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새로운 유산

한 시절을 지나 다른 시절로 건너오는 물건에 대하여

우리들의
새로운 유산

한 시절을 지나
다른 시절로 건너오는
물건에 대하여

재작년 친구 아들의 돌잔치에 갔을 때, 선물을 하나 받았다. 돌잔치에 찾아준 사람들을 위해 가족의 추억이 담긴 몇 가지 물건을 나눴는데 내가 받은 건 젖비린내가 밴 손수건이었다. 친구는 내게 아이가 생기면 물려주라고 말했다. 그걸 받아 돌아오는 길에 또 다른 손수건이 생각났다. 내가 말귀를 알아들을 만큼 컸을 때, 할머니는 서랍장에서 고운 손수건을 여러 개 꺼내와 ‘이게 다 네가 훔쳐온 물건’이라고 했다. 할머니 말에 따르면, 어렸을 때 나는 등에 업혀 손수건을 훔치던 아이였다. 낮잠을 재우려고 동네를 한 바퀴 돌면, 빨랫줄에 걸려 있던 손수건만 포대기 속에 숨겨 왔다고 했다. 동네 사람들에게 훔치듯 물려받은 손수건들은 아직도 할머니의 서랍장에 고이 접혀 있다. 아이의 한때가 담긴 손수건을 선물로 준 친구를, 손수건을 훔쳐 가는 아이를 보며 그저 웃었을 동네 어른들을 떠올리면, 그런 물건과 마음이야말로 오래 간직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시절을 지나 다른 시절로 건너오는 물건은 그저 그런 물건과는 다르다. 또 다른 시절로 건너갈 새로운 유산遺産이다.

 

그 시간, 그 기억, 그 마음

 서점 ‘가가린’의 무가지 스탠드
 

통의동에 있던 작은 서점 ‘가가린’. 내게 그곳은 꽤 오랜 시간 보물 같은 장소였다. 한참을 머물다 나오면 나도 언젠가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잠시나마 부풀곤 했다. 그 시절 나는 하고 싶은 일과 거리가 먼 직업을 갖고 있었다. 전공을 살린 친구들에게 뒤처졌다는 생각에 항상 위축되어 있었고 일에 느끼는 권태도 잦았다. 그때마다 내 안에 있던 꿈을 잃지 않기 위해 문지방이 닳도록 가가린에 드나들었다. 작은 책 한 권, 엽서 한 장에도 힘을 얻었다. 어느 날 가가린이 폐점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속상함을 잔뜩 품은 채 터덜터덜 가보았다. 이미 대부분의 책과 집기들이 예약되어 있었고 내가 가질 수 있는 건 없어 보였다. 

그때 세월만큼 녹이 슬어있던, 퍽 낡은 무가지 스탠드가 눈에 들어왔다. 조금 헐겁고 비뚤어진 모습이 제 역할을 겨우겨우 해내는 것처럼 보였다. 문득 그 스탠드가 곧 가가린의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가져가 어떻게 쓸지에 대한 고민할 틈 없이 예약을 부탁했다. 그래, 이것으로 그 소중했던 시간을 언제고 기억할 수 있겠지. 시간이 지나 작은 내 공간을 갖게 되었다. 방문 뒤에 숨겨뒀던 가가린 스탠드를 곧 오픈할 내 가게로 옮겨왔다. 이제 이곳에서, 가가린에서 느꼈던 마음을 담아 누군가에게 보물 같은 장소를 열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박예지 작고 낮은 소리를 내는 상점, ‘문화도구’에서 ‘Grey Ray’의 문구, 《Mill magazine》, 몇 가지 잡화와 책을 소개한다.

물려받은 시간의 물건

엄마가 쓰던 찻잔, 소쿠리, 테이블보, 은수저 세트

내게는 물려받은 물건이 많다. 우리 가족은 물건을 버리는 일이 없었다. 구멍 난 세숫대야까지도 꿰매 쓰는, 물건이 들어오면 도통 나가질 않는 집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집에서 태어나 스물여섯 살 때까지 살았다. 모든 방에 다락이 있었고, 지하실에 광까지 있는 구조가 독특한 주택이었다. 무엇이든 어디에든 보관할 수 있었다. 모든 물건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서 새로운 물건을 살 필요가 거의 없었다. 그런 집에서 물려 쓰는 것은 익숙했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중에서도 소중하게 여기는 몇 가지는 엄마가 쓰던 물건들이다. 엄마가 친구들에게 결혼선물로 받은 찻잔, 전을 차곡차곡 담아 기름을 먹어 색이 변한 소쿠리, 뜨개질로 커튼까지 만들던 엄마가 직접 뜬 테이블보, 돌잔치 때 선물로 받았던 은수저 세트. 엄마에게 물려받은 물건은 지금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손때가 묻은 물건들. 함께 시간을 보내 익숙한 그 느낌이 좋다.

이선미 물건을 못 버리는 집에서 태어났다. ‘리리키친’에서 과거에도 현재에도 존재하는 코리안 레트로 상품을 선보인다.

내 어린 시절부터 내 아이의 어린 시절까지

아버지가 사준 동화책 《작은집 이야기》

우리 집에는 《작은집 이야기》라는 동화책이 한 권 있다. 시골 마을에 자리 잡은 작은 집 한 채가 지역의 도시화로 인해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게 되는 내용이다. 20년 전의 나는 이 책을 정말 좋아했다. 지금 다섯 살 난 첫 아이에게 이 책을 읽어 줄 때면, 꼬맹이들이 보기엔 글 많고 어려웠을지도 모르는 이 책을 내가 왜 좋아했을까 궁금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의 나는 내용보다도 이 책이 아버지가 나에게 준 선물이었다는 것, 그리고 책을 읽어주던 아버지가 좋았던 것 같다. 아버지의 목소리, 나를 향한 따뜻한 눈빛 같은 것들. 내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 때 아이도 비슷한 것들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한 인간에게 무궁한 역사가 쓰이듯 물건에도 많은 역사가 쓰인다. 물건을 물려받는 다는 것은, 그러니까 누군가가 쓰던 물건을 다른 누군가가 다시 쓴다는 것은 누군가의 역사 위에 또 다른 누군가의 역사가 쓰이는 것이다. 나와 내 아이의 역사가 함께 쓰여진 동화책은 비록 20년의 세월 속에 냄비 받침의 흔적까지 남은 낡은 책이지만, 나의 추억과 내 아이의 추억이 쌓이고 있는 소중한 물건이다. 나중에 내 아이가 낳은 아이에게 이 책을 읽어 줄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노해원 울림, 이음 두 형제의 엄마. 자연스럽게 사는 삶을 꿈꾸며 지역살이를 택한 청년. 바람 같은 남자와 홍성에 살고 있다.

‘더 좋은’ 방

유희경 시인이 쓰던 이어폰, UE900

지난겨울 유희경 시인이 내게 이어폰을 선물했다. 희경 형이 쓰던 UE900이었다. 그 무렵 내가 문학계간지 《시와사상》이 주는 젊은시인상을 받았던 것이 명목이었다. 이런 고가품이라니! 예의상 한 차례 거절했지만, 거절되지 않는 선물임을 알기에 잘 듣겠다고 하며 받았다. 희경 형의 이어폰 선물은 그때가 처음은 아니다. 삼 년 전쯤 작란 동인끼리 광주로 여행 갈 때, 기차간에서 자신이 쓰던 슈어 SE215를 한번 청음 해보라고 건네주더니, 내가 귀에 그것을 꽂자마자 그대로 “그거 너 써.” 했다. 희경 형이나 나나 음악을 좋아한다. 사실 나는 장비에는 큰 관심이 없어서 아무 이어폰이나 주워 쓰다가 망가지면 다시 싸구려 이어폰을 구해 쓰는 식이다. 반면 형은 장비에도 관심이 많다. 

지난겨울에도 형은 내게 이어폰을 주며 곧 새 헤드폰을 장만했다. 리시버만이 아니라 노트북, 태블릿, 스마트워치 등등 형이 들고 다니는 물건 면면을 보면 형에게는 얼리어답터 기질이 있는 게 틀림없다. 음악 감상은 일상과 나를 잠깐 분리해낼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 중 하나다. 음악은 일상 소음과는 다른 소리와 리듬을 만들어내며 듣는 이를 일상과는 다른 공간 속에 데려다 놓는다. 음악이 공간이라면, 이어폰은 그 공간이 구체화된 작은 방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생각하면 형은 내게 그저 이어폰이 아닌 방 한 칸을 선물해 준 셈이다. 그것도 내가 사는 낡은 원룸 같은 방이 아닌, ‘더 좋은’ 방.

송승언 시인. 2011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등단했다. ‘작란作亂’ 동인이며, 지은 책으로 《철과 오크》가 있다.

벽에 걸린 보름달

할아버지가 쓰시던 그릇

이것은 할아버지의 그릇 이야기이다. 내가 초등학생 때,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뒤 할아버지는 시골집에서 혼자 지내셨고 가끔 우리가 사는 수원에 올라오시곤 했다. 그해 겨울,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제사를 겸해 우리를 만나러 수원으로 올라오시다 남원에 계신 큰 이모 댁에 들리셨다. 할아버지는 이유 모르게 아프시다고 했고 병원에 들러 검사를 했다. 그리곤 이틀 뒤에 우리 곁을 떠나셨다. 

장례를 마치고, 할아버지의 시골집을 정리하러 갔다. 그때 우리는 방 한구석에 할아버지가 수원에 올라오시려 싸둔 짐 가방이 그대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창고에는 오랫동안 쓰임이 없었던 자기 그릇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아빠는 그것들을 집으로 고스란히 가져와 그릇에 작은 식물들을 나눠 담았고, 나는 사진으로 기록했다. 할아버지의 그릇은 그렇게 아버지의 화분이 되었고, 나의 피사체가 되었다. 우리 집에 있는 할아버지의 그릇에서는 작은 식물들이 올망졸망 자라나고, 거실 한쪽 벽면에는 할아버지의 그릇이 보름달처럼 걸려있다.

오린지 작은 검정 필름카메라를 들고 여행을 떠났다. 길에서 다양한 여행자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담는 책을 만든다.

초점을 맞추는 방법

아버지의 MINOLTA X-700

어릴 적 내게 처음 초점 맞추는 방법을 알려준 사람은 아버지였다. 약 28년 전에 내가 태어났다. 아버지는 너무 기뻐 한 달 치 월급과 맞먹는 카메라를 하나 장만했다. 그 후로 사춘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카메라의 렌즈는 늘 나를 향했다. 어릴 적 나는 가끔 아버지의 카메라를 빌려 사진을 찍곤 했는데, 하루는 그것이 손에서 미끄러졌다. 그리 높은 곳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었는데 바닥에 닿자마자 둔탁한 소리를 내며 보디와 렌즈가 분리됐다. 그것은 다신 합쳐질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아버지는 아주 손쉽게 렌즈를 다시 껴 넣으셨다. 그 후론 카메라를 만질 일이 없었다. 

키가 10센티미터 정도 자란 후 다시 카메라를 꺼냈다. 더 이상 아버지께 허락을 맡을 필요는 없었다. 한쪽 모서리엔 바닥에 찍힌 자국이 그대로 있었다. 필름 한 롤을 넣고 엄지로 와인딩 레버를 밀자 묵직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다. 기억을 더듬어 초점을 맞추고 셔터에 조금씩 압력을 가했다. 갑자기 ‘찰칵’과 ‘철컥’의 중간쯤 되는 소리가 나더니 작게 진동이 일었고 이내 온몸으로 퍼졌다. 인화된 사진들은 대부분 버려야만 했다. 마치 어릴 적 찍었던 사진을 이제야 꺼내본 것처럼 색이 바래고 뭉개져 있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 후 카메라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다. 문득 아버지는 아직도 초점 맞추는 법을 기억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김철중 엘살바도르에서 KOICA 봉사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을 찍고 종종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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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포토그래퍼 이현아

글 박예지, 이선미, 노해원, 송승언, 오린지, 김철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