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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하하프렌즈
“어색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어려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없이 가벼운 사람들도 아니거든요. 그냥 밝은 아이들이 있구나, 그 정도로만 생각하세요.” 요즘 가장 재미있게 일한다는 건축가들, 푸하하하 프렌즈의 사무실을 찾았을 때 나는 뭔가 아차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너덜너덜해질 수도 있겠구나. 그런 종류의 위기감이었다. 직접 내려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데, 아니나 다를까 의미심장한 얘기가 들려왔다. “그런데 커피에서 이상한 맛 느껴지지 않아요? 얼마 전에 세제를 쏟아서.”
우선 호칭을 좀 정리해야 할 것 같아요. 건축가라고 부르는 게 맞나요, 아니면 실내디자이너가 맞나요? 어디선가 보니까 건축사라는 이야기도 있던데요.
한양규 저희는 건축가이기도 하고 건축사이기도 해요. 건축가는 영어로 ‘아키텍트Architect’라고 부르고 건축사는 면허License가 필요한 아키텍트를 말하는데, 저희는 건물을 설계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건축가이자, 시험에 통과한 건축사이기도 한 거죠. 이 두 개의 호칭에 대해서는 얼마 전에 논란이 좀 있었어요. 면허가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를 두고 승강이가 있었던 거죠. 그런데 제가 얼마 전에 라이센스를 땄기 때문에 저희랑은 상관없는 문제예요. 실내디자이너는 아니고요. 아, 잠시만요. (전화를 받으며, 어 한진아 얼른 와. 지금 승재는 택배 기사님이랑 통화하고 있고, 나랑 에디터님이랑 둘이 마주 보고 있는데 첫 번째 질문부터 어버버버하고 있거든? 지금 인테리어디자인 건축사 건축가 이런 질문을 받아서 버법법버 했단 말이야. 빨리 와.) 한진이도 금방 온대요. 아, 제가 원래 애드리브도 세고 말도 잘하는데, 한 번씩 버벅거려요. 그리고 기억상실증이 좀 있어서 이런 세부적인 이야기를 할 때는 조금 조심하는 버릇이 있어요.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거든요.
한승재 (자리에 앉으며) 무슨 뜬금없이 건축사 얘기를 하고 있어?
한양규 호칭을 어떻게 부를지 물어본 거였어.
한승재 그래? 저희는 건축가라고 부르는 게 포괄적인 의미에서 맞는 말이죠.
셋 모두 이름에 ‘한’이라는 글자가 들어가잖아요. ‘FHHH’에도 알파벳 ‘H’가 세 개고요. 의도한 건가요?
한양규 승재가 처음 그 이름을 보여줬을 때만 해도 이니셜을 따온 줄 알았어요.
한승재 의도했던 건 아니었어요. 다만 쉽고 재미있는 이름으로 정하자는 건 있었죠. 후보 중에는 ‘박장대소’나 ‘가슴 건축사무소’도 있었어요.
가슴이요?
한승재 이름에 큰 의미를 부여할 생각은 없었어요. 대신 재미있고 편한 이름으로 정하자고 했는데, ‘푸하하하’가 떠오르더라고요. ‘FHHH’라는 알파벳 배열이 안정감 있어 보이기도 했고요. 일단 그렇게 정해놓고 보니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게 진짜 많았어요. 원래는 처음에 저희가 네 명으로 시작했거든요. 그러다 한 명이 도망갔고, 그 친구 이름에도 ‘환’ 자가 들어가니까 하나 남는 F를 ‘퐌’이라고 발음하기도 했고요. 사실 이름에 대해서는 별생각이 없어요.
한양규 아마 예전 인터뷰에도 이런 대답은 없었을 거예요.
있었던 거 같아요.
한양규 그래요? 알겠습니다. 제가 기억상실증이 있어서.
세 사람은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요?
한승재 우리 이 질문 연습 많이 했잖아.
한양규 저희는 ‘디자인캠프 문박 디엠피’라고 하는, 당시에 제일 핫 한 설계사무소에서 만났어요. 제가 2기였고요. 승재와 한진이가 3기였어요. 거기서 같이 작업을 했던 건 아니었고, 3년 정도 쓸데 없는 얘기하면서 놀았던 거 같아요.
한승재 어쨌든 건축가는 독립을 해야 자기 일을 할 수 있거든요. 언젠가 나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저희는 겁대가리가 없어서 그 시기를 조금 빨리 잡게 되었어요. 3년만 채우고 나가자고 말버릇처럼 하곤 했는데, 아까 ‘F’를 맡았던 친구가 “나 먼저 나갈게! 너희는 안 나와? 겁쟁이냐?” 하면서 회사를 나갔어요. 저희도 그걸 보면서 어쩔 수 없이 나오게 된 거예요. 당시에 저희가 냈던 사표에 사장님께서 ‘멋진 출사표로 성공을 빕니다.’라는 문구를 써주시기도 했죠.
윤한진 (헐레벌떡 뛰어들어와 자리에 앉으며) 우리는 건축가예요!
한승재 야, 한규가 무슨 얘기 하고 있었는 줄 알아? 건축사 협회가 있고 건축가협회가 있고 5년 이상의 실무를 경험하지 않거나 유학을 다녀온 친구 어쩌고저쩌고 그런 경우에는 건축사라고. 건축사협회 건축가 협회. 뭐 그런 얘기를 하고 앉았다. 기조 연설했어.
윤한진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죄송합니다. 그런데 너 머리 안 말랐다?
한승재 자전거를 타고 와서 그래. 그런데 질문이 뭐였죠?
한양규 셋이 어떻게 만났는지 물어보셨어.
한승재 아, 아무튼 그렇게 해서 그만뒀고요. 양규 같은 경우는 우리가 건축사 자격증이 필요했어요. 건축사가 되려면 아까 교육받으신 대로 5년의 실무 기간이 필요했고요. 그런데 마침 양규가 5년을 다 채우기도 했고, 건축사 시험도 한 번에 붙은 거예요. 보통은 서너 번 떨어지고 하거든요.
필요에 의해서 친구가 된 건가요?
한양규 푸하하하. 그거 되게 신선한 발상이네요.
윤한진 그런…셈이죠? 우리가 우정으로 시작하지는 않았지.
한양규 가만있어 봐. 그건 아니지. 우정으로 시작했지. 내가 건축사 못 땄으면 내쫓으려고 했어?
윤한진 그런 건 아니지만, 너의 능력이 분명히 필요했어. 그중 일부가 건축사라는 거지.
그럼 필요에 의해서 만났지만 우정은 나중에 찾은 걸로 이해하도록 할게요.
윤한진 우정은, 지금도 찾아가는 중이라고 보면 될 거 같습니다.
사무소 안에서 각 분야가 정해져 있는 건가요?
윤한진 원래는 두 명의 디자이너와 두 명의 경영팀으로 시작했는데 ‘경영 1’, 그러니까 아까 말한 F가 도망을 갔고요. 그나마 한 명 남은 양규마저 디자이너 선언을 했어요. 그래서 이제는 셋 모두 디자이너로서 똑같은 일을 해요. 사실 양규가 경영을 엄청 잘해서, 2만5천 원이던 월급을 250만 원으로 만들어줬거든요. 그런데 디자이너 역할을 하면서 다시 월급이 안 나오기 시작했어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최근에는 전문 경영인 한 분을 따로 모셨죠. 그런데 아직 출근을 안 하셨네요.
세 명이 모두 디자이너라면 각자 그려내는 설계의 방향이 다를 것 같은데, 일이 들어오면 어떻게 의견조율을 하나요?
한승재 각자의 취향이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가요. 가령 어제는 누가 도면을 들고 와서, 텔레비전 놓을 자리와 소파 놓을 자리가 없다고 하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저는 어쩔 수 없으니 그대로 살도록 조언해 줬고요. 한진이는 한쪽에 돌아가는 벽을 치고 텔레비전을 붙이라고 말하더라고요. 양규한테 따로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뻔해요. “왜 거실에 텔레비전을 둬? 방에 둬.” 뭐 그런 얘기를 하겠죠.
한양규 틀렸어. 그냥 놔, 조그만 거 놔. 그랬을 거야.
한승재 아무튼 이런 건 각자 성향이 다르니 어쩔 수 없는 부분 같아요. 그러다 결국에는 셋 중 하나의 선택이 나오긴 해요. 클라이언트의 성향을 봐서 가장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 일을 맡는 방법이 일반적이에요.
윤한진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하고 있는데요. 가장 최근에 했던 건 ‘슈퍼 위크 제도’예요. 각자 시안을 낸 다음 건축주가 선택하는 설계를 고르는 거죠. 패자부활전이나 슈퍼패스를 거쳐서 최종 진출자를 가리는데, 거기서 떨어진 사람은 잡무를 맡아야 해요.
요즘에는 누가 선택을 많이 받나요?
윤한진 그건 민감한 질문입니다.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사실 저희도 슈퍼 위크 제도는 한 번밖에 안 해봐서 통계를 내기가 어렵네요. 일을 한 번 맡으면 그 일을 타고 또 다른 일이 들어오기도 하고, 저 일을 타고 또 일이 들어오기도 하고, 어떤 일은 다음 일을 못 받는 경우도 있고 그래요.
한양규 다음 일을 못 받는다는 게 설마 내 얘기냐?
윤한진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건축가라고 하면 커다란 프로젝트를 먼저 생각하기 마련일 텐데, 어디선가 ‘동네 건축가’라는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었죠? 동네 건축가가 뭔가요?
한승재 그거 금지어 됐어요(웃음). 저희가 회사에 다닐 때는 커다란 건축만 하다 보니 작은 것에 대한 갈망이 있었거든요. 제 개인적으로 건축이라고 함은 건축가나 행정가보다는 현장에서 나사 조이고 화장실 만들며 실질적인 공사를 책임지는 분들의 디테일이 중요한 것 같아요. 도면을 멋있게 만들어도 공사하시는 분들이 그걸 어떻게 살려줄까 하는 문제가 더 큰 거고요. 그게 동네 건축가로서 역할이었죠. 하지만 언젠가 프로젝트 하나를 하면서 느낀 건, ‘건물은 클라이언트의 바람을 넘어서기 힘들다’는 거였어요. 아무리 작은 디테일이어도 건축이나 디자인에 큰 의식이 없는 분들은 ‘디자인 비용을 따로 줘? 이런 도둑놈들.’ 하는 생각을 하시거든요.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디자인을 강요할 수 없다는 게 지금의 생각이에요.
하긴 평생에 한 번 자신의 공간을 디자인할까 말까 한 사람들에게 디자이너의 건축은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도 같아요. 그게 건축가에게는 디자인적 요소를 발휘하기 힘든 요인이 된다는 이야기인 거죠?
한승재 우선 디자인적 요소를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지금 앉아있는 우리 사무실의 디자인이 엄청 잘 됐다고 생각하거든요.
아! 진심인가요?
한양규 푸하하하.
윤한진 핫핫핫핫.
한승재 단지 청소가 안 되어있을 뿐인 거예요.
윤한진 이 사무실은 이제껏 저희가 했던 디자인 중에 제일 힘들었어요. 셋의 요구를 모두 충족시켜야 하는 디자인이 쉽지 않거든요. 이사하면서 면적이 네 배나 넓어졌는데 책상 사이즈는 똑같아요. 그런데 이런 얘기를 왜 한 거지? 아, 저는 큰 책상이 갖고 싶어요.
한승재 지금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디자인이 건축가의 디자인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어. 디자인에 대한 철학이 분명하게 서지 않은 분들은 눈에 띄는 요소들이 곧 디자인의 전부라고 생각을 하세요. 어딘가에 포인트 주는 걸 좋아하고 가시적인 디자인을 많이 추구하시죠. 실제로 “뭐 한 거야 도대체?” 그런 말을 들었던 적도 있었어요.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면, 푸하하하 프렌즈가 건축을 하며 담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어떤 철학이 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윤한진 너희들 그거 알아? 이번 인터뷰 진짜 어렵다. 얘들아 조심하면서 대답하자.
한승재 건물은 따뜻해야 하고, 편리해야 하고, 안전해야 한다는 기능적인 면들, 그러니까 건축가의 기본적인 소양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되 각자가 추구하는 것들이 조금씩 달라요. 각각의 철학이라면…. 그건 한진이가 먼저 얘기해볼까?
윤한진 어? 나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데. 그럼 양규 먼저 얘기해볼래?
한양규 콜록콜록.
한승재 이거 먼저 말하는 사람이 임자 같아. 그럼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첫 번째로는 이상적인 것을 제시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항상 조금 앞을 내다보며 개인과 사회의 미래를 제시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요. 그건 사회적인 건축가로서 역할이에요. 단순히 작은 주택으로 한정 지어 생각해보자면 공간의 동선마다 시놉시스를 생각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싶은 거예요. 못 느끼셨겠지만 이 사무실은 회의실을 지나고 음악 감상실을 지나서 사무실로 가잖아요? 어, 저는 여기까지만 할게요.
윤한진 그럼 이쯤에서 제가 한번 도전해볼게요. 사실 뭔가 개인이 추구하는 방향을 누군가에게 제시한다는 것은 배려와 오만 사이의 미묘한 줄타기인 것 같거든요. 그래서 사실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제가 하고 있는 게 클라이언트를 위한 배려인 건지, 정말 내 공간을 만들고 싶은 욕망의 결과물인지 말이에요. 하지만 제가 아직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끊임없이 부딪히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에요. 산속에 들어가서 도를 닦는다고 훌륭한 어른이나 건축가가 되는 건 아닌 것 같거든요. 자 양규가 그다음을 이어가 봐.
한양규 건축은 삶을 다루거든요. 우리가 만든 공간에서 사람들이 살잖아요. 때문에 공간의 만듦새에 따라서 사람들의 삶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해요. 누군가 공간을 “네모로 해주세요.”라고 요구한다고 해서 획일화된 네모로 디자인하지는 않는다는 거죠. 어떻게 하면 더 풍성한 네모가 될 수 있을까, 한 번 더 생각을 하는 거죠.
윤한진 물론 예쁘고 아름답게 공간을 그려주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달라요. 우리는 단지 기반을 다져줄 뿐이고 그 안을 채우는 건 실제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몫이겠죠.
하나의 목적만 고집하는 게 아닌 거네요.
한양규 땅이 다르고 사람이 다르니까 매번 목적이 달라질 수 있는 것 같아요. 저희는 어떤 스타일을 추구하거나 연출하는 일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어요.
매번 새로운 디자인을 위한 영감은 어디에서 받는 편인가요?
한양규 저는 이 두 친구에게 영감을 받아요. 유일하게 인정하는 친구들이거든요.
윤한진 영감이라는 것은 무엇을 새로 만들기 위해 산에 들어가거나 어떤 특별한 일을 경험해야만 얻을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고, 그동안에 살아온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일 같아요. 양규의 디자인을 보면 우직하면서도 강단이 느껴지고, 승재는 자유롭고 편안한 느낌이 많이 들어요. 우리가 살아온 과정을 솔직한 우리만의 어휘로 표현하는 셈인 거죠.
한승재 영감을 어떤 식으로 얻는지는 다만 추측해볼 뿐인데요. 양규는 클라이언트와의 대화를 통해 주로 얻는 것 같고요. 한진이는 건축 도면 그 자체에서 받는 것 같아요. 어때? 맞아? 나 잘하고 있나?
한양규 나는 너희 둘한테 받는다니까.
한승재 아니야, 너는 건축주한테 받는 걸로 쓰자.
윤한진 저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해서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패턴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요. 그래서 주로 원초적인 것을 좋아하는데, 원초적이라는 것은 순수한 기하학과 관련이 있어요. 무게와 질량의 관계라든지, 속도와 속력, 원초적인 힘에 대한 고민, 순수한 도형 같은 것에 끌리죠. 평면을 그리더라도 완벽한 질서라던가 비례에 대해 늘 고민해요. 도면 속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드러났으면 하는 욕심이 있는 거죠.
한승재 아, 생각났다. 저는 매번 바뀌는 거 같아요. 예전에 ‘오프레’라는 레스토랑을 디자인했을 때는 에드워드 호퍼 그림의 분위기를 떠올려봤어요. 그림의 밀도와 질감을 구현해보고 싶었던 거죠. 디저트 카페 ‘옹느세자메’의 경우는 음악으로 통했던 거 같아요. 펑키한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루브 타기 좋은 공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푸하하하 프렌즈의 과거 프로젝트를 보면 약국이나 카페에서부터 ‘흙담’ 같은 큰 프로젝트까지 범위가 상당히 넓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승재 농구를 예를 들어보면 어렸을 때 가드 하던 애가 키가 커서 센터하고 그러기도 하잖아요. 그러면 올 라운드 플레이어가 되거든요.
한번 큰 작업을 맡고난 다음 작은 일로 돌아가기 쉬운가요?
한양규 흙담 같은 프로젝트를 하다가 인테리어 작업이 들어오면 보통은 꺼릴 수도 있겠지만, 저희는 규모 같은 건 별로 신경 쓰지 않았어요.
한승재 장 하나를 짜는 작은 프로젝트여도 별로 개의치 않는 편이에요. 우리가 장을 하나 잘 짜면 그걸 사용하는 한 사람의 인생을 즐겁게 만들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는 거죠.
윤한진 그래, 잘하고 있어. 부정적인 대답은 싹 지우자. 밝음을 최대한 드러내는 걸로.
한양규 특별히 이상한 경우가 아니라면 무서워하거나, 우리가 할 일이 맞는지 아닌지 그런 얘기는 잘 안 하는 거 같아요. 재미있겠다 싶으면 시작하는 거죠.
윤한진 오늘 양규 쪽에서 정답이 잘 나오는 거 같네. 차분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반복적으로 들어가는 단어가 ‘재미’인 거 같아요.
한양규 맞아요. 재미가 있어야 해요. 어찌 됐건 우리가 재미있어야 사용하는 사람도 재미있다는 생각이 있어요.
윤한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안 끌리는 거 같아요. 수납장을 하나 짜는 일이라도 왠지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 달려드는 거죠. 사실 분야와 상관없이 재미있을 것 같다고 하면 영화도 찍을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영화를 만들고 싶은 건가요?
윤한진 배우, 배우도요.
한양규 배우 쪽은 아니지. 난 조감독 할게.
한승재 난 배우 할래. 감독이 제일 피곤한 거야.
뜬금없지만 재미있을 거 같아요. 세 친구가 나오는 영화라면.
한승재 ‘영화배우가 되고 싶은 야심 찬 포부도 있다.’ 그렇게 나오는 거 아니야?
윤한진 아, 그렇지. 안 되겠다. 그럼 이건 빼주세요. 아닌가? 모르겠어.
다시 건축 얘기로 돌아가자면, 흙담으로 상을 받기도 했잖아요. 선정 이유가 뭔가요?
윤한진 여기 정답이 있어요. ‘작품 의도에 맞는 콘크리트 블록을 직접 디자인, 제작, 시공해가는 건축가와 건축주 그리고 시공자의 열정과 완성에 대한 노력. 다양한 기능의 공간을 한 건물 속에 잘 집적시키고, 그를 구현해내는 재료의 사용 등이 다른 작품들과 차별성을 인정해 대상으로 선정했다.’라고 블로그에 쓰여있네요. 저는 이 열정이라는 단어가 진짜 중요한 거 같아요. 실제로 요즘 시대에 결여되어 있는 단어라는 생각도 들고요.
흙담에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사진으로 봤을 때, 벽 사이로 빛이 들어오는 복도가 참 멋지더라고요. 그 블록들을 하나하나 다 직접 만들었다고요.
윤한진 사실 처음부터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요. 공장에 맡기고 싶었는데 다 거절을 하니 직접 만들 수밖에요. 얼마 전에는 그 블록을 두고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에서 전시 제안을 해왔어요. 한 번 열정을 쏟으니까 뭔가가 계속 따라오는 거 같아요.
한양규 건축주와 시공사가 도와줬으니 가능한 일이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가장 애착이 가는 공간을 하나씩 꼽을 수 있나요?
한양규 자기가 한 거는 빼고 얘기하자. 누가 먼저 말할래? 가위바위보 할까?
한승재 아무래도 자기가 한 게 가장 애착이 가지 않을까?
윤한진 그래, 남의 집 강아지가 귀엽기는 해도 자기 강아지가 최고니까.
한승재 한진이는 흙담이지 뭐. 그 노력과 시간과 정성을 쏟았는데.
윤한진 또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흙담이에요. 옥상에 심은 풀은 얼마나 자랐을까. 이 날씨에 이 시간이면 빛이 어떻게 떨어질까. 매 순간 궁금한 공간이죠.
한양규 그러고 보니까 나는 ‘꼭대기 집’이 떠올라. 당시에 예산과 공사 일정이 잘 안 맞다 보니 그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 그야말로 온몸으로 일했거든요. 협력업체와 건축주, 저희까지 모두가 직접 부딪혀서 마무리할 수 있던 프로젝트였어요. 모두가 시발시발 욕을 했지만 어쨌든 잘 끝내야겠다는 공통의 목표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어요.
한승재 저는 옹느세자메예요. 인테리어 하면서 콘크리트를 들이부었거든요. 아마 가게 빼려면 엄청 힘들 거예요. 옹느세자메는 설계하는 동안에도 내적 갈등을 많이 했던 프로젝트인데, 당시에 클라이언트가 저를 백 프로 신뢰했거든요. 그게 자유롭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이 컸어요.
예전에 옹느세자메 대표님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꼭 푸하하하 프렌즈의 이름을 함께 말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던 게 기억이 나요. 함께 만든 공간이었다고요. 그렇게까지 클라이언트의 신뢰를 받는 푸하하하 프렌즈는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했던 거 같아요.
한승재 그럼 앞서 제가 했던 얘기들을 조금 더 좋게 써주셔도 좋을 거 같아요.
한양규 다른 고객의 경우는 말 그대로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구했다면 옹느세자메는 파트너로서 함께 이야기하기를 원한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윤한진 보통 저희가 긴장을 잘 안 하는 편인데 옹느세자메와의 미팅 때는 항상 긴장을 했던 거 같아요. 위험하고 저돌적인 디자인을 가져가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그걸 어디까지 수용을 할 수 있는지가 곧 클라이언트의 역량일 텐데, 당시에 옹느세자메 관계자분들은 많이 열려있었던 것 같아요.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것과 리모델링 하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한양규 저희는 공간을 만들 때 전체적으로 어떤 모습일지 바꾸는 과정을 좋아해요. 그런데 리모델링은 단단한 것들을 놔두고 최소한의 것들만 바꾸는 과정이다 보니 화가 많이 나는 거죠. 하지만 나름의 매력이 있어요.
한승재 리모델링을 쉽게 생각하면 이런 거예요. 어떤 여자애가 있는데, 쟤는 안경이랑 머리만 바꾸면 예쁠 거 같은데? 하는 생각을 하는 거죠. 모든 건물이 다 재미있는 건 아니고 몇몇 고치면 재미있을 것 같은 건물이 있어요.
낡은 포장을 벗겨내고 새로운 옷을 입혀주는 기분인 거네요.
한승재 지금 우리가 앉아있는 사무실처럼요.
준비해 온 질문은 많은데 수다 떨다 보니까 벌써 두 시간이 훌쩍 지났어요. 제가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은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한승재 지금 제일 일찍 끝나는 거 같은데.
윤한진 진짜 빨리 끝났다.
아직 안 끝났어요.
한양규 푸하하하.
한승재 원래는 다리 절면서 나가거든요. 게다가 오늘은 남자분이 오셔서 대답을 충실하게 하는 편이에요. 여자분이면 끼 부리는 게 한 삼십 분 됐을 거예요.
자, 그럼 다시 질문할게요. 홈페이지에 억만이가 누구인가요?
한양규 제 아들 태명이었어요. 태명이 세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만’ 자의 어감이 유난히 강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생각을 한 게 첫째는 억만이, 둘째는 덕만이, 셋째는 복만이.
윤한진 ‘억만아, 아빠는 그렇다’라고 시작하는 글들이 있잖아요. 거기에 이 친구의 모든 게 다 담겨있는 거예요. 아들을 위해서 아빠가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정의로운 사회에서 살아가게 해주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니, 소주 한잔 마시고 푸념을 하는 거지.
구룡마을에 다녀와서 쓴 글도 봤어요. 허물어져 가는 판자촌을 다녀와서 쓴 글이었던 거 같은데, ‘거창하고 폼 나는 거 그런 거 말고 작은 거 하나씩 해볼게. 억만이가 커서 이 글을 읽고 같이 대화할 수 있을 때 내가 만약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귀싸대기 한 대 갈겨줘!!’라고요. 지금은 어떤가요? 억만이의 손바닥이 필요한가요?
한양규 그건 개인적으로 10년 후의 일을 생각한 거라 아직은 맞을 때가 아니에요. 먹고사는 일에만 치중하지 말고 사회의 어두운 점을 만져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죠. 지금도 마음은 같아요.
그런가 하면 ‘싸움의 역사’라는 글에서 ‘순수한 맹목 상태’라고 표현했어요. 그건 무슨 뜻인가요?
윤한진 그건 제가 쓴 글이에요. 건축가는 다양한 영역을 코디네이팅 해야 하거든요. 벽을 하나 세우고 싶다고 한다면 법규도 검토해야 하고, 설비도 확인해야 하고, 이웃과의 관계도 조정해야 하고, 재료도 정해야 하고, 비용이 얼마이며, 시공은 누가 할 것인지, 그런 게 다 건축가의 역할이라는 거죠. 그런데 그렇게 심각하게 하면 재미가 없으니까 모든 조건들을 거두고 완전히 비물질적으로 상상해보는 거죠. 스톤헨지나 스핑크스 같은 비현실적인 공간을 현실에서 구현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 보는 거예요.
실제 건축에 응용한 예가 있나요?
한양규 글쎄요. 지금은 수익에 의해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애매하기는 해요. 내가 이상적으로 하고자 하는 것과 클라이언트의 요구가 정확하게 일치하는 경우는 드물거든요.
윤한진 ‘하나의 재료로 이루어져 있는 공간’을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실제로는 바닥과 벽, 천장의 재료가 달라야 하거든요. 또는 완전히 외부 같은 실내라든지,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목적 자체가 결과물이 되는 방법도 있을 거 같아요. 어느 정도 적정에서 타협이 되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옹느세자메라면 그 응용의 한 예로 볼 수 있겠네요.
그렇다면 순수한 맹목 상태라는 게 결국에는 발상의 전환이라는 말로 바꿔 말할 수 있겠네요.
윤한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한양규 그럼 옹느세자메가 적당하겠다.
한승재 근데 우리가 지금 무슨 얘기하고 있는 거야?
윤한진 싸움의 역사 얘기하고 있었어.
한승재 싸움의 역사가 옹느세자메로 어떻게 연결된 거지?
한양규 얘, 졸았어.
한승재 어! 나 갑자기 생각났어. 그런 공간이 있다. 거기 ‘뮤지엄 산’에 그 친구가 한 거.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 전시가 그런 식이야.
윤한진 오, 맞아. 제임스 터렐! 근데 형한테 친구라고 하는 건 좀 그렇지 않냐?
한승재 그러니까 순수한 맹목 상태라는 건 무언가를 위한 건축이 아니라 그냥 건축 그 자체를 말하는 거예요.
목적으로써의 건축이요?
윤한진 건축 그 자체. 많은 걸 포괄하는 게 아니라, 공간 그 자체를 만든다는 의미예요.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은 어떤가요?
윤한진 그런데 그건 목적이 있긴 하잖아요. 그렇죠? 그렇지만 역시 건축은 목적이 있어야 멋있어져요.
한양규 한진이가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야? 목적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가 목적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가. 앞뒤가 안 맞잖아. 나는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왜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거냐고. 우리 완전히 망했어.
윤한진 양규는 기승전결이 있어요. 재미없어. 아무튼 정리를 해보자면 조금 더 순수에 가까운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였어요.
‘Draw you your-home’이라는 프로젝트는 뭔가요? ‘가슴속에 품고 살 집 한 채’라는 부제를 갖고 있기도 하던데요.
한양규 ‘집을 그려드린다’라는 프로젝트예요. 그것도 저희가 이제까지 이야기했던 것들과 비슷한 맥락인 거 같아요. 저는 계속 대중들하고 건축가가 동떨어져 있는 것에 대해서 불만이 좀 있었어요. 건축가는 뭔가 어려운 얘기를 하고, 폼을 잡고, 사회와 동떨어져 있고, 그들만의 세상을 만든다는 느낌이 강했거든요. 현실적으로 봤을 때 보통 가진 돈에 맞춰서 공간을 정하는 게 대부분일 텐데, 그렇게 상상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할 수 있다는 게 저희에게는 의미 있었던 거죠.
단지 상상뿐이라 해도 꿈꿔오던 것을 구현해서 책상 앞에 붙여놓으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아요.
한양규 그래서 더욱 말도 안 되게 그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윤한진 저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그려요. 굉장히 치열해요.
한승재 저는 어디까지 깝칠 수 있을지 생각해요.
한양규 어떤 집 갖고 싶어요? 물어보니까 “존나 큰 집이요.”라고 대답하더라고요. 그래서 존나 큰 집 그려줬어요.
윤한진 수위실 만들어서 저를 키우고 싶다고 하셔서 저를 그려 넣기도 했고요.
그럼 이따가 저도 하나만 그려주세요.
한승재 그럼 일단 먹을 좀 갈아놔야겠네.
건축을 제외하고 요즘 가장 흥미를 끄는 게 뭔가요?
한양규 저는 없어요. 저는 살면서 단 한 번도 그런 게 없었어요.
윤한진 저는 와이프요. 정말로 관심이 많아요. 같이 살아간다는 것.
한양규 야,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뭐가 돼.
한승재 살면서 내가 제일 재미있었던 일이 뭐였나, 생각해보니까 세 개가 떠오르더라고요. 농구하고 주짓수하고 다이빙이요. 몸 쓰는 건 참 재미있는 거 같아요. 그중에서도 주짓수는 마치 헤엄치는 거 같아요. 자, 보세요. 이렇게요. (돌바닥에서 허둥지둥 대면서 주짓수를 하기 시작한다) 사람한테 눌려 있다가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서 빠져나오는 게 재미있어요. 뱀이 된 기분?
윤한진 저는 불 보는 거 좋아해요.
한승재 아까 아내 얘기 취소하고 바꾼 거지?
윤한진 아니 그건 평생의 관심거리고, 최근에는 불 보는 걸 좋아한다는 거지.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지만 이번 경우가 유난히 재미있는 거 같아요. 정신이 없기도 하고요. 푸하하하 프렌즈는 언제까지 재미있을 예정인가요?
한양규 셋이 함께 여행할 수 없을 때까지? 저희는 일할 때는 되게 싸우고 여행을 가면 하나도 안 싸우거든요. 여행만 함께 갈 수 있다면 우리는 계속 즐거울 거 같아요.
웃음 에너지를 유지하는 동력이 있을까요?
한승재 현실에 부딪히는 과정 자체가 에너지인 거 같아요. 우리가 만약에 떼돈을 벌어서 한 사람당 1억씩 챙겨 가면 회사에 잘 안 나오겠죠.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 해서든 다음 달 월급을 받아가야 하니까요.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 그런 느낌인가요?
한승재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배고팠어요. 뭘 먹어본 적도 없어요. 여기 히터도 없고 에어컨도 없잖아요. 양규는 목도리도 안 풀어요.
윤한진 저는 미래의 우리 모습이 궁금하긴 해요. 우리가 어디까지 될 수 있는지.
푸하하하 프렌즈 각자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
한승재 좋은 대답이 하나 떠올랐어요. 저에게 집은 우주의 중심이에요. 특히 제 방, 제 책상 앞에 앉으면 우주의 중심에 있는 기운이 느껴져요. 모든 게 제 위주잖아요. 달이나 해도 다 저를 중심으로 돌고, 차들도 제 주변으로 다니고.
한양규 저에게 집이란 신발을 벗을 수 있는 곳이에요.
윤한진 집은 보관창고예요. 여행지 호텔에 묵으면서 그곳이 내 집과 뭐가 다를까 생각했을 때, 집 안 가득 쌓여있는 저의 물건들이 가장 먼저 떠오르더라고요. 그것들이 곧 내 집임을 증명해주는 거니까. 저의 집은 곧 윤한진 인간 기록 보관소인 거죠. 그 안에 있어야 안심이 돼요.
자신의 집 안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공간이 있나요?
한승재 저는 햇빛이 들어오는 창문이 제일 좋아요. 반짝반짝한 아침 햇빛도 좋고, 일정 시간이 되면 앞집 지붕 때문 색깔로 방 전체가 빨갛게 물들기도 하고요. 그런 게 너무 좋아요.
윤한진 우리 집 소파에 앉으면 왼쪽 책장에 제 기록물이 있어요. 오른쪽에는 마당이 다 보이는 커다란 창이 있고요. 정면에는 제가 십 년 동안 모은 책이 있어요. 어떤 집을 살든지 항상 같은 배치예요. 그런데 뭔가 항상 부족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내가 들어오면서 공간이 완성됐어요.
한양규 푸하하하. 그래 잘하고 있다. 저는 네 식구가 모여 사는 집 안 어디든 다 좋아요. 밥 먹을 때도 좋고, 거실에서 함께 있는 모습도 좋고요. 가장 좋은 건 넷이 함께 자는 침실이에요. 공간은 좁지만 그곳에서 아이 둘과 아내와 모두 함께 잘 때 가장 행복을 느껴요.
오늘 각자의 토크 점수를 매긴다면요?
한승재 양규가 95점이고요, 한진이가 32점, 제가 60점이에요.
한양규 뭐야, 네가 왜 60점이야. 제가 보기에는 한진이가 31, 승재가 32예요.
그들은 나의 상상 속의 집을 그려주기로 했다. 몇 가지 질문을 했고, 하얀 종이 위에 그 대답들을 적었다. 그리고 얼마 후 책상 앞에 붙여둘 집 세 채가 완성됐다.
푸하하하 프렌즈가 질문하고
에디터 김건태가 대답하다
좋아하는 영화가 뭐죠?
가이 리치 감독의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Lock, Stock And Two Smok*ing Barrels>예요.
번잡하게 꼬이고 얽힌 도심 속이 좋은가요. 아니면 그걸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이 좋은가요?
위에서 내려다봤으면 좋겠어요.
키우는 강아지 얘기를 해주세요.
쪼꼬와 몽이, 요크셔와 푸들이에요.
여성 편력은? 스타킹을 보면 좋아한다거나.
네? 특별히 그런 건 없는데. 있어도 말하기가 좀….
3~40년 뒤에 살 집을 떠올리면 집 안에 누가 있을 거 같은가요?
부인이 있지 않을까요? 어떤 얼굴일지는 떠오르지 않네요.
혹시 집을 소유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나요?
사실 제가 여행을 좋아하는 편인데, 여행을 떠나기 전에 방을 정리하는 편이에요. 책상 위의 물건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 다 집어넣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깨끗한 공간에서 다시 출발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거든요.
죽을 때 어떤 모습이었으면 하나요?
아주 편안한 1인용 소파에 앉아있을 것 같아요.
혼자라는 냄새가 되게 많이 나. 개인적이고 단독적이지는 않은데, 혼자라는 색깔이 되게 많이 느껴져.
아….
어떤 집을 상상했었는지?
선으로만 이루어진 딱 떨어진 스타일 좋아해요. 최소한의 가구만 둔다면 좋겠고요. 큰 책상과 큰 창문. 목욕탕 욕조 위에는 구멍이 뚫려있다면 좋겠어요.
여행을 좋아하나요?
사실 그런 걸 상상하기도 했어요. 독일에서 2년, 일본에서 1년, 모로코에서 3년. 특별히 저의 홈그라운드를 두지 않는 삶이요.
당신은 히피인가요?
정리하는 걸 좋아해요. 저는 아닌데 사람들은 그런 이미지를 조금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남들이 보는 게 진짜 자기 모습일 수도 있죠.
윤한진 소장의
‘잊고 지내던 삶을 되돌아봐요’
이 집의 특징은 첫 번째 집을 살다가 마음에 안 들면 문을 닫아요. 다음 집으로 가면 돼요. 또 닫아요. 또 닫아요. 여기에 길게 이어진 길은 여행을 하는 부분이에요. 그렇게 삶의 기록이 계속 쌓여요. 죽을 때는 저 위 소파에 앉아서 내가 살아온 과정을 쭉 보는 거예요.
한양규 소장의
‘묘한 집’
(종이를 구겨서 바닥에 던진다) 아, 난 안 나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묘했어요. 한쪽에 치우친 느낌은 아닌데 그렇다고 어정쩡하지도 않고, 아무튼 굉장히 묘해서 완성을 못 하겠어요. 아, 왜 안 왔지.
한승재 소장의
‘길 위의 집’
오랜만에 집중했어. 길 위에 사는데 히피는 아니에요. 바지는 안 그렸어요. 인물의 자세를 보면 ‘약간’ 편한 느낌이 있죠. 자유를 완전히 만끽하는 표정도 아닌 거예요. 반쯤의 자유. 머리가 노란 건 왕자의 우아한 느낌을 살렸어요.
에디터·포토그래퍼 김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