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여자들의 서점

Movie & Book

두 여자가 한적한 골목에 서점을 차린다. 시대도 나라도 다르지만 그들이 마음속 깊이 품고 있는 것은 같다. 책에 대한 사랑, 그리고 용기.

작년에 나의 편집자 친구가 일산의 한 골목에 작은 서점을 열었다. 첫 에세이집을 함께 만들면서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가까워진 그와 나는 이제는 일로 만나는 사이가 아닌 진짜 친구가 되었다. 그리하여 회사를 그만두고 서점을 하겠다는 그의 말에 머리에 띠라도 두르고 말려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으나, 망한다고 해도 한 번쯤은 해보고 싶다는 굳센 의지에 나는 끝내 박수를 쳐줬다. 

요즘 같은 시대에 서점이 웬 말인가.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사실 나도 잘 안 읽는다.) 한때는 밀리언셀러들이 분명 존재했고,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라는 캠페인도 했는데, 오히려 그런 슬로건이 책을 더 멀리하게 만든 게 아닐까 의심스럽다. ‘영화를 봅시다! 게임을 합시다! 여행을 갑시다! 술을 마십시다!’라는 말은 하지 않으면서 책은 꼭 읽으라고 윽박지르니 책이 더 꼴 보기 싫어진 게 아닐까? 책을 읽는 자들 특유의 고매한 태도와 말투가 책과 친해지길 거북하게 만든 건 아닐까? ‘책 절대 읽지 마! 책 읽으면 가만 안 둬!’라고 하면 오히려 읽고 싶어지지 않을까? 잘 모르겠다.

이런 시대에 나는 책을 쓰고 산다. 책을 써서 버는 돈은 그냥 인생의 보너스, 하늘이 내게 주는 용돈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 정도로 보잘것없다는 뜻이다. 책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는 건 소수의 베스트셀러 저자를 제외하고는 미션 임파서블이다. 이렇게 책이 안 팔리는데, 이렇게 책을 안 읽는데, 왜 굳이 책을 쓰고 있나, 고민할 때도 있다. 그러다가도 ‘아니야’ 이런 고민은 나 말고 출판사 사장이 해야지.’ 하고 무책임하게 떠넘겨 버린다.

 

소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뒤늦게 읽었다. 이렇게 책이 안 팔리는 시대에, 그것도 신인 작가의 꽤 두꺼운 소설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으로도 모자라 전 세계에서 사랑받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럼에도 문학계에서는 별달리 언급이 되지 않는다는 점도 놀라웠다. 그래서 한번 읽어보기로 했다. 왜 이 책이 이렇게 많이 읽혔는지.

누군가 삶의 어느 시점에 꿈을 꾸듯 동네 서점을 연다. 1년을, 아니면 2년을 운영하다 꿈에서 깨듯 서점을 닫는다. 뒤를 이어 또 누군가가 꿈을 꾸듯 서점을 열고, 그렇게 계속 서점이 늘어나는 가운데, 서점을 한때 꾸었던 꿈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함께 늘어난다.

― 황보름,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중에서

회사를 그만두고 이혼까지 한 영주는 어느 주택가 골목에 ‘휴남동 서점’이라는 작은 서점을 차린다. 한때 지독한 일중독이던 그는 마음의 병을 앓다가 결국 모든 것을 버리고 서점의 주인이 되기로 한 것이다. 꿈을 꾸듯이, 2년쯤 버티다 문을 닫게 되지 않을까 하고, 그냥 책 속에 파묻혀 책이나 읽고 싶어서. 시간이 흘러 영주 홀로 지키던 서점에 바리스타 민준이 합류하고, 단골손님이 하나씩 늘어나기 시작한다. 그들 모두에게는 이 경쟁 사회에서 휩쓸리고 버티며 얻은 피로가 누적되어 있다. 그리고 휴남동 서점은 그들의 해진 마음을 달래는 치유의 공간이 되어간다.

서점을 연 첫날, 서점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본 순간, 영주는 자기가 벌인 모든 일의 무게가 비로소 느껴져 울었다. 그렇게 매일 울고불고하면서 책을 들여놨고, 손님을 맞았고, 커피를 내렸다. 어느덧 정신을 차리고 났더니 휴남동 서점을 찾는 손님이 조금씩 늘고 있었고 영주는 중학생 시절처럼 매일 책을 읽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파도에 떠밀리듯 정신없이 떠밀려온 끝에 다행히, 영주는 자신의 마음에 꼭 드는 곳에 도착해 있던 거였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중에서

꽤 두꺼운 분량의 소설을 후루룩 다 읽고서 마지막 장을 덮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역시 사람들은 책을 읽고 싶어 해!’ 희망이 생긴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책을 읽고 싶어 한다. 이렇게 책 안 읽는 시대에도 사람들은 긴 이야기에 푹 빠져들고 싶어 한다. 책 속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책 속 사람들의 인생에서 나의 인생을 살아갈 갈피를 찾고 싶어 한다. 우리가 궁금해하는 것은 언제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니까. 

책과 나, 둘만의 세계에 파묻히고 싶어 한다. 다만 그럴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고 독자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끌어 친절하게 이끄는 책을 아직 만나지 못했을 뿐이다. 아마도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가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은 것은 그런 기대와 바람을 충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가 단순하고 투박해서 좋았다.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좋은 소설이었다. 하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끌고 나가는 것은 보통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닌데,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작가에게 경외심도 느꼈다.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도 군데군데 생각해 볼 만한 거리들을 배치한 것도 좋았다. 무엇보다 시작할 때보다 끝날 때가 더 좋았다는 것이 이 책에서 가장 칭찬할 만한 부분이다. 그건 진짜 어려운 일 아닌가?

영화 〈북샵〉(2020)은 내 편집자 친구처럼, 휴남동 서점의 영주처럼 혼자서 서점을 연 한 중년 여성의 이야기다. 세계대전이 끝난 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영국의 어느 섬마을에 전쟁 미망인인 플로렌스가 도착한다. 플로렌스는 버려진 채 다 허물어져 가는 낡고 오래된 집을 사서 서점을 차린다. 서점 이름은 ‘올드 하우스 북샵’. 서점 주인이 되는 것은 그의 오랜 꿈이었다. 그래서 건물 밖에 크게 간판을 달고 주문한 새 책들을 책장에 하나씩 꽂아 넣을 때, 플로렌스는 행복했다. 그러나 그게 서점을 연 이후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내레이션이 그가 앞으로 겪을 난관들을 짐작케 한다.

스마트폰과 유튜브가 없던 시대에도 사람들은 먹고살기 바빠 죽겠는데 누가 책을 읽겠느냐고 한다. 마을에서 책을 읽는 유일한 사람은 낡은 대저택에 사는 홀아비 브런디시다. 누구와도 소통하거나 교류하지 않는 브런디시는 플로렌스의 서점으로 쪽지를 보내 새 책 몇 권을 보내달라고 한다. 그가 서점의 첫 손님이 된 것이다. 곧 똘똘한 소녀 크리스틴이 방과후에 이 서점에서 일하고 싶다며 찾아온다.

플로렌스는 브런디시와 책과 쪽지로 소통하고, 크리스틴과 우정을 쌓아간다. 그러나 그들을 제외한 마을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이 서점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심지어 부유하고 발 넓기로 유명한 사교계 인사 가맛 부인은 원래 이 집에 아트센터를 열 계획이었다며, 온갖 방법을 동원해 플로렌스를 내쫓으려 한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서점을 지켜 나가던 플로렌스는 결국 가맛 부인이 시의회에까지 뻗친 마수 때문에 낡은 집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런 고난에도 불구하고 플로렌스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상처받고 절망하기는 하지만, 그는 끝까지 부드럽고 선한 태도와 침착함 그리고 기품을 잃지 않는다. 부드럽고 선하고 침착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단단한 마음이, 그러니까 용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브런디시와 크리스틴이 플로렌스에게서 가장 높이 사는 면도 이런 용기다. 혼자 이 텃세 심한 시골 마을에 서점을 차릴 용기, 그 서점을 꾸려나갈 용기, 가맛 부인의 공세에도 굴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하는 용기, 결국 실패하고 포기할 용기.

“…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예요.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 고민을 하게 될 거라는 거요. 서점을 안 하고 다른 일을 하더라도 고민은 생길 것이고, 또 그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하면서도 고민은 하게 될 것이라는 거죠. 결국 이거예요. 나는 어떤 일을 하면서 고민을 할 것인가. 저는 아직까지는 서점을 운영하면서 고민을 계속해보자, 하고 생각하고 있어요.”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중에서

내 편집자 친구의 서점 이름은 ‘스테디 슬로우 북스’다. 꾸준히, 천천히. 참을성이 많고 진득한 성향의 그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서점을 꾸준히, 천천히 꾸려나가는 일은 분명 쉽지 않겠지. 그러나 꾸준히, 천천히가 아니라면 대체 무슨 일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아아, 장사라는 것은 얼마나 낭만적이고 또 얼마나 지독한 일인지. 손님이 들지 않는 가게에 앉은 사장의 마음은 지옥이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그래서 누구라도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을 꾸려나간다는 것은 생각처럼 아름다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아무쪼록 내가 아는 모든 서점들이 오래오래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그 서점의 사장들이 책 팔아 번 돈으로 고기도 사 먹고 여행도 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결국 시장의 논리에 굴복하게 되더라도, 서점을 지키는 것이 더 이상 행복하지 않은 날이 오더라도 나는 ‘잘했군 잘했다’며 그들에게 축배를 권할 것이다. 휴남동 서점의 영주가 《그리스인 조르바》에 빗대어 말했듯, 실망해도 춤을 추고, 실패해도 춤을 추고, 심각해지지 말 것이며, 웃고, 웃고, 또 웃자고 할 것이다.

하지만 영주는 서점을 단 한 달 운영하더라도 이제는 안 되는 쪽이 아닌, 되는 쪽으로 희망을 걸어보고 싶었다. 만약 앞으로의 휴남동 서점이 지금까지와의 휴남동 서점과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다면 그것은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달라졌기 때문일 터였다. 그러니 가장 먼저 영주의 마음이 달라져야 했다. 희망, 희망 쪽으로.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중에서

언젠가 다시 책의 부흥기가 올까? 사람들이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할까?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게 나의 비관이다. 그럼에도 한 줌의 독자들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 한 줌의 독자들이 있는 한, 책과 작가와 서점은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춥고 어두운 골목 한구석에 홀로 불을 밝힌 가게처럼 귀한 독자들을 따뜻이 맞이할 것이다. 우리는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게 나의 희망이다.

Movie — 이자벨 코이젯트 〈북샵〉(2020)
Book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황보름 | 클레이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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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수희

일러스트 점선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