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의 색을 닮아

정다은 — 프렐류드 스튜디오

작은 문구를 들여다보는 사람들의 얼굴에 오래 머물고 싶은 마음이 번진다. 올해로 11주년을 맞이한 대전 선화동의 작은 문구점 ‘프렐류드 스튜디오’. 어디로 흘러갈지 모른 채 표류하던 시간을 지나, 마침내 타인에게 기대던 시선을 거두고 스스로 삶의 방향을 쥐게 된 정다은 대표. 혼자 꾸려오던 공간에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세계를 기꺼이 받아들이자 공간은 핑크색으로, 보라색으로, 검은색으로 알록달록 채워지기 시작했다. 사람 덕분에 세상의 모든 색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그는, 무엇이든 담아낼 수 있는 미색의 도시에서 오늘도 천천히 자기만의 항해를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11년을 지나오며 깨달은 건, 막상 뒤를 돌아보면 아무도 없었다는 거예요. 결국 의지할 대상이 나로 바뀐 거죠.

도망치듯 띄운 배

프렐류드의 공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계절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것 같아요. 공간의 중심에 늘 생화가 놓여 있어서 그런가 봐요.

일부러 생화를 두는 이유가 있어요. 문구는 결국 스스로 생명력을 가진 사물은 아니잖아요. 저는 꽃이 그런 부분을 채워준다고 생각해서 시기마다 계속 바꾸고 있어요. 혼자 느끼는 것보다, 이곳에 두었을 때 하루에도 많은 분들이 함께 그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지금은 대전을 대표하는 문구 공간 중 하나가 되었지만, 시작은 온라인이었다고요.

프렐류드는 2015년에 시작한 문구 브랜드예요. 처음 5년 정도는 거의 온라인 중심으로 운영했어요. 그런데 저희 이후에 생긴 브랜드 중 오프라인에서 먼저 시작한 곳들이 훨씬 빠르게 사람들에게 각인되는 걸 보게 되었어요.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고 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오프라인에서의 경험을 자기 경험으로 받아들이고, 직접 만난 사람의 얼굴을 브랜드의 얼굴처럼 기억한다는 걸 느꼈죠. 그즈음 성수동에서 팝업을 열었어요. ‘2주 동안만 열리는 문구점’이라는 형태였는데요. 사실 처음이라 세팅만으로도 기력이 다 빠질 정도였고, 홍보도 제대로 못 했어요. 사진 한 장 올리고 해시태그조차 달지 못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많은 분이 찾아와 주신 거예요. 그 첫 팝업이 정말 큰 전환점이 됐어요. 5년 동안 쌓여 있던 회사 부채를 2주 수익으로 다 갚았거든요(웃음). 그 이후 성수동, 망원동, 더현대 등에서 팝업을 이어갔고, 자연스럽게 ‘우리에게는 오프라인 공간이 꼭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후에는 어떤 공간에서,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을 만나야 할지를 고민하다가 지금의 이곳에 자리 잡게 되었고요. 

 

어릴 때부터 문구를 정말 좋아하셨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제 수집품은 크게 두 종류였어요. 쓰지 않고 바라보기만 하는 관상용 문구와 실제로 사용하는 실용적인 문구요. 편지지는 한때 200종 넘게 모았어요. 아크릴 파일에 두 겹씩 차곡차곡 넣어서 사물함에 보관해 두곤 했죠. 특히 편지 쓰는 걸 정말 좋아했어요. 학교 다닐 때는 교장 선생님이나 교감 선생님께도 편지를 자주 썼거든요. 인기 많은 선생님보다 오히려 조금 무섭고 엄격해서 이런 편지를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을 것 같은 선생님들께 더 자주 썼어요. 그러면 늘 “이걸 나한테 주는 거야?” 하고 되물으셨던 기억이 나요. 전학생이 오면 웰컴 편지를 써주기도 했고요. 꼭 같은 반이 아니더라도, 왠지 적응이 필요해 보이는 친구들에게요. 그래서 학교에서는 ‘정다은에게 편지를 못 받아봤으면 이 학교 학생이 아니다.’라는 말까지 있었어요. 그만큼 쓰는 걸 좋아했어요.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 건네는 경험은, 단순히 취미 이상의 감각으로 남았을 것 같아요. 

맞아요. 그렇게 문구를 좋아하다가 미대에 진학하면서는 아예 문구와 연결되는 방향으로 전공을 선택하게 됐어요.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고 부전공은 제품 디자인이었죠. 사실 대학생 때 축제만 되면 다들 무언가를 만들어 판매하는 선배가 있지 않을까 기대했어요. 저는 그저 누군가 그런 자리를 만들면 거기에 자연스럽게 참여하고 싶었거든요. 책임을 크게 지지 않아도 되고, 좋아하는 걸 함께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몇 년 동안 주변을 둘러봐도 그런 사람이 없더라고요. 휴학 후 학교로 돌아왔을 때쯤 제가 어느새 3학년이 되어 있었어요. 선배에 가까운 위치가 된 거죠. 그래서 ‘그럼 그냥 내가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음 맞는 선배, 동기, 후배를 모아 직접 마켓을 열게 됐어요.

그때는 어떤 것들을 만들어 판매하셨나요?

엽서나 미니 노트, 키링, 배지 같은 걸 직접 만들어 팔았어요. 반응이 정말 좋았죠. 당시에는 가격도 저렴했고, 햇살 좋은 캠퍼스 안에 평소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는 것 자체를 다들 즐거워해 주셨어요. 행사를 마치고 나니 재고가 남았는데, 한 번으로 끝내기 아쉬워서 대전 근처 대학 축제를 계속 돌았어요. 여름방학에는 록 페스티벌 같은 행사에도 나가고요. 그렇게 판매를 이어가다 보니 이태원의 한 편집숍에서 입점 제안을 받게 됐고, 재고 물량과 새로 만든 제품들을 함께 입점시키게 되었어요.

 

문구를 좋아하던 마음이 직업으로 이어지는 순간도 궁금해져요.

대학교 1학년 때 서울디자인페어에서 한 문구 디자인 에이전시를 봤는데, 정말 첫눈에 반했어요. ‘여기는 꼭 들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였죠. 마침 졸업할 즈음 채용 공고가 올라와 입사하게 됐어요. 그때까지 저는 대전에 살면서 서울을 오가던 사람이었어요. 언젠가는 서울에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그때 저한테 대전은 ‘살기만 좋은 도시’라는 인식이 강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서울에서 일해보니 현실은 제가 상상하던 것과 달랐어요. 일은 정말 즐거웠지만 강도가 너무 높았거든요. 아침 8시 반에 출근해서 새벽 4시 반까지 일하는 날이 반복됐죠. 특정 시즌만 그런 게 아니라 거의 일상이었어요.

 

힘든 시기를 보내고 대전으로 내려오게 된 거군요. 서울을 떠나 다시 돌아온 대전에서는 어떤 시간을 보내셨어요?

마침 대학 시절 함께 문구를 만들어 팔던 친구도 서울에서 비슷한 상황을 겪고 돌아와 있더라구요. 둘이 ‘하반기 공채가 뜨기 전까지만, 원래 문구 만들어 판매하던 작업을 하면서 포트폴리오나 쌓아보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그때 아버지가 어디서 작업할 거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저희는 카페에서 하려고 했어요. 언제든 편하게 시작하고, 또 마음만 먹으면 쉽게 발을 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아버지가 목회를 하시는데, 교회 한편에 10년 넘게 쓰지 않던 창고 공간이 있었어요. “카페에서 하면 흐지부지될 수 있으니까 여기서 해봐라.” 하시면서 무상으로 내어주셨죠.

 

일종의 작업실이 생긴 거네요.

맞아요. 가구도 다 아파트 단지에서 하나씩 주워 왔고, 조명만큼은 좋은 걸 쓰자 해서 예전에 편집숍 입점으로 벌었던 돈으로 조명을 샀어요. 컴퓨터도 학교 다닐 때 쓰던 걸 집에서 들고 와 설치했고요. 그렇게 정말 작은 규모로 시작했죠. 11평 남짓한 공간이었는데, 막상 공간이 생기니까 생각보다 일이 훨씬 본격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저는 언제든 발을 뺄 상태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갑자기 ‘진짜 무언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거죠. 그때는 그게 너무 무서웠어요.

 

언제든 발을 빼고 싶었다는 말이 궁금해요. 어떤 마음이었던 걸까요?

사람은 크게 두 유형으로 나뉜다고 하더라고요. 무언가를 꼭 해내겠다는 마음으로 뛰어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흘러오게 되고, 그 자리에서 또 다른 걸 시작하게 되는 사람도 있다고요. 저는 후자에 가까웠어요. 어떻게 보면 계속 표류하다 여기까지 오게 된 느낌이에요. 그런데 갑자기 공간이 생기고, 책임져야 할 일이 늘어나니까 너무 겁이 났어요. 회사에 다닐 땐 조직 안에 기대어 일하는 안정감이 있었는데, 막상 제 일을 하게 되니까 모든 결정을 스스로 내려야 하잖아요. 친구랑 둘이 책임져야 할 일이 생기면 너무 무서워서 책상 밑에 들어가서 이야기하기도 했어요. 책상 아래 쪼그려 앉아 “그러면 이렇게 해볼까?” 하고 조심스럽게 결정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책상 아래 들어가서 의견을 나눌 정도라니, 부담이 상당했나 봐요. 그럼 그때부터 프렐류드라는 이름을 사용한 거예요?

그것도 얼떨결에 시작된 이름이에요. 학교 다닐 때 마케팅 수업에서 가상의 브랜드명을 짓는 과제가 있었는데, 그때 처음 ‘프렐류드’라는 이름을 썼거든요. 프렐류드는 음악 용어로 도입곡이나 서곡을 뜻해요.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흐르는 첫 음악 같은 거요. 저는 음악을 들을 때도 첫 음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미리 듣기로 30초 정도만 들어봐도 첫 음이 좋으면 끝까지 좋은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누군가에게 기분 좋은 시작처럼 남는 이름이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지었어요. 사실 저는 미술을 하기 전까지 피아노를 오래 배웠어요. 어머니가 피아노를 좋아하셔서 다섯 살 때부터 열다섯 살까지, 거의 10년 동안 교육을 받았죠. 그런데 그 시간 동안 계속 느꼈던 건 ‘나랑 정말 안 맞는다.’였어요. 음악이 괴롭고, 피아노 치는 시간이 힘들었거든요.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 욕심도 크지 않았으니까 그냥 꾸준히 했던 것 같아요. 혼나도 크게 상처받지 않았고요. 기대도, 열망도 없어서 그랬나 봐요. 그런데 나중에 미술을 만나고 나서 그 시간이 완전히 다르게 느껴졌어요. 미술은 제 삶에서 처음으로 욕심을 낸 일이었거든요. 이전에는 무언가를 강하게 원한 적이 별로 없는데, 미술을 처음 접했을 때는 ‘이건 평생 해야 하는 일’이라는 느낌이 선명하게 다가왔어요. 오히려 10년 동안 정말 맞지 않는 일을 해봤기 때문에 ‘정말 잘 맞는 일’을 만났을 때 그 대비가 더 크게 느껴졌나 봐요. 

프렐류드가 어느덧 11주년을 맞았잖아요. 지금 돌아보면 초창기와 가장 달라진 점은 뭘까요?

초창기에는 계속 의지할 대상을 찾았어요.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누군가 도와주러 오지 않을까 기대하던 순간들이 있었거든요. 어떤 매체의 도움을 받으면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고요. 잘된 브랜드들을 보면서도 ‘저 사람들도 분명 그런 기회가 있었겠지.’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11년을 지나오며 깨달은 건, 막상 뒤를 돌아보면 아무도 없었다는 거예요. 결국 의지할 대상이 나로 바뀐 거죠. 이제는 누군가 도와주길 기다리는 대신 제가 먼저 움직여 해결해요. 타인에게 기대는 것보다 내 손으로 해내는 게 훨씬 든든하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평생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은 결국 저 자신이니까요. 몸이든 마음이든, 제 안에 어떤 근육 같은 게 자리 잡은 느낌이에요. 저를 믿고 나아갈 힘이 생긴 게 가장 큰 변화예요.

 

사람들의 취향이나 문구를 소비하는 방식의 변화도 피부로 느끼실 것 같아요.

정말 많이 달라졌어요. 제가 처음 시작했던 11년 전만 해도 지금처럼 ‘문구 덕후’라는 말이 없었어요.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는 분야에 가까웠죠. 그래도 계속할 수 있었던 건 제가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에요. 예전에 일본에서 정말 부러웠던 장면이 있었어요. 정장을 입은 아저씨가 예쁜 장바구니를 들고 문구점에서 펜 하나를 아주 신중하게 고르는 모습이었거든요. 그걸 보면서 ‘우리나라에서 이런 풍경을 보려면 100년쯤 걸리겠지.’ 싶었는데, 제 살아생전에 보게 될 줄은 몰랐어요(웃음). 이제는 할머니부터 아주머니까지 정말 다양한 연령대의 분들이 공간을 찾아오세요. 처음엔 창밖에서 “나도 옛날에 이런 거 참 좋아했는데….” 하며 머뭇거리시다가도 “편하게 들어와 보세요.” 하면 조금씩 안으로 들어오세요. 처음엔 둘러보기만 하시다가, 다음엔 작은 걸 하나 사 가시고, 그다음엔 “저번에 써봤는데 좋아서 또 왔어요.” 하고 다시 찾아오시고요. 그런 변화를 보는 게 재미있어요.

 

프렐류드 안에는 정말 다양한 문구가 공존하잖아요. 제품은 어떤 기준으로 구성하시나요?

처음에는 ‘우리 문구를 가장 중심에 둬야 한다.’는 생각이 굉장히 강했어요. 그런데 오히려 그 마음이 가장 강할 때 제가 제일 괴로웠어요. 문구를 너무 좋아해서 이 일을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만든 문구니까 내가 제일 사랑해 줘야 해.’라는 마음으로 제 노트만 계속 쓰고 있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새로운 것들이 안 들어오더라고요. 막히는 느낌이 있었어요. 사실 마음속에는 늘 새로운 걸 써보고 싶은 열망이 있는데도요. 직접 만들면 또 알게 되는 부분이 있어요. ‘이런 걸 한번 만들어 봐야지.’ 하고 시작했는데 최소 제작 수량이 천 개, 만 개씩 되기도 하거든요. 그러다 보면 어떤 부분에서는 차라리 잘 만들어진 걸 하나 사서 쓰는 게 훨씬 낫다는 걸 알게 돼요. 사서 자기 방식대로 개조해 쓰는 게 더 좋은 경우도 있고요. 또 문구를 좋아하는 방식이 사람마다 정말 다른데요. 저희 직원들만 봐도 그래요. 어떤 친구는 필사를 좋아해서 글씨 쓰는 행위에 몰입해요. 좋은 펜이나 필기구를 정말 많이 가지고 있고요. 또 어떤 친구는 문구를 거의 관상용으로 즐겨요. 절대 뜯지 않고 보기만 하는 거죠.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거예요. 그래서 프렐류드 안에도 다양한 취향이 공존하도록 구성하려 해요. 선물하기 좋은 문구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프렐류드 문구뿐 아니라 다른 브랜드 문구도 함께 소개하면서 서로 조합해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제안하려고 해요. 

다은 씨에게 ‘좋은 문구’란 어떤 것인가요?

결국 지금 이 순간, 나한테 필요한 무언가를 채워주는 문구요. 누군가에게는 보기만 해도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존재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마음을 전하는 선물이 되기도 하잖아요. 또 어떤 사람에게는 자기 관리를 위한 도구가 되기도 하고요. 저는 문구라면 다 좋아해요. 결국 기록과 연결되기도 하고요. 단순히 보기 좋은 사물에 그치는 게 아니라 기록하게 만들고, 기록은 또 사람을 성장하게 하고 기억하게 하니까요. 문구는 결국 삶을 만들어 가는 도구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다은 씨 삶을 이야기할 때 ‘기록’이라는 단어를 빼놓을 수가 없어요. 다은 씨에게 기록은 어떤 의미인가요?

저한테 기록은, 저조차 잊고 있던 마음을 대신 기억해 주는 거예요. 대학교 때 친구들이랑 나중에 뭐 하고 살고 싶은지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저는 문구 일을 하면서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싶다고 했고, 다른 친구는 해외 취업, 또 다른 친구는 해외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고 보니 다들 그렇게 살고 있더라고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쓴 일기장을 나중에 다시 본 적도 있어요. 거기에 ‘나는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할 거고,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울 건데 페르시안이었으면 좋겠다.’고 적혀 있었어요. 그 일기장을 프렐류드를 시작하고 3년쯤 지나 발견했는데, 지금 그렇게 살고 있는 거예요.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기록을 하기 힘들 땐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해요. 그러면 그 사람들이 제 꿈의 증인이 되어주거든요. 저는 누구나 결국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걸 기록하지 않거나 입 밖으로 꺼내지 않으면 스스로도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아요. 원하는 게 흐릿하면 삶도 흐릿해지고요. 그래서 기록은 결국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다시 발견하게 해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일기장에는 어떤 기록이 채워지고 있나요?

최근 기록을 다시 읽어보면 ‘행복’이라는 단어가 유독 많이 등장하더라고요. 그런데 원래 그런 말 있잖아요. 정말 행복한 사람은 행복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지 않는다고. 그래서 ‘나는 행복해지려고만 했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저한테는 아버지가 멘토 같은 분인데, 최근에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행복한 사람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고, 불행한 사람은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야.” 예전에는 행복에도 조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일이 잘 풀리고, 몸 상태도 좋고, 하루가 평온해야 행복한 거라고 믿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르게 생각해요. 무언가를 더 충족해야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그냥 나는 이미 행복한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것. 그 마음으로 살아가 보려고 해요.

저는 대전이 ‘미색’같은 도시라고 생각해요. 특색 있는 색은 아니지만, 어떤 색이든 자연스럽게 담아낼 수 있는 바탕과도 같은 색이요.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이 도시에서

조금 전에 대전이 ‘살기만 좋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했는데요. 살기만 좋다는 건, 반대로 어떤 부분이 부족하다고 느낀 걸까요?

흔히 말하는 ‘노잼 도시’ 이미지였어요. 사실 그 생각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어요. 다만 제 만족의 기준이 달라졌죠. 예전에는 살기만 좋다는 게 단점처럼 느껴졌다면, 서울에 가서 힘들게 생활해 보니 결국 ‘사람도 자연의 일부인데, 살기 좋으면 되지 않나?’라는 생각으로 바뀌더라고요(웃음).

 

대전에 터를 잡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을까요?

일단 제가 대전 사람이라는 게 가장 컸죠. 사람마다 각자 안식처처럼 느껴지는 도시가 있잖아요. 저한테는 그게 대전이었어요. 대전은 이상할 정도로 하늘이 잘 보여요. 어릴 때부터 ‘왜 이렇게 하늘이 넓게 보이지?’라는 생각을 자주 했거든요. 원래 대전 슬로건도 ‘살기 좋은 대전’이었는데, 그게 단순히 시에서 만든 문구가 아니라 이 지역 사람들은 계속 여기가 살기 좋다고 말해왔대요. 지금의 갑천과 대전천 일대가 예전에는 ‘만년천’이라고 불렸는데, 이 주변은 만 년 동안 살기 좋은 곳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해요. 일제강점기 때 대전이 계획도시로 만들어지면서 지금의 도시 구조가 형성됐거든요. 건물과 건물 사이 간격도 그렇고, 도시 전체에 묘한 여백 같은 게 있어요. 저는 충청도 사람들의 성향도 그 분위기와 닮았다고 느껴요. 사람 사이에도 약간의 간격이 있고, 속을 단번에 알기 어려운 느낌이 있거든요. 흔히 충청도 사람은 세 번 물어봐야 진심이 나온다는 말도 있잖아요(웃음).

 

아, 저도 들어본 적 있어요. 진심을 알려면 몇 번을 물어봐야 한다고요(웃음).

예를 들어 “물 마실래?” 하고 한 번 물으면 괜찮다고 해요. 그런데 진짜 괜찮다는 뜻이 아닐 수도 있어요. 두세 번쯤 더 물어야 그제야 “그럼 마실게.”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만약 한 번만 묻고 끝나면, 오히려 진심으로 물어본 게 아니었다고 느끼기도 하고요. 그런 정서가 저는 되게 흥미로웠어요. 무엇보다 저는 문구 일을 오래 건강하게 하고 싶었어요. 이 업계는 생산 속도도 굉장히 빠르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내가 바라보는 풍경만큼은 조금 느려야 삶의 속도를 지킬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현실적인 고민도 있었죠. 서울에서는 작은 공간이어도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잖아요. 반면 대전은 공간이 넓어도 손님이 아예 없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비슷한 사례가 없을까 찾아보다가 영국의 ‘페이퍼 스미스’라는 문구점을 알게 됐고, 궁금해서 직접 찾아가기도 했어요.

 

그 공간을 보고 어떤 경험을 하고 왔나요?

런던에도 매장이 있었지만 본점은 브리스톨이라는 지역에 있었어요. 버스를 갈아타고 거의 여섯 시간 정도 걸려서 갔는데, 런던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동네였어요. 무엇보다 그 문구점이 지역 사람들에게 굉장히 자연스럽게 스며든 안식처처럼 느껴졌어요. 단순히 힙하고, 예쁜 가게가 아니라 사람들이 편하게 들렀다가 머물다 가는 공간 같은 느낌이요. 그걸 보면서 ‘나도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꼭 엄청 잘돼야 한다기보다, 나와 이 지역 사람들에게 안식처 같은 공간이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겠다고요.

 

다은 씨가 생각하는 ‘살기 좋은 도시’는 어떤 상태에 가까운가요?

나로서 온전함을 유지할 수 있는 상태요. 건강도, 관계도, 일도 그렇고요. 자연을 느낄 수 있으면서도 완전히 도시와 단절되지 않은 곳. 너무 빠르게 소모되지 않으면서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게 저한테는 중요했어요.

 

요즘 대전을 찾는 관광객이 많아졌잖아요. 이 도시에서 공간을 운영하며 느끼는 분위기는 어떤가요?

주말이나 방학 시즌에는 매장이 외지 분들로 가득 차요. 그분들을 보고 있으면 다들 보이지 않는 돋보기를 들고 자기만의 재미를 탐색하는 것 같아요. 손님들이 “대전 노잼 도시라더니 너무 재밌어요!” 하시면 속으로는 생각하죠. ‘하루이틀 여행으로 오시니까 재밌죠. 여기서 살아봐요(웃음)!’

 

어느 도시나 생활이 되면 또 다르겠지요(웃음). 다은 씨는 어디에서 재미를 찾고 있나요?

저는 그냥 제 일상이 재미있어요. 직장 생활을 하던 시절, 회사 아래 떡볶이 포장마차 사장님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떡볶이를 사러 가면 늘 물통에 레몬을 띄운 ‘레몬 워터’를 준비해 두셨거든요. ‘이분 진짜 멋진 사람이다, 떡볶이를 팔아도 자기만의 방식을 지키고 싶어 하는구나!’ 싶어 참 부러웠죠. 그런데 지금의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것으로 가득 찬 일상을 살고 있잖아요.

 

나만의 레몬을 물 위에 띄우는 삶을 살고 계시네요(웃음).

맞아요. 제 생활 반경은 그리 넓지 않아요. 초창기 3년 동안은 사무실에서 먹고 자며 첫 직장 상사보다 더 혹독하게 저 자신한테 밤샘 작업을 시켰거든요. 지금은 그렇게까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이곳 선화동에서 일하고, 근처 단골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산책하고 운동하는 게 전부예요. 누군가에겐 지루해 보일지 몰라도, 저는 제 일상이 너무 좋아요. 이 단조로운 일상 안에서 저 스스로 끊임없이 작은 변주를 만들어 내고 있으니까요.

 

일상 안에서의 ‘변주’라고 하셨는데, 새로운 문구를 소개하거나 새로운 작업을 시도하는 일 외에 또 어떤 것들이 포함되어 있을까요?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나누는 시간도 큰 변주예요. 한 친구를 만날 때마다 프렐류드의 풍경이 매번 달라져요. 예전에 미피를 정말로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어요. 사실 저는 미피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거든요(웃음). 그런데 그 친구를 곁에 두다 보니 어느새 미피만 보면 그 친구 생각이 나더라고요. ‘아, 이래서 미피를 좋아하는구나.’ 이해하게 되면서 매장에 미피 파트가 작게 생기기도 했죠. 새로운 사람이 올 때마다 문구점에 전에는 보지 못했던 풍경이 조금씩 늘어나는 거예요. 그럼 신기하게도 그 취향에 반응하는 손님들이 새로 유입되곤 하죠.

 

함께하는 분들의 세계가 더해질수록 이 문구점도 더 다채로워지는 거였네요.

맞아요. 저 혼자서는 절대 지금 같은 공간을 만들지 못했을 거예요. 한번은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친구가 아르바이트로 들어왔는데, 아이들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어린이의 시선에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어린이들 시야가 닿는 낮은 매대에는 공룡이나 곤충 스티커 같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제품들로 배열하기도 하고요. 저희가 지우개 매대에 “눈으로만 봐주세요”라는 안내문을 적어둔 적이 있어요. 공간 내에서 부정적인 어조를 쓰고 싶지 않아 나름대로 고심해 적은 긍정문이었는데도, 손님이 같이 온 손님에게 “야, 이거 만지지 말래.” 하고 부정어로 받아들이시더라고요. 고민하던 제게 그 친구가 “안내문 맨 끝에 ‘감사합니다’를 붙여보면 어떨까요?” 하더라고요. 키즈카페 같은 곳에서 쓰는 방식인데, 여기서의 ‘감사합니다’는 단순히 고맙다는 뜻이 아니라 ‘내 말을 수용해 줄 것을 믿고 미리 건네는 신뢰의 인사’라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문구를 바꿨더니, 정말 신기하게도 부정적인 언어로 받아들이는 손님이 확 줄었어요. 말하는 저희도, 듣는 손님도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죠.

 

프렐류드 주변의 로컬 장소를 엮은 프렐류드 가이드 제작은 여전히 지속하고 계시나요? 처음에 이 가이드북을 어떻게 제작하게 되었는지도 궁금해요.

공간을 운영하다 보면 손님분들이 반복해서 물어보시는 질문이 있어요. “대전에서 가볼 만한 곳이 어디 있나요?” 그런데 저는 원래 효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거든요(웃음). 같은 질문에 계속 답하는 일이 생각보다 꽤 큰 에너지가 들어가더라고요. 무엇보다 매번 같은 다정함의 온도를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고요. 그렇다고 대충 답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어떻게 하면 더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프렐류드 가이드를 만들게 됐어요. 정말 친한 친구가 대전에 놀러 왔을 때 소개해 주고 싶은 곳들만 담자는 기준이 있었어요. 지금도 정말 저희가 좋아하는 곳들만 소개하려고 하고요. 사실 주변 공간 운영자분들에게 소개 요청도 정말 많이 받아요. 그런 제안은 거의 다 정중히 거절하고 있어요. 모든 사정을 다 반영하게 되면 사람들이 프렐류드 가이드를 찾아볼 이유가 없어질 테니까요. 저희 기준 안에서 직접 골라, 책임지고 소개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동네에서 공간을 운영하다 보면 주변 이웃과의 관계도 만들어졌을 텐데요. 주민들과는 어떻게 지내시나요?

여기 있으면서 느끼는 게, 결국 사람은 다 연결된 존재라는 거예요. 제가 늦게까지 작업하는 날에는 바로 앞 마트 사장님이 일부러 바깥 등을 환하게 켜두세요. 제가 퇴근하기 전까지 위험할까 봐 일부러 가게 문을 늦게 닫으실 때도 있고요. 그럴 때 정말 감사하죠. 한번은 밤늦게까지 혼자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퇴근하시기 전에 따뜻한 두유를 챙겨주셨어요. 그날은 정말 울 것 같은 마음으로 일하고 있었거든요. 두유 하나에 마음이 다 녹더라고요. 유독 힘든 날 누군가의 작은 다정함이 다시 일어설 힘이 되기도 하잖아요. 사실 작년에 몸이 조금 아팠던 적이 있어요. 그때 잠깐 제 삶을 돌아보게 됐거든요.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동시에 이상하게 허무한 감정도 들더라고요. 일을 잘해온 건 맞는데, 그래서 결국 나한테 어떤 의미였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때 처음으로 느꼈어요. 계획한 목표를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 삶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어떤 마음을 건네며 사는지도 굉장히 중요하겠다는 걸요. 그래서 요즘은 운동하면서 제 몸과 마음을 먼저 돌보고, 그 에너지로 주변 사람들도 더 챙기려고 해요. 신기하게도 주변 이웃분들도 저를 그렇게 돌봐주시고요. 그래서 지금 프렐류드 탕비실은 이웃분들에게 받은 먹을 것들로 가득 차 있어요(웃음).

 

프렐류드가 앞으로 대전 안에서 어떤 공간으로 남기를 바라세요?

가끔 ‘만약 내가 중·고등학생 때 이런 공간을 발견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보곤 해요. 저는 어릴 때부터 문구를 정말 좋아한 사람이니까, 아마 자꾸 들여다보고 싶고 당장이라도 저 안에 들어가 보고 싶었을 것 같아요. 지금의 프렐류드도 누군가에게 그런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초등학생 친구와 손을 잡고 온 부모님께서 “얘가 나중에 여기 취업하고 싶대요.” 하고 이야기해 주실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마다 너무 감사하고 영광이죠. 꼭 문구가 아니더라도 귀여운 사물이나 기록, 혹은 작은 세계를 꾸미는 일처럼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자기 안의 반짝임을 발견하게 해주는 공간이면 좋겠어요. 사람은 결국 타인의 욕망을 보며 자기 욕망을 발견한다고 하잖아요. 누군가의 삶이나 공간을 보며 ‘나도 저런 걸 좋아했는데….’ 하고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들이 있는 것 같아요. 저 역시 살아오면서 그런 경험들을 하며 이 자리까지 왔고요. 프렐류드를 경험한 누군가가 자기 안의 숨은 마음을 발견하고, 훗날 저보다 더 큰 꿈을 그려 나가게 된다면 그걸로 충분할 것 같아요.

 

프렐류드가 오래도록 지키고 싶은 감각이나 키워드가 있다면 뭘까요?

가장 오래 지키고 싶은 건 다양성이에요. 프렐류드 안에는 정말 다양한 컬러와 취향의 문구가 있는데, 저는 그 바탕에 결국 사람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색은 빨간색이에요. 그런데 핑크색을 좋아하는 친구를 곁에서 보면 핑크가 왜 좋은지 알게 되고, 보라색을 좋아하는 친구를 보면 그 색이 가진 깊이나 신비로운 분위기가 고스란히 느껴져요. 또 검은색을 선택하는 사람에게서는 간결함 안에 깃든 단단한 감수성을 발견하게 되고요. 결국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면 이렇게 다양한 색을 좋아하게 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프렐류드도 계속 사람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그 마음으로 다양한 문구를 소개하고, 서로 다른 취향을 오래 품어가는 공간이 되고 싶어요.

 

사람 덕분에 세상의 모든 색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말씀이 참 다정하게 들려요. 그렇다면 다은 씨가 느끼는 대전이라는 도시는 어떤 색을 품고 있나요?

저는 대전이 ‘미색’같은 도시라고 생각해요. 특색 있는 색은 아니지만, 어떤 색이든 자연스럽게 담아낼 수 있는 바탕과도 같은 색이요. 약간 두부나 밀가루 색 느낌이랄까요. 어떻게 보면 재미없다고 느껴지는 색이잖아요. 그런데 미색은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가 돼요. 새하얀 백색처럼 차갑기보다는 조금 더 따뜻하고 부드러운 색에 가까운 것 같아요.

대전의 기억을 수집하는 문구

여행의 기억처럼 오래 남는 물건들.

1. 물총 칼국수 편지지 | 6천 9백원
Prelude Studio X Paper Message

대전을 여행한 이라면 한 번쯤 마주했을 ‘물총 칼국수’를 위트 있게 담아낸 편지지. 그릇 속 면발을 쓱 끌어 올리면, 하얗고 통통한 면 위로 짧은 안부를 적어 내려갈 수 있다. 여행의 맛있는 기억을 담아 누군가의 우편함으로 띄워 보내기 좋은 한 장.

2. 꿈돌이 클립 | 1천 9백 원

Prelude Studio X 꿈돌이

오랫동안 대전의 시간을 함께 지나온 마스코트, 꿈돌이. 일반 클립보다 조금 넉넉한 크기로, 책이나 노트 위에 가볍게 끼워두기 알맞다. 이 골목을 여행한 작은 증표로 가방 한편에 달아두거나, 누군가의 페이지 사이에 툭 건네고 싶은 대전다운 작은 기념품.

3. MD (A7) Notebook | 1만 2천 원

Midori

바지 주머니나 가방 한편에 쏙 들어가는 가볍고 단정한 크기의 노트. 화려한 장식을 모두 덜어낸 하얀 속지는 오직 ‘쓰는 행위’에만 몰입하도록 돕는다. 여행 중 문득 떠오른 마음을 부담 없이 적어두기 좋은 작은 기록장.

4. 우드리스 매직 색연필 | 6천 원

KOH-I-NOOR 

하나의 연필 안에 세 가지 색깔이 숨어 있는 단단한 색연필. 손에 쥐고 종이 위에 선을 그을 때마다, 연필이 구르는 각도에 따라 예상치 못한 다채로운 빛깔이 흘러나온다. 프렐류드가 사람을 향한 애정으로 저마다의 색깔을 포용하듯, 이 작은 색연필 역시 한 가지 색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선을 그려낸다.

AROUND 온라인 구독

어라운드의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읽어보세요.

구독 시작하기

에디터 황진아

포토그래퍼 최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