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부엌은 사무실

점심시간이 되면 직장인들은 하나둘 식당으로 발을 옮긴다. 하지만 연희동의 네 친구가 몸담은 작업실 문은 무슨 일인지 꼭 닫혀 있다. 12시가 다가오자, 사무실 한쪽에 자리한 부엌으로 모여드는 이들. 함께 점심을 해 먹는 오피스 런치Office Lunch를 시작한 지도 햇수로 4년째다. 그간의 이야기가 담긴 레시피 북 《Office Lunch》를 들고 네 친구의 사무실을 찾았다.

사무실에서 요리하는 네 친구들

회색 철문을 두드리자 네 사람이 환히 나를 맞이했다. 내부는 세로로 긴 형태. 공간 저 끝에는 모니터와 책상이 놓인 작업 공간이, 반대편 끝에는 조리 도구와 냉장고가 있는 주방이 보인다. 이곳이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체조스튜디오Chejo Studio’와 ‘SHDW’가 매일 일을 하고 점심을 차려 먹는 사무실이구나. 그날도 네 친구는 직접 만든 배추 버섯 파스타와 우엉 볶음 샐러드를 먹었다.

오피스 런치는 두 스튜디오가 함께 사무실을 쓴 것이 계기가 됐다. 처음엔 도시락이나 외식으로 끼니를 해결했지만, 수고로움은 물론이고 비용에 비해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 없었다고. 결국 직접 해 먹는 게 제일 간편할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주방을 정비하고 채소 구독 서비스 ‘어글리어스Uglyus’를 이용하며 이들의 오피스 런치는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식사 준비와 정리는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손이 빠른 체조스튜디오 강아름, 이정은 디자이너가 주로 요리를, SHDW 양승훈, 이동원 디자이너가 뒷정리를 맡는다. 양승훈, 이동원 디자이너는 각각 장보기와 커피 구매도 담당한다고. 동그란 식탁에는 시시콜콜한 일상 대화가 오간다. 편안하고 즐거운 식사는 네 친구를 느슨히 연결하며 유대를 만들어낸다.

“오피스 런치 덕에 우리는 삶과 시간을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머리를 맞대어 메뉴를 고민하고, 재료를 만지며 의외의 조합을 발견하고, 서로를 도와 요리를 하고, 테이블에 둘러앉아 기분 좋게 음식을 나누다 보면,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방향에 대한 작은 힌트를 얻는 기분이다.” 

— 체조스튜디오·SHDW, 《Office Lunch》 중에서

©박현성

체조스튜디오
강아름, 이정은이 함께하는 출판사 겸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매 호 사물 한 가지를 깊이 탐구하는 매거진 《사물함Samulham》을 발행한다. 시각 활동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제한을 두지 않고 시도한다.

SHDW
양승훈과 이동원으로 구성된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2021년부터 호흡을 맞춰 레코드 숍 클리크레코즈, 카페 리셉션과 토오베, 여성 가방 브랜드 투티에 등 다양한 분야의 클라이언트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들이 이야기를 전하는 법

오피스 런치를 시작한 지 3년이 된 지난해, 네 사람은 그간의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 보이기로 했다. 거대한 계획을 갖고 시작한 건 아니었다. 부담이 되지 않으면서도, 즐길 수 있는 정도로 나아가 보는 게 여전한 목표다. 각자에게 익숙한 디자인 영역에 따라 체조스튜디오는 레시피 북을, SHDW는 머천다이즈를 제작했다. 자신이 축적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방법이 디자인이라니, 그리고 그 일은 양승훈 디자이너의 표현으로는 일종의 ‘놀이’였다니 새삼 놀라웠다.

그렇게 만든 책과 머천다이즈는 ‘언리미티드 에디션 서울아트북페어 2023’에서도 선보였다. 네 사람에게는 익숙한 일상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흥미롭게 읽히는 점도 재밌었다고.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야?’ 놀라움을 안고 이것저것 묻는 나를 신기하게 바라봐 주는 것도, 이들에겐 오피스 런치가 평범한 보통날에서 출발한 삶의 한 조각이었기 때문일 테다.

점심을 도시락이나 외식으로 해결하는 사람이자, 사무실의 이방인인 나는 《Office Lunch》를 읽는 내내 눈을 반짝일 수밖에 없었다. 호기심을 가득 안고 네 친구와 함께 책을 펼쳐 본다.

How Was Your Lunch Time?

오피스 런치 인스타그램에서는 연희동 사무실의 일상을 살펴볼 수 있다. 다양한 사람들의 점심 풍경을 소개하는 ‘How Was Your Lunch Time’ 콘텐츠도 소소한 재미. 음식 사진과 함께 각자의 점심 식사에 대한 짧은 인터뷰를 담았다.

상상한 대로 요리하기

오피스 런치 레시피

최근 많이 볼 수 있는 요리 콘텐츠는 과정을 쉽게 따라 하도록 영상으로 제작된다. 그러나 체조스튜디오는 조금 다른 접근을 시도했다. 정적이고 글이 가득한 레시피 북을 만들어 사람들이 해석한 대로 요리하는 재미를 주고 싶었다. 요리 과정은 초보자도 따라 할 수 있도록 세세하게 설명돼 있다. 책장을 넘기다 집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가만 헤아려 본다. ‘오늘 이거 해 먹으면 좋겠는걸?’ ‘이 재료 대신 그걸 넣어봐야겠어.’ 중간중간 적힌 일상 풍경을 살펴보면 네 친구의 웃음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책 크기는 SHDW에서 제작한 앞치마 주머니에 쏙 들어가도록 맞췄다. 나아가 요리할 때 편하게 볼 수 있도록 스프링 제본 방식을 선택했다. 대체로 내 기억 속 요리책은 먼지가 조금 쌓인, 두껍고 무거운 모습이다. 엄마가 언제 마지막으로 이 책을 펼쳐봤을지 궁금해지는. 네 친구의 책은 쉽게 꺼내 들 수 있는 아담한 크기라 더 손이 갈 것 같다.

중간마다 끼운 작은 사진도 독특한 요소다. 전문 카메라가 아닌, 스마트폰으로 기록해 온 음식 사진을 활용할 재치 있는 방법이었다. 메뉴는 제일 자주 먹는 음식 위주로 소개한 것으로 대부분 채소를 활용한 4인 기준 요리다. 전 직장에서 제육볶음을 먹곤 했던 SHDW 이동원 디자이너는 오피스 런치 초반엔 배가 다소 헛헛했다는 후문. 지금은 적응 완료다.

이렇게 썰어 볼까?

오피스 런치 커팅 가이드

재료 두께와 크기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도록 일러스트를 실제 크기대로 제작해 수록했다. 평소 요리책을 즐겨 보는 체조스튜디오 이정은 디자이너는 재료 크기가 대체로 센티미터로 표기되어 있어 답답함을 느꼈다고 한다. 나도 그러했는데. 양파 5센티미터가 이 정도인지, 이 정도인지 두 손가락으로 헤아려보곤 했다. 에라 모르겠다며 천차만별 크기로 채소를 썰곤 했지. 그러다 모양이 제각각인 양파가 된장국에 동동 떠다닐 때면 나도 웃음이 났다.

이정은 디자이너는 직접 종이에 그림을 그려보며 크기를 파악한 뒤 작업을 했다. 브로콜리처럼 양감을 표현해야 하는 경우 실제 재료를 종이에 대고 선을 따기도 했다고. 일러스트는 체조스튜디오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개성 있는 스타일로 제작했다.

길게 썰린 고구마, 양파부터 네모로 썰린 사과, 감자까지 보는 눈이 즐겁다.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검색하다 보면 ‘이런 재료를 어디서 구한담.’ 싶은 순간이 많았는데, 이 책은 쉽게 구비할 수 있는 재료가 중심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한국 가정식이 아닌 토마토 마리네이드 소바, 배추 오일 파스타처럼 간편하면서도 감각적인 메뉴가 많아 도전해 보고 싶은 의욕이 생긴다. 일러스트 옆에는 각 재료가 필요한 레시피 페이지 번호를 기록해 편리함을 더했다.

부엌으로 한 걸음 더

오피스 런치 키친

연희동 사무실의 주방이 지금 모습을 갖추기까지의 과정부터 재료 구비, 조리 도구 등 전반적인 운영에 관한 비하인드가 담겼다. SHDW 양승훈 디자이너는 그동안 1인분에 익숙했지만 조리 도구나 재료를 4인 기준에 맞춰가는 과정을 재밌게 느꼈다. 혼자 먹을 때 필요한 것보다 좀더 큰 냄비와 팬을 마련하며 달라진 생활을 준비했다. 도구 구비 현황도 자세히 설명되어 있어 오피스 런치를 시도해 보고 싶은 소규모 사무실이라면 참고하기 좋다.

사무실은 미팅 공간으로도 사용하는 까닭에 향이 강한 음식은 피해야 한다. 따라서 파스타나 샐러드처럼 냄새가 오래 남지 않는 메뉴가 대부분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엔 공간 위층에 사는 할머니가 밥해 먹는 젊은이들이 기특하다며 노란 끈으로 가지런히 엮인 조기를 선물로 주셨다. 기쁜 마음으로 받았지만, 냄새 때문에 도저히 사무실에서는 구울 수 없었다. 결국 조기는 양승훈 디자이너의 고향집으로 보내졌다. 이들의 일상을 아는 지인들이 종종 식재료를 사무실에 보내주기도 한다.

재료는 채소 구독 서비스 어글리어스를 이용한다. 채소를 워낙 맛있게 먹는 탓에 3–4인 기준 박스가 삼사일이면 금세 바닥을 보인다. 건강도 추구하고 편리하게 식자재를 구비할 수 있어 유용하게 쓰고 있다. 가끔 사무실을 찾는 손님들과 함께 식사를 할 때도 있는데, 다들 정말 맛있다는 반응을 보인다고. 만족스럽고 즐거운 시간을 매일 누리는 이들이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Book—《Office Lunch》 체조스튜디오·SHDW | 체조스튜디오

네 친구의
도란도란 식탁

즐거운 식탁을 차리는 강아름, 이정은, 양승훈, 이동원 디자이너에게 오피스 런치 생활에 대해 물었다.

체조스튜디오 이정은
체조스튜디오 강아름

못난이 채소 구독 서비스 어글리어스를 알차게 이용하는 것 같았어요. 어떻게 구독하게 된 거예요?

정은 처음 오피스 런치를 할 때 어떻게 장을 볼지를 고민했어요. 그때 아름이가 이 서비스를 알려줬고, 고민을 쉽게 해결할 수 있겠다 싶어 구독하게 됐죠.
승훈 2021년 10월부터 구독해서 지금 120회 차가 넘었어요. 최고 회원 등급인 슈퍼 어니언 등급이더라고요.
정은 특정한 재료가 많이 오면 어떻게 하면 맛있을지 고민해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봐요. 삶의 작은 미션 같은 느낌으로요.
아름 그러다 새로운 메뉴가 개발되기도 해요. 지난번엔 무가 많이 와서 구워 봤는데, 친구들이 레몬을 뿌리면 맛있을 것 같다는 거예요. 그랬더니 너무 괜찮았어요.
승훈 친구들이 야채 꾸러미를 보고 바로 메뉴를 생각해 내는 게 신기해요. 창의적으로 맛있게 해 먹더라고요. 

/ 이번 호 《AROUND》에서 소개한 어글리어스 기사에서 오피스 런치의 이야기를 좀더 살펴볼 수 있다.

이곳에서 보내는 점심시간은 어떤 의미인가요?

승훈 전에 회사를 다닐 때도 이렇게 점심시간을 즐겁게 보냈는지를 생각해 보면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때는 살려고 밥을 먹고, 빨리 일하러 가려고 급히 먹기도 했죠. 지금은 점심 식사가 완전한 환기 역할을 해요. 이 점심시간이 우리에게 소중하다고 느껴요. 바빠서 며칠 바깥에서 사 먹으면 이 순간이 그립더라고요.

같이 해 먹는 요리 중에 좋아하는 메뉴가 있다면요?

승훈 아름이가 만든 겉절이요. 아름이 겉절이 정말 잘하거든요.
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짜 맛있어요.
승훈 아름이가 프랑스 유학할 때 젓갈 없이 발사믹으로 만들어본 겉절이래요.
아름 거기에는 고춧가루도 없고 젓갈도 안 써서, 있는 걸로 만들다 보니 발사믹을 넣게 됐어요. 
승훈 진짜 맛있어요. 진짜! 

/ 강아름 디자이너의 겉절이 레시피는 《Office Lunch》에서 확인할 수 있다.

SHDW 양승훈
SHDW 이동원

직접 만든 천연 조미료 레몬 소금이 요리마다 빠지질 않아요. ‘오피스 런치에 레몬 소금은 어떤 존재다!’ 이 문장을 완성해 볼 수 있을까요?

동원 질문을 받고 저희끼리 답변 후보 몇 개를 생각했어요. 그런데 답변이 계속 느끼하게 나와요.
승훈 느끼하다는 말은 ‘이걸 내 입으로 말했다고?’ 싶은 것들이에요.
아름 지면에 실리면 너무 부끄러울 것 같아요(웃음).

 

그럼 저만 들을게요. (답변을 듣고) 하나도 안 느끼한데요?

동원 이건 담백한 편이에요.
승훈 그다음으로 느끼한 건 뭐뭐랑, 뭐뭐였어요.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 설명이 길어지면서 느끼한 단어를 선택하게 돼요.
아름 음식에 넣으면 한끗이 달라지고, 늘 구비되어 있는 것. 이걸 표현할 말을 못 찾겠어요. 그게 뭐가 있을까요?

오피스 런치가 앞으로 어떤 시간으로 자리하길 바라요?

아름 점심시간이 단순히 일과 일 사이에 있는 시간이기보다, 그 자체로 즐거우면서 일의 능률도 올리는, 일과의 연결성을 가진 시간이 되길 바라요. 점심의 목적이 그저 먹는 것에 있지 않고, 식사가 일과 상응하는 관계가 되면 좋겠어요.

/ 오피스 런치에 ‘백종원의 설탕’과도 같은 레몬 소금 레시피는 《Office Lunch》에 수록되어 있다.

오피스 런치가 앞으로 어떤 시간으로 자리하길 바라요?

아름 점심시간이 단순히 일과 일 사이에 있는 시간이기보다, 그 자체로 즐거우면서 일의 능률도 올리는, 일과의 연결성을 가진 시간이 되길 바라요. 점심의 목적이 그저 먹는 것에 있지 않고, 식사가 일과 상응하는 관계가 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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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차의진

자료 제공 체조스튜디오, SHD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