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용감한 디자이너입니다

Ⓒ샤이 스튜디오

누가 디자이너는 지역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했던가. 사람과 일이 모이는 거대한 서울을 뒤로하고 씩씩하게 대구를 지키는 창작가들이 있다. 각자의 개성이 담긴 작품을 만들며 거침없이 나아가는 대구 로컬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샤이 스튜디오

김승수, 임지수 디자이너가 이끄는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2017년 대구에서 시작됐다. 일러스트레이션을 기반으로 패키지, 책, 온라인 홍보물 디자인 등 다양한 그래픽 작업을 한다. 대중적인 것보다는 생각할 거리가 있고 납득 가능한,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디자인을 지향한다. 스튜디오 이름인 샤이SHAI는 ‘선샤인Sunshine’과 ‘샤이닝Shining’에서 중간 글자를 따와 지었다. 따뜻한 햇살처럼 일상에 밝은 빛을 더하고, 언제나 돋보이는 존재가 되고자 하는 목표가 담겼다. 2021년부터는 일러스트 기반 포스터와 제품을 선보이는 온라인 브랜드 샤이웍스SHAI WORKS도 전개한다.

낫심플 스튜디오

2018년 대구에서 시작한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로 박지예, 조현후 디자이너가 함께 운영한다. 한 도시의 인물들을 소개하는 매거진 《We face》를 창간하며 문을 열었다. 스튜디오 이름을 고민하던 중, 책장에 꽂혀 있던 동명의 만화책에서 답을 얻었다. 주로 전시, 공연 관련 기관의 그래픽 디자인 작업을 해왔다. 작년부터는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관련 디자인도 소화하며 대구를 넘어 다양한 지역에서 유연하게 활동한다. 초창기는 재정적 안정을 위해 열심히 일하기를 목표로 삼았으나, 근래에는 오래 일할 수 있도록 건강하게 일하기를 꿈꾼다.

구김종이

2019년 대구에서 문을 연 구민호 디자이너의 1인 스튜디오. 타이포그래피를 중심으로 포스터, 책, 잡지 등 인쇄물과 더불어 웹 홍보물, 웹 페이지를 디자인한다. 스튜디오 이름은 함께 사는 고양이의 이름과 같다. 구민호 디자이너의 성 ‘구’와 배우자의 성 ‘김’을 합쳐 성이 ‘구김’이고, 이름이 ‘종이’라고. 구 디자이너는 디자인이 완료된 지면을 최종 인쇄하기 전 시험 삼아 프린트한 종이를 둥글게 뭉치곤 했다. 종이공은 고양이가 가장 좋아하던 장난감으로, 스튜디오 심벌이 되었다. 종이를 공으로 만들면 완전히 새로운 물성이 탄생한다. 더 이상 글자를 읽을 수도, 페이지를 넘겨볼 수도 없는 종이공의 비정형성과 탈일상성은 구 디자이너의 마음에 와닿았다. 구김종이가 지향하는 바도 이와 같다. 기존과 차별화되는 새로운 시각, 다른 질감을 만드는 스튜디오가 되길 바란다.

일상의 빛을 밝혀라

샤이 스튜디오

샤이 스튜디오의 작업물은 만든 이를 또렷하게 나타낸다. 고양이, 여우 등 동물을 친근하게 의인화해 개성이 담긴 일러스트를 디자인에 녹여낸 덕분. 이들의 손이 닿은 패키지 디자인, 브랜딩에도 특유의 경쾌함이 느껴진다. 일러스트 기반 제품을 선보이는 샤이웍스에서는 메모 패드, 포스터 등 일상을 반짝이게 할 더 많은 굿즈를 만나볼 수 있다.

2019 지수네 수선집 브랜딩
2021 ATM21 포스터
2021 DIFF n Poster 포스터
2022 DIFF n Poster 포스터
2022 Rully Coffee 패키지 디자인
2023 포스터

“대구는 촉박하고 치열하지 않은 속도와 리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이 디자인을 깊이 탐구하고 나만의 스타일을 확립하기에 좋았어요.”

ㅡ샤이 스튜디오 김승수 디자이너

임지수 디자이너는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가족과 고향을 향한 애정 때문에 타 지역으로의 취업은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고. 고향을 지극히 사랑하거나 서울에 가기 어려워서가 아닌, 나의 지역에서 좋아하는 일로 자리를 잡고 싶었단다. “그게 가능할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무엇보다 대구를 떠날 이유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는 대구의 한 디자인 회사에서 김승수 디자이너를 동료로 만났다. 마찬가지로 대구에서 나고 자란 김 디자이너는 퇴사 이후에도 이곳에서 일을 이어가면서 자연스럽게 고향에 머물렀다. 그는 대구에 계속 살게 된 이유가 익숙함 때문만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이곳은 계속해서 저를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아요.” 대도시와 비교해 비교적 느슨한 대구는 자신을 탐구할 수 있는 여유로운 환경을 내어주었다. 다른 곳에서라면 이미 누군가가 시작했을 프로젝트들도 이곳에선 새로운 개척의 기회가 되었다고. 도시는 성장할 수 있는 토양, 기회와 도전을 내어주며 그의 디자인 철학을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다. 스튜디오 운영에 있어서도 서울보다 비용 부담이 덜한 편이다. 덕분에 스튜디오도 좀더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창의적인 작업에 더 집중할 수 있다고.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제작 및 인쇄 관련 인프라, 다양한 브랜드와의 팝업과 행사, 교육 기회 등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임 디자이너는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디자인을 대하는 지역 클라이언트의 시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디자인의 가치를 알아보는 이들이 많아지는 걸 체감하고 있다. 김 디자이너는 이러한 한계점에 비추어 특정 지역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기보다는, 현재 내가 있는 곳에서 어떻게 버티고 성장하느냐에 따라 경험의 의미도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기억에 남은 프로젝트는 독립 서점 ‘더폴락’에서 주최하는 축제 ‘아마도 생산적 활동’ 관련 디자인을 진행한 것. 올해로 벌써 3회째 작업이다. 지역에서 오래 자리를 지킨 팀과의 작업은 이들에게 재미를 불어넣어 주었다. 전시 도 소중한 경험이었던 건 마찬가지. 대구단편영화제 부대 행사로, 지역 창작자들이 영화제 경쟁작 포스터를 만들어 전시하는 프로젝트다. 지역에서 열리는 영화제에 참여하는 뜻깊은 기회이면서도 대구의 디자이너들과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자리였단다. 

두 사람은 스튜디오와 브랜드를 꾸준히 성장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대구의 디자인 스튜디오 하면 떠오르는 팀이 되면서도, 지역 구애 없이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스튜디오로서 걱정 없이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예요.” 샤이웍스 쇼룸을 마련할 계획도 있다. 독창적인 공간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깊이 있는 경험을 나누게 되길 두 사람은 원하고 꿈꾼다.

지역 문화예술과 나아가기

낫심플 스튜디오

달성문화재단, 달서아트센터, 대구콘서트하우스, 대구미술관…. 대구에 자리한 지역 문화예술 기관이다. 콘서트 포스터, 도록, 안내지 등을 꾸준히 제작해 온 이들은 낫심플 스튜디오. 문화예술 관련 기관들과 협업하며 규모 있는 작업을 이어가는 중이다. 이제는 대구를 넘어 지역을 바라보는 그들은 거침없이 다음 발걸음을 내디딘다.

2023 달서아트센터 포스터
2024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포스터
2023 DIFF n Poster 포스터
2023 오오극장 포스터
2023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도록
2023 대구콘서트하우스 ‘월드오케스트라페스티벌’ 포스터

“대구에 거주한다고 해서 꼭 대구의 일만 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역설적으로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 방식이 지역에서 스튜디오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ㅡ낫심플 스튜디오 조현후 디자이너

낫심플 스튜디오의 초창기는 지금과 사뭇 달랐다. 첫 작업물은 바로 매거진이었기 때문.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퇴사 후 대구에 머물던 조현후 디자이너는 대구의 문화예술인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조 디자이너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면서, 대구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할 수 있는지를 가늠해 보기로 한다. 박 디자이너가 프로젝트에 합류했고, 매거진 《We face》가 탄생했다. 이를 계기로 작업을 의뢰받으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몇 년간 스튜디오를 유지하게 한 동력은 재정적 안정과 클라이언트의 인정. “신뢰 속에서 협업할 때 가장 큰 시너지가 나요. 구현하려는 이미지가 명료해지고, 가보지 않았던 영역도 시도하게 되죠.” 

스튜디오 초기에 박지예 디자이너는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일했지만, 2년 전부터 대구 시민이 되었다. 스튜디오에 문 두드리는 이들이 많아져 아예 대구에 터전을 마련한 것. 이후 두 사람은 한 사무실에서 힘을 모으고 있다. 서울과 비교해 대구는 일의 규모와 수요, 클라이언트의 다양함에서 차이가 존재했다. 이곳은 기관과 소규모 단위의 일이 주를 이룬다고. 동시에 경험하고 싶은 디자인 분야를 빠르게 접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라는 것이 이들의 견해다. “문화예술 분야의 디자인 작업에 관심이 있었지만, 서울에서는 관련 경험이 없어 멀게만 느껴졌어요. 만약 서울에서 스튜디오를 시작했다면 클라이언트가 선택할 수 있는 스튜디오 폭이 워낙 넓어서 저희가 기회를 얻기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대구는 집값도 좀더 낮은 덕에 주거의 질도 향상되어 일에 집중할 시간이 늘고 마음에 여유도 생겼다. 하지만 문화적 풍요로움은 여전히 부러운 부분 중 하나다. 다양한 전시와 공연이 많고, 종이 샘플 등의 자료도 쉽게 확인할 수 있으며 인쇄소도 많다는 것이 서울의 장점. 따라서 두 사람은 주기적으로 서울에 가서 순회하듯 전시와 공연을 보고, 자료 수집을 한다. 

낫심플 스튜디오는 대구의 그래픽 디자인 신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고 본다. 스튜디오 규모가 점차 작아지는데, 큰 규모의 일들도 소규모 스튜디오에 주어지는 것 같다고. 다양한 협업 관계 덕에 디자인 스튜디오가 가진 속성도 확대되고 있다. 대구에서는 요식업이 발달해 새로운 카페나 음식점이 계속 생겨나고 있어, 스튜디오들이 브랜딩과 인테리어까지 디자인 영역을 확장하는 모습이 종종 포착된다. 두 사람은 대구를 넘어 다양한 지역의 일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새로운 경험을 쌓아 스튜디오의 가능성을 키우고자 자신들의 역량을 객관적으로 고민해 보고 있다고. 지역의 경계를 넘어 성장할 낫심플 스튜디오의 발걸음을 응원한다.

대구의 디자인을 고민하며

구김종이

구김종이는 글자를 이용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스튜디오다. 텍스트의 과감한 배치와 변형에서 구민호 디자이너의 감각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을 터. 경우에 따라서 서체를 새로 만들기도 하지만, 텍스트를 미적으로 배치하는 타이포그래피 작업이 주다. 구김종이는 전시, 축제, 행사 등 대구의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 관련 작업에 참여하며 로컬 기획자, 디자이너와 긴밀히 연결된다

2023 DIFF n Poster 포스터
2024 DIFF n Poster 포스터
2022 ‘소멸과 생존, 지구와 나는 나란한 관계입니다.’ 포스터
2024 전주국제영화제 100 Films 100 Posters
2020 전주국제영화제 100 Films 100 Posters 〈사당동 더하기 33〉

“사실 대구에서 디자이너로 살아가는 것은 정말 고된 일이에요. 하지만 이보다 더 큰 장점이 있을까 싶습니다.” 

ㅡ구김종이 구민호 디자이너

구민호 디자이너는 대구에 관해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목소리를 낸다. 포럼, 행사 등에 참여해 대구에서 디자이너로 살아가는 일을 논하거나, 대구를 다룬 도서 《지상대구》, 《남구도시기억도큐멘타》를 디자인했다. 그가 지역에 관해 숙고하게 된 계기는 한 친구의 연락. 친구는 대구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면 서울로 가야 할지, 대구에서 활로를 찾아볼지 고민하고 있었다. 

구 디자이너는 어디든 좋다고 답했지만, 며칠 동안 그 질문은 머리에 맴돌았다. “가족, 친구, 시각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만난 동료들, 선생님. 단지 취직을 위해 모두와 떨어져서 살아가는 제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어요. 직업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인데, 수단을 위해 목적을 희생하는 건 이상한 일이잖아요.” 그는 대구에 스튜디오를 열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두려움도 찾아왔다. “주류에서 떨어진 삶을 살아야 할 텐데, 십 년, 이십 년이 지나도 내가 디자이너일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그 질문을 많이 했어요.” 질문의 끝에서 그는 좀더 성장하고자 독일 유학을 결심했다. 그곳에서 구 디자이너는 도시의 디자인 신이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기반으로 작동하고, 예술 학교를 통해 자연스럽게 순환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 모든 장면을 대구라는 도시에 대입해 보면서 시간을 보낸 것 같아요.” 그는 고향에서 디자이너로 살아가는 일을 그려보고 꿈꿨다. 

서울의 한 디자인 회사를 다니다 마침내 대구에 자리를 잡은 때, 그는 “시간 여행을 온 기분이었다.”고 설명한다. 디자이너의 인권 문제, 임금 문제, 불합리한 계약 조건 같은 문제점이 도처에 있었다고. 여전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매체가 지역을 조명해야 한다고 본다. 매체의 지나친 서울 중심적인 사고는 사람들이 지역에 무관심하도록 만들며, 로컬 디자이너들이 자신감을 잃어가게 만드는 까닭이다. 결국 지역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자신을 대외적으로 표출하는 일에 소극적으로 변한단다. 

구 디자이너는 로컬 디자이너들을 조명하고 그들과 교류하는 장을 마련하는 일에 열심이다. 그는 앞에서 언급한 전시를 2022년부터 총괄해 왔다. ‘주류’ 디자인 신에서 자주 호명하는 사람들을 전시에 다시 소환하는 일보다는, 지역에서 주로 활동하기 때문에 디자인 신에서 조명받지 못하는 훌륭한 디자이너들을 찾아낸다는 데 의의를 둔다. 

목표를 묻는 말에 그는 한 단어를 전했다. 생존. “결국에는 오래 살아남는 것이 이기는 것이니까요. 할아버지 그래픽 디자이너가 되는 게 꿈입니다.” 몇 대째 같은 곳에 사는 가족, 친척들, 유치원 때부터 알고 지내는 친구들…. 소중한 이들로 둘러싸인 고향에서 구김종이는 용기를 나누며 오늘도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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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차의진

자료 제공 구김종이, 낫심플 스튜디오, 샤이 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