미리 스케줄을 짜요. 그 시기가 워낙 짧잖아요. 빛이 일렁이고 노란 잎 덕분에 공간 전체가 환해지는 순간이요. 혼자 보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을 초대하게 돼요. 좋은 걸 혼자만 간직하기보다 같이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커지더라고요. 다만 그게 단순한 자랑처럼 보이지는 않았으면 해서, 풍경만 보여주기보다는 분명한 이유를 만들어 초대하려고 해요. 예를 들면 식사를 대접하거나, 책을 함께 읽는 모임처럼 목적이 있는 만남으로요.

 

집은 두 분에게 어떤 공간인가요?

예진 요즘에는 집이 밭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제가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고, 무엇을 심든 일단은 뭔가가 자라나는 공간이요. 결과가 어떻든 실험해 볼 수 있는 장소랄까요. 밭이 있어야 식물이 뿌리를 내리듯, 집도 제 삶이 자리 잡을 수 있는 기반이 되어준다고 느껴요.

진호 저는 동굴이라고 생각해요. 눈치 보지 않고, 제 삶의 리듬에 맞춰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공간이죠.

예진 이 말에 너무 공감해요. 사람이 살면서 각자만의 동굴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계속 바깥에만 있으면 가면을 쓰고 사는 느낌이 들잖아요. 때로는 자기 자신에게도 솔직하지 못해지고요. 그런데 동굴 안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어요. 꾸미지 않아도 되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 있어도 되는 공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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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황진아

포토그래퍼 최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