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보고 조리봐도 좋은

박지연 — 콘텐츠 크리에이터

인스타그램 10만 팔로워에 ‘집밥 둘리’라는 이름으로 10년 넘게 요리 콘텐츠를 만드는 크리에이터 박지연. 얼핏 보면 그럴싸해 보이지만 그녀를 완벽히 설명하는 건 아니다. 작은 취향을 꾸준히 쌓아온 일상으로부터 보다 반짝이고 유쾌한 심지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맛있는 요리를 해서 예쁜 그릇에 담기, 취향 나누기, 빈티지 숍 구경, 오래된 물건 수집과 초록색 둘리. 좋아하는 것들에게 둘러싸인 그녀의 하루는 요리보고 조리봐도 즐겁다.

미국의 영화나 드라마 속에 들어온 기분이에요. 이를테면 영화 <줄리&줄리아>(2009) 같은 것들요. 

저도 그 영화를 좋아해요. 주방이 줄리의 공간과 비슷한 느낌이죠? 엇비슷한 시대의 제품이 많아서 그런가 봐요. 오븐이 달린 이 하얀색 가스레인지는 무척 아끼는 거예요. 초록색 냄비도 예쁘죠? 로고나 디자인이 빈티지한 조미료들은 한편에 모아두었어요. 이쪽으로도 와보실래요? 방 안에 온갖 책이나 컵, 전자 제품, 장난감 같은 수집품들이 있어요. 

 

정말 많네요. 모두 가지런히 차곡차곡 쌓여 있고요. 집 구조가 독특해 보여요. 

여기가 평택이라 근처에 미군 기지가 있어요. 그래서 아메리칸 스타일 주택이 많아요. 비슷한 구조의 주택들이 줄지어 서있는 거죠. 한동안 운영하던 오프라인 스튜디오를 재정비하는 중이라 집 안에 물건이 많이 쌓였어요. 바닥에 두기엔 영 내키지 않아서 선반이나 수납장에 쭉 늘어두었고요. 같은 종류나 비슷한 색끼리 모아두고, 책은 일일이 세워두기보다 자유롭게 쌓아놨죠. 그 나름의 멋이 있는 것 같아서요. 

 

집 구경하다가 소개를 잊을 뻔했네요. 간단한 인사를 전해주실래요? 

ʻ집밥 둘리’라는 이름으로 요리 콘텐츠를 만들고 빈티지 아이템을 모으는 박지연입니다. 둘리라는 이름은 그 캐릭터를 좋아해서 쓰기 시작했어요. 저는 연두 둘리가 아닌 초록 둘리를 보고 자란 세대인데요. (둘리의 색은 방영 시기에 따라 다른데, 연두색이 초록색보다 나중의 것이다.) 둘리는 낯선 별에 떨어져서 엄마를 찾고 친구들과 좌충우돌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가잖아요. 가끔은 외로워하다가도 금방 밝아져서 개구쟁이처럼 살고요. 그런 상황과 감정이 저랑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얼마나 좋아하냐면, 술을 마시다가도 진지한 대화 소재 거리로 둘리를 꺼낼 만큼 좋아해요.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써놓은 다섯 단어도 봤어요. 떡볶이 러버, 빈티지 러버, 요리책, 빈티지, 초능력. 다른 건 전부 알겠는데 초능력은… 둘리 때문인가요? 

이상한 종교 같아 보이진 않죠(웃음)? 둘리를 생각하면서 쓴 단어긴 하지만, 실제로 초능력이 존재한다고 믿어요. 한마음으로 오랫동안 바라며 나아가다 보면 무언가 이루어지는 게 있잖아요. 꿈을 그리고 따라가는 사람은 결국 그 꿈에 도달하게 되니까, 어떻게 보면 일종의 초능력 아닐까 싶었어요.

먹음직스러운 영상 콘텐츠를 꾸준히 만들어 왔죠. 요리는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어요? 

어릴 때 할머니랑 보내는 시간이 많았는데요. 할머니가 기사 식당을 하셨기 때문에 요리가 익숙했어요. 안양 중앙시장에 가면 분식 포장마차가 늘어서 있어요. 같이 시장에 가면 할머니가 이것저것 장 보는 동안 저는 입구 쪽 가게에서 떡볶이 오백원 어치를 먹으면서 기다렸어요. 연두색 무늬있는 접시 아시죠? 거기에 비닐 싹 씌워서 떡볶이를 담아 주시는데, 진득하고 달큰하니 물엿이 많이 들어간 떡볶이였죠. 그릇도 비우고 볼일도 다 마치시면 같이 집으로 오고요. 

 

꽤 어릴 때 이야기일 텐데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네요. 

장 볼 때마다 가는 단골 가게였으니까요. 그곳을 제가 서른 살쯤 되었을 때 다시 가서 아주머니를 뵙고 인사 나눴어요. 그리고 1년 전에도 한번 갔었는데 이제는 몸이 아프셔서 안 나오신다고 하더라고요. 안양 중앙시장에 갈 때마다 그 떡볶이집을 체크하곤 했어요. 잘 계시나 하는 마음으로. 

 

할머니가 식당을 하셨으니 요리 솜씨도 대단하셨겠어요. 

그럼요. 매 끼니 잘 먹이려고 하셨어요. 옛날 분들은 음식이나 재료가 그냥 버려지는 걸 아까워하시잖아요. 이것저것 활용해서 다양한 요리를 해주셨는데, 하루는 예식장에 갔다가 종이 호일에 절편을 싸오셨더라고요. 그걸로 떡볶이를 해주셨는데 쫄깃쫄깃하니 맛있었어요. 그리고 총각김치된장지짐도 생각나요. 김치가 너무 익으면 먹기 힘드니까 그걸 씻어서 고춧가루 양념을 빼고 된장을 넣어서 지지는 음식이에요. 무가 말랑말랑해져서 칼칼하고 구수하면서 짭짤하니까 완전 밥도둑이었죠. 

 

어우, 군침이 도네요(웃음). 음식과 관련된 또 다른 기억이 있어요? 

어릴 때도 음식을 예쁘게 담는 걸 좋아했어요. 할아버지가 가끔 커피를 끓여 오라고 하셨거든요. 그때는 커피가 아니고 ʻ코피’지만요(웃음). 커피 가루 두 번에 프리마, 설탕 두 번을 외우고 있다가 할아버지가 부탁하면 달려가서 만드는 거예요. 예쁜 컵으로 골라서 받침까지 꼭 가져다 드렸고요. 그렇게 하는 게 재밌으니까 할아버지가 언제 커피를 타달라고 하는 건지 목을 빼고 기다렸어요. 

 

그런 일상이 쌓여서 전공도 조리과로 선택한 건가 봐요. 

원래는 건축토목과였어요. 적성에 안 맞아서 조리과로 다시 입학했죠. 생각보다 잘해서 장학금도 타고 조교도 맡았어요. 그런데 문득 모든 게 힘들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지막 20대의 삶은 이곳이 아닌 어디론가 떠나서 살고 싶었어요. 그래서 선택한 게 미국이라는 나라였고 뉴욕, 보스턴, 텍사스를 넘나들면서 살았어요. 요리 콘텐츠와 빈티지 수집도 미국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죠.

매력적인 빈티지 그릇에 음식을 담아 올리는 걸 인스타그램에서 시작했다고 알고 있어요. 

인스타그램이 맨 처음 서비스 시작했을 때를 아세요? 그때는 사진도 한 개밖에 못 올리고 게시글 수정이 안 됐어요. 한국 유저도 찾아보기 힘들었고 팔로워도 천 명이면 많은 거였죠. 그때부터 인스타그램을 이용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빈티지와 요리를 하나로 아울러서 콘텐츠를 만들었죠. 추억을 담은 에피소드나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 이야기를 적었어요. 붕어빵이나 김치찌개, 된장찌개, 오징어볶음 같은 한국 음식과 외국 요리도 하고요. 처음에는 사심 없이 기록용으로 시작한 건데, 점점 인기가 많아지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오게 되었네요. 

 

빈티지 아이템 수집에는 어떻게 발을 들이게 되었어요? 

보스턴에서 지낼 때 우연히 ʻ세컨핸즈 숍’을 들렀어요. 제 눈에는 아무리 봐도 예뻐 보이는데 왜 버렸나 싶은 것들이 많더라고요. 물론 구제 제품을 처음 본 건 아니에요. 한국에서도 교복 위에다가 구제 스웨터 입고 잔스포츠 가방에 운동화 신곤 했거든요. 영화 <나 홀로 집에> 시리즈 즐겨보면서 ʻ아메리칸 빈티지’라는 취향을 갖기도 했고요. 이후로는 아예 엔티크 숍을 찾아가 보기로 하고, 주변 가게들을 전부 지도에 저장해두었어요. 도장 깨기 하듯 하나씩 들러보면서 컵이나 식기, 가전제품, 간판, 장난감에 어떤 라벨이 달려 있는지 타이포그래피가 어떤지, 어느 나라에서 만들었는지 구경하는데 정말 재밌었죠. 하도 걸으니까 운동도 되더라고요. 

 

하나하나 뜯어보는 재미가 있죠. 미국에서 가장 처음 수집한 아이템은 뭐예요? 

아마 밀크글라스일거예요. 코렐Corelle이라는 브랜드가 그때도 지금도 유명한데요. 제 나이 또래의 엄마들은 코렐 밀크글라스 식기를 주로 혼수로 했대요. 그래서 집집마다 비슷한 그릇이 있고 그 그릇과 관련된 기억이 있는 거죠. 여기 핑크색과 하얀색이 섞인 꽃무늬 볼 보이세요? 이건 제가 어릴 때 한국에서도 쓰던 패턴인데 해외에서 만나니까 너무 반가웠어요. 

 

집밥 둘리의 레시피 영상을 보면, 요리뿐 아니라 빈티지 식기에도 눈길이 가요. 

음식을 만들고 식기를 매칭하는 일은 ʻ내일 뭐 입고 나갈까?’와 같은 설렘을 줘요. 저는 접시를 도화지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날의 메뉴를 정하면서 어떤 유형의 식기와 커트러리, 테이블 웨어를 쓸지 구상해요. 무늬나 색까지 구체적으로 정하진 않고, 요리가 완성된 모습을 보고 자연스레 어울리는 걸 집어오죠. 오벌 플레이트는 무얼 놔도 풍성하니 맛있어 보이고, 둥근 냄비 같은 파이렉스 캐서롤은 라면을 담아도 좋아요. 패브릭은 체크 패턴을 자주 쓰는데요. 체크는 주방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디자인이거든요. 컬러마다, 패턴 크기마다 느낌이 달라서 직접 만들어서 쓰기도 해요.

책장에 가득한 요리책들도 알록달록 예뻐 보여요. 

가장 많은 건 《베티 크로커Betty Crocker’s》 시리즈라고 미국에서 주로 먹는 가정식 요리를 소개한 레시피 북이에요. 백 년도 넘은 국민 브랜드로, 워킹맘의 요리나 전자레인지 요리법, 세계 각국의 요리 등 주제 분류가 잘되어 있어요. 빨강, 노랑, 초록 알록달록하게 촌스러운데 그 느낌이 좋아서 모았어요. 누군가의 메모도 남겨져 있고요. 그리고 이 책은 《Japanese Soul Cooking》이라는 요리책인데 멋 부리지 않은 사진이 자연스럽고 매력적이에요. 젓가락 끝에 밀가루 반죽이 묻어 있거나 잔의 로고가 삐뚤어진 모습을 그대로 보여줘요. 맥주를 따른 잔에 김이 빠진 모습도 있죠? 거품이 이렇게나 빠진 거면 가득 따라 놓고 한 1분은 떠든 거예요(웃음)

 

(웃음) 작은 포인트에서 에피소드가 상상되니까 더 재미있네요. 이런 책들은 평소에도 자주 봐요? 

펼쳐 두면 시간 가는 줄 몰라요. 요리책이 하나의 사진집 같으니까 매일 들춰봐도 늘 새롭고 영감이 되어 주거든요. 그리고 책에 코를 대보면 오래된 냄새가 나는데요. 남의 집 곰팡이 냄새 있잖아요. 그런 감각들을 느낄 수 있는 게 좋아요. 

 

왜 이런 것들을 사서 모으고 싶었는지 궁금해져요. 

이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그냥 내 눈에 예뻐서 모은 건데. 물건들이 가진 특별함을 들려주는데 듣는 사람이 좋아해 주면 저까지 막 행복해져요. 아, 또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요! 

 

이번엔 뭐예요? 

이게 진짜 오래된 라디오인데요. 1940년대에서 50년대 정도에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 Company에서 나온 라디오예요. 원래는 아예 작동하지 않던 걸 소리가 나도록 고치고, 블루투스 연결 기능까지 넣어두었어요.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어볼까요? (맑은 알림음이 들리며 블루투스가 연결되더니 이내 캐럴이 흘러나온다.) 

 

지금은 영화 <나 홀로 집에>(1991) 속 한 장면 같네요. LP를 듣는 것 같기도 하고, 노이즈마저 기분 좋게 들려요. 

정말 좋죠(웃음)? 빈티지 물건을 사다 보면 뒷면의 역사를 상상하게 돼요. 예를 들어 이 라디오로는 어떤 노래들을 들은 걸까, 손잡이가 달린 거 보니 나처럼 밖에서도 들었을까. 여기 있는 나무 장난감은 아기 선물이었을 텐데 그 아기는 지금 몇 살이 됐을까. 장난감이 1968년도에 만들어졌으니 아들딸이 벌써 장성했을 나이겠네 해요. 《LIFE》도 두툼한 뭉치로 보관하고 있는데, 잘 보면 배송을 받았던 이의 주소까지 붙어 있어요. 그럼 위성 사진으로 검색해 보면서 이런 집에 살던 사람이 시켰겠구나 생각해요.

어쨌든 사용감이 있는 물건들이잖아요. 누군가가 남긴 흔적에 대해 거리낌이 적은가 봐요. 

어떤 물건은 쓰던 사람의 영혼이 담긴다고들 하잖아요.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정말 있긴 해요. 그 흔적이 싫다기보다 더 가깝고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에요. 나에게 왔으니 내가 예뻐해 주자고요. 책 볼 때 일부러 낙서가 남아 있는지 찾아보기도 하고, 짝짝이 물건이라도 구매해서 새로운 짝을 찾아줘요. 다만 실용성을 위해 구매를 고려하는 분들이라면 작은 흠집도 잘 살펴보셔야 해요. 컵 받침을 액세서리 보관용으로 쓰듯 꼭 본래 용도로만 쓰지 않아도 좋으니 쓰임을 고민해 보세요. 먼지가 쌓이는 순간, 물건은 잊히고 낡아져버리니까요. 

 

지금까지 이야기를 듣고 보니 자신의 취향에 충실한 삶을 보내온 것 같아요. 

무엇 하나를 좋아하면 꾸준히 좋아하는 편인데요. 취향도 잘 바뀌지 않고, 바꿀 생각도 없어요. 제 공간을 보고 놀라는 분들도 있을 텐데, 미니멀의 매력이 있듯 많은 것을 가진 삶에도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공간이든 그곳에 머무는 사람의 취향과 정성이 녹아 있을 테고요. 

 

익숙함에서 애정을 발견하는 분이네요. 최근에는 서울에서 새로운 공간을 준비하느라 바쁘다고요. 어떤 곳일지 궁금한데요? 

2019년부터 ʻ아날로그 가제트Analog Gadget’라는 이름의 스튜디오 겸 숍을 꾸리면서 빈티지 아이템을 판매했어요. 공간을 찾아준 분들께 간단히 와인이나 커피, 팬케이크 정도의 음식을 제공하면서요.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한 번 온 분들과 언니 동생 사이로 가까워졌는데요. 그 공간을 문 닫게 되었을 때 다 같이 와서 인사 나누고 슬퍼해 주기도 했어요. 앞으로는 서울에서 다시 해보려고요. 요리책들 가져다 놓고 맘껏 볼 수 있게 하고, 영화 속 줄리의 주방처럼 조리 도구도 마구 걸어 놓을 거예요. 간단한 음식을 먹으면서 빈티지 아이템 이야기를 나눠도 좋을 것 같네요. 나중에 놀러 오세요. 

 

꼭 갈게요. 먼 훗날, 누군가가 지연 씨가 오래 쓰던 물건을 빈티지로 구입한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어요? 

음, 좋은 주인이 되어달라고요. 나랑 비행기도 타고 사람들도 만나고 즐거운 일상을 보낸 물건들이니까 그 애정을 그대로 이어가 달라고 할래요.

AROUND 온라인 구독

어라운드의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읽어보세요.

구독 시작하기

에디터 이명주

포토그래퍼 김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