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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펜하겐Copenhagen에서 아이슬란드로 가는 비행기 안, 도착을 한두 시간 앞두고 기내 안은 쌀쌀한 냉기가 감돌았다. 조금 견디다 결국 승무원에게 담요를 부탁했다. 턱 밑까지 몸을 꽁꽁 싸맨 뒤 주변을 둘러보니, 대부분 아이슬란드인으로 보이는 승객들이 반소매를 입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 웃고 있었다. 다시 시선을 창문 너머로 돌렸을 땐, 어린 시절 동화책에서만 보던 ‘눈의 세상’이 발밑에 펼쳐져 있었다.
스물두 살, 나는 아이슬란드로 떠날 결심을 했다. 해외여행이라고는 엄마와 함께 일본에 다녀온 것이 전부인(그것도 패키지 여행) 내가, 한국에서 무려 15시간이나 걸리는 최북단의 나라에 연고도 없이 혼자 여행을 간다는 것은 나로서는 발칙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홀로 떠나는 여행은 아주 어릴 적부터 어른이 되면 으레 가야 하는 줄로 알고, 늘 마음속에 품어오던 일이었다. 이왕 가는 것, 그저 여행이 아니라 사람들과 부대끼는 일을 만들고 싶어 국제적으로 열리는 캠프에 신청했다. 그 개최지 중 하나가 아이슬란드였다. 이름도 위치도 생소한 나라였지만, 타국에서의 낯선 여정에는 달콤한 일로 가득할 것이라는 부푼 기대를 안고 비행기에 올라탔다.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Reykjavik에 있는 공항을 나오자,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밤 10시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밤하늘은 초여름 저녁처럼 밝고 선선했다. 백야白夜(여름철에 태양이 아주 지지 않아 밤에도 밝게 나타나는 현상). 드디어 아이슬란드에 왔구나, 실감이 났다. 다음 날, 캠프의 본부로 가서 나와 함께 지낼 외국인 친구들을 만났다. 러시아, 프랑스 등 유럽 각지에서 온 친구들과 2주가량 한집에 머물면서 우리만의 잡지를 발행하는 것이 이 캠프의 목표였다. 한마디로 문화 교류도 하고, 협동 프로젝트도 하고, 여행까지 하는 일거양득. 이 얼마나 근사한가! 우리는 레이캬비크 시내에서 도보로 20분 정도 떨어진 ‘하버하우스’에 머물렀다. 말 그대로 항구 근처에 있는 조그만 이층집이었다. 나를 포함한 캠퍼 여섯 명이 지내기엔 정말 아담했다. 특히 아침마다 2층 침실에서 1층 부엌으로 내려가기 위해 가파른 나무 계단을 이용할 때면, 한 걸음 디딜 때마다 ‘끼익’ 하고 균열이 이는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아직 잠에 취해 있는 모두를 반강제로 일어나게 만들었다. 낡고 미비하기 그지없었지만, 부엌에 달린 조그만 창문을 통해 아침 햇빛이 찬란하게 쏟아지는 항구의 모습과 그 뒤로 눈 덮인 산의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을 눈으로 훔치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실로 낭만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캠프 생활이 항상 달콤하게 흘러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쌉싸름’ 한 순간이 많았던 것 같다. 나만 동양인이라는 사실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유럽식 영어의 특유한 억양과 악센트를 알아듣기 힘들어 매번 귀를 쫑긋 세우고 있어야 한다거나, 몰라도 아는 척 웃어넘겨야 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것보다 나를 더 지치게 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발견한 우리 캠프의 ‘이질감’이었다. 오전부터 오후까지는 서로 협동해서 일하지만, 일과가 끝나고 나면 다들 자신이 갖고 온 노트북을 끼고 있기 바빴다.
프랑스 친구와 이탈리아인 친구는 밤만 되면 예쁘게 치장하고 클럽에 놀러 가는 러시아 친구를 험담하기 바빴다. 한 네덜란드 친구는 자신이 이런 열악한 환경에 처할 이유가 없다면서 온종일 툴툴거렸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다들 하나로 섞이지 못하고, 따로따로 겉돌고 있었다. 소통의 혈이 막힌 듯한 공기.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 들어 하루는 카메라와 글을 쓸 몇 가지 도구를 챙긴 후 혼자 레이캬비크 시내로 향했다. 더는 돌아다닐 공간이 없을 정도로 구석구석을 누볐다. 희한하게도 당시 아이슬란드의 온도는 그때 내 마음처럼 너무나 시리고 차가웠는데, 그곳이 풍기는 분위기는 정반대로 따뜻하고 사랑스러웠다. ‘영토 대부분이 황량하니 사람이 발붙이고 사는 곳만큼은 온기를 느끼게 하자.’라고 마음먹고 만든 것처럼 도시는 예술적이고 감각적이었다. 벽 한 면을 모두 그라피티Graffiti 예술로 꾸며놓은 건물들, 온통 주황색으로 도배된 2층 카페, 골목마다 숨어있는 아기자기한 주택들……. 주택가를 산책하고 있노라면 대부분의 창가에 화분을 놓거나 뒤뜰에 정원을 만들어놓아 지나가는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특별한 장식은 아니어도 모두 창문에 풍선 하나쯤은 매달아 놓았을 정도로 모든 공간이 아름다움을 누리고 있었다. 광장으로 다시 돌아왔을 땐, 졸업을 맞은 현지 고등학생들이 각종 캐릭터의 인형 옷을 입고 코스프레를 하고 돌아다니며 재기발랄한 분위기에 일조하고 있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아이슬란드인은 통계상 세계에서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 중 하나라고 했다. 물론 그 행복한 기운을 공유하지 못한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터벅터벅 발걸음은 끊임없이 이어지다가 레이캬비크의 랜드마크인 ‘할그림스키르캬Hallgrimskirkja’ 교회 앞에 멈춰 섰다. 유럽에서 볼 수 있는 흔한 교회의 모습과 조금 다른 모습을 한 이 교회는 크기가 웅장해서 시내 어디를 돌아다녀도 그 모습이 보였다.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안으로 들어갔다. 신자는 아니지만, 제단 앞에서 한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기도를 드렸다. ‘나중에 시간이 흘렀을 때 지금 이 순간마저 아름답게 기억할 수 있게 해주세요.’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진심이 통한 것일까. 하버하우스에 돌아온 후, 스페인에서 온 마리아와 뜻밖의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그녀는 우리와 같이 숙식하며 지내진 않지만, 시내에 있는 캠프 본부에서 일하는 리더 중 한 명이었고, 낮이 되면 우리와 같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친구였다. 내가 메모장에 늘 습관처럼 그리는 낙서를 보더니, 그녀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거 네가 그린 거야? 정말 귀엽다. 우리 이거 잡지에 넣는 거 어때?” 별다른 그림은 아니었다. 만화체로 그린 캠퍼들의 얼굴을 보고, 그녀는 흡족한 반응을 보였다. 그때부터 나는 그녀 옆에서 소소한 그림을 그려주었고, 가끔 그녀의 요청으로 디자인에 관한 자문을 주기도 했다. 생각지도 못한 협업을 통해 마리아와 친해지면서 닫혀있던 내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녀를 비롯한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이 많아졌다. 그들이 일과를 마치고 본부에 돌아갈 때도 같이 놀러 가서 제집처럼 쉬다 오곤 했다. 알바니아인 에네이다는 항상 엄마처럼 나를 챙겨주었고, 폴란드인 마리아와 베드카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진로에 관한 것 등 다양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여전히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언어적인 장벽은 마음의 장벽 앞에선 아무것도 아니란 것을 깨닫곤 했다. 내가 취재를 하러 갈 때면 그들은 앞장서서 동행을 해주었고, 시간이 남으면 자잘한 축제나 인디 밴드 공연을 함께 보러 가면서 즐거운 추억 등이 하나둘씩 쌓여갔다. 그러다 왠지 모를 미안한 기분이 들어 하버하우스에 있는 친구들에게 같이 어울릴 것을 제안했지만, 몇 명은 끝까지 집에서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그들이 못내 걸렸지만, 내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들과 함께하기로 했다. 언제부턴가 아이슬란드는 나에게 더는 차가운 단색이 아니라 형형 색의 무지개 빛깔로 채워졌다. 그렇게 조금씩 그곳에서의 일상이 익숙해지려고 할 때 즈음, 캠프 퇴소 날이 다가왔다.
마지막 날이되기 전, 마리아는 자신의 단골 아이스크림 집에 함께 다녀오자고 했다. 그녀는 여전히 강한 스페인식 억양으로 혀를 굴리며 나에게 돌아가서 무엇을 할지에 관해 물었고, 나는 한국에 들어가기 전 유럽에서 짧은 여행을 할 것이라는 계획을 말해주었다. 그녀는 혹시나 나중에라도 스페인에 들를 일이 있다면 꼭 자신을 찾으라고 당부했다. “My home, your home.”이라는 말도 덧붙이며. 찰나의 순간, 침묵이 우리를 찾아왔다. 아무래도 그 순간 우리는 이별이 주는 허무함을 곱씹고 있던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 날, 친구들과 한 번씩 포옹을 한 뒤 하버하우스에서 나왔다. 그날은 아이슬란드에서 지낸 이주일 중 가장 험한 날씨였다. 강풍이 거세게 불었고 온도는 바짝 떨어졌다. 마지막까지 아이슬란드는 나한테 이렇게 얄궂다며, 허공을 향해 툴툴거렸다. 그러나 2시간 후 셔틀버스를 타고 공항에 내렸을 때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은 다름 아닌 무지개였다. 마치 그동안 이곳에서 겪었던 외로운 시간은 모두 잊어버리라는 듯, 아름답고 영롱한 무지개가 펼쳐져 있었다. 드라마틱하게도, 때마침 마리아에게서 온 문자는 나의 코끝을 찡하게 만들었다.
“인연이 있다면 우리는 언제든 다시 보게 될 거야. 그때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길, 안녕.”
아이슬란드 여행 팁
간헐천이나 굴포스Gullfoss 등 대표적인 아이슬란드 명소는 시내에서 매우 멀리 떨어져 있다. 개인적으로 찾아가는 것보다는 투어를 신청해서 단체로 가거나 렌터카를 빌려서 가는 것을 추천한다. 캠프 중반에 친구들과 이곳저곳으로 여행을 다녀왔지만, 우리가 가장 오랫동안 머문 곳은 게이시르geysir였다. 게이시르는 아이슬란드가 자랑하는 천연자원 중 하나인 간헐천으로, 땅 밑 지하수가 일정 시간을 간격을 두고 갑자기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모습이 장관인 곳이다. 지하수가 다시 분출하기까지는 대략 5분 정도가 걸린다고 하지만, 자연의 법칙이 항상 사람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계산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도대체 언제 나오는 거야.’ 싶을 때 ‘펑’ 하고 거대한 폭포가 하늘을 향해 치솟는다.
글 사진 박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