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꿈씨 친구가 있다

세상에 없는 마을

필름에서 길어 올린 샛노란 친구

1996년의 대전

“사진 찍어줄게.” 하면 엄마는 고개를 젓는다. 이제는 늙어서 얼굴 사진은 남기고 싶지 않다나.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고 아름다울 때인데 무슨 서운한 소릴. 딸이 반박할 걸 이미 잘 아는 엄마는 내 입을 닫아버리려는 듯 꼭 한마디를 덧붙인다. “필름 값도 비싸다며.” 우리 집에는 앨범이 무지하게 많다. 커다랗고 두꺼워서 두 손으로도 들기 버거운 육중한 앨범이 서른 개는 족히 된다. 그 안에 빼곡하게 차 있는 건 어릴 때의 나. 깜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진도 있지만 자장면이 범벅된 얼굴, 나체로 포즈를 취한 ‘거시기’한 사진도 있다. 사진 찍자고 하면 늘 “얘는, 뭘~.” 하고 손사래 치다 못 이긴다는 듯 포즈를 취하던 엄마가 어느 날, 맥락도 없이 갑자기 내게 이런 고백을 했다. “실은 내가 너 같았어. 이모들은 사진을 찍더라도 특별한 날 몇 장인데, 나는 매일 너를 데리고 나가서 사진을 찍었어.” 특별히 놀라운 얘기도 아니었다. 어릴 때 엄마랑 사진관에 가서 인화하던 기억, 현상지를 형광등에 비춰 크게 뽑을 사진 고르던 기억이 선연한데 뭘 그리 비장하게 고백까지. 나는 지금도 엄마·아빠가 만들어둔 앨범을 숱하게 열어본다. 앨범 속 나는 자연과 어우러져 자유로워 보인다. 풀밭에 뒹굴고, 낙엽에 파묻히고, 꽃을 먹고, 눈송이를 느끼고. 그래서 ‘그 사진’이 유난히 기억에 남았는지도 모른다. 자연과는 거리가 먼 은빛 기구의 행렬, 그 안에서 잔망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는 나. 엄마가 사진 아래 적어놓은 메모는 이러하다. 〈96’ 대전 엑스포〉.

대전 엑스포가 열린 게 1993년이었으니 요란한 파도가 한 차례 지나간 뒤 그곳에 남은 것들을 보러 다녀온 모양이다. 앨범에서 발견한 대전 사진이 유난히 낯설게 느껴진 건 아마 자연과는 거리가 먼 은빛 놀이터가 배경이어서일 테다. 흙바닥에 털퍼덕 앉아 모래놀이를 하거나 할 수 있는 한 가장 높은 곳까지 발을 구르던 동네 놀이터 그네와는 다른, 어딘가 차갑고 딱딱한 이미지의 기구들. 엑스포에 관한 기억은 없지만 ‘과학’이란 키워드는 선연한 까닭에 이런 이미지도 쉬이 납득이 간다. 한동안 엑스포란 곧 과학 행사를 일컫는 줄 알 정도로 나에게 엑스포란 ‘대전’과 ‘과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대단히 과학에 관심 있던 어린이도 아니고, 96년에 엑스포에서 이렇다 할 강렬한 기억을 남긴 것도 아닌데 대전 엑스포를 오래 기억하는 이유는 아마 꿈돌이 영향일 테다. 내 방 한구석에는 늘 꿈돌이 저금통이 오도카니 놓여 있었다. 내가 사달라고 했는지, 엄마·아빠가 사준 것인지, 누군가 선물로 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어린 내 팔뚝만 한 크기의 그것은 시야 닿는 어딘가에 항상 놓여 있었다. 애착이 있어 자주 만진 것도 아니고, 귀여운 에피소드를 함께 만든 물건도 아니지만 당연히 있어야 하는 물건, 당연히 있어 준 물건이라 우리는 별 탈 없이 꽤 긴 세월을 함께 보내게 됐다.

살면서 종종 떠오르는 친구가 몇 있다. 굳이 따지자면 친구라고 하기엔 머쓱한 관계인데 퍼뜩 머릿속에서 떠오르고 또 금세 가라앉는 그런 친구. 교과서를 펴지 않아 매일 혼나면서도 노트는 반드시 펼쳐 만화를 그리던 반 친구, 졸업식 아침에 등교하던 내게 뛰어와 “그동안 미안했다!”며 난데없이 사과한 일면식도 없던 친구(뭐가 미안했을까….), 모눈종이를 얇은 펜으로 매일 새빨갛게 메우던 친구, 항상 머리띠로 앞머리를 한 올도 남기지 않고 바짝 올리고 다니던 친구, 등교하면 가장 먼저 로션을 양손에 짜서는 세수하듯 비비던 친구. 즐거운 놀이를 함께한 친구도 아니고, 급식을 같이 먹던 사이도 아닌데 그런 사소한 장면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갈 때가 있다. 꿈돌이도 그렇게 불현듯 머릿속에 떠오르는 존재다. 평소엔 있는지도 잘 모르지만 없으면 절대 안 되는 친구, 말수가 적고 얌전한 친구, 농담이랍시고 던진 말도 진지하게 들어주고 뭐든 너그럽게 “그럼, 그럼.” 하고 대답하는 친구. 내게 꿈돌이는 그런 친구다. 어린 날 소중히 여긴 애착 인형보다 강렬하게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또 금세 가라앉는 그런 친구.

은색 한빛탑과 왜곡된 친구

2016년의 대전 대전도 꼭 그런 동네다. 대단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연고도 없는데 이러저러한 이유로 몇 번이나 간 곳이라 종종 떠오르는 동네. 마음먹고 ‘대전 여행하자!’ 한 적은 거의 없지만, 경유지로는 숱하게 지나왔고, 여행이 아닌 목적으로 몇 번쯤 오갔고, KTX를 타고 가면 얼마 안 가 만나게 되어 익숙한 동네. 2016년에 찾은 대전 역시 여행이 아닌 공연이 목적이었다. 밭은 시간을 쪼갠 여정이었기에 둘러볼 여유는 없었는데, 운이 좋게 이른 기차로 바꿀 수 있게 되어 예상치 못한 시간이 생겼다.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고 떠난 여행이라 갑작스러운 여유가 도리어 난감했다. 시간은 있는데 계획은 없다, 계획이야 만들면 되는데 이미 출발을 해버렸다. 아뿔싸. 계획형 인간에겐 빨간불이 켜질 만한 상황이었다. 기차에서 부랴부랴 계획을 세워보려 했지만 급히 뭔가를 하려 들면 되려던 것도 안 되는 법. 갈 만한 곳도, 유명한 지역 먹거리도, 그 흔한 홍보성 맛집 포스팅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리고 내 옆엔 즉흥형 친구가 아주 태평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돌파구가 보이지 않으니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시월의 대전을 바람처럼 즐겨 볼까.’ 모처럼 새로운 마음을 먹는다. 이렇게 좋은 날씨라면 산책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대전역에 내려 사방을 낱낱 둘러본다. 대단할 게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정말로 대단치 않다. 마음을 괜히 달뜨게 만들지 않는, 이 지역의 덤덤함이 좋았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 얼마 안 가 나는 나지막한 비명을 질러야 했다. “어! 너!” 동행한 친구가 무슨 일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바라본다. 비명의 근원은 대전의 맨홀. 어디에나 있는 맨홀이지만 어디에도 없는 꿈돌이 맨홀. 친구에게 해명할 틈도 없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두 눈에 담고, 어린 시절로 돌아도 가본다. 이 이상 호들갑 떨지 않기 위해 애써 침착한 척하고 있는데, 어느새 옆으로 바짝 붙어온 친구가 반색하며 말한다. “어! 꿈돌이다! 나 꿈돌이 목걸이 있었는데!” 그렇다, 꿈돌이는 내 친구만이 아니라 내 친구의 친구이기도 했던 것이다.

나는 땅바닥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친구 뒤를 따라 졸졸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친구가 목이 기다래진 나를 툭툭 치며 말한다. “저거 한빛탑이다.” 1993년, 엑스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상징 조형물. 그것이 익숙한 까닭은 역시 앨범에서 몇 번이나 본 조형물이어서일 테다. 빛, 과학, 우주를 모티프로 설계했다는 외관은 그 당시에는 최첨단의 무엇이었겠으나 2016년도엔 어딘가 조악하고 촌스러운 느낌이었는데, 나는 그 세기말 같은 기운이 좋았다. 한빛탑의 최첨단 속으로 걸어 들어간 우리는 ‘내 친구 꿈돌이’를 회상하기 시작했다.

문득, 한빛탑에서 꿈돌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대전에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수학여행으로 대전 엑스포에 간 큰언니가 몹시 부러웠다고 했다. 왜 난 6학년이 아닌지, 왜 난 엑스포에 갈 수 없는지 적잖이 속이 상했었다고. 친구가 울적해한 반면 수학여행을 떠나는 언니는 덤덤했다는데, 대전에서 돌아온 언니는 마치 가정통신문을 넘기듯 무신경하게 꿈돌이 목걸이를 건네주었단다. 안 봐도 눈에 훤하다. ‘오다 주웠다.’ 느낌으로 목걸이를 건네는 언니와 그걸 받아 들고 뛸 듯이 행복해하는 막냇동생. 친구는 그것을 꽤 오랜 시간 애지중지했다면서 한참을 추억했다. 그에 비해 나는… 꿈돌이 저금통에 관해 이렇다 할 말이 없었다. 그냥, 시야에 그것이 있었노라고. 없던 적이 없어서 만일 어느 날 저금통이 사라졌더라면 허전함을 이기지 못했을 것이라고… 그뿐이었다. 우리는 탑신 내부에 설치된 것들을 보면서 가상의 우주 공간을, 1993년의 사람들처럼 정성껏 체험했다. 글씨체나 일러스트가 영 촌스러웠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가장 즐겁던 것은 요술 거울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유원지에 가면 꼭 있던 갖가지 요술 거울. 어떤 거울은 나를 사정없이 뚱뚱하게 만들었고, 어떤 거울은 나를 회오리 속에 가두었고, 어떤 거울은 내 몸을 종잇장처럼 얄팍하게 만들었고, 어떤 거울은 코가 큰 얼굴로 내 얼굴을 바꿔치기했다. 우리는 그 앞에서 팔을 뻗거나 다리를 들면서,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취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2016년의 대전은 그런 식으로, 어딘가 왜곡된 귀여운 모습으로 남았다.

내 친구지만 모두의 친구인

2026년의 대전 꿈돌이가 나만의 친구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후로 누군가의 꿈돌이가 종종 궁금했다. 나는 메신저에서 사용할 수 있는, 3D 형상이라 좀 낯설지만 그럼에도 반가운 꿈돌이 이모티콘을 구입하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이제 와서, 누가, 꿈돌이 이모티콘을 만들었지? 꿈돌이의 현재가 궁금해져 이것저것 찾아보다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은 2023년, 30주년을 기념해 꿈돌이가 ‘꿈씨 패밀리’라는 가족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꿈씨 패밀리는 노란 꿈돌이와 분홍색 꿈순이가 꿈빛이, 꿈결이, 꿈누리, 꿈별이, 꿈달이라는 다섯 자녀를 낳아서 이룬 가족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대전광역시가 그린 꿈씨 패밀리는 내 머릿속에서 상상한 가족보다 커다란 범위인지 꿈돌이 친동생인 꿈동이와 반려견 몽몽, 친구인 도르·네브가 포함되고 꿈돌이 부모님인 금돌이·은순이까지…를 일컫는다고 한다. 그 이후 가족 세계관을 넓히기 위해 꿈순이의 부모 캐릭터인 온솔과 온빛 그리고 반려묘 잼냥이, 꿈순이 부모님의 반려동물인 고양이 늑구까지 더해졌는데, 내가 상상한 패밀리에 비해 지나치게 방대하다. 나는 노란 꿈돌이만 있으면 되는데. 그 꿈돌이가 이룬 가족만으로도 차고 넘치는데.

이런저런 생각으로 꿈돌이 이야기를 찾아 콘텐츠의 바다를 헤매다 보니 〈꿈돌이 드림TV〉라는 유튜브 채널에 닿게 되었다. 1990년대, 평면적인 마스코트 역할만 하던 꿈돌이와 달리 모두의 친구인 꿈돌이가 이 안에 있을 것 같아서, 꿈돌이의 너른 세계관을 이해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재생해 보기로 했다. 사실 마음 어딘가엔 굳이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내가 모르는 꿈돌이를 수용하기에 내 품은 너무 작았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재생 13초 만에 정지 버튼을 누르고야 말았다. 수십 년간 내가 그려온, 참하고 바른 이미지의 과학을 좋아하는 친구 꿈돌이는 거기 없었다. 예상 밖 캐릭터가 상상해 본 적 없는 목소리로 ‘대전 맛집’을 읊는 장면은 너무도 생경한 것이었다.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들어봤음 직한 말투, 백치미가 느껴지는 행동, ‘유잼 도시 대전!’을 외치는 신세대 꿈돌이. 나는 이내 모두의 친구인 꿈돌이를 만나는 대신 내 친구 꿈돌이를 상상하는 편이 훨씬 수월하고 재미있을 거라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콘텐츠의 바다에서 벗어나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꿈돌이에겐 오랜 소꿉친구 꿈순이가 있다. 꿈순이는 수줍게 웃는 얼굴이 매력적인, 웃을 때마다 눈이 둥그렇게 구부러지고 볼이 발그레해지는 친구다. 꿈돌이는 땅 위에서 15센티 정도 뜬 채 걷듯이 날아다니며 꿈순이를 웃게 한다. 어릴 때부터 붙어 다닌 통에 친구도, 연인도, 가족도 아닌, 일찌감치 한 몸처럼 되어버린 한 쌍. 어느 해 결혼을 한 이들은 알콩달콩 세월을 함께 보내며 슬하에 다섯 아이를 둔다. 이름은 태어난 순서대로 꿈빛이, 꿈결이, 꿈누리, 꿈별이, 꿈달이. 아이들은 우애가 좋은 것 같다가도 다투기 일쑤다. 큰아이 꿈빛이가 나는 법을 배워 5센티 정도 둥둥 떠다니는 것을 보며 ‘나는 왜 날 수 없느냐’고 투정 부리던 둘째 꿈결이는 나는 법을 익히던 해 셋째 꿈누리를 간질이고 날아가 버리는 일을 반복하여 꿈누리를 자주 울렸다. 유난히 짓궂지만 누구보다 동생들을 아끼는 꿈결이는 막내 쌍둥이 꿈별이·꿈달이를 거의 키우다시피 했다. 아이가 많다 보니 매일 시끌벅적하고 소란스러운 꿈돌이네 집. 꿈돌이는 이 북적거림이 좋다. 생각도, 꿈도 많던 꿈돌이지만 언젠가부터 그 많은 생각을 뒤로한 채 한 가지 바람만을 품게 되었다. 식구들이 그저 건강했으면 하는 것. 치고받으며 싸우더라도, 악을 지르고 노려보더라도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사랑하며 살아가길 바란다. 그러나 노는 것만 즐거운 아이들은 ‘그저 건강만 하라’는 꿈돌이와 꿈순이의 말을 아직 실감하지 못한다. 세월이 흐르면, 언젠가 부모가 되거나 그에 준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면 아이들도 자연스레 알게 될 테다. ‘그저 건강만 하라’는 부모의 마음을. ‘그저 건강만 하라’는 엄마·아빠의 말을 그땐 몰랐으나 어렴풋이 알게 된 오늘날 나처럼. 오래 품고 살아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시야에 늘 놓여 있던 꿈돌이가 이토록 긴 시간 내 친구였단 걸 20년이 지난 후에야 눈치채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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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주연(산책방)

일러스트 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