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꼭 맞는 두께

김유미·신정현 — 토림도예

신정현 작가는 물레 앞에 앉아 흙의 중심을 잡고, 김유미 작가는 그 위에 붓을 들어 섬세한 숨결을 채운다. 부부이자 동료로 함께 걷는 토림도예의 일상은 매일이 수행이자 축제다. 가마를 열기까지 결과를 알 수 없기에 흙을 만지는 손길은 겸손해지고, 매번 마주하는 불 앞에서도 처음인 듯 낯선 기대를 품는다. 손끝의 감각으로 우리에게 꼭 맞는 두께를 찾아온 두 사람. 그들이 빚은 찻잔 속에는 비워낸 만큼 가득 찬 단단한 삶이 담겨 있다.

아직 공개된 적 없는 토림도예의 새로운 쇼룸이라니, 문을 열고 들어오는 발걸음이 설렜어요. 제가 첫 손님 인가요?

유미 맞아요. 정말 첫 손님이에요(웃음). 이전에는 작업실 한편에 쇼룸을 두고 운영해 왔는데, 기물이 하나둘 늘어나고 서브 브랜드인 ‘스튜디오 토림’ 업무까지 겹치다 보니 공간이 점점 좁아지더라고요. 창작에 몰입해야 할 작업실이 쇼룸과 사무실 역할까지 감당하기엔 조금 벅찼던 것 같아요. 공간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싶다는 고민 끝에 지금의 독립된 장소를 꾸리게 됐어요. 여기에서 차를 마시고 이따가 작업실도 함께 가봐요.

 

좋아요. 새로운 시작도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지금 내어주신 건 어떤 차예요?

유미 2013년 ‘신반장’이라는 보이생차예요. 이름 그대로 ‘신반장’이라는 마을의 차예요. 밸런스 좋은 바디감과 향긋함이 특징이죠. 요즘 제가 가장 자주 마시는 차이기도 한데요. 햇수로 10년이 넘은 차들은 확실히 맛이 더 부드러워지고 단단해지는 느낌이 들어요.

 

두 분이 공예학과에서 만나 결혼하고, 지금은 하나의 브랜드를 함께 일궈가고 계시잖아요. 수많은 도자기 영역 중에서도 차 도구에 집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정현 어머니께서 아주 오래전부터 차를 공부하셨어요. 공예라는 개념조차 모를 때부터 곁에서 차를 마시며 자란 셈이에요. 공예과에 가고 도자기를 전공하게 됐는데, 마침 다기를 만드시는 분의 공방에서 배울 기회가 생겼어요.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저는 수공예 도자기라고 하면 다기만 있는 줄 알았어요. 리빙 시장이 훨씬 크고 공방도 많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거죠. 당연히 다기를 만들어야 하는 줄 알고 자연스럽게 이 길을 시작했어요.

 

무의식 속에 남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자연스럽게 작가님을 이끈 걸지도 모르겠어요.

정현 아무래도 그렇겠죠. 집에서 공부하고 있으면 어머니가 사발에 차를 우려서 갖다주시고, 냉장고에 냉침된 차가 있으면 늘 물처럼 마시곤 했어요. 군대에서 야간 근무를 나갈 때도 큰 통에 보이차를 우려 가서 마셨던 기억도 있어요. 그때는 지금 같은 찻자리 개념이 드물었고 차 종류도 다양하지 않았죠. 저희가 연애할 때만 해도 차실을 찾아보면 정말 몇 군데 없었거든요.

유미 인사동에 가면 보이차 판매점 옆에 조그맣게 시음해 보는 공간이 있는 정도였어요. 잎차는 일단 차를 파는 곳에 가야 마셔볼 수 있었거든요. 당시 홍대입구역 근처에 ‘두레차’라는 곳이 있었는데요. 그때도 “왜 이런 곳에 이런 게 생겼지?” 하면서 둘이 데이트 겸 자주 갔어요. 남편이 백차를 마시면 저는 다른 걸 시켜서 나눠 마셔보기도 하고요. 카페 대신 거길 아지트처럼 드나들던 기억이 나네요.

유미 작가님은 그때 본격적으로 차를 접하신 거예요?

유미 네. 처음엔 신기하긴 한데, 약간 올드한 느낌이었고 맛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저한테 차가 좋은 기억으로 남은 결정적인 계기는 시어머니를 처음 뵙던 날이에요. 연애할 때였는데, 남편이 어디 가는지 말도 안 해주고 다짜고짜 “맛있는 거 먹으러 갈래?” 묻더라고요. 학교에서 작업복 차림 그대로 따라나섰는데, 도착해 보니 남편 집인 거예요. ‘엄마가 사주는 맛있는 거’에서 ‘엄마가 사주는’을 쏙 빼고 말한 거죠. 심지어 어머님께도 제가 간다는 말씀을 안 드렸던 모양이에요. 당시 어머님은 마당에서 잡초를 뽑고 계셨거든요. 아들이 예고도 없이 여자친구를 데려와서는 “저녁 좀 사줘.” 하니 얼마나 당황하셨겠어요. 

 

상상만 해도 아찔하고 유쾌한 첫 만남인데요(웃음).

유미 이왕 이렇게 된 거 잘 놀다 가야겠다 싶어 기다리는데, 어머님이 TV라도 보라며 채널을 틀어주셨어요. 마침 제가 정말 좋아하는 〈무한도전〉이 나오고 있었거든요. 긴장도 잊고 거실에서 박장대소를 하며 봤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어머님이 그 모습을 보고 속으로 ‘쟤 참 괜찮은 애구나.’ 생각하셨대요(웃음). 조금 뒤에 어머님이 옷을 갈아입고 나오셔서 차를 내려주셨어요. 마주 앉아 대화하는 건 처음이라 무척 떨렸는데, 저한테 많은 질문을 하진 않으시고 남편과 대화를 나누시면서도 제 잔이 비면 말없이 계속 차를 채워주시더라고요. 저는 어색한 마음에 그저 주는 대로 계속 마셨고요. 그런데 그 순간이 참 좋았어요. 저를 쳐다보고 있지는 않지만, 세심하게 배려하며 신경 써주고 계신다는 게 온몸으로 느껴졌거든요. 그 자리가 너무 인상깊어서 ‘차가 정말 좋은 건가?’라는 생각을 그때 처음 했어요.

 

그런 개인적인 경험들이 모여 ‘토림도예’라는 구체적인 이름으로 세상에 나오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나요?

정현 시작은 제가 대학원에 진학할 무렵이었어요. 어머니가 워낙 오래 차 공부를 하셨으니, 주변 지인분들께 “아들이 이런 작업을 하는데 물건 한번 써보겠느냐.”며 가볍게 소개해 주셨죠. 어른들의 호의 덕분에 조금씩 납품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첫발을 뗐어요. 브랜드로 제대로 자리를 잡은 건 아내랑 결혼하고 시간이 조금 지난 뒤부터고요.

유미 신혼 때는 하루에 서너 시간씩 차만 마셨어요. 그때는 주문도 별로 없어서 시간이 참 많았거든요. 경제적으로 여유는 없었지만요(웃음). 오히려 그렇게 차 마시다가 마음 내킬 때 작업을 시작하던 그때가 참 즐거웠어요. 무언가에 쫓기지도 않고, 부담도 없고, 책임질 것도 없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정현 경기 안성에 ‘바우덕이 축제’라는 큰 행사가 있어요. 당시 저희 집 근처라 물레 체험 부스를 신청해서 나갔는데요. 그때 번 돈 150만 원 정도에 돈을 보태서 물레 한 대를 더 샀어요. “우리 나중에 토림도예로 못 먹고 살게 되면, 이 물레 들고 전국 시장을 돌자.”고 약속할 정도였어요. 그렇게 3년 정도 축제에 참여했는데, 다행히 그 뒤로 토림도예가 조금씩 알려지면서 더는 축제에 나가지 않아도 괜찮아지게 되었죠.

작업을 이어오시면서 정립하게 된 브랜드의 중심축은 무엇이었나요?

정현 처음에는 생계가 가장 중요했어요. 그러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며 우리가 무엇을 지향하는지 서서히 깨달았죠. 저희는 사용성과 기능성을 정말 중요하게 여기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사용감에 더 집중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끊임없이 직접 써봤어요. 그 과정에서 사용감이 나쁜 것들은 과감히 탈락시키면서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됐죠.

 

만드는 이와 쓰는 이의 입장이 다를 텐데, ‘좋은 사용감’의 기준은 무엇이었나요?

유미 사용감이라는 게 말로 정의하기가 참 어려워요. 저도 남편이 만든 다기 외에 다른 작가님들 작품을 많이 사서 모으거든요. 예쁘거나 유명해서 산 것도 많죠. 그런데 차를 마시려고 무의식중에 손을 뻗어보면, 항상 잡히는 것들은 정해져 있더라고요. 그게 왜 다른지 생각해 보면 디테일의 차이예요. 원하는 만큼 물줄기가 시원하게 빠지는지, 손잡이를 잡았을 때 긴장감이 느껴지지는 않는지, 잔을 들었을 때 불안함이 없는지 같은 것들이요. 공예품은 쓰여야 비로소 완성되는 예술품이잖아요. ‘사용감을 배제하고 공예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남편과 많이 나눴어요. 무의식적으로 손이 가는 이유를 파악해 보고, 만들고 써보기를 반복하면서 ‘좋은 사용감’의 기준을 찾아 나갔죠.

정현 물론 제작자인 저에게는 기물마다 고유한 최적의 치수가 분명히 존재해요. 하지만 이건 쓰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거든요. 내 손에는 편해도 누군가에겐 불편할 수 있으니까요. 결국 제가 생각하는 좋은 기능성이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봐요. 많은 분이 써보고 편하다고 공감해 주실 때, 비로소 좋은 기능을 가진 기물이 되는 거죠.

 

결국 ‘나에게 좋은 사용감’에서 출발하되, 결과물이 더 많은 이에게 닿을 수 있도록 보편적인 공감을 얻는 지점을 고민하고 균형을 찾으신다는 말씀이군요.

유미 맞아요. 한때 남편이 기물을 극한까지 얇게 만드는 데 몰입한 적이 있어요. 본인의 작업 스타일이기도 했고요. 제가 옆에서 보다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러다 기화하겠어, 이건 너무 얇지 않을까?”라고 말려도 작가 특유의 고집이 있어서인지 잘 통하지 않더라고요(웃음).

정현 예전에는 얇으면 얇을수록 실력이 좋고 훌륭한 작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직접 해보니 무조건 얇은 게 정답은 아니더라고요. 기능성에 부합하는 ‘가장 좋은 두께’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만약 그때 끝까지 가보지 않았다면 지금도 제 고집만 내세우고 있었을지 몰라요. 이제는 한쪽으로 치우치기보다 사용자가 편안함을 느끼는 최적의 밸런스를 찾는 데 훨씬 더 집중하고 있어요.

방금 유미 작가님은 공예품은 쓰여야 비로소 완성되는 예술품이라고 하셨죠. 오직 공예만이 전할 수 있는 매력이나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유미 예술품이 감상을 통해 온전한 감동을 준다면, 공예품은 결국 ‘쓰임’에 가치가 있다고 봐요. 장식장에 모셔두는 게 아니라, 깨질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매일 꺼내 쓰는 기쁨을 누리게 하는 것이죠. 단순히 기능이나 편의성만 따진다면 공산품이 우위에 있겠지만, 공예품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이 분명 있을 테니까요.

정현 이 부분에 첨언하면, 잘 만들어진 공산품 역시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이폰처럼 막대한 자본과 인력이 투입된 물건은 공예품이 도달할 수 없는 완결성이 있죠. 다만 공산품은 다수를 만족시켜야 살아남기에 뾰족한 부분은 덜어내고 뭉툭한 부분은 다듬어서 만들어지는, ‘꽉 찬 육각형’ 같은 물건이에요. 반면 공예품은 뾰족한 삼각형이나 송곳 같아요. 효율이 안 나와서, 단가가 안 맞아서, 혹은 대중성이 없어서 공산품으로는 선택받지 못하는 영역을 당당하게 선택해서 밀고 나갈 수 있는 매력이 있거든요. 모두를 만족시키기보다 장점을 극한으로 다듬어서, 공산품으로는 흉내내지 못하는 물건을 만들어내는 게 공예품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대중의 공감과 작가만의 고집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정현 저희는 그 지점을 ‘설득의 영역’이라고 봐요. 내가 세상에서 제일 뾰족한 송곳을 만들었다면, 이 송곳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손님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죠. 저희 물건을 선택한 분들이 기물을 손에 쥐었을 때 그 뾰족함에 공감해 주신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물론 그 설득력을 갖추기 위해선 저희가 한 말에 합당한 완성도의 물건을 내놓아야 하겠지만요.

유미 가장 좋은 설득은 말없이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이 기물을 매일 얼마나 잘 쓰고 있는지, 차를 마시며 삶이 어떻게 풍요로워졌는지를 보여주는 거죠. “저 사람 참 좋아 보이는데, 차를 마시네? 나도 한번 마셔볼까?” 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이 더 큰 힘을 갖더라고요. 한동안 SNS에 작업 과정을 공유하는 게 힘들어서 인스타그램 권태기가 온 적이 있어요. 이유를 고민해 보니, 제가 하고 싶은 설득은 “나는 작업을 이렇게 해.”라고 내세우는 방식이 아니었더라고요. 대신 “오늘 이 차를 마셨더니 좋았어.”라며 그날의 찻자리 세팅과 생각을 기록하는 게 훨씬 편안하고 즐거웠어요.

 

진솔한 일상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더 잘 닿았을 것 같아요. 차를 표현하는 방식도 그와 비슷한가요?

유미 네. 처음 차를 접할 때 저 역시 막막했거든요. 종류는 왜 이렇게 많고, 어디서 사야 할지도 모르겠고요. 청차라고 해서 보면 그 안에도 종류가 수십 개나 됐었죠. 그래서 저는 최대한 쉽게 풀어서 이야기하려고 해요. “오늘 습도가 높아서 발효도 높은 청차를 마셨어. 그러면 향이 훨씬 잘 느껴지거든.”처럼요. 복잡한 공법 설명은 사실 잘 와닿지 않잖아요. 저희는 부부싸움을 할 때도 차를 마시는데요. 저는 남편이 찻잔을 비우면 말없이 계속 채워줘야 하고, 남편도 따뜻한 온기가 돌면 기분도 누그러지니 언성이 높아질 겨를이 없어요. 스스로 마음의 템포를 조절하며 여유를 찾는 기분, 더 많은 분이 이 감각을 느껴보셨으면 좋겠어요. 저희는 토림도예 제품을 많이 파는 것보다 차 마시는 문화 자체가 좋으니 다 함께 향유했으면 하는 마음이 커요.

브랜드가 알려지기까지 약 3년이라는 시간 동안, 현실적인 불안을 이기고 계속 나아갈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었어요?

유미 무엇보다 작업하는 시간 자체가 제일 좋았어요. 통장 잔고가 바낙났을 때 제가 “마트 캐셔 알바를 할까?” 물었더니, 남편이 “그럴 바엔 그냥 작업해.”라고 하더라고요. 대안도 없는 막막한 말이었는데, 이상하게 그 말을 들으면 안도가 됐어요. 그 믿음으로 버티다 보면 신기하게도 한 달을 먹고살 수 있는 일감이나 손님이 찾아오더라고요. 정말 죽으란 법은 없구나 싶었죠.

정현 그때는 가진 게 없어도 고집이 있었어요. ‘돈을 번다면 무조건 도자기로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죠. 다른 데 정신을 쏟느니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계속하자는 주의였어요. 조금 힘들다고 눈을 돌리면 결국 지향점에서 점점 멀어지거든요. 힘들어도 이겨내야 그다음이 있다고 믿어요. 저는 이 작업을 사랑하지만 물레 앞에 앉는 게 제일 힘들기도 해요. 그렇지만 참고 견뎌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성취감이 분명 존재하니까요.

유미 직원 채용을 할 때 학교 후배들이나 혼자 작업하는 친구들이 지원하곤 해요. 보내준 포트폴리오를 보면 참 훌륭한데, 당장의 생활비 때문에 지원했다는 게 보일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지금 돈 때문에 너의 재능과 시간을 여기서 쓰면 안 된다. 무조건 너는 작업만 해라.” 하고 돌려보내곤 했어요. 실제로 그렇게 해서 지금 잘나가는 공예 작가로 자리잡은 친구들도 있어요. 저희가 아니었어도 잘될 친구였겠지만, 제 길을 잘 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괜히 뿌듯하더라고요.

 

직접 그 시간을 통과해 왔기에 건넬 수 있는 조언이겠지요. 공예가로서, 혹은 공예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필요한 태도는 무엇일까요?

유미 무엇보다 ‘꾸준함’이에요.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첫 계단은 높지만, 한 번 올라서면 다음은 조금씩 수월해져요. 고비를 넘길수록 계단의 높이는 낮아지고 폭은 짧아지죠. 사람들이 브랜드를 기억하고 다시 찾는 시간도 점점 단축되고요. 요새는 유행에 맞춰 빨리 변하는 모습이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처음 각인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작가는 자기 것을 묵묵히 밀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현 반대로 제작자 입장에서는 그 계단이 조금 다르게 보여요. 만드는 사람에게 계단은 갈수록 점점 더 높아지거든요. 입문 초기에는 실력이 느는 게 확연히 보이지만, 지금은 1년 반 정도는 쏟아부어야 비로소 “성장했구나.” 하는 감각이 와요. 비유하자면 F1 자동차가 속도 1-2킬로미터를 더 내려고 수십억 원을 들이는 것과 비슷해요. 한계점에 다다를수록 마지막 1-2퍼센트를 채우기 위한 노력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거든요. 예전에는 공부하는 단계라 아는 만큼 팍팍 올라갔지만, 이제는 내 기준이 확고해진 상태에서 스스로 모르는 영역을 넘어서야 해요. 무엇을 더 걷어내고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찾는 과정이 너무 고통스럽기도 하고요. 그런 상태에서 1년 반을 견디다 보니, 최근에야 겨우 한 계단을 올라온 기분이에요. 

 

그 시간과 정성이 기물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에 받는 이들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정현 저는 물건을 만들 때 ‘혼을 담는다’고 표현해요. 제 일부를 떼어 넣는다는 마음으로 작업하죠. 그래서 늘 애정을 쏟아야 하고, 작업할 때의 기분도 중요해요. 수치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체감하는 지점이 있어요. 페어에 참여해서 수많은 기물을 내놓았을 때, 제가 에너지를 최대치로 쓰고 기쁘게 만든 물건이 가장 먼저 팔려요. 언제나 그랬어요. 참 신기하죠.

유미 작업하다 보면 유독 마음이 가는, 정말 만족하는 기물이 나오거든요. 너무 아까워서 “이건 팔지 말자.” 하고 구석에 숨겨둬요. 그런데 손님들이 가장 먼저 그걸 찾아서 꺼내 오세요. 안 판다고 말씀드려도 몇 번이나 다시 와서 청하시는 분도 계시고요.

 

오랜 세월을 함께 걸어온 이 브랜드가 두 분에겐 어떤 존재인가요?

정현 떼려야 뗄 수 없는 제 삶 자체죠.

유미 고마운 존재예요. 최근에 첫째 딸 서아 덕분에 그런 마음이 더 깊어졌어요. 서아가 학교 선생님께 감사 편지를 썼는데, 편지지에 찻잔을 그리고 ‘토림도예’라고 엄청 크게 써놓았더라고요. 선생님 말씀이, 서아가 평소에도 엄마 아빠는 이런 걸 만드는 사람이고 집에서 다 같이 차를 마신다며 자랑을 자주 했대요. 서아가 집에서는 딱히 티를 내지 않아서 몰랐는데 아이가 부모의 일을 뿌듯해했다는 얘길 들으니 ‘내가 잘 살고 있구나.’ 하고 인정받은 기분이었어요. 손님들의 어떤 칭찬보다 훨씬 더 고맙고 뿌듯했죠. 이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요.

쓰임으로 완성되는 진심

토림도예가 걸어온 시간 속에서 유독 깊은 진심이 머물렀던
두 가지 기물을 꺼내어 본다.

유미가 고른 기물

빈티지 블루 높은잔
토림도예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가장 오래 연구하고 함께한, 상징 같은 잔이에요. 사실 찻잔으로는 굽이 좁고 높은 형태를 좀체 시도하지 않아요. 그만큼 고민과 과도기의 과정이 길기도 했습니다. 보기에는 긴장감이 감돌지만, 굽 안쪽을 흙으로 채워 무게 중심이 아래에 딱 잡히게끔 작업했어요. 사용해 보면 의외로 든든하고 사용감이 좋아요. 이 잔을 작업하고 나서부터 사람들이 토림도예를 많이 알아봐 주셨어요. 저희의 궁극적인 목표에 한 걸음 다가간 것 같아 애정하는 기물이기도 합니다

정현이 고른 기물

백련개완
토림도예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역량을 쏟아부은 개완이에요. 균일한 두께를 유지하면서 곡선이 주저앉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극한의 온도, 1370°C에서 구워내요. 가마에 무리를 많이 주기에 1-2년에 한 번 정도밖에 작업하지 못해요. 이렇게 구워낸 백련개완은 유약이 완전히 유리질화되어 차 맛의 해상도가 놀라울 정도로 높아요. 오죽하면 중국에서 가장 좋은 차를 가리는 ‘투차’를 할 때 이 개완을 챙겨 갈 정도니까요. 토림도예의 기술과 고집이 정직하게 담긴 백자라고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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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황진아

포토그래퍼 박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