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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4, 푼크툼, 또또
이른 아침, 졸린 눈을 비비며 각자의 자리로 향하느라 분주한 시간에 갓 만든 토스트와 커피가 있다면? 시원하게 한 입 베어 물며 나 자신에게 하루의 응원을 보내고, 커피 한 모금에는 슬며시 미소까지 지어지지 않을까. 망원동에서 604를 운영하는 파커와 희진은 오가는 이들의 식사를 성실히, 섬세히 챙겨준다. 그 살뜰한 마음의 뿌리를 두 사람에게 물었다.
화창한 겨울날, 604를 만나게 되었네요. 함께 만드는 요리를 찾아 이곳에 왔어요. 반가워요.
희진 안녕하세요. 저희는 망원동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를 내어드리는 604의 희진. (파커를 바라본다.)
파커 파커입니다.
(웃음) 지금이 11시죠. 여느 카페라면 한창 준비 중일 시간인데, 604는 오전 8시부터 문을 열고 오후 4시면 하루를 마쳐요. 카페에서는 보기 힘든 운영 시간 같은데요.
파커 맞아요. 오늘은 쉬는 날이지만 평소에는 지금이 가장 바쁠 때예요. 저는 7시 반에 출근해서 매장 창문을 닦고 오픈 준비를 해요. 춥고 해가 늦은 겨울에는 문을 열자마자 손님들이 오진 않아서 그러고도 한동안은 아내와 재료를 준비하며 아침을 보내죠. 이런 운영 시간을 결정한 건 작년 여름이었으니까 그리 오래되진 않았어요. 그동안 우리 둘 외에 직원들도 두면서 604 안과 밖에서의 시간을 균형 있게 만들어 보려고 고민했거든요. 운영 방식을 다양하게 조율해도 공간을 이끄는 우리가 매장에 상주해야 하는 시간은 길었죠. 그렇다면 이른 아침에 열고 이른 오후에 닫아보자 싶었어요.
희진 그 덕에 생긴 여가 시간에는 둘 다 운동을 시작했어요. 파커는 러닝, 저는 요가를요. 그동안엔 퇴근 후에도 자잘하게 해내야 할 일이 많았다면, 앞으로는 여가가 있는 삶을 꾸준히 지켜 보려고요.
운영 시간에 맞춰 아침이나 느지막이 점심을 먹으러 오는 분들도 있겠어요. 커피뿐 아니라 든든한 샌드위치와 토스트가 있잖아요.
희진 604에서 커피는 파커가, 샌드위치를 비롯한 요리는 제가 담당하는데요. 샌드위치 맛에 여러 가지 강력한 킥을 넣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단 커피랑 먹을 때 잘 어울리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여기는 커피숍, 샌드위치숍이 아니라 둘을 함께 파는 곳이니까요. 그래서 604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메뉴로 재료의 질부터 맛과 전체적인 디자인까지 모든 게 균형이 맞도록 신경 쓰고 있어요.
파커 희진이 만드는 메뉴를 저도 전부 즐겨 먹고 좋아하지만 그중에서 일등을 꼽으라면 604에서 가장 오래된 메뉴인 ‘그릴드 치즈 토스트’예요. 저는 단맛이 강한 커피보다는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데, 둘의 조합이 아주 잘 어울리거든요. 물에 샷을 넣은 단순한 음료라도 토스트와 함께 먹을 땐 단맛처럼 감칠맛이 생겨요.
커피 메뉴를 살펴보니 시그니처라는 설명과 함께 ‘나나이모 커피’가 있더라고요. 귀여운 이름이라 생각했어요.
파커 604만의 시그니처 커피에 어떻게 특별함을 줄까 고민하다 나나이모라는 이름을 떠올렸어요.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섬 도시인데 밑에 깔리는 우유를 바다, 위에 올리는 에스프레소를 섬이라고 생각한 거죠. 나오자마자 바로 먹는 첫 모금이 맛있어요.
저는 어느 이모가 알려준 레시피인 줄 알았는데(웃음)! ‘604’에는 어떤 의미를 담았어요?
파커 밴쿠버의 지역 번호가 ‘604’인데 유년을 그곳에서 보냈어요. 캐나다나 미국 쪽에서는 자신이 사는 곳을 지역 번호로 드러내기도 해요. 한국으로 예를 들면 누군가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면 02나 031로 대답하는 거죠(웃음).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마음과 내가 비롯된 곳을 대표하는 마음, ‘육공사’라고 쓰기도 하면서 한국적인 요소까지 더한 이름이라 생각해요. 그걸 떠올리는 데 5분도 안 걸렸어요.
604의 시작을 물으려면 두 분의 인연에 대해 먼저 들어봐야겠어요.
파커 저희는 대학교에서 만났어요. 첫인상이 좋아서 제가 먼저 다가갔죠.
희진 성향을 따지자면 파커는 저와 굉장히 다른 사람인데 유머 코드가 잘 맞아서 금세 가까워졌어요. 신입생 때 처음 만나 5년 연애하고 결혼 3년 차에 이곳을 열게 됐어요. 처음에는 망원동이 아닌 중화동이었고요.
파커 원래 카페를 여는 건 ‘우리’의 계획이 아니라 ‘나’의 계획이었어요. 대학원을 다니며 공부를 오래 하고 일도 10년 정도 했지만, 문득 ‘이걸 평생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지 못할 것 같더라고요. 새로운 도전으로 좀더 재미있게 일하고 그걸로 생활이 될 만큼의 돈도 벌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가 한국에서 개인 카페가 하나둘 생길 때였는데, 희진이 제가 커피를 좋아하니까 배워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어요. 커피 일을 병행하며 하던 공부를 다 마칠 때쯤, 있는 돈을 탈탈 털어서 3주 정도 함께 유럽 여행을 떠났어요.
희진 그리고 돌아오면서 파커는 커피숍을 하겠다는 결심을 했죠
희진 씨는 어떻게 합류하게 된 거예요?
파커 604의 문을 열 때, 아내가 커피랑 곁들일 수 있는 간단한 음식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찾아오는 지인들을 위해 평소 즐겨 먹던 샌드위치를 준비하면 어떨까 싶어 아내가 만들게 됐죠. 지속적인 판매의 개념으로 시작한 게 아니라 단가 계산 같은 건 생각도 안 했었고요.
희진 원래 요리를 좋아해서 별로 어렵지는 않았어요. 도와준다는 마음보다 당연히 함께 하는 거고 안정된 후에는 나만의 길을 가야겠다 생각했거든요. 정식 오픈 전에 친구들을 초대해서 함께 나눠 먹고 사진을 찍어 올렸는데, 다음 날부터 손님이 밀려오기 시작한 거예요. 그다음 날에는 더 오시고. 당장 눈앞에 우리 요리와 커피를 드시러 온 손님들이 있으니 빠지겠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저 열심히 하면서 지금까지 온 거예요. 농담으로 “빠지려면 그때 빠졌어야 했다.”고 말해요(웃음).
이제 희진 씨 요리가 없는 604는 상상하기 어려운걸요. 일과 일상을 함께해 온 두 분이 서로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요.
희진 파커는 제 중심을 잡아주는 사람이에요. 어린 시절의 저는 호불호도 분명하고 극적인 성향이었는데 일상에서는 몰라도 일할 땐 둥글게 바뀌어야 할 부분도 있었어요. 매일 손님을 마주하는 업이라면 더더욱이요. 파커가 오랜 시간 곁에서 좋은 태도와 마음가짐을 보여준 덕분에 제가 많이 배우고 성장했어요. 롤모델 같은 거죠.
파커 그렇게 거창한 말을….
희진 그럼 롤모델은 지워주세요!
파커 (웃음) 아내는 제 베스트 프렌드예요. 되게 편안하고 좋아하는 친구죠. 편하다는 게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의 크기가 작다거나 하대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불편한 긴장감을 풀고 나라는 사람을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다는 의미예요. 어릴 때 해외에서 자라면서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항상 긴장했거든요. 그래서 저에겐 심적인 편안함을 끌어내 주는 관계가 중요해요. 아내는 이보다 더 좋은 사람, 더 좋은 관계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친한 친구예요.
두 분이 함께 먹고 마실 것을 내어주는 일을 7년 넘게 하면서 나날이 깨닫는 점도 있을 것 같아요.
파커 음, 저는 쉽게 규정짓지 않으려고 해요. 예를 들어 ‘단골’ 같은 말이요. 한 달을 꾸준히 온 손님이라도 언제든 자기가 먹고 싶은 걸 따라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있잖아요. 너무나 자연스러운 거고요. 단골이라 규정한 그분을 기다리는 마음이 들어버리면 그 자체로 무거워지더라고요. “왜 안 오시지…?” 이러면서요. 자주 찾아주시는 분들에게 너무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지만, 특별하게 표현하는 건 줄이려고 해요. 손님들이 오가는 걸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싶어요.
희진 요리를 파는 일은 만드는 이의 양심에 아주 많은 게 맡겨져 있더라고요. 먹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완성된 요리를 그만큼의 가치와 믿음을 지불하고 먹는 거죠. 저는 ‘선한 양심’이라 말하곤 하는데 청결이나 위생 문제를 절대 양보하지 않아요. 손님한테 보이는 부분은 깨끗하게, 안 보이는 부분은 더 깨끗하게 하자고요.
그러고 보니 604의 인스타그램 속 기록 한 가지가 떠올라요. “어려운 것을 쉽게, 쉬운 것을 깊게, 깊은 것을 유쾌하게”라 적어뒀죠.
희진 일본의 한 극작가가 한 말인데 너무나 와닿아서 적어 두었어요. 우리와 604가 추구하는 분위기나 지금껏 이야기해 온 내용의 중심 키워드는 ‘편안함’ 같은데요. 손님들이 편안함을 느끼려면 반대로 우리는 엄청 예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세한 것들로 신경 쓰이지 않도록 모든 준비를 마쳐야 비롯될 수 있다고요. 그 준비라는 건 매일 아침 가게의 유리창을 닦거나 좋은 재료를 쓰는 것처럼 기본을 성실히 행하는 마음가짐에서 시작되겠죠? 쉬운 일은 아니어도 충분히 숙달해서 편안함을 쉽게 내어주기 위해 노력해요.
파커 맞아요. 이미 우리가 충분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충분해지기 위해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는 것 같아요. 604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그걸 먹는 사람들을 보는 일상은 이제 특별한 의미를 찾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익숙해졌어요. 큰 목표나 그럴싸한 바람보다, 손님들이 불편해하지 않고 우리도 손님들로 인해 불편하지 않은 하루를 보내길 바라요. 그렇다면 무척 좋은 날이었다고 생각하면서요. (햇살이 쏟아지는 창가 자리를 바라본다.) 지금 604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네요.
그러게요. 마지막으로, 이번 기획에서 ‘우리가 만든 한 그릇’에 대해 들려줄 분들에게 던질 공통 질문이 있어요. 604의 요리에서 빠질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면요?
파커 단어로 말하자면 섬세함이에요. 손님들에게 나가기 전에 요리 상태가 어떤지, 컵에 흠이 있진 않은지 볼 수 있는 자세죠. 한두 번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가 버리거나 익숙해지지 않으면 하기 굉장히 어렵거든요. 어렵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해내요. 그 한 끗이 큰 차이가 될 수 있으니까요.
A. 서울 마포구 동교로 49 정하빌딩 1층
O. 화-금요일 08:00-16:00, 일-월요일 휴무
H. Instagram.com/604seoul
음식을 나누는 공간에는 적어도 두 사람이 있어야 한다. 접시를 채우는 이와 그 접시를 비워내는 이. 그 관계는 대부분 식사를 마친 후에 가벼운 인사를 주고받으며 마무리되지만, 그중 일부는 꾸준히 걸음하는 친근한 존재가 되어 요리가 오가는 공간에 밀도를 더한다. 서촌에서 10년 넘게 음식점을 운영한 푼크툼의 주인장은 말한다. 자신의 요리는 오는 이들과 함께 서서히 완성되었다고.
푼크툼은 서촌에 오랫동안 자리하며 단골손님들의 식사를 책임지는 가게라 들었어요.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카레를 만들어 파는 작은 가게 푼크툼입니다. 지금은 브레이크 타임인데 직전까지 손님들이 오셔서 이제야 한숨 돌리네요. 보통 이 시간에는 점심도 챙겨 먹고 잠시 쉬다가, 오후 재료 준비를 하느라 쏜살같이 흘러가요. 이 작은 가게를 혼자서 분주히 움직이죠. 아참, 그런데 제 이름을 꼭 말해야 하나요?
원하지 않으신다면 묻지 않을게요. 조금 부끄러우신가요?
음, 부끄럽다기보다 별로 특별한 게 없어서요(웃음). 자기만의 스토리가 뚜렷하고 대단한 분들이 책에 쓰일 텐데, 저와 푼크툼에게 거창한 이야기는 없어요. 그래도 주신 질문마다 솔직하게 말해볼게요. 오늘 날이 좀 추운데 뱅쇼 드실래요? 팔각이랑 정향, 과일 두툼하게 썰어 넣고 푹 끓인 거예요.
금세 몸에 온기가 돌 정도로 맛있네요. 귓가에 들리는 라디오 소리도 좋고요. 이전에 브레이크 타임이 끝나자마자 찾아왔을 때 사장님이 문을 열고 조명을 다 켜기도 전에 라디오를 먼저 트는 걸 봤어요.
전 세계 방송이 나오는 ‘레보revo’의 인터넷 라디오예요. 제가 음악을 좋아하는데 음악 외에도 알아들을 수 없는 다른 나라의 언어들이 노래처럼 흐르는 게 재밌더라고요. 마음이 편안해지고요. 특히 독일어 발음이 남성적이면서 멋있게 들려요. 손님들이 불편해하실지도 모르니까 붐비는 시간대에는 잔잔한 라운지 음악을 틀고, 한적해지면 바로 제가 좋아하는 라디오로 주파수를 바꿔요(웃음).
이곳에 카레집 푼크툼을 연 지는 얼마나 되었어요?
여기는 5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고, 전에는 근처에서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라는 프랑스 가정식 음식점을 5년간 운영했어요. 오래전, 프랑스에서 미술 학교에 다녔는데 그때 그곳의 요리법을 많이 배웠거든요.
혼자서 음식점만 10년이라니, 무척 긴 시간이네요.
10년이 어마어마하다고 생각되시죠? 저도 음식점을 연 지 1년쯤 되었을 땐, 누가 무엇 하나를 10년 동안 했다고 하면 깜짝 놀라면서 대단해 보였어요. 그런데 3 년 정도 지나니까 시간이 술술 흐르더라고요. 중간에 프랑스 요리에서 카레로 장르를 바꾸면서 더 오랫동안 이 일을 할 수 있게 됐죠.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로 사람들이 저와 제 요리, 음식점을 이미 규정 짓고 바라보는 게 아쉬웠거든요. 저도 그 공간에 너무나 익숙해지던 터라 낯선 느낌을 찾아보고 싶었고요. 사실 처음엔 이름 없이 동네 분들이 편하게 오셔서 집밥처럼 즐기는 음식점을 만들려 했는데, 구청에서 이름은 꼭 지어야 한대요.
그래서 지은 게 ‘푼크툼Punctum’이죠. 어느 나라 말인지 알 수 없는 오묘한 느낌에 투박한 발음이에요.
대학교를 다닐 때 읽었던 롤랑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 에 나온 단어인데요. 그 책을 정말 좋아해서 밑줄까지 그으면서 읽었고 아직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어요. 우리가 사진을 감상하고 해석하는 개념에는 ‘스투디움Studium’과 ‘푼크툼’이 있대요. 스투디움은 사진에 대한 보편적인 정서를 말한다면, 푼크툼은 주관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해석하는 걸 말하는데 라틴어로는 찌른다는 뜻도 있어요. 우리가 어떤 장면을 볼 때 마음을 콕 찌르는 듯한, 아주 사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을 관통하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잖아요. 그것처럼 우연히 푼크툼을 봤을 때 영문도 모르게 마음이 사로잡혀서 무슨 음식을 파는 곳일까, 궁금해하면서 들어오길 바라며 지은 이름이에요. 요즘에는 가까운 식당을 가더라도 메뉴나 평점, 후기까지 전부 찾아보면서 마음의 검증이 끝나야 가는 문화잖아요. 조금 아쉬워요. 우연함에서 오는 재미가 없달까요.
바깥에 세워둔 입간판은 직접 만드신 거예요? 한자로 ‘점 點’이 쓰여 있더라고요.
맞아요. 어느 날, 한 손님이 말을 걸었어요. 본인이 의사인데 푼크툼이라는 말이 의학 용어라면서, 눈꺼풀에 있는 눈물점을 뜻한다고 하더라고요. 눈물샘을 타고 흘러온 수분이 몸 바깥으로 빠져나오는 작은 구멍이요. 전혀 몰랐던 의미라 흥미로워서 입간판에 한자로 점도 쓰고 빨간색 동그라미를 콕콕 찍어뒀어요.
그러고 보니 공간 곳곳에 직접 그린 그림들이 보여요. 아트 포스터나 스크랩들이 벽면에 붙어 있고요.
그림뿐 아니라 음악, 아트북, 예술 작품이나 책에 관심이 많아요. 영화 보는 것도 좋아하고요. 처음에는 이곳을 수수하고 깔끔하게 두고 싶었는데, 가장 오래 머무는 사람은 결국 저니까 자꾸만 취향인 것들을 여기저기 두게 되더라고요. 직접 그리거나 책 한쪽을 뜯어 오기도 하고 즐겨 듣던 CD들을 가져다 뒀어요. 푼크툼에서 손님에게 내어드리는 식기도 아주 오래전부터 제가 하나씩 모은 것들이에요. 다행히 공간의 주인장과 비슷한 걸 좋아하고, 비슷한 걸 지향하는 분들이 연결되어 이 안까지 들어오는 것 같아요.
메뉴 이야기도 하고 싶은데, 카레를 만들게 된 이유가 있다면요?
제가 잘 먹고 좋아하는 메뉴라서요(웃음). 카레에는 큐민이나 카다멈, 고수 같은 이국적인 향신료가 들어가는데 그 향긋함이 좋아서 한가득 끓여두고 열흘 내내 먹은 적도 있어요. 그리고 고등학교에 다닐 적엔 지금처럼 카레를 만들어 파는 가게가 잘 없었으니까 집에서 엄마가 끓여준 ‘오뚜기 카레’를 별식처럼 맛있게 먹던 추억이 생생해요. 그래서 결정했나 봐요. 특별한 이유보단 단순히 좋아하는 거라서. 생각해 보면 이전에 프랑스 요리를 한 이유도 그저 몇 가지 할 줄 알았고, 그 음식들을 한국에서 합리적인 가격에 먹고 싶어서 가게도 연 거예요. 인도의 커리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 해보면서 적절한 과정들을 추가하거나 빼냈고 그 결과 푼크툼만의 카레가 탄생했죠.
누군가 푼크툼의 대표 메뉴를 묻는다면 어떤 거라 답하세요?
손님들이 가장 많이 주문하는 건 ‘시금치 그린 커리’예요. 초록색 커리와 하얀 수란, 노란 강황밥의 모습이 예뻐서 그런 게 아닐까 싶은데 맛에 대한 호불호는 뚜렷한 편이에요. 슴슴하고 건강한 맛이거든요. 커리 안에는 주사위 크기만큼 작게 조각낸 두부가 들어 있어요. 원래는 파니르 치즈를 넣었는데 팬데믹을 거치면서 수입 식료품은 쓰기 쉽지 않아져서 대신 두부를 넣어봤죠. 제 입맛에는 그게 더 든든하고 조화롭게 느껴지더라고요. 곁에 짭짤한 화이트 페타 치즈를 으깨서 올려두니까 같이 섞어 먹으면 맛있어요.
작은 종지에 담긴 당근 라페, 토마토와 치즈에 올리브유를 두른 샐러드를 함께 내어주죠. 식사를 마칠 즈음엔 요거트가 나오고요. 보기에도 먹기에도 좋아서 푼크툼에서의 식사 시간이 즐거웠어요.
여길 여러 번 와보셨어요? 잘 아시네요. 그것도 제가 그렇게 곁들어 먹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준비하는 거예요. 당근 라페나 미니 샐러드가 진한 카레를 먹기 전엔 입맛을 돋워주고, 먹고 난 뒤엔 가볍게 마무리를 해주거든요. 궁합이 좋은 조합 같아요. 요거트는 가득 만들어서 저도 먹고, 손님들에게는 에스프레소 컵에 담아 블루베리 잼과 그래놀라를 곁들여 드려요. 보기에도 먹기에도 좋았다니 감사하네요.
문득 음식을 만들어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일은 사장님에게 어떤 의미인지 듣고 싶어져요. 이름의 의미와 메뉴까지, 손님들과 함께 만들어나가는 가게 같아서요.
사실 처음부터 무얼 잘 하거나 많이 안 채로 시작한 게 아니에요. 그럴싸한 가게가 ‘짠!’ 하고 생긴 게 아니라 손님들과 오랜 시간 상호작용을 주고받으면서 찬찬히 완성해 나간 거죠. 그때는 손님들이 나날이 더 맛있어진다고 해주셨어요(웃음). 지금은 누가 맛없다고 하면 더 열심히 해야겠다며 능청스레 답할 정도의 여유는 생겼지만, 아직도 손님을 대할 때 무척 긴장하는 것 같아요. 손님이라는 존재가 무겁고 무섭게 다가와서 한 명이든 수십 명이든 응대하고 나면 항상 어깨가 뻐근하죠. 그 이유를 고민해 봤는데, 요리를 돈을 받고 내어드리기 때문이에요. 응당한 대가가 오가는 거니까 항상 긴장감을 갖지 않으면 저 자신도 납득하지 못하는 걸 아무렇게나 내어주고 말 거예요.
나의 요리가 다른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걸 언제나 기억하고 있다는 뜻으로도 닿아요.
음식의 본질은 사람에게 섭취되어 몸에서 영양소로 머무는 거잖아요. 먹는 게 건강과 밀접하다는 걸 누구보다 몸소 느끼다 보니 늘 좋은 한 끼를 생각할 수밖에 없죠. 자극적인 맛은 없어도 편안하게 한 끼를 해결하고 남은 하루를 보낼 에너지를 드리고 싶어요.
오늘 저는 푼크툼 덕분에 기분 좋고 맛있는 점심을 먹었는데요. 사장님은 손님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 때 가장 기분 좋으세요?
가시기 전에 한 그릇 맛있게 잘 먹었다고 이야기해 주면… 종일 피곤하고 힘든 게 다 녹아버려요. 그 ‘맛있다’는 한마디가 어마어마한 힘을 갖고 있나 봐요. 아, 그리고 음식을 남김없이 깨끗하게 드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마음속으로 정말 훌륭하다면서 감탄하죠(웃음).
푼크툼의 요리에서 빠질 수 없는 단 한 가지가 있다면 무얼까요? 뭘까요….
되게 어려운 질문인데요. 어디든 요리를 내어주는 곳이라면 음식이 맛있고 건강한 건 기본일 테고, 더 나아간다면 보기 좋은 ‘플레이팅’이라고 생각해요. 예쁘고 화려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만든 이의 취향이 고유한 담음새로 보여지는 게 중요한 거죠. 그래야 나와 결이 맞는 사람들을 이 문턱을 넘어 안으로 들어오게 할 수 있으니까요.
연희동 끝자락, 흐르는 개천과 비어 있는 건물들 사이로 유독 사람과 음식의 훈기가 풍기는 곳이 있다. 맛있는 한식 요리와 술 한잔을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찾는구나 싶다면, 그것만이 또또의 전부는 아니다. 언제 와도 환대를 내어주고 다양한 세대의 동료들과 손님들이 느슨하게 연대하기에, 새어 나오는 오붓한 정성을 한 아름 안고 싶은 날마다 우리는 또또로 향한다.
또또는 가족들이 함께 꾸려 나가는 선술집이죠.‘대장’인 윤선 씨가 또또를 소개해 주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또또는 2009년 경기도 평택에서 ‘또또포차’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고 2022년 12월, 서울 연희동에서 다시 이어가고 있는 한국식 선술집이에요. 엄마가 요리를 하고 아빠가 홀을 담당하던 또또포차가 팬데믹으로 문을 닫게 된 게 못내 아쉬워서, 막내딸인 제가 이곳에서 다시 열어보자고 했어요. 감사하게도 많은 사랑을 받은 덕에 일손이 부족해져 삼촌도 모셔왔고, 홀을 담당해 줄 동료 두 명도 들어와 단란하게 꾸려 가고 있답니다.
곧 문을 열 시간이라 모두들 분주해 보여요. 요리의 훈기가 퍼져서 배도 고파지고요(웃음). 또또의 일과는 어떻게 흘러가요?
오후 5시부터 손님들을 만나지만 일과는 이른 아침에 시작해요. 아버지 철균 님이 매일 아침 오토바이를 타고 시장에서 재료를 사 오면, 엄마인 민자 실장님과 삼촌 규동 님이 재료를 손질하고 양념을 준비합니다. 오후에는 접객을 책임지는 든든한 동료 규호, 혜연 님이 출근하고요. 대표인 저는 요리나 주류 관련 업무, 인스타그램과 전반적인 운영을 도맡아 하고 있어요.
호칭 대신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네요?
처음부터 그렇게 하기로 약속했는데 바쁠 때는 귀여운 애칭으로도 불러요. 올바르고 명확한 결정을 해주는 혜연 님은 ‘판사님’, 양념을 빠르게 잘 채워주시는 철균 님은 ‘양념 할아부지’, 또또가 잘 운영되도록 여러 업무를 묵묵히 해주는 삼촌은 ‘엔젤’이라고요. 물론 이보다 더 급할 때는 가족 관계가 먼저 튀어나오지만(웃음), 그 밖에도 사연 있는 호칭이 참 많아요.
그러고 보니 또또의 의미가 궁금해요.
쑥스럽지만 저를 부르던 애칭이었는데요. 윤선이라는 이름보다 입에 잘 붙어 고등학생 때까지도 가까운 가족들은 모두 저를 강아지 부르듯 ‘또또’라고 했어요. 그 유래에 대해선 부모님 의견이 아직도 분분해요. 엄마는 아들을 바라던 아빠가 둘째도 딸을 낳자 “또, 또…또 딸이야?” 하고 말을 더듬었기 때문이라 하셨고, 아빠는 똑똑하고 강아지처럼 귀여워 부른 거라 반론하세요.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생업을 유지하기 위해 처음 포차를 열었을 때 엄마가 인생에 늘 운이 따른다고 여겼던 막내 애칭을 가게 이름으로 쓰면 좋을 것 같다고 하셨죠. 지금은 “또 봐요. 우리”, “또 만나요. 또” 등의 슬로건으로 새로운 의미를 다시 만들어 나가고 있어요.
귀여운 사연이 숨어 있었네요. 윤선 씨는 왜 부모님에게 낯선 동네에서 선술집을 다시 해보자고 제안했어요?
또또포차는 맛깔나게 요리하는 엄마와 유쾌한 에너지로 홀을 운영하던 아빠 덕분에 동네에서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어요. 분점을 내고 연중무휴에 새벽 5시까지 영업하던 호시절도 있었죠. 가세가 기울면서 폐업 소식을 들었을 때 서울에서 머물던 저는 큰 공허함과 상실감을 느꼈어요. 아마 가족들은 더한 마음이었겠죠. 지금 돌아보면 무모한 선택일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내가 부모님의 가장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일을 브랜딩 컨설팅팀 ‘현현’의 대표이자 가까운 친구인 하덕현 대표와 의논하게 되었는데, 또또를 서울로 옮기겠다는 제 결심을 담담히 듣던 덕현은 고맙게도 함께 뜻을 모아 주었어요. 이전 공간의 중심은 그대로 가져오되 깔끔하고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다음 걸음들을 알려주었죠.
맛있는 요리와 정다운 대화들이 기억 속으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새로운 모습으로 재현될 수 있기에, 그 과정이 의미 있었을 것 같아요.
현현의 동료들과 평택에서 같이 음식을 먹고 사진으로 기록하며 서울에서의 시작을 기약했던 날을 떠올리면 아직도 뭉클해요. 현현 덕에 연희동 또또가 부모님에게 상실의 증거가 아닌, 건강한 웃음과 맛있는 음식이 오가는 휴게소로 남게 되었어요. ‘또또’라는 글자를 지붕 아래 웃는 두 사람의 얼굴처럼 표현한 로고도 이때 떠올린 거예요.
평택에서의 나날처럼, 이곳 연희동에서의 나날도 추억으로 쌓일 텐데요. 이 동네를 고른 이유가 있어요?
여기는 제가 사는 곳과 가까워 익숙해요. 아름다운 홍제천과 안산이 있고, 작고 소담한 가게들이 즐비해서 부모님이 터전을 옮겨도 크게 낯설어하지 않고 평안한 일상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여러 세대가 조용하고 자유롭게 모여 있는 동네라 지금의 우리 가족 모습과 닮아 보이기도 했고요. 여기에 20대부터 70대가 함께 어우러진 또또가 뿌리내려 누구든 일주일에 몇 번씩 와도 질리지 않을, 진한 한식과 친근한 술을 내어드리기로 했죠.
윤선 씨를 비롯해 민자, 철균, 규동, 규호와 혜연 님이 합을 맞춰 나간 지 어느덧 3년째죠. 서로의 호흡은 어때요?
각자 잘하는 영역을 존중하고 단점은 채워주는 방식으로 꾸려 나가고 있어요. 어르신 동료들은 오랜 시간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한 전문가니까 그 점을 최대한 존중하고, 이외에 시간이 흐르며 달라진 문화나 일의 감각들은 홀 동료인 규호, 혜연 님과 대화하며 배워가요. 편견 없이 대화하려고 노력하는 어르신들을 홀 동료들이 가족인 저보다 더 따듯한 시선으로 응원하고 지지해 줘요. 또또에서는 늘 어르신들이 주목받지만, 그분들이 유달리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일 할 수 있는 이유는 동료 규호 님과 혜연 님의 남다른 배려와 존중 덕분입니다. 이야기하다 보니 정말 또또가 행운의 이름이 맞나 봐요!
저는 또또에 올 때마다 기본 찬으로 주는 콩나물잡채가 인상 깊었어요. 잡채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잖아요.
맞아요. 가족들이랑 살더라도 특별한 날이 되어야 반찬으로 올라오고 혼자 산다면 더더욱 자주 만날 수 없는 음식인데요. 따듯한 잡채와 볶은 결명자를 끓인 물을 내어드리면 손님들이 대접받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었어요.
맞아요. 정성스러운 찬 덕분에 배고파서 아우성인 속도 달래지고요.
그와 결이 비슷한 마음으로 준비하는 게 제철 안주예요. 봄에는 야채튀김이나 냉이쭈꾸미볶음을, 여름에는 고기 샐러드 같은 미나리수육무침과 늙은 오이로 만든 비빔밥을 드려요. 가을에는 맛있는 횡성 더덕을 굽고 무밥을 짓다가 겨울이 오면 통영 굴을 넣은 보쌈과 전, 우동을 준비하죠.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제철 맞은 재료로 만든 음식을 누군가 챙겨주길 바라는 마음이 숨어 있다고 생각해요. 제철 음식은 맛도 맛이지만 계절을 잘 보내고 있다는 기분이 들게 하니까요. 새 철이 오면 둥글게 모여서 우리만의 ‘안주 품평회’를 하는데, 가족이라고 봐주지 않고 다들 까다롭고 냉철하게 평가한답니다.
그러기에 더욱 애정이 가는 한 접시가 탄생하겠어요. 또또의 대표 메뉴는 뭘까요?
음, 실장님 이름을 딴 ‘민자 부대찌개’요. 민자 실장님 고향인 평택에는 미군 부대가 있어서 일명 ‘미제햄’이라 불리는 소시지와 판고기, 찐득한 체다 치즈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대요. 실장님은 그걸 “수입 코너 3종 세트”라 불러요(웃음). 경기도식 김치 베이스에 수입 코너 3종 세트를 조합해서 잘 익은 김치의 매콤새콤함과 농후한 치즈 맛이 함께 느껴지는, 밀도 높은 김치부대찌개예요.
따끈한 밥과 함께라면 끼니로도 거뜬하겠는데요. 일과를 마친 후라면 술 한잔을 곁들여도 좋겠고요. 또또를 선술집 말고 한식당으로 기억하는 손님도 많다고 들었어요.
제가 또또를 소개할 때 즐겨 쓰는 표현이 ‘한국식 선술집’이라는 거예요. 한국식 선술집은 문턱이 낮은 곳이라 생각하거든요. 술집이지만 자주 드나들어도 좋고 누군가와 함께 가도 되고, 배고프거나 별다른 대안이 떠오르지 않는 날엔 믿고 갈 수 있는 곳이요. 저는 부모님과 떨어져 자취를 오래 했고 바쁘게 직장 생활을 해왔던 터라, 저녁을 챙겨 먹는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해해요. 그럴 때 고민 없이 걸음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그곳이 무어라 불려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한국식 선술집으로 시작했어도 손님들 기억엔 술을 다양하게 파는 식당일 수도, 한식 전문점이나 맛집일 수도 있겠죠. 무어라 정의되기보다 일상에 자연스레 함께하는 식공간이길 바라요. 우리는 매일 이곳으로 오는 분들을 성심으로 대할 뿐이에요.
관계가 완성하는 요리에 대해 들려준 윤선 씨에게 마지막으로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또또의 요리가 완성되기까지 빠질 수 없는 게 있을까요?
무어라 답할까 고민해 봤지만, 결국 떠오르는 건 딱 하나였어요. ‘합심合心’이에요. 우리 동료들이 한마음으로 이곳에 모여주지 않았다면, 각자의 자리에서 온 마음을 다해 임해주지 않았다면 이미 또또는 추억 속으로 사라졌을지도 몰라요. 모두가 서로에게 꼭 맞는 조각이 되어서 정성스럽게 준비한 요리와 술을 손님들에게 내어드리고 있다는 게, 아직도 꿈만 같아요. 앞으로도 또또 가족들은 합심하여 성심으로 여러분을 맞이할게요.
에디터 이명주
포토그래퍼 김혜정, 박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