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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담
김참새 — 화가
화가 김참새의 마음에는 어린아이가 산다. 네모난 프레임을 꽉 채울 정도로 가까이에 서 있는데 시선은 절대 마주치지 않는다. 파마머리에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모습이 마냥 귀엽다가도, 줄줄 흐르는 눈물이나 손에 쥔 총을 번쩍 든 걸 보면 어쩐지 마음 한편이 아리다. 어른이 되어도, 어른이 되지 못한 한 사람의 내면을 옮겨둔 그림은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를 돌아보며 시작되었다고. 그의 성실하고 꾸준한 기록을 통해 엉망진창 되어버린 나날에서 위안을, 창피하게만 느껴지던 본심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한다.
햇살이 좋은 오후예요. 만나게 되어 반가워요.
그림 그리는 김참새입니다. 오늘 날이 좋네요. 따뜻한 차 한 잔씩 드릴까요? (티백 세 개를 내민다.) 이 중에서 원하는 걸 골라보세요. 그런데 독일어라서….
그럼 그림으로 골라볼게요. 가운데 걸로 주세요!
좋아요. (몸통이 얇고 긴 컵을 내려두며) 뜨거우니까 조심하세요.
음, 캐모마일이랑 비슷한데요? 따끈하고 맛있네요. 저는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걸로 이야기의 물꼬를 트는 편인데요. 창문 너머로 가까이에 산이 보여요.
저게 북한산이에요. 이맘때는 근처에 금선사라고, 북한산 국립공원 안에 있는 절로 산책 가는 걸 좋아해요. 걸어서 15분 정도로 가까운데 한적하고 등산하지 않아도 도착할 수 있거든요(웃음). 도착하자마자 눈앞에 푸르른 산속이 펼쳐져요. 대웅전에서 고요함을 즐기기도 좋아요. 여기 구기동엔 2014년에 작업실을 구하러 와서 지금까지 있는 거니까, 꽤 오래 머물렀어요. 처음에는 여기 반대편에 자리한 작업실을 먼저 둘러봤는데 창밖이 주차장이라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이곳은 눈앞에 산이 시원하게 늘어진 걸 보고 바로 선택했고요.
곳곳에 그림 작업물이 있어요. 책장과 선반에는 책이 가득하고요.
같은 건물에 페인팅을 위한 작업실이 하나 더 있거든요. 그림 작업에 쓰는 도구나 재료가 워낙 크고 물감으로 쉽게 어질러지다 보니까, 페인팅을 하는 공간에서는 그림을 또렷이 보기 어렵더라고요. 제 작품을 구매하는 분들은 깨끗한 공간에 걸어둘 텐데요. 그래서 거기서 완성한 걸 한 번씩 가져다가 여기에 둬요. 괜찮은지, 눈에 거슬리는 게 없는지 일상에서 살펴보는 거죠. 가로로 긴 책장 위에는 선물 받은 것들을 올려 두었고 그 아랜 잡지, 소설, 에세이처럼 장르 구분 없이 책을 뒀어요. 독서가 작업에 좋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서 꾸준히 찾게 되더라고요. 작업이 잘 안될 때도 꺼내 읽고, 해가 좋을 때는 한 권 들고 바깥으로 나가기도 해요. 얼마 전엔 책 더미에서 한강 작가님 소설도 찾았어요. 다시 읽어보려고요.
지금 테이블로 쓰는 이건 뭐예요? 고가구 같은데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어요.
아, ‘돈궤’라고 해요. 옛날에는 은행이 없으니까 양반들이 엽전이나 쌀 같은 귀중품을 여기다 넣어서 보관했대요. 보통 돈궤에는 다리가 없는데, 경남 거창에서 만든 건 네 다리가 달린 게 특징이라 하더라고요. 고미술 시장에서 조선 시대나 신라 시대 물건들을 곧잘 둘러보곤 해요. 모던한 느낌의 작업실이라 포인트가 되어줄 가구를 고르기도 하고요.
무엇에 마음과 시간을 쏟는지 보이는 작업실이네요. 올 여름에는 그림과 에세이로 참여한 《패션 만드는 사람》이 나왔죠. 거기서 새벽 수영을 즐긴다는 기록을 봤는데, 여전한가요?
그럼요. 다만 새벽이 아니라 아침 수업으로 바꿨어요. 수영을 더 잘하고 싶어서 웨이트를 시작했거든요. 수영은 체력도 중요하지만, 물에서 나아가는 힘을 받으려면 근력도 중요하대요. 새벽 수영의 상쾌함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두 가지 운동과 작업 시간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루틴을 만들어 봤지만, 결론은 작업실 출근 후 잠시 업무를 보다가 수영장에 가고 작업을 마친 저녁에 웨이트를 하러 가는 게 최선이더라고요. 지금은 그 패턴에 많이 익숙해졌어요. 요즘은 자유형으로 달리다가 앞 구르기로 돌아 나오는 ‘플립턴Flip Turn’을 배우고 있어요. 처음에는 플립턴을 두 번만 해도 토할 것처럼 멀미가 났거든요. 달팽이관이 그렇게 약하면 연습 못 한다면서 코치님이 포기하라고 하실 정도로요. 그런데 그 기술이 멋있어서 절대 포기 못 한다고 대답했어요. 얼굴이 파랗게 되더라도 꼭 해내고 싶다고.
대단해요. 계속 시도하는 것뿐 아니라 좋아하는 걸 진심으로 대하는 모습이요.
사실 수영을 하게 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한때 허리가 너무 아팠는데 병원을 가도 이유가 없다고 하는 거예요. 겉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내 안의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운동을 해봐야겠다 싶었죠. 그리고 그즈음 휴식하러 제주도에 갔어요. 바다에서 물놀이를 하거나 겁 없이 뛰어들어 헤엄치는 사람들을 보니까 왠지 모르게 부럽더라고요. ‘만약 내가 배를 타다가 갑자기 떨어져도 수영은 해야 하지 않겠어?’라면서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등록했어요(웃음). 누가 뭐라 한들 물속에 있으면 들리지 않고, 온전히 나한테만 집중하면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게 행복해요. 워낙 운동 신경이 없다 보니까 잘하려면 아직 멀었지만요. 차근차근 깨우쳐 보려고요.
응원을 보낼게요. 꾸준히 남겨온 기록물인 그림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그 전에, 참새 씨는 그림이 자신을 기록하는 도구라고 생각하나요?
음… 맞아요. 저의 매일이 기록되고 있고, 그 기록은 곧 저를 말하니까요. 얼마 전에 큐레이터님이랑 나눈 이야기가 떠오르는데, 나이가 들수록 그림이 바뀌어 가고 있다는 걸 느껴요. 색을 쓰는 것도, 흘러나오는 표현도 전보다 시간이 쌓인 게 보인달까요. 나의 변화를 기록에서 마주하는 게 저한테는 꽤 재미있는 일이에요. 시간이 흐를수록 작업에서 보이는 생각의 깊이가 더 깊어져야 하는데, 그게 정말 어렵거든요. 멈추지 않고 한 삽, 한 삽 푸면서 여기까지 왔다는 걸 이제야 새삼 깨닫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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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명주
포토그래퍼 강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