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하지 않아도 괜찮아

배우 박진희

요란하지 않아도
괜찮아

박진희

광주 무등산 초입의 한 미술관에서 배우를 만났다. 그녀는 천천히 걷다가, 멀리 보다가, 자주 웃었다. 처음 만났지만 오래 안 듯한 얼굴로 수다를 떨었다. 아주 자연스러운 시간이었다.

Interview
배우 박진희

“처음에는 인터뷰를 통해 환경 문제를 말하는 걸 꺼렸어요. 하지만 두려워도 조금씩, 자연스럽게 말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어요.”

먼저 축하드려요. 얼마 전 둘째를 출산하셨죠.
이제 두 달 반 됐네요. 자연 분만을 했는데 아주 건강하게, 엄마를 많이 힘들지 않게 해줬어요. 

둘째가 더 힘들다고 하던데 괜찮았어요?
오히려 한 번 경험이 있어서 둘째가 더 쉬웠어요. 그런데 보통 아이들보다 몸무게가 1킬로그램 정도 더 크게, 4.1킬로그램으로 나왔어요. 선생님들도 많이 걱정하셨는데 다행히 아기도 저도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그리고 지금은 두 달 만에 8킬로그램이 됐어요.

아, 원래 그런 속도인가요?
보통은 돌 정도 돼야 그 정도 무게가 나가는데 아주 빨리 자라고 있어요. 잘 먹고 잘 자요. 컨디션이 무척 좋은 편이어서 밤에 한 번도 안 깨요. 지금 모유 수유를 하는데, 보통 아기들은 길게 먹을 수 없어서 자주 먹여야 해요. 하지만 이 아이는 아침, 점심, 저녁 세 번만 먹어요. 잘 먹고 잘 자니까 육아가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아이를 키우는 일이라는 게 부모가 먹는 것, 입는 것, 보고 말하는 것까지 전부 아이에게 맞춰야 하는 거잖아요.
아이를 갖고 <리턴>이라는 드라마를 했잖아요. 중간에 투입돼서 사람들이 많이 힘들었겠다, 마음고생했겠다, 위로해주셨어요. 사실 의외로 제가 마음고생을 잘 안 하는 성격이라 괜찮았어요(웃음). 대신 촬영을 하면서 캐릭터의 감정이 극으로 치닫고 결국 자살로 마무리되는 역할이었기 때문에, 그게 태아에게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걱정했어요. 혹시라도 예민하고 까칠한 성격이 되면 어쩌나 하고요. 그런데 의외로 너무 순한 거예요. 아니, 태교가 영향이 있긴 한 거야? 그러면서 웃었죠.

아무튼 컨디션이 좋아 보여서 다행이에요. 오늘 나누려는 대화는 환경에 대해서예요. 진희 씨는 친환경 연예인으로도 유명하잖아요. 가장 대표적인 일화가 2007년 서해안 기름 유출 사고 때였죠. 언론에 알리지 않고 제거 작업을 하러 가서 화제가 됐던 기억이 나요.
그때 아주 국가적으로 난리가 났잖아요. 소식을 듣고 어떻게 하지 그러고 있는데, 다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도왔어요. 그래서 저도 매니저한테 전화를 했어요. 가서 일손을 도울 건데 함께할 사람이 있으면 같이 가자고요. 그랬는데 떠나기 이틀 전 즈음에 배용준 선배님이 기부를 하신 거예요. 그것도 아주 큰 금액을요…. 나도 돈을 내야 하는 거 아니야? 다른 연예인들은 돈을 내는데, 박진희는 몸으로 때운다더라 그렇게 생각하면 어떻게 하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절대로 알려지면 안 되겠다 싶어서 마스크 쓰고 모자 쓰고 조용히 간 거죠(웃음). 

아니, 뭐 어때요. 더 좋고 덜 좋은 일이 어디 있어요.
아니야, 절대 안 돼. 아무튼 그렇게 갔는데, 현장에서 너무 감동을 받았어요. 우비랑 장화를 받는 줄이 100미터가 넘는 거예요. 그야말로 끊임없이 줄을 서더라고요. 그런데도 한편으로는 조금 안타까웠던 게, 정말 많은 분들이 좋은 의미로 도움을 주는데 장갑이나 우비 같은 일회용품이 또 한쪽에 아주 커다랗게 쌓이고 있더라고요. 거기서 깨달은 세상의 이치가 있어요.

그게 뭐예요?
환경 문제를 거론할 때 발전과 환경을 위해 어떤 걸 선택해야 할지 늘 고민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 플라스틱을 쓰지 않는다면 좋겠지만, 또 당장 쓰지 않는다면 생활 편의가 너무 떨어지는 거예요. 삶의 질이 떨어질 텐데, 고민하게 되고요. 언젠가 제 SNS에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쓰자고 얘기한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어떤 친구가, 자기 부모님이 영세한 공장에서 종이컵을 만드는데 무척 힘들게 일하신다는 거예요. 자기도 텀블러가 옳은 건 알지만 종이컵을 만들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요. 거기에 대고 그래도 종이컵을 만들지 말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각자의 삶에서 무엇이 더 옳고 그른지 더 나은 선택을 해야 할 때 너무 힘들더라고요.

선善은 결국 상대적일 테니까요.
맞아요. 환경 문제는 지금 과도기라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사실 친환경이라는 말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거든요. 경각심을 가지고 문제의식을 느끼는 일이 얼마 되지 않으니 끊임없이 고민을 하는 거겠죠.

그래도 분명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있잖아요. 그리고 거기에는 분명한 책임도 따르고요.
배우처럼 평범하지 않은 일을 하는데 집에서 아기만 보고 있으면 불안하지 않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물론 제가 혼자일 때는 일에 올인할 수 있었지만, 가정을 가진 다음에는 에너지를 둘로 나눠야 해요. 욕심내서 결혼 전처럼 일하려면 그걸 받아주는 남편과 아이가 있어야겠죠. 하지만 그들은 행복하지 않을 거예요. 제 선택은 일을 조금 덜 하는 거예요. 덜 하는 동안 가정에 충실해야죠. 가정에 충실할 때 오는 행복이 분명히 있어요. 그래서 일을 쉴 때도 불안하지 않아요. 

자기 앞에 놓인 것에서 행복을 찾는 거네요.
자연에게 많이 배웠어요. 조바심 내지 않는 거죠. 아이를 키울 때 누구네 아기는 몸을 뒤집었다는데, 또 누구 아기는 걸었다는데 하고 비교하지 않아요. 자연에는 늦게 자라는 나무도 있고, 뚱뚱한 나무도 있고, 날씬한 나무도 있잖아요. 

좋네요. 이곳은 저녁이 되니까 풀벌레 소리가 더 잘 들리네요.
정말 좋아요. 저희 집은 아파트인데도 창문을 열어놓고 자면 풀벌레 소리가 너무 잘 들려요. 자연 속에 있는 기분이에요.

자연스러운 삶이라니까 생각나는데 그 당시에 ‘북극곰을 위한 일주일’이라는 프로젝트에서 문명의 혜택 없이 일주일을 살기도 했잖아요?
화석연료를 안 쓰고 일주일을 살아보는 거였어요. 일단 전기를 쓸 수 없고, 어딜 갈 때도 자전거를 타고요. 정 스케줄 때문에 안 될 때만 대중교통을 이용했어요. 일단 전기를 쓸 수 없으니까 100년은 거슬러 사는 거죠. 밥 한 끼를 먹으려 해도 아주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하나뿐인 화구에 불을 피우고, 밥 하고, 국 끓이고, 반찬 준비하니까 8시부터 준비한 아침을 11시에 먹게 되는 거예요. 바로 또 점심 준비해야 하고. 이게 말이 안 되는 거죠. 그러고 보면 인스턴트 음식이 나오고 배달이 발달하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절약했나 생각하게 됐죠. 그 절약한 시간을 또 다른 일을 하는 데 쓰도록 하는 게, 혹시 우리를 노동의 노예로 만들려는 속셈 아니야? 그런 생각도 하고요(웃음).

그게 또 그렇게 연결되네요.
밥 먹을 시간 줄여서 노동을 하게 만드는 게 뭔가 꿍꿍이가 있어요(웃음).

예전 자료를 찾아보니 욱한 성격 때문에 생긴 일화들도 있더라고요.
예전에는 정의감에 불탈 때가 있어서 잘못된 거 있으면 따지고 신고하고 그랬어요. 어릴 때 산 밑 쪽에 산 적이 있어요. 위에서부터 시냇물이 흐르면 참 좋았는데, 어느 다리를 기점으로 썩은 물이 되어 흐르더라고요. 악취도 심하고요. 왜 그럴까 하다가 어느 날은 마음먹고 이유를 찾아봤어요. 어떤 한 지점에서 폐수가 완전히 시냇물로 이어져서 흐르더라고요. 담당 공무원에게 확인해달라고 신고했죠.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도 조치가 없는 거예요. 다시 물어보니까 깜빡 잊었대요. 어떻게 깜빡 잊을 수가 있냐고 소리를 질렀죠. 그 뒤로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서 청와대 신문고에 내용을 올렸어요. 그랬더니 곧 연락이 와서, 어떻게 처리할 거라고 담당자가 친절하게 설명하더라고요. 그러면서 그분이 말씀하시길, 자기가 딸이 둘 있는 가장인데, 이런 게 올라가면 감봉이 되고 승진에 영향이 있다고요. 분명 자신이 잘못한 일이지만 일이 많아서 그런 거니까 너그러이 이해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뒤로 신고하는 걸 끊었어요. 저는 젊은 혈기에 얼마나 우쭐했겠어요. 정의감으로 너를 벌하고 말 거야, 그런 마음이었을 거 아니에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과연 누구를 위한 일이었을까, 왜 다른 사람의 처지를 돌아보지 않았을까 반성하게 되더라고요. 

겉으로는 강한 척 해도 계속 마음 쓰는 성격 같아요.
귀가 얇은 거죠, 뭐.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 것도 그런 성격 때문이에요?
사실 이것도 환경하고 관련이 있어요. 제가 환경영화제 홍보대사로 대상을 시상하게 됐어요. 러시아의 사람을 잡아먹는 호랑이와 그를 잡으려는 가난한 인간의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였는데, 결국 호랑이는 사람 손에 죽죠. 그런데 알고 보니 호랑이는 새끼를 지키기 위해 사람을 해쳤던 거였어요. 죽은 호랑이의 몸에는 이전에도 받았던 총알이 몇 개나 박혀 있는 상태였고요. 그걸 보면서 인간이 살기 힘들 때 환경을 파괴하는구나, 자연을 훼손하는구나 생각했죠. 사회복지라는 것이 사람이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잖아요. 자연을 위해 사람을 살게 해야겠구나 해서 공부하게 됐죠.

그러고 보면 오늘 대화하려던 자연 이슈도 결국에는 ‘함께 산다’라는 걸 전제하는 거잖아요. 내 주변을 돌아보는 태도 같은 것 말이에요.
그때는 그렇게 공부를 시작했지만 논문을 쓸 때는 내가 왜 그랬을까, 미쳤지 하면서 푸념했죠(웃음). 아무튼 저한테는 아주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요.

요즘은 많은 유명인이 환경 관련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어요. 반가울 것 같아요.
네, 반가워요. 특히 방탄소년단이나 박보검 씨 같은 분들이 공개석상에서 잠깐이라도 언급을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요. “여러분 빨대 사용하지 마세요.”라고 말해준다면 그 팬들이 얼마나 큰 영향을 받겠어요. 저보다 훨씬 파급효과가 큰 거죠. 이유야 어쨌든 좋은 결과물을 가져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에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역시 수상 소감을 통해 자연에 관한 메시지를 던졌잖아요. 서울 어느 조그만 마을에 사는 제가 볼 정도면 그 영향력이야 말할 것도 없겠죠.
맞아요. 너무 사랑해요. 저 디카프리오 되게 좋아하거든요. 멋있는 오빠가 저런 수상 소감까지 하다니. 저 오빠 완전 짱이야, 그러면서 봤어요.

최근에는 진희 씨의 오랜 시간 동안 이어온 활동들이 사실은 나중에 정치 활동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있었어요(웃음).
정치요? 아, 한 TV 프로그램에서 김다래 씨가 우스갯소리로 한 건데요. 전혀 아니에요. 인터뷰를 하면 꼭 환경에 관련한 생각을 한마디로 정리해달라고 질문받고는 해요. 저는 늘 자기가 행복한 만큼 각자 실천하는 게 좋다고 대답하죠. 누군가는 텀블러 쓰고, 빨대도 안 쓰고, 재활용, 재사용만 한다는데 그걸 다 따라하려면 버겁겠죠.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거예요. 다 귀찮고 물만 아껴 쓸래 하면서, 15분 하던 샤워를 10분으로만 줄여도 멋진 거고요. 그만큼 제 꿈이 원대하진 않아요. 정치라니, 가당치도 않죠.

보통 자기 생각이 옳다고 믿으면 주변에 강요하는 경우도 많잖아요.
저도 옛날에는 아주 심했어요. 만나는 사람들마다 빨대 쓰지 말라고 강요하고, 매니저가 엘리베이터 버튼 누르면 2층 가는데 왜 누르냐고 버럭 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자신이 행복한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맨날 텀블러 쓰다가 오늘 하루 안 가지고 왔는데, 커피가 너무 먹고 싶으면 먹는 거예요. 예전에는 일회용 컵밖에 없으면 절대로 안 먹고 오히려 텀블러를 하나 더 샀는데, 그게 과연 환경을 위한 일인가 다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물론 텀블러를 사용하고 자연을 생각하는 게 나한테 무척 중요한 일이지만 당장 커피를 먹는 게 행복하면 그걸 따라야 하겠죠. 

저는 꾸준함이 곧 진정성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꾸준하게 하려면 지치지 않아야 하고, 더 나아가서는 그게 생활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편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방금 이야기가 이해돼요.
텀블러를 가지고 있다가 생각나는 날 들고 나가면 되는 거죠. 의무감을 가지면 한 달밖에 못 해요. 그런데 오늘은 안 가지고 왔지만 내일 들고 나와야지, 생각하면 일 년을 해요. 그게 습관이죠.

물론 습관을 들이는 게 쉽지는 않겠죠.
노력하면 길이 보이더라고요. 저도 처음에는 샴푸와 린스를 다 썼어요. 그러다 린스 대신 식초를 쓰기 시작했는데, 누가 식초 냄새가 난다고 해서, 안 되겠다 싶어 밀가루를 사용했어요. 샴푸 대신 비누를 쓰기도 하고요. 그런데 작품 들어갈 때 푸석푸석한 상태로 드라이를 했더니 머리가 그냥 뜨는 거예요. 안 되겠다 싶어 잘 분해되는 샴푸를 찾아서 쓰기 시작했죠. 큰애를 키울 땐 천 기저귀만 썼어요. 일회용은 많을 때는 하루에 15개도 쓰더라고요. 열흘이면 150개잖아요. 어마어마한 양이죠.

천 기저귀를 쓰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집에서야 괜찮은데 외출이라도 하면 사용한 천 기저귀를 비닐봉투에 넣어야 하잖아요. 그것도 문제가 되는 거죠. 그래서 이번 둘째 때는 자연 분해되는 옥수수 전분 기저귀를 사용해요. 180일 안에 분해되는 대신 가격이 만만치 않아요. 그래서 집에서는 천 기저귀를 쓰고 외출할 때는 전분 기저귀를 혼합해서 사용하죠.

환경에도 많은 분야가 있을 텐데 그럼 요즘 진희 씨는 육아 쪽 이슈에 가장 관심이 가겠어요.
맞아요. 애기 키우다 보니까 일회용 쓸 일이 너무 많아요. 기저귀도 그렇고, 분유도 요즘에는 일회용으로 나오는 게 있어요. 애기 옷도 일회용은 아니지만 너무 빨리 입고 버리니까, 저는 그래서 다 얻어 입혀요.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이가 어릴 때 쓰던 일회용품들이 이 아이가 장수해서 오래 산 뒤 저 세상에 갔을 때도 살아 있다면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운 일일까.

그걸 웃으면서 얘기하네요(웃음).
그러니까 우리 아이가 아주아주 장수했을 때(웃음) 말이죠. 장수, 그게 전제예요. 이 소중한 아이가 자연을 죽이고 가는 건 너무 슬픈 일이잖아요. 아이가 태어났을 때 자연과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엄마로서의 의무 같더라고요. 그래서 옛날보다 더 심도 있게 고민하고 있어요. 

아이에게는 어떤 이야기를 해주나요?
첫째가 지금 다섯 살인데 엄마 화장품에 관심이 많아요. 그러면 저는 이렇게 얘기해요. 엄마한테 소중한 거야. 함부로 만지지 말아줘. 만지고 싶으면 엄마한테 물어봐줘. 아이는 이제 소중한 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요. 소중한 건 조심조심 다뤄야 하고, 예뻐해줘야 한다는 걸 인식했어요. 그런데 이 아이가 요즘 물놀이를 좋아해요. 빨래하는 시늉도 하고, 샤워기 물 맞는 것도 무척 좋아해요. 그럼 제가 또 말하죠. 물은 정말 소중한 거야. 물을 마구 쓰면 엄마하고 자연한테 소중한 걸 함부로 하는 거라서 너무 슬퍼. 속상해. 이렇게 얘기하면 금방 알아들어요. 저는 어릴 때 불 꺼, 물 꺼, 맨날 이런 소리만 들었는데, 엄마의 그런 근검절약 정신이 어쩌면 이렇게 대물림되는 것 같아요.

소중함의 의미를 알려주는 게 좋은 거 같아요.
그래서 아이는 벌레도 잘 만지고 벌레 죽이는 걸 되게 싫어해요. 엊그제 집에 귀뚜라미가 들어왔는데, 저는 너무 놀라서 남편한테 좀 잡아달라고 하니까 옆에서 아이가 “죽이면 안 돼! 죽이지 마!” 소리치더라고요. 아이가 생명을 올바르게 바라보는 게 기뻤어요.

SNS를 보면 아이와 함께 웃고 있는 사진이 많아요. 감사하다는 표현도 많고요.
그래요? 제가 행복한 사람인가 봐요. 특히 요즘 날씨가 참 좋잖아요. 장난으로 남편에게 “얼마에 살래?” 하고 물어요. 그럼 십 만원, 이십 만원, 콜, 그런 대화하며 놀아요. 날씨가 좋은 날은 돈 번 거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저도 언젠가부터 하늘이 맑으면 기분이 좋더라고요. 바람도 좋고 햇빛도 좋고요. 자꾸 주변으로 눈을 돌리는 것 같아요.
나이 들면 그런 게 있어요. 자연스러운 거예요.

자연스럽다는 표현이 나와서 생각났어요. 임신하면 뚱뚱해지는 게 자연의 이치라고 방송에서 말한 적 있죠?
임신해서 뚱뚱해진 모습을 SNS에 올리려고 했더니 소속사에서 그런 건 다른 사무실에서 하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제가 지금 출산 후에 아직 8킬로그램 정도가 안 빠졌거든요. 아마 첫째를 낳았을 때라면 인터뷰 안 했을 거예요. 하지만 이제는 그게 자연스럽다는 걸 알아요. 사실 출산하고 두 달 만에 날씬하게 복귀하는 사람들도 있긴 있어요. 그건 체질이거나 본인이 아주 큰 노력을 한 거예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노력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또 수유를 하려면 잘 먹어야 하니까 포기했죠. 이게 자연스러운 거잖아요.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에피소드 같지만 저는 그게 진희 씨의 삶을 관통하는 태도라고 생각해요.
좋게 봐주시니 감사해요.

배우에게 솔직함이란 때로는 미덕이 되기도 하지만 또 반대로 걸림돌이 되기도 할 것 같아요. 이미지를 가지고 산다는 면에서요. 어떤가요?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사실 제가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배우여서 입고 나오는 옷마다 ‘완판’ 되고 그렇지는 않잖아요. 언젠가 영화 제작자 언니가 저한테 너는 너무 많은 영화에 거론된다고 하더라고요. 캐스팅보드 여기저기에 제 얼굴이 붙어 있대요. 그러면서 제가 꼭 해야 하는 역할이 있는 배우가 아니라고 했어요. 그 말은 곧 이 배역도 할 수 있고 저 배역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뜻이잖아요. 그 얘기를 듣는데 되게 행복했어요. 배우를 떠올릴 때 어떤 한 배역이 크게 떠오른다면 그 배우는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잖아요.

뚜렷한 캐릭터가 오히려 굴레가 될 수도 있는 거네요.
저는 평범해요. 유난히 예쁘지도 않고 유난히 스타일리시하지도 않고. 푼수 같은 역도 하다가 <리턴> 같은 것도 하다가, 또 어떨 때는 옆집 누나 같은 역할도 하고, 그런 게 저한테는 좋더라고요.

자꾸 겸손하게만 얘기하는데, 오히려 진희 씨야말로 나이들수록 더 많은 걸 보여주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어요. 배우와 배역이 주름 하나까지 함께 깊어지는 거겠죠.
좀 평범하지 않아요?

아니요, 절대로요.
신랑한테 말해줘야지(웃음).

너무 <연예가중계> 같은 질문은 안 하려고 했는데, 얘기가 나왔으니까 물어볼게요. 관객들은 진희 씨가 어떤 배우이길 바랄 거 같아요?
제가 착하고 바른 이미지가 조금 있나 봐요. 역경이 있어도 캔디처럼 일어나는 역할을 많이 해봐서, 아마도 그런 걸 기대하지 않으실까요? 하지만 저는 악역을 해보고 싶어요. 악역이라기보다는 질펀한 역할? 산전수전공중전까지 다 겪은 작부가 저기 어디 구석으로 가서 사는 그런 얘기. 망가질 대로 망가진 그런 역을 해보고 싶어요.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을지 저 자신도 보고 싶어요. 

혹시 그게 사람이 아니어도 되나요? 그러니까 지구에서 사람이 아닌 다른 역할, 다른 삶을 산다고 가정해본다면요.
음, 되게 이상한 답이 될 수도 있을 텐데 저는 제가 지구라고 생각해요.

어떤 의미예요?
가만히 보니까 자연이 다 연결되어 있더라고요. 단독으로 혼자 살거나 혼자 우뚝 설 수 없는 거죠. 북극곰의 죽음이 곧 인간의 미래인 것 같고, 인간이 행복해야 지구도 행복해지는 게 아닐까요? 제가 자연의 일부잖아요. 지구의 일부이자 모든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내가 나를 해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요. 결국 내가 친환경적인 삶을 살지 않으면 그게 나와 내 가족을 해치는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멋진 말 하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야’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저도 지구이고, 제 아이도 지구이고, 하다못해 벌레도 지구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느 하나 함부로 해할 수 없고 다치지 않아야 한다고 말이에요.

우문현답이네요. 마지막으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같은 연설이 필요해요. 모두가 모인 시상식 자리에서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가요? 기왕이면 자연과 관련해서요.
처음 쓰레기봉투를 사서 쓰고 분리수거 하라고 했을 때 반발이 심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그걸 당연하게 여기잖아요. 지금 우리나라처럼 잘돼 있는 나라도 드물죠. 이렇듯 환경을 생각하는 것이 일부의 의무와 책임을 넘어서 모두가 당연하다고 느껴야 해요. 교육돼야 해요. 어떻게 하는지가 아니라 왜 해야 하는지 이유를 먼저 배워야겠죠. 조금 더 구체적이고 깊숙한 교육이 있다면 좋겠어요.

미리 생각해본 거 아니죠?
배우인 이상 그런 기회가 왔을 때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늘 상상해보죠. 그럴 때마다 두려움이 앞서요. 환경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말했을 때 사람들이 그걸 제 진심으로 온전히 받아줄까 하는 두려움이요. 그래서 처음에는 인터뷰를 통해 환경 문제를 말하는 걸 꺼렸어요. 하지만 두려워도 조금씩, 자연스럽게 말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어요.

이미 진정성은 충분하니까요.
저도 언젠가는 멋있게 말할 수 있겠죠?

그녀의 가방 속에서 찾은 물건들

쇠빨대, 대나무칫솔, 일회용 플라스틱 재활용, 약은 모아서 약국에 버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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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건태

포토그래퍼 안선근 장소 제공 우제길미술관